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강단말씀 요약글 모음/한봉래 형제님(요약)

마가복음 10. 왜 나를 선하다 하느냐

박이레 2022. 7. 11. 21:19

2017년 2월 28일 화요일


강사 : 한봉래 형제님


<마가복음10_왜 나를 선하다 하느냐>


17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쌔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19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0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22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막10:17-22, 개역한글)


이 부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이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정말로 구원받기를 원하는가 하는것입니다.
부자쳥년은 예수님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라고 질문했습니다.


이 부자청년과 비슷한 질문을 한사람이 빌립보 감옥의 간수입니다.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행16:30, 개역한글)


간수의 질문은 부자청년의 질문과 매우 유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부자 청년에게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으라"고 하지 않고 <네가 왜 나를 선하다 하느냐>로 질문하신 것입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일까요?


이 부자청년은 결국에는 슬퍼하며 떠나가 버립니다.
다시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이 부자청년은 매우 좋은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 달려왔습니다.


옛날 우리나라 양반들은 아무리 바쁜일이 있어도 체통을 지킨다고 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부자청년은 달렸습니다. 이 '달린다'라는 표현은 성경의 다른부분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탕자가 집에 돌아왔을때 그것을 본 아버지가 달려나갑니다. 정말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일이 일어났기에 달려간 것입니다.
달린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하지 않는것입니다.


또한 부자청년은 예수님 앞에 <꿇어앉아> 질문했습니다.
보이기로는 매우 영생을 간구하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마가복음 10장에서 성경은 이 사람은 '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정말로 하나님을 구한다면 예수님은 그사람을 반드시 받으십니다. 예수님께서 <내게오는자를 내가 내어쫓지 않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오는 사람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고 영접해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람은 외모적으로 하나님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그는 하나님을 구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이사람의 문제점입니다.


지금 오늘날도 우리들이 보면 겉으로는 예수님을 구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예수님을 구하지 않는사람들이 많습니다.
일반 교회에 가보면 열심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새벽 기도도 하고 열심으로 섬기고 선교도 합니다. 정말 열심으로 하나님을 구한다고 우리의 눈으로는 판단할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심은 그렇지 않은 사람의 대표적인 예가 부자청년입니다.


달려오고 무릎을 꿇고 영생을 질문했지만 아닌것입니다.


10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롬3:10-11, 개역한글)


이것이 사람들의 기본특징입니다.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3:12, 개역한글)


이것이 사도바울이 구약의 여러 시편들을 인용하여 인생의 특징을 한가지로 요약한 것입니다.
그런데 부자청년은 자기가 하나님을 추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속고있는 구도자 입니다.


그는 자기가 하나님 찾는다고 생각합니다. 영생에 관심있고 구원받으려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아닙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왜 자기가 하나님을 찾고 있다고 생각할까요? 그것은 20절 때문입니다.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막10:20, 개역한글)


그가 어려서부터 지킨것은 하나님의 말씀, 십계명입니다. 그것을 어렸을 적부터 지켜왔습니다. 그는 이것을 근거로 이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나는 선한사람이다. 나는 하나님을 찾는다. 나는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


그러나 그가 어려서부터 이와같은 행동을 한것이 사실은 참된것이 아니다라는것을 21절에서 예수님께서 드러내주십니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막10:21, 개역한글)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예수님은 인생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이세상에 오시고 십자가에서 피흘리셨습니다.
이사람도 예수님께서 사랑하십니다. 이사람이 스스로 자기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지만, 참으로 그사람을 위해서 말씀하십니다.


단 한가지 부족한것 '재산을 팔고 가난한 사람을 주고 나를 좇으라' 입니다. 이렇게 하면 예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정말로 하나님을 선택하고자 한다면 그 진정한 마음이 겉으로 표현될수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땅의 것과 하늘나라의 것 중 어떤것을 더 소중하게 생각합니까?
이세상에 가지고 있는 어떤것을 버리고서라도 하늘에 있는것을 내가 원하나요?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적이 있습니다.
<좁은문으로 들어가라 그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이가 적음이라>


넓은길도 있습니다. 그곳은 많은사람들이 갑니다. 그러나 그길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세상에는 구도자가 거의 없습니다.
복음집회를 해도 그래서 구도자가 없습니다. 물론 이것에는 우리 책임도 있습니다. 평소에 복음을 전하지 않고 영혼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들입니다. 이런 부분에서 저희는 하나님앞에서 점검하고 다음 복음집회때는 많이 교회에 구도자를 인도해야 할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세상에는 구도자가 적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찾는길이 좁기 때문입니다. 좁다는 것은 이세상에 있는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세상의 모든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선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부자 청년의 경우는 이세상의 평생을 써도 남는재물과 하늘나라의 재물중에 이세상의 재물을 선택한 것입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이세상의 재물을 포기하고 하늘의 재물을 선택해야 하며 내 인생을 내가 책임지지 않고 예수님을 따라 가는것입니다.
주인을 바꾸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주인이신 것입니다.
이 질문을 예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18절에 <네가 왜 나를 선하다 하느냐> 라고 질문하셨습니다.


저희가 예배당 앞에서 10명에게 설문조사를 한다고 가정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당신은 선한사람입니까? 악한사람입니까?" 이렇게 선택하도록 하는 설문조사를 한다면 그 대답이 몇대 몇으로 나올것 같습니까?
대부분 자기를 착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 부자청년은 어려서부터 살인하지 않았고 도적질하지 않았고 간음하지 않았고 거짓말하지 않았고 부모님의 말씀을 잘들었습니다.
별 문제없이 살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문제없이 살수 있도록 그의 환경이 좋았습니다. 그는 부자였습니다. 별로 다른사람들에게 거짓말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로 하여금 자기가 착하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재산을 내려놔야 한다고 요구하신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님도 당연히 착한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선한 선생이여'라는 호칭을 붙인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는 괜찮은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괜찮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에수님께서 질문을 던지시는 것입니다. <선이 무엇이냐? 하나님 한분 외에는 선한이가 없다>


이 부분이 나오면 항상 우리가 찾아야 하는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
(벧전1:15-16, 개역한글)


하나님이 거룩하심으로 하나님 자녀들도 거룩해야 합니다. 그것도 하나님처럼 거룩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요일3:2, 개역한글)


예수님께서 공중에 오시면 교회가 휴거되어 공중에서 예수님을 만날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날때 예수님을 있는 그대로 볼것입니다. 영광스럽고 거룩하신 예수님을 그대로 보는것입니다.
이것이 휴거 되었을때 일어날 일입니다. 이 일이 벌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예수님과 같아져야 합니다.
예수님을 닮아야 하고 예수님처럼 변화되어야 합니다.


죄인은 하나님을 볼수 없습니다. 죄인이 하나님을 보면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 "나는 죽게 되었다" 라고 고백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 입니다. 또 이사야 선지자 가 있습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입술이 부정한 자가 하나님을 뵈었도다>


이처럼 죄인이 하나님을 보면 죽어야 합니다.
"하나님 한번만 내 눈앞에 나타나 주십시오" 라고 하는것은 뭘 모르고 겁도없이 하는 말인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죄인을 용납할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보는 사람은 하나님과 똑같아진 사람만 하나님을 볼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원리 입니다.


또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것은 하나님을 볼때 '우리가 구원받았으니 조금 부족하긴 해도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지금볼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닙니다.
요한일서 3장에 의하면 하나님처럼 변화된 사람만 하나님을 볼수 있습니다.


곧, 하나님이 거룩하시니 하나님의 자녀들도 하나님처럼 거룩해야 합니다.


거룩하게 되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갈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부자청년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한분 외에는 선한이가 없느니라>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 자녀들도 하나님처럼 선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선하시지만 하나님의 자녀는 좀 부족하다 그런것은 안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에서 계속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막10:20, 개역한글)


부자청년의 이 말은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구약 율법에서 하나님께서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부자청년은 자기가 살인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았으니 율법을 지켰다고 생각했습니다.


21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5:21-22, 개역한글)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럼 부자청년은 어릴적부터 쭉 자라오면서 형제에게 "미련한 놈"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을까요?
안할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살인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한 자입니다.


27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5:27-28, 개역한글)


또한 이 말씀을 근거로 부자청년은 <간음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다고 할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이 부자청년이 "내가 이 계명들을 다 지켰습니다"라는 말은 틀린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말씀이 정말로 의도하는바가 무엇인지 모르고 겉으로만 지킨 것이기 때문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라는 말씀을 살인하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것으로 이해하고 지켰으며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을 간음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지 않고 <살인하지 말라>는 것은 살인행위를 하지않는것이 아니고 어떤 사람에 대한 미움이 없어야 합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도 간음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더 나아가 그와같은 생각이 들지 않아야 한다, 그와같은 수준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도덕 선생님처럼 학교에서 어떤 행동을 안하고 넘어가는 분이 아닙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예수님 말씀에 의하면 이 부자청년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제대로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겠습니까?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롬7:7, 개역한글)


그는 사도바울입니다. 그는 율법으로 죄를 알게 되었습니다.
율법에 <탐내지 말라>는 글을 보고 그는 '내가 탐내는 사람이구나' 라고 알았습니다.
스스로 율법을 지켜서 '내가 의인이다' 라고 나가지 않고 율법을 보고 '내가 탐심을 품은 죄인이구나' 라는 것을 깨닳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3:20, 개역한글)


<율법으로는 죄를 깨닳음이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갈3:24, 개역한글)


율법은 우리를 예수님께 가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죄인인 것을 깨닫고 죄인은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다는 것을 알고 예수님께서 우리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벌받으신것을 알고 예수님을 믿어서 나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얻지 못했는데 예수님께서 선물로 주신 의를 받아야 함을 아는것과 받는것이 맞는 것입니다.


부자청년은 율법을 표면적으로만 보고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진지하게 살피지 않은 것입니다.
그저 행위만을 지킨것으로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지켰다고 생각하고 행위로 지켰음에도 그 마음에 영생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확신을 얻고자 했습니다.


이것이 가짜 구도자의 특징입니다.
가짜 구도자는 항상 이세상의 것과 천국을 다 가지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잘 살고 덤으로 죽으면 천국도 가려고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표면적으로만 이해하고 말씀이 자기를 죄인으로, 그래서 하나님의 죄용서와 은혜로 못가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사람에게 자기의 실체를 알도록 질문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부자청년의 태도에 대해서 굉장히 높이 평가합니다. 달려왔고 와서 무릎을 꿇었고 예수님께 가장 핵심적인 영생을 질문을 했습니다.
우리 같으면 이런사람에게 구원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당장 복음, 십자가를 말할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왜 선하다 하느냐> 라고 하십니다.
<하나님만 선하시다. 그리고 하나님처럼 되어야 선하다>
그런데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처럼 선해질수 있습니까?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은혜로만 그와같은 선에 이룰수 있습니다.
이것이 18절에서 예수님께서 질문하신 내용에 담겨있는 내용입니다.


부자청년은 '선'에 대한 개념이 잘못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것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을 말씀하셔서 내가 그 율법의 기준에 이를수 없고 예수님을 알고 은혜의 코스를 가야함을 주님께서 제시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가 하나님을 믿고 싶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제시해야 할것은 율법입니다.
율법에 의해서 자기가 죄인인 것을 깨닳아야 그 다음 진도가 나가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자기가 죄인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복음이 선포될수 있습니다.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요6:28, 개역한글)


부자 청년과 비슷한 질문을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이것입니다. <믿는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요6:29, 개역한글)


무슨일을 하려고 하지말고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분을 먼저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진짜 구도자는 사도행전 16장에 있는 빌립보 간수입니다.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요한복음6장과 마가복음 10장은 가짜 구도자입니다. 자신들이 누구인지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복음을 전할때 정말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외모를 볼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은 그 중심을 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중심을 보게 해달라고 주님께 기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