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강단말씀 요약글 모음/한봉래 형제님(요약)

마가복음 11. 성전 저주

박이레 2022. 7. 11. 21:20

2017년 3월 2일 목요일


강사 : 한봉래 형제님


<마가복음11_성전 저주>


12 이튿날 저희가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13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14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15 저희가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16 아무나 기구를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치 아니하시고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멸할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기이히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19 매양 저물매 저희가 성밖으로 나가더라
20 저희가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고
21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막11:12-21, 개역한글)


시간순서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20절, 이튿날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꼐서 안식일 전(금요일)에 도착하시고 안식일(토요일)에 베다니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었고 이제 다음날(일요일) 주님께서 성전에 들어오셨습니다.


그 날은 예루살렘에 들어오셔서 성전을 잠깜 둘러보시고 나가십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다 (막11:11, 개역한글)


그리고 하루가 지났습니다.


이튿날 저희가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막11:12, 개역한글)


이날은 월요일입니다.


13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14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막11:13-14, 개역한글)


첫번째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배가 고프셨을까요? 베다니 마리아가 예수님께 아침식사를 드리지 않은 것일까요?
베다니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에 향유까지 부은사람입니다. 그런데 아침에 예수님께서 나오셨는데 시장하셨습니다.


이렇게 짐작합니다. 베다니 마리아는 주님께 식사 제공을 같이 할 마음이 있었을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일찍 일어나셔서 기도를 시작하셨습니다. 다른사람들이 일어나서 아침을 먹는데도 식사를 안하시고 계속 기도하시다가 아침을 거른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데리고 거리로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무화과 나무를 보고 그리로 가서 먹을것이 있을까 하고 찾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무화과의 때가 아니라 열매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무화가의 때가 아니기에 열매가 없는 무화과 나무에게 잘못이 있다고 할수 있을까요? 이건 예수님께서 엄한 무화과 나무에게 저주하신 것이 아닙니까?


저희들이 성경을 읽을때에 '좀 이상하다'라고 생각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무화과는 8-10월 사이에 열렸습니다. 유월절은 3월 말 경이었으므로 오늘 읽은 구절의 배경은 3월 하순경 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무화과 나무의 경우는 열매가 먼저 생기고 잎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화과 나무에 잎이 있다고 하는것은 열매가 있다는 뜻입니다. 곧, 열매가 먼저 열리므로 잎이 있다면 그 나무에 열매가 있는것이 정상입니다. 무화과 나무에 잎이 없으면 열매가 없을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가보신 무화과 나무에는 잎이 있었지만 열매가 없었습니다.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이 말의 뜻은 무화과 열매는 보통 가을에 추수합니다. 하지만 봄에 잎이 생기기 전에 먼저 작은 열매가 맻힙니다. 그래서 배고픈 사람은 그것을 따먹습니다. 아주 맛있진 않지만 그 작은 열매가 먹을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무화과 나무에게 갔지만 열매가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막11:14, 개역한글)


주님의 이 말씀을 베드로가 21절에 <저주>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무화과 나무가 말랐나이다> 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너에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한다' 라는 것은 나무에 대한 저주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이 무화과는 말라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러한 저주를 하셨을까요. 이 저주는 바로 다음에 나오는 예루살렘 성전과 관련이 됩니다.
예수님꼐서 예루살렘 성전을 저주하십니다.


이 성전 저주를 첫번째로 무화과 나무를 비유로 하십니다. 두번째로 성전에 들어가셔서 실제 행동으로 하십니다.
그리고 나서 성전으로 다시 들어가십니다.


성전은 첫번째로 솔로몬이 지은 성전이 있습니다. 이 성전은 바벨론에 의해서 파괴됩니다.
그 후에 스룹바벨이 지은 성전이 있습니다. 에스라서에 나와 있습니다.


13 다리오왕의 조서가 내리매 강 서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 동료들이 신속히 준행한지라
14 유다 사람의 장로들이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의 권면함으로 인하여 전 건축할 일이 형통한지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과 바사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좇아 전을 건축하며 필역하되
15 다리오왕 육년 아달월 삼일에 전을 필역하니라
16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기타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즐거이 하나님의 전 봉헌식을 행하니 (스6:13-16, 개역한글)


이것이 스룹바벨이 지은 성전입니다. 이 성전이 지어질때 재미있는 일이 일어납니다.노인들은 울고 젊은이들은 환호했습니다.
이 두번째 성전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성전을 무너뜨립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고 난 이후에 네명의 장군들이 알렉산더 제국을 네곳으로 나눠서 분할 통치합니다. 그 중에서 이스라엘쪽을 담당했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라는 사람이 성전을 파괴합니다. 이것은 다니엘서를 보면 <작은뿌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번째 성전은 헤롯이 지은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륙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요2:20, 개역한글)


예수님께서 이땅에 계신 당시에 46년동안 짖고 있었고 총합 몇년동안 지었는지 알려져 있냐면 84년간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완공한 후 7년만에 무너집니다. 짖는데 84년, 7년동안 성전으로 존재하다가 AD 70년에 로마의 디도장군에 의해서 무너집니다.


그 다음 네번째 성전은 7년 환란때에 지어 집니다.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계11:1, 개역한글)


7년 환란 전반부는 평화로운 시기 입니다. 적그리스도가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맺고 이스라엘을 지지합니다.
지금 현재 성전 터에는 모스크가 있지만 적그리스도는 그곳에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줍니다.
이 성전은 3년 반이 끝나고 나면 적그리스도가 자기 형상을 그안에 놓고 자기를 신으로 경배하도록 요구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불응하는 유대인들을 죽입니다.
그래서 네번째 성전도 성전으로써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무너지게 됩니다.


다섯번째 성전은 천년왕국때 지어질 성전입니다.
이는 에스겔서에 나옵니다.


성신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 뜰에 들어 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가득하더라 (겔43:5, 개역한글)


성전은 총 5개의 성전이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것은 '각 성전이 왜 무너지는가?' 입니다.


솔로몬 성전은 왜 무너질까요?
하나님은 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성전을 무너뜨리고 모든백성을 잡아가도록 허락하신 것일까요?
이는 이스라엘이 우상숭배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우상숭배의 본거지로 느부갓네살을 이용하여 보낸것입니다.


두번째 성전은 왜 무너졌는지는 성경에 나와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에 나온 세번째 성전은 예수님이 보고 있는 성전입니다. 이 성전은 왜 무너졌을까요?
이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무너졌습니다.


2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롬10:2-3, 개역한글)


곧, 지식없는 열심이 만들어낸 비극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이스라엘을 도우시고 로마를 멸망시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셔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고 로마를 정복해 줄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은 이스라엘을 정결케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성경에도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심판이 어디서 시작될것 같나요?


우리의 생각으로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니 우리는 두고 세상 사람들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을 놔두고 교회를 먼저 심판하십니다.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벧전4:17, 개역한글)


하나님의 심판은 교회부터 시작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 당시에 오신것은 이스라엘을 먼저 정결케하시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그대로 놔두고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로마를 심판하기 위해서 오신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심판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압니까?
예수님의 공생애의 맨 처음은 요반복음 2장에서 성전을 방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때에도 성전에서 쓸데없는 것들을 치워버리신 적이 있습니다. 이제 사역의 맨 마지막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가십니다. 그리고 그 곳을 깨끗하게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심팜하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핵심은 예루살렘 입니다. 예루살렘 중에도 성전입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주님께서 심판하십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전체에 대한 심판입니다.


다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행해지는 일이 부패해 있으면 예루살렘이 부패한 것입니다. 성전만 부패하고 다른곳은 깨끗하게 하는것이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은 주로 대제사장과 바리세인과 서기관들과 같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주로 거기에 있는 곳입니다.
지도자들이 부패해 있으면 백성들이 부패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세인들을 굉장히 책망합니다. "위선자다. 겉은 깨끗하지만 속은 아니다"
다시 우리에게 적용해 봅시다.


우리도 똑같습니다.
교회는 예배를 잃어버리면 부패합니다. 예배시간이 엉망인데 복음은 잘 전한다는  없습니다. 예배가 부패하면 곧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항상 하나님께서 제일 중시하는것이 예배 입니다.
성전에서 예배가 어떻게 드려지는가!


요한복음 4장의 말씀대로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자>를 찾으십니다.
성령은 영으로 입니다. 진정은 진리대로 입니다. 곧 말씀대로 드려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주신대로 우리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의 처음과 마지막에는 성전에 들어가십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에서 하신 행동은 성전을 저주한 것입니다.


무화과 나무에 잎이 있는데 열매가 없는것은 예루살렘 성전에 여러가지 활동들이 있었지만 주님이 흡족하게 여기실만한 열매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무화과 나무가 그렇고 성전이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고 성전을 저주하십니다.
성전의 저주는  AD 70년에 그대로 일어납니다.


6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7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8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9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눅13:6-9, 개역한글)


이 비유는 주님꼐서 오셔서 사역을 시작하시는것을 의미합니다.
부패한 이스라엘에게 주님께서 마지막 회개의 기회를 제시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회개를 말씀하시고 주님께 돌아올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주님께서 일년간 기다리신 것입니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무화과 나무가 찍힌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막11:14, 개역한글)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잘 들었습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첫번째 생각한 것은 이것일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치신 가르침 중의 하나는 <열매를 보아 나무를 알리라> 입니다. 마태복음 산상수훈에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무화과 나무가 열매가 없기 때문에 주님께서 마르게 하셨습니다.


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신28:1-2, 개역한글)


14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1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신28:14-15, 개역한글)


구약은 이와같은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순종하면 축복을 받고 불순종 하면 저주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불순종하는 첫번째 증거가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그들의 예배가 타락해 있는 것입니다.


저희가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막11:15, 개역한글)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막11:17, 개역한글)


성전에 대한 몇가지 부분을 보겠습니다.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 입니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시27:4, 개역한글)


다윗이 한가지를 구합니다. 다윗이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단 하나의 소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집에 거하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묵상하는 것> 입니다. 그리고 <그 전에서 사모하는 것> 입니다.
곧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전의 용도입니다.


그래서 성전은 첫번째로 시끄러우면 안됩니다. 사람들이 조용히 들어와서 성전에 있는 하나님의 속성들을 보면서 기뻐하며 찬양하고 엎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가복음 11장에서는 사람들이 성전에서 매매했고, 아무나 기구를 가지고 돌아다녔습니다.
성전은 매우 요란스러웠습니다. 성전에 들어와서 하나님을 묵상할수 있는 상황이 못되는 것입니다.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시65:4, 개역한글)


성전에 들어와서 그가 또 하나 느끼는 것은 <자기 자신이 얼마나 복된 사람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불러주셔서 성전에 들어왔으니 내가 얼마나 축복을 받은 사람인가 아는 것입니다.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막11:17, 개역한글)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 이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이방인을 업신여겼습니다. 사실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알고 찬양하는 은혜가 부어져야 하는데 이스라엘은 그렇게 하지 않고 '너희는 그렇지 않고 우리만 하나님의 백성이다' 라고 하는 차별, 우월감에 가득차 있었습니다.
이방인은 성전에 와서 열등감을 느끼도록 만들어 놓은것입니다.
이는 유대인들이 잘못한 것입니다.


성전의 용도는 1.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알며 2. 하나님께 축복받고 3. 모든사람이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마가복음 11장에서의 성전에서는 이와같은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꼐서 분노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전을 저주하십니다. 예수님의 저주는 금요일에 일어납니다. 마가복음 11장에 나온 성전에서의 일은 월요일입니다. 그 주 금요일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성전휘장을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으심으로 이 성전의 용도는 다합니다.
AD 70년에 이 성전은 실제로 로마에 의해서 멸망 당합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것은 예배 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꼐서는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제사장 나라를 삼으셨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로 부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기뻐하시는 것이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예배의 근거는 주님의 십자가 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시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다는것 그 사실을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일때 우리가 하나님께 나갈수 있고 예배드릴수 있고 찬양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성전에 있었던 많은 가축들, 비둘기들은 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 있는것인데 이것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사람의 행위로 바꿔버린것에 대한 꾸짖음이 나타나 있습니다.


아무나 기구를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치 아니하시고 (막11:16, 개역한글)


주님께서는 또한 성전에서 아무도 지나다니는것을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그때 놀라운것은 아무도 주님을 건드리지 못한 것입니다.
"당신이 누구냐?" "왜 그러느냐" 아무도 말하지 못합니다.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막11:17, 개역한글)


그리고 주님께서는 성전의 용도를 가르치십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멸할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기이히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막11:18, 개역한글)


그리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의 가르침과 너무 달랐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공존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무리가 그의 교훈을 기이히 여기므로>
그런데 이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한 말이라는 감각을 가집니다.


매양 저물매 저희가 성밖으로 나가더라 (막11:19, 개역한글)


주님께서 저물때에 다시 베다니로 돌아가십니다.
가다보니 아침에 주님께서 저주하신 나무가 말라버린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주님께서 저주하셨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무화과 나무가 잎이 있으니 당연히 열매가 있어야 하는데 없었습니다. 이것은 당시의 유대인들을 가르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 나아가는 제사문제에 있어서 결정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대해 주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시기 전에 한번 하시고 성전에 들어가셔서 하셨습니다.


저희들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임에서는 인도자들이 틀려버리면 모임이 틀려 버립니다.
그리고 모임에서 예배가 틀려버리면 다 틀려버립니다. 이것이 핵심적인 사항입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오셔서 예배에 대해서 가르치신것들을 우리가 마음속에 세기고 하나님 앞에서 이 부분에서 틀리지 않도록 분명하게 말씀가운데, 진리가운데 있도록 유의하고 깨어있도록 유념해야 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