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형제님/메튜 카인 형제님

2. 홍해 : 구원, 믿음의 승리, 성별

박이레 2026. 5. 16. 17:52

< 2. 홍해 : 구원, 믿음의 승리, 성별 > 메튜 카인 형제님 / 26년 4월 18일

예, 안녕하십니까? 다시 한 번 여러분을 뵙게 돼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늘 이 두 번의 집회에 걸쳐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물을 건넜던 위대한 두 개의 사건을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한 가지는 '홍해'를 건넌 것이고, 또 하나는 '요단강'을 건넌 것입니다. 그 두 사건 모두 우리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신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그 일로 말미암아 아주 중요한 교훈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두 사건은 각각 다른 측면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선 신약 성경을 읽고 출애굽기로 돌아가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히브리서 11장입니다.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히 11:29).

여기서 우리가 홍해를 건넌 것을 보았고요. 그리고 그다음 사건은 30절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믿음으로 칠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매 성이 무너졌으며"(히 11:30).

우선 홍해를 건넌 일이 나왔고요. 그리고 나서 이제 여리고성을 함락하는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일서 5장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요일 5:19).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요일 5:4-5).

우리는 여기서 예수를 믿는 '믿음'이 우리에게 '이김'을 준다는 것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주요 주제로 출애굽기 14장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 양의 피로 구속함을 받고 이제 홍해를 건너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돌쳐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다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아득하여 광야에 갇힌바 되었다 할찌라 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 온 군대를 인하여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으로 나를 여호와인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출 14:1-4).

"여호와께서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의 뒤를 따르니 이스라엘 자손이 담대히 나갔음이라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과 그 군대가 그들의 뒤를 따라 바알스본 맞은편 비하히롯 곁 해변 그 장막 친데 미치니라 바로가 가까와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 뒤에 미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출 14:8-16).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어민대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출 14:21).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 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출 14:31).

21절부터 31절 그 사이도 읽도록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들이 다 그 뒤를 쫓아 바다 가운데로 들어 오는지라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 구름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그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그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에 극난하게 하시니 애굽 사람들이 가로되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치는도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바다 위로 내어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 하시니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어밀매 새벽에 미쳐 바다의 그 세력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스려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쫓아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였고 물이 좌우에 벽이 되었었더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의 애굽 사람의 시체를 보았더라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 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출 14:22-31).

그러고 나서 이제 15장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찬송과 찬양의 노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노래에 처음 두 구절을 15장 1절과 2절에서 읽도록 하겠습니다.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출 15:1-2).

우리는 출애굽기 12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그들이 구속함을 얻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구속'이라는 놀라운 은혜를 받았지만은 또한 그들에게 여전히 '영적인 전쟁'이 기다리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이 '사단'과 '세상'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우리는 애굽이 이 세상을 상징하는 그림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는 그 세상을 조작하고 조정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려 하는 그 대적임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이제 홍해에서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사단과 세상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마치 바로와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홍해로 말미암아 구원하신 것처럼, 이제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단과 세상에서 구원을 얻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가 다룰 주제에 대해서 이 칠판에다가 세 가지로 기록하였습니다.

1. 우선 첫 번째로는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다'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14장 13절 말씀을 읽게 될 때에, 13절에서 "가만히 서서"라고 되어 있는데, 이 단어에 해당하는 것을 살펴보면 그냥 가만히 움직이지 않고 있는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서 있는데 '견고하게 서 있는 것'을 말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거기에 가만히 서 있으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실 때와 다른 내용인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는 지금 두려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와 같이 흔들리지 말고 견고하게 서 있으라. 이제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이 말씀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입니다. 또한 특별히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닌 분들에게도 필요한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이 구원이라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힘으로 이루어 낼 수 있는 구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구원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시는 것이고, 우리에게 있어서는 우리가 그 하나님의 구원을 단지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두 번째 하신 말씀이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임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을 위한 구원 사역을 우리 주님께서 다 완수하셨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그 구원에 무언가를 더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관점에서 볼 때에 세상의 모든 종교는 단지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이 그리스도를 믿는 것 외에 다른 세상의 모든 종교는 '구원을 얻기 위해서 당신이 해야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을 해야만 한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하나님은 '그분께서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하여 다 이루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복음이라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이미 이루어 놓으신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도 이것을 계속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이 '구원'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구주께서 이루신 일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구원을 스스로 이루어낼 수 없고, 우리는 그 구원의 안전을 또한 우리가 지켜낼 수도 없습니다. 구주께서,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또한 주님께서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시는 것입니다. 13절에서 그 '구원을 이루실 것'을 말씀하시고, 14절에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그 하나님의 심판의 그 물결 안으로 홀로 들어가셨고, 이제 승리로 그 물결에서 나오신 것입니다. 그것은 모두 이루신 것이고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될 모든 것은 단지 이 구주 안에 의지하고, 평안히 거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것뿐'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이루신 그 일을 받아들이는 것뿐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본질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홍해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을 스스로 그 어려움 가운데서 구원해낸 것이 아닙니다. 이제 애굽 사람들을 다시 되돌린 것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 동풍을 불러일으키시고, 홍해를 가르신 분도 역시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애굽 사람들을 그 홍해 가운데에서 수장시키신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2장의 마지막을 보면, "그날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니라."라고 결론 맺고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마른 땅과 같이 걸은 장면을 한번 생각해 보신 적 있습니까? 이제 모세가 지팡이를 든 손을 내밀어서 바다를 갈라지게 하고, 이제 바다는 벽과 같이 양쪽에 세워졌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높이 물이 쌓여졌는지 알 수 없습니다마는, 이제 그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사이로, 마른 땅으로 지나갔던 것입니다. 그들은 아주 기쁨 가운데, 참으로 승리의 그 걸음을 아주 분명하게 걸으면서 그 길을 걸었을 것입니다. "바로 이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다!" 그분을 찬송하면서 걸어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중에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좌우에 높이 세워진 물을 보면서, "아니, 이 물의 벽이 넘어지는 거 아니야? 그러면 어떡하지?"라고 조금 주저하면서, 두려워하면서 그 길을 걷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 모두 하나님께서는 안전하게 그 길을 다 건너게 하셨습니다. 이 구원이라는 것은 그들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아주 담대하게 그 승리의 걸음을 걷고 있던지, 아니면 그들이 조금 주저하면서 두려워하면서 걷고 있던지, 이제 그들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만 달려 있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그 길을 안전하게 통과한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인 여러분들께서도 또 어떨 때, 이 구원에 대해서 의심할 때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올바른 방식으로 믿은 것일까?', '나의 믿음이 구원받기에 충분히 강한 것일까?' 하지만 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홍해를 건넌 것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거대한 물의 벽을 지지하고 있었던 것은 그들의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그 물의 벽을 견고하게 붙들고 있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이제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모든 백성은 그 맞은편으로 건너갔고, 거기서 출애굽기 15장에 나와 있는 승리의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참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기쁨 가운데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는 노래를 부르는 것은 언제나 좋은 것입니다. 제 아내는 이제 부엌에서 바쁜 일들을 하고 있을 때, 또 특별히 더 분주하고 바쁘게 될 때, 이제 찬송가를 틀어 놓고 함께 따라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차로 가족과 함께 긴 여행을 가게 될 때, 뒷자리에 있는 아이들은 이제 누가 선곡을 할지를 정해서 이제 그 곡을 틀어 놓고 함께 부르게 됩니다. 그들이 이제 좋은 그리스도인 찬송을 택해서 저는 그것을 함께 기뻐하면서 부르게 됩니다. 여러분이 한국어로 찬송을 부를 때 저도 또 그와 같이 한국어로 찬송을 부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15장에서 그들이 찬송을 부를 때, 그들의 노래는 "야, 우리가 얼마나 용감하게 잘했는가?" 이런 찬송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한번 제대로 믿었구나! 우리가 얼마나 잘했는가." 이런 찬송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찬송은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분께서 영광스럽게 승리하셨다."고 노래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노래시고, 여호와께서 나의 힘이시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께만 그 구원의 공을 돌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구원은 항상 모두 하나님께만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장 16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복음은 믿는 자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는 믿어야 되지만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구원은 하나님에게만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안전, 우리의 기쁨, 이 우리의 구원의 지식은, 그것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 하나님의 구원에 근거를 한 것입니다. 우리의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도 어려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저도 역시 2026년도에 이제 어떤 한 날, 그런 어려움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의 구원은 거기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있는 것은 로마서 8장에서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에서는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구원을 얻는 것을 배경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와 베드로전서에서는 광야를 여행하는 그 이스라엘 모습을 배경으로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에서는 "나그네와 행인과 같은 너희에게 권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가 기록된 시대에는 이미 성전이 있는 시대였지만, 히브리서는 특별히 '성막'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과 함께 이동한 그것을 배경으로 히브리서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전은 이제 천년 왕국의 그때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그림입니다. 그렇다면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날 때를 보여주고 있는 그 그림인 것입니다. 골로새서는 이제 그 땅의 경계에 다다랐을 때를 말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는 그 경계를 넘어서 그 땅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서와 에베소서에서는 많은 유사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로마서 8장에서는 그 '구원의 안전'이 어디에 달려 있는지를 우리에게 다시 한 번 말해주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에서는 "누가 우리를 정죄하리오,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홍해의 그림'은 우리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다시 승리해 부활하신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4장 30절에서는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사람들이 그 해안에 죽어 있는 시체를 보았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의 안전은 완벽한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그 부활도 이 전쟁의 승리가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거기에 의심의 여지가 없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2장에서는 우리 주님께서 이 승리를 예견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났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골로새서 2장에서는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리시고" 그 정사와 권세, 그 대적들의 무장을 해제시키시고, 그들을 밝히 드러내셨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골로새서 1장에서는 "흑암의 권세에서 우리를 건지시고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우리를 옮기셨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그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승리한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듯이,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승리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 이 구원에서, 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나의 그 죄악된 육신이라 할지라도, 참 사단과 이 세상에 공격이 있다 할지라도, 이 구원의 안전은 영원한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에서는 그 "젊은이들이 악한 자를 이긴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 속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우리가 그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고 있고,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승리는 분명한 것입니다. 로마서 1장에서는 우리의 '구원이 어떻게 시작했는지'를 말씀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구원이 어떻게 또한 진보하는지'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그 앞에 말씀드렸던 "이 복음은 모든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하신 후에, 그다음 구절이 또한 "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믿음의 진보'를 또한 그다음에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여정의 처음부터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으며, 또한 그 후에도 '믿음'으로 우리는 그 삶을 살아가고, 더욱 그것이 '성장'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함으로 구원을 얻었고, 그리고 나서도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반응을 함으로써 우리의 믿음이 더욱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동일한 반응이 우리의 믿음의 삶의 전체에 걸쳐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2. 그래서 이제 이와 같은 것을 두 번째 부분으로 이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는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그분께서 온전히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 '승리의 비결은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출애굽기 14장을 읽을 때에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그 홍해 앞으로 인도하시고 그 앞에 진치게 하신 분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주목해서 보셨습니까? 그리고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신 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로가 그 이스라엘 백성들을 쫓아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을 그 어려운 환경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이제 그들의 양 옆에는 산이 있고, 그들 앞에는 홍해가 있고, 그들의 뒤에는 바로가 군대를 이끌고 쫓아오고 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환경이 바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인간의 힘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입니다. 이제 그들의 자연적인 힘으로는 스스로 거기를 빠져나갈 수 없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함인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나타내 보이시기 위하여 이와 같은 배경을 마련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이러한 것을 통해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항상 그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가장 빛나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오후 집회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는 장면을 살펴볼 텐데요, 이것은 마치 그들이 홍해를 건넜던 시기와 같은 시기에 요단강을 건너가게 됩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는 요단강이 가장 크게 범람하는 수위가 높아지는 때입니다. 그 요단강이 가장 물이 많을 때에, 그리고 그 요단강 물이 가장 빠르게 흐를 때,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그 앞으로 인도해 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환경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것은 너희들이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임을 알아야 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할 수 없는 것을 바로 내가 이룬다."라고 하나님은 알려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넜습니다. 하지만 애굽 병상들은 병사들은 그것을 시험하다가 모두 물에 빠져 죽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애굽 사람들은 믿음의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애굽은 세상을 상징하고 있고, 그들의 인도자 바로는 사단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요한일서 5장에서 읽은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지만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속해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거기서 읽은 것은 "이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대해서 말씀을 드릴 때 그것은 바로 이 악한 자, 이 사단에 의한 체계적인 '하나님을 대적하는 시스템'인 것을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는 그것과 관련돼서 이 세상의 경제 체계, 이 세상의 스포츠 산업, 이 세상의 문화, 이 모든 것들이 그 사단이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서 이용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피조물들, 이 세상의 시스템이 사단에 의해서 조작되어, 이제 그것이 구부러져서 사람들이 죄를 짓도록 하는 그 시스템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사단은 이 세상에서는 의로운 것이 굉장히 이상한 것이고, 죄를 짓는 것이 당연한 것임을 만드는 그 문화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이고 사단은 이것을 이용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유혹에 빠져서 그들이 의심하고, 또한 죄를 짓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도 역시 그러한 세상 시스템의 일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5장에서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불러 택하였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너희를 사랑하였을 터이나, 이제 너희가 세상에서 나와 예수님을 미워한 것처럼 그들을 미워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자들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었을 때 그들은 세상을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마치 이스라엘처럼, 이제 여러분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기는 자가 된 것입니다.
이제 애굽 병사들은 그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쫓아가고 있는데, 특별히 '말'과 '마병'들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 말과 그 병거는 이 '세상의 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자주 애굽과 그 말을 연관지어 언급하게 됩니다. 이 '말'은 '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로 말미암아 '우리가 힘이 있으니 우리는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다.'라고 사람들이 생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서 31장에서는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 말과 마병들을 의지하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책망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제 애굽 병사들은 말과 병거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쫓아오고 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것에 대응할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믿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기는 자가 됩니다.
또한 여러분도, 우리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서 이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들었고, 그리고 그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14장에서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하여 앞으로 나아가라고 명하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른 땅으로 그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이와 같이 '믿음'이라는 것은 또한 '행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항상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서는 "내 믿음을 또한 행함으로 보일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냥 이 교회당 안에서 앉아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말로만 하는 것과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이 믿음이라는 것은 행동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직장에서, 우리가 세상에서, 다른 어떤 교류 가운데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저의 믿음이 성장하는 방법도 이와 같이 믿음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여러 가지 환경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하여 행하는 것이 그 믿음이 성장하는 길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존귀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귀히 여길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존귀히 여기고 믿음으로 반응할 때, 우리의 믿음이 성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31절에 우리는 이 놀라운 표현을 보게 됩니다.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 그런데 슬프게도 이 하나님을 믿은 백성들이 가나안 땅의 경계에 다달았을 때,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으므로 그 땅에 들어가기를 거절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불신은 그들로 하여금 광야에서 38년 동안 방황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한 번 히브리서 11장 29절에 그 말씀을 생각하게 됩니다.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건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구절은 "믿음으로 그 여리고의 벽을 무너뜨렸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히브리서에서는 그들의 '승리의 기록'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두 개의 기록 사이에는 40년의 그 시간차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두 승리의 사이에 그 기간 동안에 그들의 특징은 '불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또한 아주 흥미로운, 이것이 예언적으로 말하는 한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정탐들은 그 땅의 포도송이를 가지고 돌아오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의 맛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를 듣고 이제 믿음으로 그 땅에 들어갔다면, 이제 하나님께서는 즉시로 그 땅에 심판을 내리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땅을 차지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기업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즉시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였고, 이제 하나님께서는 다시 오랜 기간 그들을 참으시고 인내하셔야 됐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해서 불신 가운데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참고 있으셔야 됐습니다.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땅에 오셨을 때, 참 그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그분께서는 천년 왕국의 그 맛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알도록 하셨습니다. 참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왕을 영접하였다면, 즉시로 그 하나님의 나라의 심판이 그 땅에 임하였을 것입니다. 참으로 이 신약적으로 말씀을 드리자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그 기업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즉시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왕국을 거절한 것이었고, 이제 하나님께서는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오랫동안 인내하셔야 됩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기간 동안에 소경되어 불신 가운데 있게 됩니다. 하지만 곧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복되어 이제 그들도 믿음으로 그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로마서 11장에서는 그 이스라엘의 소경됨이 부분적이고 또한 일시적임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지금 광야의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불신하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놀랍게도 이제 여러분들에게 두 개의 질문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에 그 좋은 보고를 한 두 정탐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이제 처음은 맞았는데요. 두 번째 질문은 더 어려운 질문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다른 10명의 악평을 한 정탐의 이름을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이 가운데 다른 10명의 그 악평을 한 정탐의 이름을 아시는 분이 있다면 손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믿지 않는 자들은 그들의 유산을 남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들의 이름은 결코 기억되지 않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사는 것'만이 우리는 그 '믿음의 유산을 남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다음 세대에게 영적인 자산을 남겨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그 악평을 한 정탐들의 이름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해서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그것이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로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믿음이 우리를 승리'로 인도합니다.

3. 또한 세 번째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후예가 이스라엘 백성과 또한 애굽을 갈라놓은 것처럼, 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우리를 세상과 또한 '성별'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 홍해라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그림입니다. 고린도전서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 속하여 홍해에서 침례를 받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홍해'가 그 '침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홍해 바닷물 안으로 들어갔고, 그리고 거기를 통과했으며, 그리고 반대편에 다시 나오게 됩니다. 이것은 침례에서 말하고 있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장사되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로 말미암아 그 바로의 통치에서 그 애굽에서 벗어나고 완전히 구별되었듯이, 이제 십자가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거기에 연합된 우리는 사단과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것입니다. 출애굽기 14장 13절에서 모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오늘 오늘 본 애굽 사람들을 결코 다시 보지 못하리라."라고 이야기합니다. 마찬가지로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직 애굽 사람들의 죽은 시체가 해안에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구원은 결정적인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최종적인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완전히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셨을 때, 이제 우리를 영원토록 사단과 분리시킨 것입니다. 더 이상 이 사단의 통치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세상과 구별된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에서 우리에게 이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권세를 잡은 자 사단을 없이 하시며" 바로 그 사망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세상과 완전히 분리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육체적으로 세상에서 분리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또한 도덕적으로 우리는 세상에서 분리된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1장에서는 또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이 악한 세대에서 건지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에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나니, 내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에 대해서 못 박히고 또 내가 세상에 대해서 못 박혔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홍해는 애굽을 심판하신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마치 이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믿지 않는 자들을 정죄하시고 믿는 자들을 구원하신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주 쉽게 애굽에서 벗어나는 것을 애굽은 원치 않았습니다. 모세가 바로에게 나가 "이제 우리를 보내어 하나님께 예배드리게 하라."라고 말하였을 때, 바로는 단지 남자들만 갈 것을 말하였습니다. 바로는 "자녀들은 여기 두라."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그는 말하기를 "가축들은 데리고 가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또한 말하기를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라고 말합니다. 바로는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관련을 맺고 있기를 원한 것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14장에서는 동일하게 그와 같이 하기를 원해서 바로는 말과 병거를 데리고 그들을 쫓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단은 여러분과 저에게도 동일하게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전히 세상과 가까이 있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우리를 유혹하고, 또한 계속 가까이 묶어두기 위해서 그는 다른 전략을 사용합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이제 사업으로 인해서 바쁘고, 또 돈을 추구하게 만들고, 어떤 사람들은 정치적인 권력을 위해서 바쁘게 만듭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스포츠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여러 가지 공부를 하는 데 몰두하게 만듭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어떤 오락 연애나 또한 패션과 같은 것을 추구하게 만듭니다. 어떤 면에 있어서는, 또는 어떤 한도 안에서는, 그러한 것들이 해롭지가 않은 것이고 또 우리 삶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 사단은 그러한 것들을 이용해서 그러한 것이 우리 마음을 사로잡게 만들고, 우리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흐트러지게 만들고, 이제 우리가 믿음으로 살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그와 같은 세상에 다 쏟아놓는다면, 어떤 일이 있는지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참 이 세상이라는 것은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거기에 마음을 쏟기 시작한다면, 세상은 여러분의 마음을 다 흡입하고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그 영적인 에너지를 그가 다 소진해버리도록, 하나님께 대한 합당한 찬송을 다 잃어버리도록, 세상은 다 빨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슈오옵-!" (강성찬 형제님 : 영어로는 이렇게 소리를 내기가 좋은데요. 한국에서는 어떻게 그 소리를 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홍해에서 그 애굽 모든 백성들을 물에 수장시키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완전히 분리시키시고, 그로 인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뭘 원하시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성경에서는 애굽의 말과 병거에 대해서 여러 번 강조해서 언급이 됩니다. 그래서 신명기 17장에서 왕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이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말을 많이 두지 말며, 그리고 그 말을 얻기 위해서 결코 애굽으로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열왕기상 10장에서 솔로몬이 무엇을 하였습니까? 그는 애굽에서 많은 말들을 가져오게 됩니다. 또 하나는 열왕기상 11장에서 그는 또한 무엇을 하였습니까? 그는 많은 이방 여인들을 사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중에 바로의 딸도 있었습니다. 그는 애굽으로 다시 돌아간 것이고, 그의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어야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기 위하여' 그분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사람들은 항상 두 가지 방향, 이 방향 아니면 또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한 가지는 이제 애굽으로부터 밖으로 출애굽 하는 방향이고, 그래서 하나님께로 가는 방향이고, 또 다른 한 방향은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는 방향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이것을 생각해 봐야 됩니다. '내가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은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인가? 아니면 하나님께로 멀어지고 있는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고 있는 방향인가?' 하나님께서는 이 출애굽기에서 그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오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단지 나오는 것은 사실 그들의 여정에서 쉬운 부분이었습니다. 그 출애굽기 1장부터 14장은 그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의 애굽에서 나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25장이나 되는 그 많은 장이, 그 이후에 또한 모세 오경에 다른 세 권의 책이, 모두 그 이후에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는, 하나님의 임재에 더 가까이 가는 면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는 것은 쉬운 부분이었습니다. 제가 이제 쉽다고 해서 그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구원받고 나서 그 이후에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고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주요 목적이고 또한 더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참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는 것보다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속에서 그 애굽을 빼내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출애굽기 16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불평하였습니다. "그 애굽에서는 얼마나 먹을 것이 많았는고?" 그 고기 가마에서 그들이 배부르게 먹었던 것을 말하였습니다. 민수기 11장에서는 애굽에서는 우리가 물고기와 또 고기와 여러 가지 것들을 먹은 것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단지 만나밖에 없다라고 불평을 합니다. 그리고 민수기 14장에서는 "우리 중에 한 인도자를 세워서 애굽으로 돌아가자."라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참 우리 인간들은 그 죄의 종 되었던 상태를 얼마나 쉽게 잊어버리는 존재입니까? 그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그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지 감사치 않는 그러한 사람들입니다. 참 이러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시기를 기도하게 됩니다.
내가 세상을 다시 갈망한다면, 그것은 동시에 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는지 그 목적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셨는지 그 목적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반은 세상에 발을 담그고, 또한 반은 하나님을 위해서 살라고 그 목적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세상에서 건지시려고 구원을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홍해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바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이제 세상에서 건져내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 식사 후에 요단 강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너는 것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또한 거기서 우리는 말씀의 또한 깊은 의미를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식사를 한 후에 가능하시면 커피나 카페인을 섭취하시고 또한 더욱 맑은 정신으로 그 말씀이 말씀하고 있는 것들을 함께 배우기를 원하게 됩니다. 예, 경청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께서 이 말씀들로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