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사람 > 강성찬 형제님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모친은 믿는 유대 여자요 부친은 헬라인이라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쌔 그 지경에 있는 유대인을 인하여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부친은 헬라인인줄 다 앎이러라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의 작정한 규례를 저희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니라"(행 16:1-5).
이번 시간에는 여기 기록된 '디모데'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디모데는 우리가 복음 시간에 말씀을 드렸던 그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에 합류하여 같이 이제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가서 빌립보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여러 전도 활동을 했던 그러한 젊은 이제 청년입니다. 왜 이 디모데에 대해서 이번 시간에 특별히 말씀을 드리고자 하냐면, 이 디모데가 신약 성경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언급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이제 그 점을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구약 성경에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언급된 사람들이 몇 명 나옵니다. 이제 모세가 그렇고요. 또 다윗이 그렇고요. 사무엘이 그렇습니다. 또 여러분이 잘 아는 엘리야, 엘리사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언급됩니다. 그리고 이제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그냥 하나님의 사람으로만 언급된 몇 사람들이 또한 나옵니다. 이와 같이 구약에는 그래도 이제 여러 명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제 언급이 되는데요. 이 신약에서는 딱 한 사람만 하나님의 사람으로 언급이 됩니다. 그게 바로 여기 금방 읽은 디모데입니다.
참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이 표현은 그 하나님의 이름이 그 앞에 나와 있는 것처럼, 굉장히 영광스러운 그런 호칭인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이제 '하나님의 소유'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요. 그리고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나타내는 사람'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특별히 어떤 임무를 맡겨서 그 '임무를 하게 하시는 그런 사람'임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제 디모데를 통해서 이제 그러한 모습들을 살펴볼 수 있고요. 그래서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이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리움을 받을 수 있는, 참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이름의 부족하지 않은 이제 그러한 성도님으로 살아가게 되기를 바라면서 이 교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기 이 디모데에 대해서 먼저 그 가족이 나와 있습니다. 그 가족 배경이 "모친은 유대 여자고 부친은 헬라인이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말하자면 디모데는 이제 정통 유대인 가문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좋은 가문이네."라고 말할 만한 이제 그러한 가문이 아니고 오히려 이제 흠이 될 수 있는 그러한 가정에서 자라났습니다. 아버지가 이방인인 것이죠. 그래서 그는 어렸을 때 유대인의 법을 따라서 할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이제 유대인들을 위해서 이 사역을 할 때에 어려움이 되지 않도록 바울이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한 모습을 이제 보게 됩니다. 이와 같이 그의 가문에 있어서는 그는 특별할 것이 없는, 오히려 더 흠이 있는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그를 하나님께서 이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기록하신 것을 볼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정말 이러한 사람들도, 참 사람들의 눈에 보기에는 이제 별 볼 일 없이 보이는 그러한 사람들도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귀하게 사용하시는지 우리는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특별히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디모데가 이제 '칭찬을 받았다'는 것이 나와 있습니다. 주위의 형제들에게 그는 선한 간증을 나타내고 있었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정말 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어떠한 분임을 그를 통해서 나타내 보일 수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특별히 디모데가 등장하는 이 처음 부분에 '디모데의 칭찬'이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 디모데는 그를 통해서 정말 하나님의 성품을 잘 나타낼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보고 "아, 정말 저는 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제 그런 선한 간증을 나타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칭찬이 뭐와 연관되어 있냐면, 그 좋은 칭찬을 듣고 사도 바울은 그를 데리고 갑니다. 자기가 전도 여행을 해야 되는데 그를 뽑아서 데리고 간 겁니다. 그래서 디모데의 칭찬은 사도 '바울과 함께하는 일'과 관련돼 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그 칭찬에 내용을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저 사람은 이 하나님을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같이 일할 수 있는 사람이야." 이게 이제 그 칭찬의 내용으로 우리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는 어떤 분이 사람을 구분할 때에 이렇게 구분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 사람은 내가 같이 일할 수 있는 사람이야.", "저 사람은 내가 같이 일할 수 없어." 이렇게 사람을 나누더라고요. 저한테는 좀 그게 참신하게 느껴졌습니다. 사람을 저런 식으로도 나눠 볼 수 있겠구나, 저도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저 사람은 나랑 같이 일할 수 있는 사람인가? 저 사람은 나랑 같이 일하기가 좀 어려워.' 그냥 다른 사람을 이제 구분 짓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이것은 뭐 바뀔 수도 있는 겁니다. 나랑 같이 일하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같이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어. 이런 사람도 많이 있는 거죠. 반대의 경우도 있고요. 또 성경에서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마가가 있었습니다. 마가도 처음에는 바울이 "우리와 한 가지로 같이 일하러 갈 수 없다."라고 했는데 마가가 자기에게 유익한 사람이라고 나중에 바울은 말을 합니다. 이렇게 바뀔 수가 있는 겁니다. 이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게 다른 사람을 이렇게 생각해 보라라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에 대해서 이제 생각을 해보자는 겁니다. 그럼 나는, 나 자신은 다른 사람과 같이 일할 수 있는 사람인가? 다른 사람이 나를, 저기 지금 하나님의 일을 하러 가는데 뽑을 수 있는 사람인가? 이것을 생각해 보자는 겁니다. 그리고 이제 뽑을 수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은 구약의 성경에 보면 특별히 하나님께서 어떤 특별한 임무를 가지고, 하나님이 어떤 일을 맡기시는 사람인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특별히 뽑는 사람입니다. 이제 여기서도 그렇게 나타나죠. 그럼 나는 그렇게 뽑힐 수 있는가? 그걸 생각해 보자는 겁니다. 통역을 하다 보면 외국 강사 형제님들이 종종 사용하는 단어가 '어베러블하다' 이런 단어를, 표현을 하세요. "어떤 사람은 어베러블하다." 이게 뭐냐면 이게 사실 이제 번역하기가 약간 좀 쉽지가 않습니다. 대충 무슨 뜻인지는 알겠는데, '이용 가능하다'는 겁니다. 말 단어 뜻은, 그런데 사람을 이용 가능하다라고 하니까 약간 이게 번역하기가 조금 어색해져서 번역하기가 좀 어려운 게 있는데요. 여러분도 아마 감이 올 것입니다. 이 단어가 무슨 뭘 말하고 있는지, "저 사람은 이용 가능해."라고 말하는 것, '가용하다.' 어떤 일을 해야 되는데, 저 일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 일을 하려면 먼저 이 능력이 있어야 됩니다. 예를 들어서 고장난 세탁기를 고쳐야 되는데 그 세탁기를 고치러 가야 된다. 나 혼자 가기는 어렵고 누구랑 같이 가야 된다 했을 때, 일단 그 세탁기를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먼저 '능력'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능력이 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 사람이 나랑 지금 같이 갈 수 있는지, 지금 갈 수 있는지 이게 중요한 거죠. 그러니까 '가용하다'라는 단어의 뜻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 플러스, 내가 가자고 했을 때 "그래, 갑시다!" 할 수 있는 그게 이제 중요한 것입니다. 능력과 말하자면 그 일에 대해서 자원함, 헌신됨, 정말 그것을 이제 우선순위로 두고 같은 마음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이것을 이제 어베러블하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사실 어떤 일이 이루어져야 될 때, 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또 한 단계 더 찾기 어려운 것은 정말 그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같이 가자고 할 때 발 벗고 나설 사람, 그 사람은 더 찾기가 어려운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갑시다라고 했을 때, 가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는 이게 쉽지가 않은 겁니다.
우리는 디모데를 통해서 그 모습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에게서 그 능력이 나타난 거죠. 정말 저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나고, 그가 일을 할 때 그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이런 간증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가자고 했을 때에 같이 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 두 가지를 이제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그 능력의 모습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디모데를 언급하고 있는 게 신약 성경에 딱 두 군데가 있습니다. 그중에 이제 먼저 한 군데를 이제 살펴볼 텐데요. 디모데후서 3장에 있는 말씀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4-17).
여기 이제 17절에 '하나님의 사람'이 나옵니다. 신약 성경에 나온 두 번의 언급 중 한 부분이고요. 그리고 여기 그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여금 온전케 하는 것, 그게 바로 성경,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그가 가져야 되는 마땅한 능력을 갖는 것, 이 첫 번째 조건을 갖추게 하는 것, 그것은 바로 이제 하나님의 말씀임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로 하여금 그 자격을,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 14절에 보면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이게 이제 디모데에게 사도가 하는 말입니다. "디모데야,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 배운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그 확신한 것, 거기에 계속 거하고 있어야 됩니다. 그냥 잠깐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 알았다가 그건 나와 상관없는 것으로 제쳐두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거하고 있어야 됩니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고 있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사람을 보호하고 있는 것도 말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지금 배우고 확신하는 것에 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고 있는 것이죠. 그를 지금 하나님의 말씀이 둘러싸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그를 보호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호받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많은 공격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구약에서도 또 신약에서도 그러한 예를 이제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공격 가운데서 보호받을 수 있는 것은 이 하나님 말씀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여기서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라고 돼 있습니다. 여기 배우고 확신한 말씀을 넘어서서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라고 돼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단순히 지식적으로 아는 것을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제로 말씀대로 살면서 말씀대로 행하는 것, 그것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머릿속에 들어서는 충분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가 그 말씀대로 실제로 살 때, 그것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보호하는 것입니다. 그게 정말로 배우고 확신한 것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사도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았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말씀을 누구에게서 배웠는지가 중요합니다. 디모데는 여기 보면 그의 외조모와 모친으로부터도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배웠습니다. 그는 유대인 모친을 두고 있었고, 또 유대인 외조모를 두고 있었습니다. 성경이 특별히 그 두 사람을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그 둘로부터 어렸을 때부터 그는 성경을 배운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사도바울로부터도 성경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나한테 성경을 가르쳐 준 분들이 어떤 믿음의 삶을 살았는지를 보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정말 그 성경이 사실임을, 그리고 그 성경에 말씀에 힘이 있음을, 그리고 그 성경이 복된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우리는 그분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성경은 여기서 특별히 디모데가 혼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서 배웠는지, 어느 분위기에서 배웠는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집에서 길러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그냥 혼자서 자라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에서 자라나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 디모데전서에서는 '하나님의 집'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디모데후서에서는 이제 '하나님의 사람'을 말을 하고 있는데요. 하나님의 집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가정 안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갈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지역교회 안에서, 이런 대전 중구 모임, 이것이 '하나님의 집'입니다. 이 땅에 있는 이와 같은 지역 교회가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자라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아까 사도행전 16장에서도 디모데가 혼자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 교회 형제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람은 항상 지역교회 안에서 배우고 자라가는 것입니다. 참으로 여러분이 지금 어렸을 때부터 믿는 가정에서, 또한 하나님의 집에서 자라가는 것은 이 복된 것입니다. 참 이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이 가운데서 잘 배우시길 바랍니다. 사도는 이제 그것을 분명히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서 배웠는가, 어디에서 배웠는가, 하나님의 집에서 배운 것, 이것이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
참 이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에 복음 시간에 이제 살펴본 것처럼 이 세상의 지혜는, 이 세상의 발전된 그런 문명은 사람으로 하여금 전혀 구원에 대해서 해결할 그 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것을 귀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이 성경에 대해서 귀하게 여기시고, 주의 깊게 살피시고, 또 매일 가깝게 대하기를 바랍니다. 이 성경에 대해서 16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참 이 성경은 각 장이 하나님께서 감동하셔서 기록된 것임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숨결로 만들어진 것이고, 참 하나님의 영감 받은, 하나님께서 신이 기록하신 그러한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는 특별히 여기에 "모든 성경"이라는 말에 주의를 기울여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어느 한 부분의 성경만을 취하고, 그것만을 알고, 또 그것만을 행하는 것으로 만족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참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우리는 마땅히 모든 성경을 주의 깊게, 또 균형 있게 살피고, 전체적인 하나님의 뜻을 이해를 해야 될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여러 일꾼들이 실패하는 그런 역사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성경에 대해서 부분적으로만 알고, 부분적으로만 강조해서, 그가 잘못된 곳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우리는 모든 감동받은 이 하나님의 말씀에 다 창념해야 될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성경을 읽는다면 반드시 이런 효과가 나타나야 됩니다. 정말 우리가 의로 교육이 돼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성경을 읽고 나서 한번 자신을 돌이켜 봐야 됩니다. 내가 이 성경을 읽고 나한테 이런 결과가 나타났는가? 만약 이런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내가 혹시 성경을 그냥 허투루 읽고 있지는 않는가, 생각을 해봐야 됩니다. 왜냐하면 사도는 분명히 이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익하다" 이건 반드시 이러한 유익한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교훈을 줍니다. 이 교훈이라는 것은 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마다 하나님에 대해서 그 교리를, 주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그 교리를, 교회에 대한 교리, 이러한 교리들을 우리가 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고 나서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주님에 대해서, 더 알아진 것이 무엇이 있는지 한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또한 '책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책망이라는 것은 '잘못된 것을 꾸짖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읽고 나서, '아, 내가 이러한 것들을 잘못 행하고 있었구나.'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 성경을 읽을 때에 느껴져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이런 부분들을 내가 잘못하고 있었는데, 성경이 그것을 책망하고 있구나.' 그 마음의 가책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유익입니다. 그리고 이제 '바르게 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구부러진 것을 바르게 똑바로 펴는 것'입니다. 내가 잘못 알고 있었는데, 내가 좀 구부러지게 알고 있었는데, 성경을 읽고 나서 이런 것들을 내가 더 분명하게 똑바로 알게 되었구나, 이제 이런 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로 교육하기 유익하다." 이 '교육'이라는 것은 이제 '훈련'이라는 단어입니다. 우리는 훈련돼야 됩니다. 훈련되지 않으면 실제 그 일이 닥쳤을 때에 제대로 반응을 못합니다. 예를 들자면 그냥 우리 생각에는 어떤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 그것을 잘 해결할 것 같지만 그 순간에는 당황해서 제대로 대응을 못합니다. 그래서 미리 안전 교육을 하는 것이죠. 불이 났을 때는 이렇게 이렇게 해라. 집에서 지진이 났을 때는 이렇게 이렇게 해라. 미리 그것을 이제 들어보고 실제로 해보기도 하고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랬을 때 그 상황이 나타났을 때 정말 그대로 이제 반응을 할 수가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제일 취약한 것이 의의 훈련이 별로 안 돼 있는 것입니다. 의에 대한 훈련, 그래서 우리가 이제 생활하다가 생활하다가 많은 세상 사람들하고 같이 이제 지내다 보니까, 그 세상 사람들이 하는 이 불의한 일에 그냥 휩쓸려 가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준비가 안 돼 있으면 훈련되어 있지 않으면 그냥 휩쓸려 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다 주위의 동료들이 어떤 상황에서 근데 이렇게 이렇게 하니까, 그것이 불의한 일인데도 자기도 모르게 그냥 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우리는 훈련되어 있어야 됩니다. 이러한 일이 있을 때, 나는 분명히 이런 의로운, 하나님의 말씀에 맞는 이렇게 행해야지, 미리 말씀을 통해 배우고 그걸 준비하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게 훈련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그래야지 우리는 실제로 의로운 행동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훈련되어 있지 않으면 그냥 그 상황에서 당해버리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사람에게 꼭 필요한 훈련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여기 온전케 하다라는 말이 또 한 번 나오는데요. 이게 아침 저번 시간에 했던 그 온전케 하다라는 단어와 거의 유사한 단어입니다. 이제 같은 어근을 가지고 있고요. 그 앞에 붙은 '접두어'라고 해야 될까요? 그것이 다른 것입니다. 히브리서에 나온 그 '온전케 하다'는 회복하는 데 강조점이 있습니다. 고치는 것에 강조점이 있고요. 여기 나온 이 디모데후서에서 '온전케 하다는 것'은 필요한 것을 다 갖추어 주는 것, '필요한 장비들을 완전하게 갖추어 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그런 단어입니다. 그래서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약간 제가 풀어서 이 구절을 다시 말씀드리자면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필요한 것을 다 갖추어 주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히 능력이 있게 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어베러블하게 하는 그런 것이다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이제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제 능력을 이제 갖추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이제 다른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배우고, 그리고 행하고, 그리고 그것을 계속 창념해서 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온전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 말씀을 우리가 배우고, 행하고, 묵상하는 일뿐입니다. 참으로 이 일이 우리 가운데서 계속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 두 번째로 이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또 언급된 부분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디모데전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입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딤전 6:10-12).
여기도 11절에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렇게 돼 있습니다. 디모데에 대해서 사도가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렇게 부르면서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그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헌신되는 것'. 앞에 디모데후서 말씀에서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그 '능력을 갖추는 것'을 말씀을 드렸다면, 이제 능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는 또한 헌신돼 있어야 됩니다. 그가 하나님의 일을 하자고 할 때, 기꺼이 발벗고 나서는 그 마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 그것에 대해서 디모데전서 6장 11절에서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그가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불렀을 때, 기꺼이 발벗고 나서게 하는 것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가 여기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게 바로 '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서 '피하라'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이게 먼저 가장 먼저 언급되어 있습니다. 10절에 보면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여기 이루어져야 되는 하나님의 일이 있을 때에, 그리고 그 일을 내가 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거기 참여하지 못하고 있을 때, 우리는 한번 생각을 해봐야 됩니다. 나의 가용성을 뭐가 떨어뜨리고 있는가? 나의 가용성을 누가 막고 있는?가 무엇이 그 가용성을 막고 있는가? 성경은 가장 큰 것이 돈을 사랑함이다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 모두 스스로가 점검을 해봐야 되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라고 돼 있습니다. 정말 수많은 많은 악의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눈으로 보기에는 미처 모르지만, 지금 나를 막고 있는, 나의 가용성을 막고 있는 어떤 부분, 어떤 형태, 어떤 일, 어떤 장애물, 그런 것들의 뿌리를 한번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미처 몰랐는데 그것이 결국에는 나의 탐심이었다,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그것이 이제 사실일 것입니다. 성경이 그걸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첫 번째로 이것을 피해야 됩니다. 그래야지 그는 같이 가자고 할 때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이제 해야 되는 것이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쫓으며" 앞에서 첫 번째가 이제 피하는 것이었고, 부정적인 면이었다면 여기서는 이제 적극적으로 쫓아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계속적으로 쫓아가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이 "지금 필요해. 지금 이리 와."라고 부를 때까지 그냥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이것을 우리는 계속 쫓아가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게 참 특이한 건데요. 사실 이 세상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집은 1주간 긴 휴가를 가지게 되었었는데요. 이제 내일부터 아이들도 학교 가고, 자매는 병원에서 다시 근무하고 그렇게 되는 날입니다. 그 긴 휴가가 끝나고 내일 일을 하려니까 너무 힘든 거예요. 사람도 일을 안 하다가 하려면 엄청난 저항이 있습니다. 기계라는 것은 계속 굴러가야 되는 겁니다. 사실 그래서 큰 기계는 멈추지 않습니다. 사실 많은 부하가 안 걸릴 때라도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회전수로 돌리고 있는 겁니다. 그리스도인들도 계속 이걸 쫓아가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 일이 없다고 해서 그냥 손 놓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개인적인 시간에도, 지역 모임에 있지 않을 때에도, 기본적으로 이것을 쫓아가고 있을 때, 기본적으로 달려가고 있을 때, "이 일을 도와주세요."라고 했을 때 기꺼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냥 누워 있는 사람이 일어나 가지고 옷 입고 나가기가 어려운 것이죠. 우리는 계속해서 의와 경건을 쫓아가고 있어야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께 대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의로움,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경건한 삶, 계속적으로 우리가 추구하고 있어야 됩니다. 믿음과 사랑, 우리는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사랑을 베풀고,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이와 같은 활동 가운데 있어야 됩니다. 인내하고, 온유하고, 우리는 어떠한 상황이든지 그것을 참고 견디고,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 온유를 나타내고, 이제 이러한 일들을 하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이러한 쫓아가는 가운데 있을 때에 우리는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에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라고 돼 있습니다. 싸우는 것입니다. 여기 이 피하고, 쫓으고, 싸우는 것은 모두 '현재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이제 계속적으로 이제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싸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항상 갈등을 회피하고 싸우지 않는 그런 시간을 갖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이 사도가 말을 하고 있는 것은 계속해서 그 싸움을 멈추지 않고 하고 있을 것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대적은 계속해서 우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쉬지 않고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싸우지 않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방어하기를 그쳤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그냥 공격에 무방비로 내버려 두고 있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방어하고, 이 대적과 싸우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그 마지막에 "영생을 취하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제 여기 '취하라'는 것도 약간 시제가 독특한데요. 앞에 세 가지는 모두 현재형이었는데, 이 영생을 취하라라는 것은 '부정 과거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문법적인 구조를 살펴보면은 이 '영생을 취하라'라는 것이, 앞에 3개의 현재형 동사와 다 연결될 수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영생을 취하라'라는 것은 부정 과거형이니까, 우리가 영생을 과거에 얻었으므로, 과거에 그 영생을 이미 취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지금 피하고, 쫓고, 그리고 싸우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영생을 가지고, 이 영생을 힘으로써, 그것을 에너지로서, 우리는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피하고, 쫓고, 싸우라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사실 이 말이 이제 '부정 과거형'이라고 해서 기본적으로 이제 과거를 말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또한 어떤 특정한 사건을 기본적으로 말하는 그런 시제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피하고, 쫓고, 싸우는, 그 최종적인 결과로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약간 어려운 말씀이지만, 그래서 우리가 이와 같은 것을 계속하는 그런 일을 해서 영생을 더욱 풍성하게 누리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생을 이미 얻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싸움을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리고 이와 같은 싸움을 계속해서 영생을 오히려 풍성하게 누리는 것을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말 성경에는 이 두 번째 내용에 좀 더 강조점이 있는데요. 참 이 영생이라는 것은 우리가 계속해서 피하고, 이 물질적인 것을 피하고, 우리가 영적인 것을 쫓을 때에, 그리고 계속해서 대적과 싸울 때 영생은 더욱 풍성하게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영생은 그냥 정해져 있는 선물 보따리가 아니라, 우리가 좀 더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더욱 풍성하게 누리고 그것을 맛보고, 더 활용하고 누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영생이라는 것입니다. 참 이러한 모습이 이제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인 것입니다. 계속해서 영생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의 모습이 이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제 하나님의 사람의 구약의 예를 잠깐 보려고 하는데요. 왜냐하면 이 구약의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도 금방 우리가 지금까지 확인했던 신약의 내용들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열왕기상 13장으로 가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는 그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언급된 사람입니다.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인하여 유다에서부터 벧엘에 이르니 마침 여로보암이 단 곁에 서서 분향하는지라 하나님의 사람이 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가로되 단아 단아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저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 제사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고"(왕상 13:1-2).
이제 여로보암이 벧엘에 그 엉뚱한 단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제사를 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이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서 책망하시는 것이죠. 그리고 여기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인하여"라고 돼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도 이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그 행하는 능력을 얻었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능력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사람은 그 능력이 어떻게 나타나냐면, "그가 나중에 요시아라 이름 하는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가 지금 네가 분양하는 그 위에 그 단을 훼파하고 거기에 사람의 뼈를 그 위에 사를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300년 후에 그 일이 일어납니다. 정확하게, 이게 그 하나님의 사람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을 때 그것이 그대로 일어나는, 그리고 그 예조를 그 미리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진다는 징조를 보여주는데, 그리고 그 단이 갈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왕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집에 가서 몸을 쉬라 내가 네게 예물을 주리라 하나님의 사람이 왕께 대답하되 왕께서 왕의 집 절반으로 내게 준다 할찌라도 나는 왕과 함께 들어가지도 아니하고 이곳에서는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이는 곧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명하여 이르시기를 떡도 먹지 말며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도로 가지도 말라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이에 다른 길로 가고 자기가 벧엘에 오던 길로 좇아 돌아가지 아니하니라"(왕상 13:7-10).
이 나쁜 왕은 그 하나님의 사람의 능력을 보고 처음에는 위협했다가, 이제 그 능력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태도를 바꿔가지고 돈으로 유혹합니다. "내가 많은 돈을 주겠다. 그리고 나와 함께 나의 집에 가자."라고 말합니다. 이게 그 하나님의 사람의 위협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 물질주의의 공격을 항상 받는 것입니다. 신약에 나타난 대로 '이것을 피하라'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하나님의 사람은 쉬지 않고 그가 벧엘에 왔던 길로 그대로 돌아가야 됩니다. 그 똑같은 길로도 아니고, 쉬지 말고 바로 거기를 떠나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사람은 계속적으로 이 하나님의 일을 참여하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하나님의 사람이 나중에 잘못된 말을 듣고, 거짓된 거짓말을 듣고, 그 말에 속아서 중간에 멈춰서 쉬고 맙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사자에게 찢겨서 죽게 됩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그 길에서 쉬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징계를 내리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제 우리에게 경고를 주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이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이 말씀하고 있는 간단한 교훈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임무를 해야 되는 것이고, 그것을 쉬지 않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처음에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을 계속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과 어긋나는 어떤 것이라도 거부해야 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서 듣는지를 잘 살펴봐야 됩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야 됩니다. 다른 어떤 사람이 하나님이 처음에 하신 말씀과 다른 이야기를 한다면 반드시 거절해야 됩니다. 그가 어떤 이름을 가지고 온다 할지라도 거절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많은 위협이 있을 것입니다. 협박이 있을 것이고, 또 물질로 회유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어떠한 것에도 굴복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참 이 구약의 한 하나님의 사람의 실패를 통해서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두 가지입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처음에 배운 하나님의 말씀에 착념해야 될 것, 그리고 두 번째로 우리는 계속해서 물질주의를 피하고, 계속해서 쉬지 않고 하나님을 쫓으며, 그리고 싸우고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을 떠날 때까지, 아니면 공중에서 주님을 만날 때까지, 우리는 이 싸움을 쉬지 않고 계속해야 됩니다. 만약 중간에 쉬고 멈춘다면, 만약에 다른 말을 듣고 아 잠깐 쉬어도 돼라고 한다면, 이 실패한 하나님의 하나님의 사람처럼 징계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러한 말씀들을 통해서 참으로 우리 모두가 디모데와 같이 그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임무를 완수하고, 또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그 하나님의 일에 참으로 합당하게 사용된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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