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강단말씀 요약글 모음/한봉래 형제님(요약)

마가복음 12. 주님의 권세

박이레 2022. 7. 11. 21:21

2017년 3월 15일 수요일


강사 : 한봉래 형제님


<마가복음12_주님의 권세>


27 저희가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걸어다니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나아와
28 가로되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누가 이런 일 할 이 권세를 주었느뇨
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대답하라 그리하면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30 요한의 침례가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내게 대답하라
31 저희가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로서라 하면 어찌하여 저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것이니
32 그러면 사람에게로서라 할까 하였으나 모든 사람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기므로 저희가 백성을 무서워하는지라
33 이에 예수께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막11:27-33, 개역한글)


오늘의 주제는 <주님이 가지신 권세가 무엇인가> 입니다.


배경을 잠시 보겠습니다. 마가복음 11장은 예수님의 고난주간입니다. 이 주 금요일에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십니다. 그리고 지금은 수요일입니다. 그리고 하루 이틀 후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입니다.
그 전 화요일날 예수님은 많은일을 하셨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됬던 일이 있습니다.


저희가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막11:15, 개역한글)


<저희가> 이는 예수님과 열두제자들, 그리고 주님을 다르는 제자들입니다.
이때는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많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많이 와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성전으로 들어가셨습니다.


16 아무나 기구를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치 아니하시고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멸할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기이히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막11:16-18, 개역한글)


성전에서는 짐승을 잡아서 피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죄가 용서 받습니다. 성전에서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이 죄용서를 받는것입니다.
원래는 죄인의 피가 흘려져야 하지만 짐승의 피를 대신 흘려 죄용서함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죄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하나님 앞에 갈수 없습니다.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죄인의 피가 흘려져야 하는데 하나님은 죄없는 짐승의 피를 대신 흘리게 함으로써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래서 성전안에는 하나님께 제사드리기 위한 짐승들이 많았습니다.


원래 이 짐승들은 자기 동네에서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짐승을 골라서 예루살렘 성전까지 가져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힘드니까 그것을 돈으로 바꿔서 성전에서 짐승을 사서 그 짐승을 죽이고 피를 뿌리고 제사를 드린것입니다.


이 짐승을 사기 위한 돈 또한, 그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 였기 때문에 로마의 돈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드릴때는 로마 돈이 아닌 원래 이스라엘의 사람의 돈을 써야 했습니다. 그래서 로마돈을 가지고 옛날 이스라엘 사람의 돈으로 바꾸는 일이 성전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런사람들에게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 그런 일들을 하던 사람들을 성전에서 쫓아내셨습니다.


<매매하는 자들을 내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아무나 기구를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치 아니하시고>


성전은 기도하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자 18절이 나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멸할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기이히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막11:18, 개역한글)


그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죽일까 생각했습니다.
이 일이 배경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이와같은 행동을 싫어 했습니다.
이 일은 화요일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리고 다음달인 수요일에 예수님께서 또 성전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성전에 걸어다니셨습니다. 그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세인들이 나와서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가로되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누가 이런 일 할 이 권세를 주었느뇨 (막11:28, 개역한글)


성전 안에서 양이나 비둘기를 팔도록, 혹은 돈을 바꿔주는것을 성전안에 있는 대제사장이나 바리세인들이 허락한 것입니다. 그들은 그 당시 유대인의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어떤 사람들에게 아마 권리금을 주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당시 성전 감독권이 있고 그 성전에 권리가 있는 사람들이 성전안에서 장사하고 돈바꾸는 것을 허락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가서 모든것을 엎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이 나와서 "당신이 무슨 권세로 이런일을 했습니까?" 라고 질문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이 그것이 무슨 권세로 했는가가 논란의 핵심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걸어다니실때에>
성전은 꽤 넓습니다. 또 성전에는 뜰이 있습니다. 성전에 들어가면 제일먼저 만나는 것이 넓은 뜰입니다.
성전에는 여자들만 들어가는 곳이 있고 남자들만 들어가는 곳이 있고 제사장만 들어가는 곳이 있으며 대제사장만 들어가는 영역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 넓은 성전뜰을 예수님께서 걸어다니셨다는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요?


1 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
2 말하여 가로되 당신이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세를 준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눅20:1-2, 개역한글)


누가복음에서는 <백성들을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하실쌔>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걸어다니신것은 그저 성전을 산책하신 것이 아니고 이렇게 사람들과 같이 걸으면서 말씀도 전하시고 복음도 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이 구절의 바로 앞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45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며
46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눅19:45-46, 개역한글)


바로앞에 성전에서 장사하고 돈바꾸는 자들을 내어 쫓으십니다.
대제사장들이 예수님께 와서 묻는것 무엇이냐면 "당신이 무슨권세로 우리가 허락해준 양 바꾸는 사람, 돈 바꾸는사람을 무슨 권세로 쫓아냈는가? 그들을 허락해 준건 우리 대제사장들이다. 우리는 아론의 후손이고 우리가 성전을 감독하는 권세를 가지고 잇다. 그런데 당신(예수님)은 무슨 권세로 이들을 쫓내었느냐?" 하고 묻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무슨 권세를 가지고 있는지 마가복음에서 찾아보겠습니다.


뭇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막1:22, 개역한글)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셨는데 그것이 다른 종교 지도자와 달랐습니다.
권세 있는자와 같다는것은 이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을 가르치실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다른사람의 권위를 빌려서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서기관들은 항상 인용합니다.
"율법에 의하면" "유명한 랍비가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용하지 않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라고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권세입니다.
당시 서기관들이 많은 가르침을 가르쳤지만 그 가르침의 권위는 모두 성경의 가르침이나, 훌륭한 분의 말에서 나왔습니다.


요즘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분들중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세종대왕은 이렇게 말했다"
혹은 알려진 책, 누구에나가 인정된 사람의 말을 인용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는것이 직접 자기 권위로 말씀하셨습니다.
이 차이가 있고, 또 하나를 보겠습니다.


다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막1:27, 개역한글)


예수님의 말은 권위가 있었습니다. 이는 다른사람들의 말을 빌리지 않은 예수님 자신의 권위였습니다.
그리고 이 권위는 귀신에게 명령하면 귀신도 순종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권위입니다.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막2:10, 개역한글)


여기서 인자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이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가 있으십니다.
하늘나라에서 죄용서를 확인하는것이 아니라 여기서 죄용서를 주시는 권위입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1. 죄를 용서하고 2. 귀신에게 명령하고 3. 다른 권위를 의지하지 않고 주님 스스로의 권위를 가지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권위의 독특한 점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1:12, 개역한글)


예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영접하거나 예수님의 이름을 믿을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요5:27, 개역한글)


또 예수님은 심판하는 권한을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신데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모든사람을 심판하는 권한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요10:18, 개역한글)


예수님은 또한 죽을 권리가 있으시고 부활하실 권위도 있으십니다.
주님은 다른사람의 권위를 빌리지 않고 스스로 하나님으로서 말하고 가르치실 권리가 있는 분입니다.
그리고 이땅에서 죄를 용서할수 있는 권세가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죽을 권리도 있고 다시 3일만에 부활하실 권세도 가지고 있으셨습니다.


그런데 이분께서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실수 있는 권세도 있으십니다.
이것이 마가복에서 말하고있는 주님의 권세입니다.


다시 마가복음 11장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3년간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고 복음을 전하시고 가르치시고 쭉 설명하셨습니다. 바리세인들은 이것을 3년이나 보았습니다. 그래놓고서 이렇게 질문합니다.
"당신이 무슨 권세를 가지고 돈바꾸는 사람, 비둘기 파는 사람을 쫒아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 정말로 알고 싶어서 질문한 것이면 대답해 주십니다.
예를 들면, 어떤사람이 예수님이 정말로 하나님의 아들인가, 정말로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갈수 있는가, 천국가 지옥은 정말로 있는것인가, 지금 죽어도 천국에 갈수 있는 확신을 얻을수 있는가 를 정말로 진지하게 하나님 앞에서 물으면 하나님께서는 대답해주십니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게 묻는것 같지만 알고싶어서 묻지 않고 믿지 않으려고 묻는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떻게든 비판하려고 하고 안믿으려고 질문하는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 하십니다. "내 대답을 듣기전에 내 질문에 대해서 먼저 대답해 보아라. 침례요한의 침례가 하늘로써냐 사람으로써냐"


먼저 침례요한이 한 말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1:29, 개역한글)


침례요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그냥 외치는 자의 소리다. 그러나 내 뒤에 오시는 그리스도가 계신다. 그분은 믿어야 한다. 나는 그분의 신도 들수 없다. 나는 쇠하여야 하고 그분은 높아져야 한다"
그리고 그가 예수님을 보고 <세상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마가복음 11장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만일 그들이 침례요한의 말이 하늘로서라고 말하면 침례요한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그들은 당연히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는 싫었습니다. 그렇다면 침례요한의 말이 사람의 견해일 뿐이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이지만 사람들의 견해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런데 침례요한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말했다 할찌라도 그 말을 받지 않으려면 침례요한이 사람의 권세로 말했다고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의 권세다.' 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할수 없는 이유를 보시겠습니다.


그러면 사람에게로서라 할까 하였으나 모든 사람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기므로 저희가 백성을 무서워하는지라 (막11:32, 개역한글)


이 부분을 누가복음에 보면 더 분명하게 나와있습니다.


만일 사람에게로서라 하면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니 저희가 다 우리를 돌로 칠 것이라 하고 (눅20:6, 개역한글)


왜 사람을 돌로 칠까요?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입니다. 모세,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인도해 주신것을, 그리고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다른 어떤 죄보다 '신성모독'죄를 가장 큰 죄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모욕하는 자는 돌려 쳐서 죽였습니다. 이것은 특별한 사형방법입니다.


백성들은 침례요한을 하나님이 보낸사람으로 보았습닏다. 침례요한은 하나님이 보낸자입니다.
그런데 그의 말이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는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돌로 쳐서 죽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침례요한의 말을 사람에게서라고 말하지 못하고 침례요한의 말이 하나님에게서라 하면 왜 안믿느냐라고 할것이기에 그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에 예수께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막11:33, 개역한글)


여기 참 좋은 대답이 있습니다.
"난 모른다" "생각이 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뇌물을 주었거나 하는 사람들을 불러다가 법원에서 심문을 하면 다들 이렇게 말합니다.
"생각이 안납니다."
이렇게 말했다가는 죄를 뒤집어 쓸것같고 저렇게도 말할수 없는 상황에서 하는 말입니다.


그들은 왜 이렇게 모른다고 대답했을까요?
이 자들은 침례요한의 말이 사람의 말인지,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인지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19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거가 이러하니라
20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21 또 묻되 그러면 무엇, 네가 엘리야냐 가로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22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23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24 저희는 바리새인들에게서 보낸 자라
25 또 물어 가로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찐대 어찌하여 침례를 주느냐
(요1:19-25, 개역한글)


바리세인들은 침례요한을 조사한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른다'라고 하기에는 그들은 자신들의 의무를 행치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면 제사장들은 그들이 정말로 하나님께로서 왔는지를 조사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들의 본업입니다.
다시 말하면 침례요한이 말하고 예수님께서 3년간이나 가르치시고 말씀하시고 모든일을 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고싶지 않아서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거부하고 싶어서 "나는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종교인들의 특징입니다. 이들은 모릅니다. 예수님이 자기 마음속에 없기 때문에 모르는 것입니다.
이들은 말로는 천국 지옥을 말하고 전도도 하지만, 그들의 최종권위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합니다.
그래서 교회 다니는 교인들이 듣기 좋은 말만 합니다. 교인들이 듣고싶은 말만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 앞에 섰을때 모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알았어야 하는 자기의 의무에 대해서 현실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인들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3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끝을 내십니다.
<나도 말하지 않겠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성경에서는 은혜의 때가 있습니다. 구원의 날이 있습니다.
복음이 증거될 때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3년간이나 그들 가운데 계시면서 하나님을 입증하셨습니다. 이제 금요일날 십자가를 지실 것입니다. 이제 그들에게 믿을수 있는 시간이 지나가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믿는것이 아닙니다. 구원의 날이 마감될 날이 오는것입니다.이제 그들은 복음을 들을수 없습니다.
그들의 선택에 의해서 심판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적 있습니다.
<빛이 있는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들이 되리라>


기간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돼지가 진주를 밟고 더럽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정말로 예수님을 알고자 질문했다면 예수님게서 대답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시비를 걸기 위해서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어떻게는 안믿기 위해서 예수님께 질문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의 돈바꾸는자와 비둘기 파는 자들을 쫒아내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셨습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 <도적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와서 질문한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권한인데 무슨 권세로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권한이 있으신 분입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주님의 권세가 어디있는가를 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28:18, 개역한글)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손에 쥐신 분입니다.
그분 스스로 그 권위를 가지고 말씀하실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내 권위를 가지고 너희들에게 말한다. 이것이 내 말이다. 하나님의 뜻이다."
이렇게 말할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권위를 교회가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복음을 전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렇게하면 구원받을수 있습니다. 당신은 이렇게 하셨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교회가 구원을 분별하고 교인을 격려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세, 교회의 권세 입니다.
우리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것을 주장할때에 그 권위가 성경에서 나와야 합니다.
말씀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받을때 말씀에 근거해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에 근거해서 하나님의 자녀라고 담대하게 고백하고 선포할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