강성찬 형제님/성도 말씀

누가복음에 기록된 주님의 놀라운 7개의 사건들

박이레 2026. 2. 21. 17:27

< 누가복음에 기록된 주님의 놀라운 7개의 사건들 > 강성찬 형제님 / 26년 2월 15일 일요일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라"(눅 1:1-4).

금방 우리가 읽은 대로 이 누가 복음은 특별한 한 사람에 대하여 수신자로 그는 이 글을 써서 보내고 있습니다. 그는 '데오빌로'라는 사람이었고, 각하라고 돼 있는 걸로 봐서 아마도 로마 제국의 고위 관료였던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는 배운 사람이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을 배운 것입니다. 그는 이 말씀을 배워서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도록, 자신이 들은 그 복음, 예수님에 대하여 듣고 믿은 그 내용이 오류가 없는 정확한 사실임을 그것이 분명한 진리임을 이제 알게 하도록, 이 누가는 이 글을 써서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다시 한 번 이 누가 복음을 통해서 우리가 믿은 그 내용이 분명한 사실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자 합니다. 특별히 이 복음서를 기록한 저자는 누가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이제 '누가 복음'이라고 되어 있는 것이죠. 이 누가에 대해서는 또 다른 이 성경에서 '사랑받는 의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는 이제 의사로서 바울과 함께 동역하면서 전도 여행에서 그를 많이 도왔던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이 들은 내용, 그리고 자신이 본 내용들을 가지고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이 '근원부터'라는 것은 우리가 어떤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살핀다면 무엇을 살펴보겠습니까? 그것이 왜 일어났는지, 그것이 일어나게 된 그런 원인은 무엇인지, 이제 이런 것이 '근원부터 살핀다', 이런 내용일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는 그것보다 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근원부터"라는 것은 '위로부터'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지 그는 이 사람들의 여러 가지 일들만 살펴본 것이 아니라 위에서부터,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알게 하신 그 내용을, 이것이 영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살펴보고 그는 이것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 성경이 놀라운 것이 누가는 의사로서 그가 받은 교육과 그가 글 쓰는 스타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누가를 사용하셔서 그 누가의 필체와 그 누가가 사용하는 단어들을 사용하시면서, 또한 하나님께서 영감하셔서 그 하나하나 단어 모두 영감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알려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그는 이것을 "차례대로 써보낸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순서부터 차례대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특별히 다른 복음서랑 비교해 보면, 우리 주님이 유년 시절에 어떻게 지내셨는지, 그리고 그전에 어떻게 태어나시고 또 태어나시기 전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까지, 그것부터 기록을 합니다. 그리고 누가 복음에서는 또한 승천하시는 장면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 복음을 보면 우리 주님의 일에 대하여, 그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가장 처음부터 또한 가장 마지막까지 전부를 우리에게 차례대로 제시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이 누가 복음에서 이러한 주님의 특별한 중요한 사건 7가지를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사실 주님께서 하신 일들이 다 중요하긴 하지만 사실 이 7가지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그 사건 이전과 그 사건 이후를 특별히 구별하는 구분하는 그러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이제 그 사건에 담긴 그 의미 그것들을 한번 하나하나 차례대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첫 번째로는 '우리 주님께서 태어나신 것'을 누가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부분을 한번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가브레엘 천사를 마리아에게 보내셔서 우리 주님의 그 탄생을 말하였을 때 마리아는 이렇게 말합니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눅 1:34-35).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눅 1:38).

우리는 이 탄생에서 첫 번째로 보는 것이, 이것은 '처녀에게서 주님이 태어나셨다'는 것입니다. 34절에 보는 것처럼 마리아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나는 남자와 관계한 적이 없다. 이렇게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말했을 때 천사는 35절에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탄생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의 탄생에서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그분께서 동정녀에게서 나셨다는 것입니다. 왜 특별히 우리 주님께서는 이 처녀에게서 나셨을까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첫 번째로 한 약속을 알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였을 때, 그들이 죄를 지어서 탈락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하실 것을 약속하시고 그 구원자로서 '여자의 후손'을 말씀하십니다. 창세기에 보면 '여자의 후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자의 후손이 그 사단의 머리를 밟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여자의 후손이 너희들을 구원할 거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왜 특별히 여자의 후손이라고 하셨을까요? 우리는 이 마리아로부터, 그 동정녀로부터, 주님이 나시는 이 장면으로부터 그 의미를 이제 깨닫게 됩니다. 정말로 이분은 여자의 후손이구나. 사실 모든 사람들은 다 여자에게서 납니다. 하지만 오직 예수그리스도만 처녀에게서 나신 것입니다. 특별히 그분은 '여자의 후손'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분이 아담으로 인해서 범죄한 그 아담에 속한,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죄인으로 태어나는 그런 사람과 다른 분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분은 태어날 때부터 거룩하신 자로, 여기서 그렇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실 바 거룩한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찾아볼 이제 7가지 특별한 이 사건을 보면, 전부 그 사건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이 "예수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하신 분이다."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로 이 탄생에서도 "그분은 거룩한 자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약속하신 구원자다." 이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이해하기 어려워합니다. 우리 세상 가운데 일어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믿지 못하겠다.'라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을 마리아는 이렇게 반응합니다. 38절에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리다." 마리아도 이것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이것을 겸손하게 받아들입니다. 저는 단지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것이 이 주님의 성육신을, 하나님이시지만 어떻게 사람으로 오실 수 있었는지, 그것을 우리가 받아들이는 열쇠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논리대로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무논리라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만의 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피조물인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그러한 부분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비슷한 것을 통해서 유추해 볼 수는 있습니다. 우리 사람도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육체라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썩어지는 육체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썩어지는 육체에 영원토록 존재하는 영혼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걸 우리가 어떻게 논리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과 비슷하게, 같은 것은 아니지만 정말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또한 사람으로 오신 것입니다. 온전한 하나님이시며 온전한 사람으로서 존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마리아처럼 대할 때에 받을 수 있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종으로서, 말씀하셨으므로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이것이 우리가 그분의 성육신, 그분께서 동정녀로 태어나신 것을 받는 자세인 것입니다.

이제 그 두 번째 사건으로 넘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두 번째 사건은 '침례'입니다. 누가 복음 3장 말씀 보도록 하겠습니다.

"백성이 다 침례를 받을쌔 예수도 침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 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눅 3:21-22).

이제 우리 주님의 생애 가운데서 중요한 두 번째 사건은 주님께서 침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왜 주님이 침례를 받으셨을까?' 이것을 먼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침례에 대해서는 '회개의 침례'라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요단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전파하니"(눅 3:3)

이제 이것에 대해서 '회개의 침례'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사람들이 자신이 잘못했음을 인정하고, 이제 그것을 인정하는 표로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은 것입니다. 왜 주님께서 이러한 침례를 받으셔야 됩니까? 앞에 말씀드린 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이분은 죄가 없는 분입니다. 회개할 것이 없는 분입니다. 그래서 침례 요한도 예수님께서 그 침례를 받기 위해 자기에게 나오는 것을 보고, "아니 내가 당신께 침례를 받아야 되는데 왜 당신이 이 침례를 받으려고 오십니까?"라고 물어보았습니다. 침례 요한도 조차도 "당신은 침례받을 필요가 없는 분입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이제 허락하라. 이 침례를 주라. 이것을 행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침례는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의'는 무엇으로 이룰 수 있습니까? '모든 의', 단지 회개하고 회개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 정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의를 이루려면은 십자가가 이루어져야 됩니다. 모든 의를 이루는 유일한 방법은 거룩한 피가 흘려져야 됩니다. 그래야 이제 죄가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침례'라는 것은 '십자가'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침례라는 것은 '앞으로 주님께서 행하실 일'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침례가 중요한 것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앞으로 무엇을 할지 을 보여주시는 그런 그림인 것입니다.
침례는 두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제가 왜 '침례'라고 말하냐면 여기서 이제 성경에 '세례'라고 아마 기록이 되어 있을 텐데, 제가 이것을 '침례'라고 이렇게 읽는 게 원래 이 성경 원어 자체가 '침례'입니다. 물속에 들어가는 그런 침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침례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떤 사람이 물속으로 이렇게 들어가고, 들어갈 뿐만 아니라 완전히 잠기는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이 딱 듭니까? '죽었다'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이게 침례라는 것은 첫 번째로 죽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물 속에 장사 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침례라는 것은 죽었기 때문에 이전과 단절되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은 이제까지 살아왔던 인생하고 끝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의 침례'라는 게 있는 것이죠. 이제까지 자신이 불순종하고 살아왔지만 그것이 이제 잘못됐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이제 돌이키겠다라는 표로, 그는 그것을 단절하겠다라는 표로 이 죽음을 상징하는 침례를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또한 침례가 한 가지를 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침례라는 것은 기존의 것과 끊어졌을 뿐만 아니라 이제 '새로운 것과 연결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것에 더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침례를 받다라는 것을 성경에서 찾아보면 '어디로'라고 돼 있습니다. '어디에' 영어로는 'in to'라는 전치사가 사용돼서 '어디에 침례를 받다', '어디에 들어간다', 이렇게 침례가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침례라는 것은 기존의 것과 끊어지고 두 번째로 어디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침례'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 성령 침례라는 게 있는데, 성령 침례라는 것은 우리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몸인 교회에 들어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구원받았다고 고백하고 그 고백한 사람들이 침례를 받게 됩니다. 물속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게 뭘 또 상징하는 거냐면, '그리스도에게로 들어간다'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됐다.' 이것을 이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이제 주님께서 받으신 것은 그래서 이 주님께서 여기서 받으신 침례는 구원받고 나서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그 침례랑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주님께서 받으신 침례는 어디로 들어가는 거냐면, 이 사람들에게, 이 죄인인 사람들에게 심판이 필요함을 인정하는, 하나님의 심판이 의롭다고 말하는, 이 심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하는 그 의로운 사람들의 무리,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게 주님께서 받으신 침례입니다.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주님께서는 거룩하신 분으로 그 회개의 침례를 받을 필요가 없는 분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하여, 참으로 그 심판이, 그 필요한 심판이 이루어지도록 그분께서는 그 십자가를 상징하는, 이것을 십자가를 내가 지겠다라고, 그 심판을 내가 받겠다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앞으로 자신이 할 일에 대해서 이 침례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침례를 받고 나서 이제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21절에 보면 "예수도 침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고" 주님께서 침례를 받으신 것은 이제 하늘이 열리게 할 것입니다. 죄인들에게, 그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그 죄인들을 차마 보지 못하는 하나님께서 그 하늘이 닫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모든 의를 이루시는 우리 주님의 십자가에 그 심판이 이루어졌을 때 하늘이 열릴 것입니다. 이것을 또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2절에 보면,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성령이 내려오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 심판을 받으심으로, 그 십자가를 받으심으로, 이제 성령이 믿는 사람들에게 내려올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침례는 주님이 이 땅 가운데서 이루실 그 십자가의 심판, 그리고 그로 인해서 믿는 자들에게 이루어지는 그 축복,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임하는 그 축복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도 다시 한 번 우리 주님께서 얼마나 거룩하신 분인지를 보게 됩니다. 성령이 '비둘기같이' 그분 위에 강림하셨습니다. 이 비둘기는 성경에서 정결한 짐승이고, 그리고 온유하고 순종적인 그 주님의 인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 위에는 성령께서 평안하게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그분께서 죄 없는 거룩하신 분이므로, 거룩한 성령께서도 비둘기의 형체로 그분 위에 임한 것입니다. 그분께서 참으로 거룩하신 분임을 여기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늘에서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증거해 주십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이 아들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고 사랑하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제 세 번째 사건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세 번째 사건은 '우리 주님의 시험'입니다.
이제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십니다. 그 부분 이제 4장 1절로 가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마귀가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하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 내리라 기록하였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또한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말씀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눅 4:1-13).

이제 주님께서 침례를 받으신 후에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십니다. 침례는 주님께서 앞으로 무엇을 하실 일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침례는 주님이 하실 일을 말하는 것이었고, 이 시험은 '주님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시험은 참으로 이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온전한 사람임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기 이 사단은 우리 주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3절에 보면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네가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을 테니 지금 40일 동안 밥을 먹지 못하고 굶주려 있지 않느냐? 네가 먹어야 되는 그 필요한 음식을 이 돌로 만들어서 먹어라. 그래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라.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막 구원받은 사람에게, 이게 사실 모든 구원받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시험이지만, 또한 막 구원받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시험입니다. 이제 구원받고 나면 여기 말씀에 하나님의 자녀라고 되어 있으니까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진다."라고 했으니까 나는 이제 구원받았으니까 하나님의 자녀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고 있는데, 사단은 와서 시험하는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그러면 이렇게 이렇게 한번 해봐." 이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 직전에 예수님께서 침례받을 때에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이제 하나님 아버지께서 증거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단은 즉시로 그것에 대해서 시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그러면 이렇게 해봐."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지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나타내 보일 수 있습니까? 우리는 때때로 이런 사단의 시험에 걸려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언제냐면 필요한 것을 공급하지 못했을 때, 당연히 있어야 되는 건데 사실 음식은 살려면 당연히 있어야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것이 주어지지 않을 때, 마땅히 있어야 되는 것이 주어지지 않을 때, '왜 나는 구원받은 사람인데 왜 이런 것이 주어지지 않지?' 의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사단은 이렇게 시험합니다. 많은 천하 만국의 영광을 보여주면서 "이걸 네가 가져라.
그래서 너가 나한테 절만 하면 이것을 너에게 주겠다."라고 약속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여러 가지 것들을 소유하지 못할 때에, 정말 눈에 좋아 보이는 이제 그런 것들, 내가 가지지 못할 때에, 다른 사람들은 다 있는데 나만 없을 때, 우리는 시험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사단은 이렇게 시험합니다. "한번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봐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천사들을 보내서 네가 땅에 부딪혀서 다치지 않도록 하나님이 보호하시지 않겠냐? 또 하나님께서 특별히 너를 보호하시지 않겠냐? 한번 해봐라."라고 합니다. 우리도 어떤 사고를 당했을 때, 정말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시는 것이 맞는지, 하나님의 자녀가 맞는지, 이제 이런 의심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게 사단이 우리에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임을 뭘로 증명하냐면, 그런 위험한 상황을 다 피하고, 또 안전하게 건강하고, 다치지 않고, 이런 것으로 하는 게 아니라, 그 놀라워 보이는 여러 가지 부와 명예를 취하고, 그래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내가 필요한 모든 것이 그때그때 공급되는 그걸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으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그 모든 것보다 먼저 두는 것', 그게 하나님의 자녀의 제일 첫 번째 특징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의 제일 첫 번째 특징은 그 모든 것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마땅히 취할 수 있는 거라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맞는가? 나한테 안 좋은 일이 사고가 생긴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신뢰를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있다'라고 그는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어떤 세상의 다른 영광보다도 하나님께 겸손히 예배드리는 것,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참 우리 주님께서는 이런 공격을 받았을 때,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렇게 이렇게 해봐라."고 했을 때 우리 주님께서는 이렇게 답변하십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다." 주님은 오히려 한 사람으로서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신데 오히려 겸손한 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이 시험으로 말미암아 우리 주님께서는 온전한 사람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온전한 사람이 무엇인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아담부터 시작해 가지고 사단에게 속아서, "네가 하나님처럼 되리라."라는 말에 속아서 전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의 뜻을 이루려고 합니다. 하지만 주님만은 한 사람으로서 겸손하게, 그분이 하나님이신데 오히려 한 사람으로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을 구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본을 받아야 되는 주님의 모습이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그 온전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번에는 이제 네 번째 사건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번째 사건은 변화산에서, 높은 산에서 우리 주님이 변화되신 장면입니다. 누가 복음 9장을 가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 팔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할쌔"(눅 9:28-3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눅 9:51).

이제 우리 주님께서 높은 산에 올라가셨을 때, 우리 주님께서 영광스러운 그 모습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이것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왜냐하면 이 변화산 사건을 기점으로 '주님의 사역의 성격'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금방 51절을 읽었는데요. 이제 이 변화산 이후에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시기로 굳게 결심하시고"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 변화산 전에서는 주로 갈릴리에서 활동하셨습니다. 갈릴리 지역에서 돌아다니시고 여러 가지 놀라운 기적들을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변화산 후에서는 51절에서 읽은 것처럼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가는 여정'이 됩니다. 그것은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그것을 향하여 나아가셨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변화산 후에는 이제 십자가로 나아가는 그 여정이 길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바로 이제 직진으로 예루살렘으로 쭉 가신 것은 아니지만, 이제 여러 지역을 순회하시면서 가신 것이지만, 예수님의 방향은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뒤에 보면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것을 가르치시는 내용이 많이 언급이 되기 시작합니다. 이 앞에는 여러 가지 기적들을 통해서 참으로 예수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그 능력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하게 증거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특별히 이 누가 복음에서는 예루살렘으로 나아가면서 이 변화산 후반에서는 여러 가지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예수그리스도께서 하시는 구원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고, 참 사람들의 그 상태가 어떤지를 말씀해 주시고, 참 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받을 수 있는 것인지를 말씀해 주시는, 가르치시는 내용들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변화산은 주님의 사역의 성격이 달라지는 그런 기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는 이 주님의 변화된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온전한 사람의 모습의 절정'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는 이미 이 변화산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그 온전한 사람의 영광을, 그 영광의 절정을 보여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거룩한 사람,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이 얼마나 영광스러울 수 있는지를 이 변화산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 주님께서는 아무런 장애 없이, 어떠한 장애 없이 그대로 그 높은 산에서 그 변화된 모습으로, 그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한 발자국만 더디면 하늘나라로 들어가실 수 있는 것입니다.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하늘은 그 온전한 사람에 대해서 환영하고 참으로 이분이 하늘나라에 오시기에 적합하다, 이렇게 환영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후에 주님께서는 다시 변화산에서 내려가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정말 사람들이 병들어 있는, 그 병 가운데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러한 상황 가운데로 주님께서 내려가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길로 십자가까지 쭉 나아가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이 죄로 말미암아 병들어 있는 사람들을 고치시기 위하여 다시 내려오시고, 그리고 구원자로서의 그 사역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이 변화산에서 하시는 말씀은 '별세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31절에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하쌔" 이렇게 되어 있는데요. 이제 우리가 이제 어떤 분이 돌아가시면 '별세하셨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이것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죽으실 것을 말씀하셨다.
이제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별세'라는 단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것이 단지 이제 죽다라는 것이 아니라 '떠나다', '나가다'라는 단어인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성경에 출애굽기가 있는데 그 종 되었던 애굽에서 '나가다' 해서, 이제 '출애굽기'라고 이렇게 해놓은 것입니다. 이제 그와 같은 단어입니다. '어떤 곳에서 떠나는' 그것이 이제 이 '별세'라는 단어입니다. 주님의 죽으심은 단지 죽음이 아니라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종 되었던 데서 떠나는 것과 같은 이제 그러한 떠남이었습니다.
그래서 여기 보면 모세하고 엘리야가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로 모세가 그 놀라운 떠나는 것을 인도한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의 애굽의 종으로서, 노예로서 살고 있었는데, 이제 하나님께서 모세를 사용해서 그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져가지고 구원하시고 이집트 밖으로 데리고 나가신 것입니다. 이제 '데리고 나가다', 그 단어인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야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떠나게 한 사람입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 대부분이 바알라는 우상에게 메어 있었던 시대의 선지자입니다. 하지만 이제 이 엘리야를 통해서 그 어두운 바알의 종 된 가운데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가운데서 건져서 데리고 나간 것입니다. 밝은 빛 가운데로 데리고 나간 것입니다. 참 이 모세의 떠난, 그리고 엘리야에 떠난 것, 참 놀라운 그 구원의 역사입니다. 하지만 이제 더 놀라운 그 데리고 나가는 역사, 그 구원의 역사를 이제 이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변화산에서 바로 예수그리스도께서 죄에서 사람들을 구원할, 죄에서 사람들을 건져낼, 데리고 나가실, 그 놀라운 '별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 이것이 가장 중요한 주제로서 그 영광 가운데 하고 있는 내용인 것입니다.

이제 다섯 번째 중요한 사건을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은 물론 우리 '주님의 십자가'입니다. 이 인류의 역사 가운데서 이 십자가만큼 중요한 사건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이 십자가 사건을 에베레스트 산에 비교하였습니다. 이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산, 가장 우뚝 솟아오른 산, 이제 그것에 이 십자가 사건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 주님의 십자가는 인류의 역사에 가장 위대한 사건인 것입니다. 그 십자가에 대해서 누가복음 23장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말씀 7가지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중에 이제 세 가지가 누가 복음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하신 말씀과 맨 마지막에 하신 말씀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하신 말씀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말씀을 통해서 그 십자가 사건의 의미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살펴보겠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쌔"(눅 23:34).

여기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사해달라고 기도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사실 이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이 세개의 말씀은 두 개가 기도입니다. 그리고 하나는 기도 응답입니다. 그래서 이 누가 복음에 기록된 주님의 십자가에서의 말씀은 '기도'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사실 누가 복음은 '기도'가 강조돼서 나온 그런 복음서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 하나님께 의지하고, 이런 내용들에 대해서 누가 복음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위하여 기도하신 그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서 이 십자가는 얼마나 '사람들의 악함'을 드러내고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들은 이 예수님에 대해서 죽이고자 하고 조롱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여기에 "저희는 자기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되어 있지만 사실 이 사람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일부러 거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복음서에서 보면 "저는 상속자니 죽이자!" 이렇게 말합니다. 상속자인 걸 알고 죽이자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마땅한 것을 거절하고 그것을 오히려 자기들이 취하고자 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람들의 악한 모습을 십자가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또한 그와 대조적으로 우리 주님께서는 그들에 대해서 얼마나 사랑하고 계신지를 보게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니라 이것은 제3자에게 한 그런 악한 일에 대해서 좀 봐달라고 하는 그런 내용이 아닙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에게 한 그 악한 일에 대하여 용서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거절하고 자기 자신을 조롱한 그들에 대해서 우리 주님께서는 미워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멸망하기를 원치 않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이 구원받고 용서받기를 원하는 그 주님의 사랑이 이 십자가에 담겨 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 인간이 얼마나 악함을 보여주고 있으며, 또한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이신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주님께서는 이 용서가 실제로 이루어지도록 자기 자신을 희생 제사로 드리고 있습니다. 그냥 말로만 용서해 달라고, 용서받았으면 좋겠다라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죄가 사함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이 의롭게 그들을 용서하시기 위하여 주님 자신이 스스로 십자가에 달려 희생 제물로 드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 말씀은 4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42절부터 보도록 하겠습니다.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3:42-43).

여기서는 십자가에 달린 그 한 강도가 주님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분이 구원자이심을 알고 자신을 생각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리고 이것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응답해 주십니다. 사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굳이 그에게 확신을 주시기 위하여, 또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모두에게 확신을 주시기 위하여 이것을 말씀하시고 기록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서 분명하게 이 구원을 이루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앞에 말씀하신 대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그 별세에 대해서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장면을 통해서 실제로 예수님께서 그 별세를, 데리고 나가는 것을 이루고 계신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강도는 이 땅에서 평생 동안 죄 가운데서, 사실 거의 지옥과 같은 고통스러운 나날을 살았을 것입니다. 죄의 종으로서 그는 그렇게 살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주님은 그 강도의 간구를 응답하시고 즉시 그를 이제 낙원으로 데리고 나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그를 죄의 종 된 가운데서 주님과 함께하는 그 낙원으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46절에,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항상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셨습니다. 자신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다 할지라도, 아까 시험에서 사단은 "네가 위험에 처했을 때 놀랍게 건짐을 받는 것을 보여라." 이렇게 그를 시험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셨고, 그리고 이 마지막 십자가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계십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놀라운 건지심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 아버지를 온전히 신뢰하시고 그 가운데에 모든 사역을 이루신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제 시간이 다 돼서 마지막 이제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는  짧게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섯 번째는 '주님의 부활'입니다. 그리고 일곱 번째는 '주님의 승천'입니다. 그 7가지가 이 주님의 생애에서 중요한 그런 내용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자면 첫 번째가 '주님의 탄생'입니다. 그리고 나서 '침례'입니다. 그리고 나서 '시험'을 받으십니다. 이 침례는 '주님이 하실 일'을 말해주는 것이었고, 이 시험은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변화산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이 '십자가'와 '십자가에 죽으심', 그리고 나서 '부활'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승천'이 있습니다. 이 7가지가 이 주님의 생애에서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 부활에 대해서는 특별히 누가복음 24장을 나중에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복음 24장에서는 특별히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에게 주님께서 정말로 다시 살아나셨음을 알려주시는 그런 장면이 나와 있습니다. 이게 지금 현재에도 우리에게 주님께서 하고 계시는 일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그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굉장히 낙심해서 예루살렘을 떠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이 그들의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의 예수님이 죽어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모든 희망을 잃어버리고 낙심해서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누가 복음에는 주님께서 그 낙심하고 슬퍼한 사람에게 다가가시고 도와주시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누가 복음에 그 야이로의 딸을 죽었는데 살리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누가 복음만 특별히 야이로의 딸을 '그의 유일한 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유일한 딸을 잃어버린 그 아버지 그 마음을 아시고 주님께서 그 죽은 딸을 살리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또한 누가 복음에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과부의 아들도 외아들입니다. 그 과부의 마음을 아시고 주님께서 그를 살리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여기서도 그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유일한 희망, 그것이 사라져버린, 그래서 슬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서 주님께서 가르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예수님의 하실 일이 무엇인지를 성경을 통해서 알려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모습을 처음부터 드러내시고 "내가 살았다."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잠깐 가리시고 말씀을 통해서 알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도 동일하게 그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지금도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서 어떠한 분이시고, 지금도 살아계심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을 뜨겁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이 부활해서 살아계심을 실제로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복음은 이 부활의 증거, 특별히 이제 그것을 경험하는 이제 그런 것들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누가 복음 24장, 이 '승천'하시는 부분만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저희를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저희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저희를 떠나 [하늘로 올리우]시니 저희가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니라"(눅 24:50-53).

여기 보면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는, 하늘로 올라오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그분을 높이 올리시는 것입니다. 그분이 마땅히 받아야 되는 그 위치에 하나님이 올리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보면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축복하시고, 손을 들어서 축복하시면서, 그리고 그렇게 "축복하실 때"에 저희를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는 손을 들어 사람들에게 축복하시는 가운데에 올라가신 것입니다. 이것은 그분이 하늘 위에서 지금도 우리에게 손을 들어 '축복'하고 계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늘은 하나님이 계시는 성소입니다. 그 하나님이 계시는 성소에 나아가는 존재가 바로 제사장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으로서 지금 하늘에 계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거기에 그냥 앉아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계속적으로 축복하고 계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누가 복음 1장에 한 제사장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가랴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성전 안에 들어갔다가 이제 나왔을 때 말을 하지 못합니다. 그가 천사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은 성전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들을 축복해야 됩니다. 입을 열어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말해줘야 됩니다. 하지만 그는 말 못하는 제사장으로서 참 백성에게 그 축복을 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여기 이 온전한 우리의 대제사장께서는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서 계속 축복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 결과, 52절에 "저희가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여기 '큰 기쁨'이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으로 말미암아 큰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늘 성전에 있어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 있는 놀라운 일입니다.

참 이러한 우리 주님의 중요한 사건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참 우리가 믿은 이 예수그리스도 그분이 어떠한 분이시며, 그분이 하신 일이 얼마나 확실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우리 마음에 확증하였기를 바랍니다. 또한 계속해서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살피고 또 살펴서 더욱 그 확실함을 알 수 있도록 우리가 힘쓰기를 바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