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으라 > 매튜 카인 형제님 / 26년 4월 19일 일요일
안녕하십니까, 다시금 시편 34편으로 저희가 복음을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시 34:6).
네, 매우 짧은 구절인데요. 저희가 다시 한 번 읽으면서 이해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란에서 구원하셨도다."
제가 한국을 방문하기 전에 처음으로 방문한 아시아 국가가 있는데요. 바로 2016년에 중국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북경에는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그곳에 영어도 함께 적혀 있었기 때문에 이용하는 데 불편이 없이 잘 이용하였습니다. 제가 머물던 호텔에서도 조금만 이동하면 그 지하철에 닿았기 때문에 쉽게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당시 베이징이 조금 더 서울보다는 복잡한 곳이었고, 제가 그곳에서 버스를 탈 때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 버스를 타고 내릴 때 제가 내려야 될 그 정류장을 지나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버스에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문까지 가기에는 어려웠고 제가 밀려서 그 버스 정류장에 내릴 수 없었습니다. 제가 당시에 약간 당황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있는 곳과 또 제가 가는 곳 그 루트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정류장을 지나쳐서 당황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중국어라고는 "어, 안녕하세요." 그리고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는 것뿐이었기 때문에 제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그 사람들이 가득 있는 버스 안에서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 제가 곤경에 처해 있다는 것을 생각하였습니다. 제가 생각한 부분은 이 시편 34편이었습니다. 제가 이 구절을 생각하면서 중국어로는 할 수 없었고, 제 말로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손을 들고 "아!!!" 라고 외쳤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서 제가 곤경에 처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 버스가 저를 위해서 내려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외쳤을 때 그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조금 제가 재미있는 이야기로 시작을 하였지만,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원리를 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곤경에 처해 있고, 여러분은 버스 운전사에게 부르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 여러분 자신이 곤경에 처해 있음을 외쳐야 합니다. 이러한 곤경에 처해 있을 때 다른 분들도 이렇게 외쳤고, 자신이 위험에 처했다는 것을 알렸습니다. 여기 기자인 다윗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곤경에 처해 있을 때 하나님께 외쳤고 자신의 어려움을 고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다윗을 구해 주셨고 오늘도 여러분을 구원해 주실 수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모든 믿는 자들도 이와 같은 같은 간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한 번 곤경에 처한 것이 아니라 여러 번 있는데요. 이 삶이라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여러분이 아직 나이가 어리다면 이 곤경에 처한 일이 많이 없을 수도 있지만, 제가 미리 말씀드리는 것은 살다 보면 인생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참 인생이 어렵고, 또 여러분이 곤경에 처해 있을 때에 주님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제가 여러 가지 곤경에 처해 있었지만, 제가 가장 큰 곤경,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죄로 인해 하나님과 떨어져 있는 사실이었습니다. 큰 산처럼 생각이 되었고 그 산에 오를 수 없는 산처럼 생각이 되었습니다. 너무나 그 빚이 컸기 때문에 제가 그 빚을 갚을 수 없는 큰 빚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 빚을 갚을 수 없었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오직 하나님께 외치는 것뿐이었습니다. 제가 한 유일한 것은 주님께 부르짖는 것이었고, 또 제가 부르짖었을 때 우리 주님께서 저를 구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것은 주님께서 이미 그 구원을 위해 저의 죄를 다 담당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아마 여러분들 중에 마음 가운데 어려움이나, 슬픔이 있는 분들도 있으실 것입니다. 아마 재정적인 경제적으로 어려운 일이 있으실 수 있습니다. 또 불안하거나 마음이 어려운 가운데 있으실 수 있습니다. 또 관계에 대한 문제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여러분에게 임박한, 가장 큰 문제를 오늘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 어 내려 놓으신다면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을 바로 오늘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1. 첫 번째 문제점은 바로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죄로 인해서 그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서는 저희가 "죽음 이후에 심판이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가장 극악한 죄인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의 마음의 죄나,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죄나, 모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여름에는 그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라는 그 섬에 항상 방문하였습니다. 여름방학마다 제가 그곳에 가서 재미있었던 것은 바로 고카트, 미니 레이싱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저보다 5살 어린 동생이 있는데요. 그와 함께 그 고카트를 즐기면서 재밌게 방학을 보냈습니다. 그 고카트장에는 정말 지금 제가 타서 스릴을 느낄 수 있는, 정말 실제 고카트 레이싱카가 있었고요. 거기에는 또 다른 이제 장난감같이 이렇게 매우 천천히 가는, 아마 2키로 3킬로 정도밖에 갈 수 없는 그런 장난감 카트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 남동생보다 내가 5살이나 더 나이가 많기 때문에 내가 더 능력이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한 가지 규칙이 있었는데요. 이 큰 정규 고카트를 타기 위해서는 그 신장이 커야 했습니다. 제 남동생의 경우에는 키가 작았기 때문에 당연히 그 작은 고카트를 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당연히 당당하게, 담대하게 가장 큰 거기에서 좋아 보이는 고카트에 탑승해서 있었을 때에 거기 진행 요원에 의해서 제지 당하게 되었습니다. "잠시만요, 그 신장이 어느 정도 되는지 한번 체크해 보고 그 차에 탈 수 있는지 안 되는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어린 제 동생보다 제가 얼마나 키가 크고 당당하게 이 이것을 탈 수 있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키를 쟀을 때 아마 한 2cm 정도 되는 정도가 모자르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제가 깨닫게 된 것은 그 동생보다 제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그 고카트를 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기준에 제가 못 미친다면 그 카트를 탈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보다 제가 조금 더 컸고 그는 작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우리 둘 다 작았다는 것입니다.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할 때 어떤 사람은 자기보다 더 죄를 많이 지었고, 극악무도한 사람이다라고 생각을 하겠지만, 우리 모두 다 죄인이라는 그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의 기준은 무엇이냐면 여러분의 친구도, 여러분의 가족도, 여러분 주위에 있는 사람도 아니고, 바로 우리 주님이, '예수 그리스도가 기준'인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 죄를 지었고, 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고, 죄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심판이 아직 이르지도 않았고, 심판이 보이지도 않는데, 내가 그것을 걱정해서 뭔 상관이 있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마 이 종교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고, 허망한 것이고, 또 그리스도로 되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거짓된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심판이 이른 적도 없었고, 또 심판도 앞으로 이르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심판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죄가 없으신 분이시고, 죄를 지으실 수도 없는 분이시지만, 우리의 죄를 위하여 그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셨습니다. 이사야서 53장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이 죄를 다 담당해 주셨습니다. 우리 '주님의 죽으심'이 우리 '심판이 임박했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또한 우리 '주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이 그 '심판이 있다는 것'을 또한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7장에서도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이 심판이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아직 심판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저희를 위하여 길이 참고 계십니다. 베드로후서에서는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고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시기까지" 길이 참고 계시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이 죄를 안고 하나님을 마주하게 된다면 이것은 굉장히 위험한 것이고, 그 심판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그날에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이 심판이 이르기 전에 구원받아야 합니다.
제가 실제로 경험했던 어렸을 때 있었던 일인데요. 제가 잠자리 들기 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였는데요. 저는 이 죄가 있었기 때문에 주님 앞에서 살 수 없는 자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곤 주님 앞에서 우는 것이었습니다. 34편 6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란에서 구원하셨도다"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 번째 문제는 심판이 임한다는 것이지만, 두 번째 문제는 여러분이 죄가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2. 이 죄가 있다는 것은 여러분이 '속박 가운데에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죄가 있다면 바로 죄의 노예 중에 있다는 것을 로마서 6장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마 여러분들 중에서는 '반지의 제왕' 그 책을 알고 계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사우론'라는 그 캐릭터가 악한 영인데요. 그 반지를 찾기 위해서 굉장히 노력하고 있는 그런 내용입니다. 잔인하고, 또 증오하고, 이런 여러 가지 나쁜 것들이 그 반지에 담겨 있다는 것을 그 책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 반지가 얘기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죄악된, 어마무시한 것이 그 안에 담겨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반지가 그 소설에서 힘을 가지고 있는데 이 사람들의 마음을 꿰고 사람들을 이렇게 속박하는 그런 반지입니다. 그래서 어떤 인물이 그 반지를 소유하게 되면 성격이 변화하게 되고 이상하게 됩니다. 이 바로 반지와 같은 것이 여러분의 죄의 힘을 보여줍니다. 이 반지를 소유하려고 하는 그 마음과 같이 여러분들이 그 죄를 소유하고 있다면, 그 더욱 죄 가운데 속박되어지고, 또 여러분은 죄 가운데 거하게 되는 가운데 그렇게 됩니다.
아마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죄 정도야, 내가 다 컨트롤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셔야 되는 것은 죄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고 더 깊고, 더 무섭다는 것입니다. 그 죄는 여러분이 갚을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죄입니다. 죄는 보아뱀과 같습니다. 좀 특별한 뱀인데요. 제가 그 뱀이 하고 있는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 보아뱀이 완전히 이렇게 잡아서 삼켜버리는 것입니다. 점점 더 타이트하게 엉켜집니다. 더 강하고, 강하게 엉켜집니다. 아마 이 보아뱀의 그 속박에서 견뎌낼 수 있고 도망칠 수 있다라고 생각하지만, 그럴 수 없고 점점 더 강하게 움켜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의 모습과 같습니다. 죄는 여러분을 점점 속박하고, 속박하고, 속박해서, 여러분이 그 죄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여러분을 움켜 짓는 것입니다.
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힘은 바로 우리 주님, 주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를 속박 가운데서 벗어날 수 있도록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그 뱀의 힘을 이기셨습니다. 제가 부르짖은 것과 같이, 우리 주님께서는 제가 부르짖었을 때 우리 주님께서 이미 저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제가 이 복음을 전할 때마다 항상 마음속에 바라는 것은 여러분들과 이렇게 대화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제가 가장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시느냐'입니다. 그리고 더 잘 여러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어 하는 것은, 이 구원이 바로 임박하게 이루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점점 나이가 들수록, 점점 어른이 될수록,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죄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시편 34편의 기자가 말하는 것처럼 여러분도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께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건지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곤경에 처해 있고, 또 하나님을 불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구원해 주십니다. 누가복음 18장에 세리가 했던 것과 같이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저를 긍휼히 여기소서."라고 부르짖었을 때에 우리 주님께서 그를 구원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걷는 장면을 기억하십니까? 그가 배에서 나와서 주님과 같이, 주님처럼 그 물 위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큰 파도가 쳤을 때에 그는 두려움이 임했고 그는 가라앉아버렸습니다. 그가 이렇게 빠지게 되었을 때 그가 주님께 간구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는 '아, 수영을 배웠어야 되는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금 자기가 어려움에 처했다는 것을 알았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주님, 저를 살리소서!" 그는 전적으로 주님을 불렀고, 주님께서 이를 들으셨을 때 그는 구원받았습니다.
아마 인명 구조대가 그 사람을 구하기가 어려운 이유가 이러한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두 가지가 있는데요. 실제로 그 사람이 곤경에 처했는지 안 처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 사람들은 자신이 곤경에 처하는 지 모르고 이렇게 발버둥을 치우면서 그 곤경에서 스스로 벗어나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해야 되는 것은 그가 곤경에 처했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 인명 구조대에게 빨리 구조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우리 주님께 구해야 합니다. 겸손하게 우리 주님께 나오시기 바랍니다. "저는 구원하실 주님을 필요로 합니다." 이렇게 주님께 나아왔을 때에 주님께서는 그를 들으십니다. 이사야서 59장에서는 저는 눈 먼 자였고, 또 그는 들을 수 없는 자, 소경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2010년에 있었던 일인데요. '아이티'라는 곳에 지진이 있었습니다. 그 지진으로 인해서 굉장히 가난한 나라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수천, 수만의 건물들이 붕괴되었습니다. 수색대들이 혹시 거기에 생존자가 있는지 계속 찾아다녔습니다. 지진이 난 지 15일 뒤에 한 희미한 음성이 어떤 더미 가운데에서 들려왔습니다. '달린'이라는 16살 정도 되는 소녀가 15일간 살아서 그곳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 소녀는 이렇게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아무도 나를 못 찾고 나는 여기서 죽게 되겠구나.' 거기에 어떤 한 남자가 도둑이 들지 않을까 해서 자신의 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었습니다. 그에게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희미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임마누엘과 그 친구들은 그곳을 손으로 파기 시작하였습니다. 프랑스 구조대들이 함께 그곳을 파서 그 그녀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 이름을 잘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이름은 바로 '임마누엘', 성경에 있는 임마누엘과 같았습니다. 이 작은 소녀가 곤경에 처해 있을 때 그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을 가진 분이 이를 듣고 그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그 소녀와 같이 그 깊은 곳에 혼자 있지 않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죄 더미 안에, 여러분이 그 안에 있다면, 여러분도 그 소녀가 했던 것과 같이 하나님께 부르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 또 한 한 분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실제로 시편 34편은 우리 주님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내용입니다. 히브리서 4장에서는 죽었던 자가 부르짖는 이 장면이 나와 있습니다. 겟세마네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하나님께 부르짖고 눈물로 기도하였습니다. 제가 계속 말씀드린 것은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기도에 대해서 하나님의 응답은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님께서 기도하셨을 때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은 "알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을 막으신 게 아니라,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것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받은 구속입니다. 주님께서 죽으셨지만 다시 하나님께서 살리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이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이 말씀에서 말씀하고 계신 복음입니다. 주님께서는 저희를 위하여 죽으셨고, 주님께서는 부활하셨습니다. 삼일째 되는 날에 많은 증인들 앞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의 범죄함 때문에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우리를 의롭게 여기시기 위하여 부활하신 것입니다. 바로 주님만이 유일하게 죽으시고 부활하셨으며, 우리가 바라봐야 할 유일하신 구원자이십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6장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을 믿으라 그러면 너희를 구원하실 것이다."
이곳에 계신 여러분들이 어떻게 구원을 받으셨는지는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한테 와서 "그리스도의 십자가까지는 왔는데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어떻게 주님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이 시편 34편에서 저희가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 부르짖으십시오.' 저는 어떻게 어떤 것이 믿는 것인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한 분명한 사실은 주님께 부르짖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여러분이 지금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면, 죄의 문제를 지금 인식하고 있다면, 주님께 나아와 주님을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이 가난한 자가 시편 34편을 통해서 교훈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불렀을 때 주님께서 그를 구원하셨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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