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광야의 여정 : 여호수아 > 메튜 카인 형제님 / 26년 4월 17일
안녕하세요. 예, 제가 또 특별히 이곳 지인의 모임에 방문해서 교제케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특별히 여기 진해에서 벚꽃 축제가 있는 것을 알고 있는데요. 그것을 함께하지 못해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벚꽃보다 더 기쁜 것은 아름다운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고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가 두 번째 불렀던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른 어떤 것보다도 우리의 귀한 분'이라는 그 찬송을 참 아름답게 함께 불렀습니다.
이제 민수기 14장을 펴서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오늘과 내일 세 번에 걸친 말씀 집회가 있는데요. 우리는 이 시간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물을 건넜던 두 가지 큰 여행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그들이 '홍해'를 건넌 것이고, 또한 두 번째는 '요단강'을 건넌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광야의 여정도 함께 살펴볼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홍해의 여정을 살펴보게 될 때에 그리고 또 요단강을 건넌 여정을 살펴보게 될 때에 많은 비교하면서, 또 대조적으로 살펴볼 점이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그것은 이제 내일 이 시간에 두 집회에 걸쳐서 함께 다루어 보기로 하고요. 오늘 이 시간에는 약간 순서에 안 맞지만, '광야의 여정'을 먼저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민수기 14장 18절을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과실을 사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고 아비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민 14:18).
민수기에서 한 구절만을 선택해서 뽑기는 쉽지 않은 것이지만, 이 한 구절이 이 민수기 전체의 내용을 잘 요약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성경 말씀은 하나님으로부터 떠나서 하나님을 거역하였을 때, 그들의 받을 결과가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한 이 동일한 말씀은 우리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인자가 많으시고 긍휼이 풍성하신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두 가지가 민수기 기록 가운데 계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적으로 원망하고 하나님께 거역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징계하심과 동시에 또한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고 계십니다. 참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의 여정을 살펴보면 그들의 불순종함이, 그들의 불신이 그들의 특징이 되어짐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계속 신실하게 그들을 다루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민수기는 두 세대에 걸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들여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이제 그 처음 세대는 그곳에 들어가는 것을 실패합니다. 하지만 두 번째 세대가 그 땅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에는 두 번에 걸친 그 이스라엘 백성의 '수를 계수'하는 것이 나옵니다. 이 책의 앞부분에 계수하는 것이 나오고, 그리고 두 번째 세대인 그들을 뒷부분에 계수하는 것이 나옵니다.
우리는 민수기에 대해서 이렇게 대략적인 개요를 먼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이제 이 시작 부분에 이미 그들은 시내산에서 진을 치고 있는 모습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1. 그래서 1장부터 10장까지는 이제 그들의 '여정을 위한 준비 과정'이 나옵니다. 그들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이제 시내산을 떠날 준비를 하게 됩니다. 2. 그리고 10장부터 12장까지는 시내산을 떠나 '가데스로 가는 여정'입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에 그들의 모습은 불평하는 것이었습니다. 3. 그리고 13장부터 19장까지는 그들의 '방황하는 여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의 특징은 하나님께 거역하는 것이었고,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의롭게 다루시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잠시 후에 이 부분을 읽어볼 텐데요.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땅에 들어가는 것을 거절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가운데 고라의 반역도 일어나게 됩니다. 4. 그리고 20장부터 21장까지는 '모압 평지를 여행'하는 것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에 그들의 특징은 불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슬프게도 이 기간 동안 모세는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무나 그들의 불신에 화가 나서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5. 그리고 33장부터 36장까지는 '모압 평지의 그들의 여정'이 나오는데요. 그리고 여기서 이제 발람의 저주가 여기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두 번째 그들의 수를 계수하는 것이 나옵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몇 개의 승리를 또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발람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축복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이제 말을 하는 나귀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는데요. 그건 아주 우리들이 좋아하는 내용들입니다. 그리고 발람은 또한 그리스도에 대한 아주 중요한 예언을 하게 됩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홀'이요, 그리고 '야곱의 별'이라고 그분에 대해서 말하게 됩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예언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다룬 그 발람의 예언을 또한 함께 살펴볼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21장에서는 놋뱀 이야기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가운데 모세는 목자의 마음을 가지고 백성들을 중보하는 것이 나옵니다. 참 발람의 그러한 축복은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원망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축복하시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참 이 대적은 하나님의 백성의 그 신분을 결코 건드릴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그 장면은 민수기 전체를 요약해 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백성들은 계속해서 하나님께 불평하는 백성들이었지만 이제 그 위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축복하는 하나님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그 불순종과 하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신실하시고, 또한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라고 해서, 또한 하나님께서 공의롭게 심판하신다는 그 속성이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하나님께 대하여 거역하고 불순종하였을 때 그들은 그 결과를 당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성경에서는 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한 그 광야의 여정을 자주 언급하면서 그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말하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경고의 의미로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에스겔서 20장은 그것에 대한 아주 좋은 예입니다. 그리고 또한 시편도 이와 같은 예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95장, 그리고 106편, 여러 편에 걸친 그런 예를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특별히 광야에 있었던 일을 언급하는 시편들이 그 시편이 다섯권으로 되어 있는데 그 다섯권을 모세 오경과 순서를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민수기에 해당하는 그 시편에 해당하는 것들이 '광야의 일'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형제님이 설명하시려고 했습니다. 이 시편은 다섯 책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모세 오경과 대응에서 볼 수 있는데요. 이 민수기에 해당하는 곳이 그 네 번째 책입니다. 그 민수기에 해당하는 그 시편 책은 사람들의 그 연약함, 그 사람들의 신실하지 못함, 이제 그러한 것들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신약 성경도 여러 번에 걸쳐서 이 광야를 언급하면서 사람들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히브리서 4장과 또한 10장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신실하신 분입니다. 하지만 그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사람들에게는 분명한 합당한 결과가 따른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에게 계속해서 충성되게 행했던 그 결과로 상이 주어진다는 것도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수아와 갈렙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민수기 13장 말씀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탐지하게 하되 그 종족의 각 지파 중에서 족장 된 자 한 사람씩 보내라 모세가 여호와의 명을 좇아 바란 광야에서 그들을 보내었으니 그들은 다 이스라엘 자손의 두령 된 사람이라"(민 13:1-3).
그리고 이제 각 지파별로 어떤 사람이 정탐으로 갔는지를 그 이름을 말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6절에 "유다 지파에서는 여분네의 아들 갈렙"입니다. 그리고 8절에 "에브라임 지파에서는 눈의 아들 호세아요" 16절, "이는 모세가 땅을 탐지하러 보낸 자들의 이름이라. 모세가 눈의 아들 호세아를 여호수아라 칭하였더라." 그리고 14장 1절부터 10절까지 읽도록 하겠습니다.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그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하는 동시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민 14:1-10).
그리고 우리가 읽지 않았습니다마는, 13장 후반부에 이제 그 보낸 정탐들이 땅을 탐지하고 돌아와서 그중에 10명의 정탐은 그 땅에 대해서 악평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로 인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마음이 낙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4장 26절부터 30절까지 읽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민 14:26-30).
그리고 36절부터 38절을 읽겠습니다.
"모세의 보냄을 받고 땅을 탐지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여 온 회중으로 모세를 원망케 한 사람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 그 땅을 탐지하러 갔던 사람들 중에 오직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생존하니라"(민 14:36-38).
제가 한국에서는 이것을 어떻게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영어권 사람들이 가장 하기 어려운 말 중에 그 한 단어, 세 단어가 "내가 틀렸다."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제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아주 쉽게 그 말을 합니다. "네가 틀렸다." 이것은 아주 즐겁게 사람들이 쉽게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봐봐, 내가 말했잖아. 내가 너한테 그렇게 말했잖아."라고 합니다. 여기서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제 그러한 자세를 그들이 취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 다른 10명의 정탐들은 이제 재앙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스라엘 나라 전체가 38년을 더 광야에서 방황하도록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0세 이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죽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갈렙은 "거봐, 내가 말했잖아." 이렇게 이러한 태도로 그들 앞에서 말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에게 있어서 결코 그러한 자세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여호수아는 이 광야에 통과하는 기간을 '하나님의 교훈을 배우는 기간'으로 삼게 됩니다.
여러분과 저도 우리의 그리스도인의 삶 가운데서 이와 같이 광야의 길을 걸어가야 될 때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인생의 그 여정들이 이스라엘의 여정의 모습에 많이 담겨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있었던 모습도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어떤 모습과 닮아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비록 이 세상에 속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 세상 가운데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한 보배로운 그 경험을, 참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누리는 축복을, 우리도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그 복들을 누림으로써 동일하게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한 우리의 삶도 어떤 면에 있어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광야에 여정 한 것과 닮아 있는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애굽과 광야와 그리고 가나안 땅을 이렇게 시간 순으로 경험하였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그 세 가지 측면을 모두 동시에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아주 어려운 시간들을 통과하게 될 때, 우리는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함께 불평하고 원망하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겪었던 것처럼, 우리 주위에 있는 형제 자매들이 이제 믿음에서 떠나서 이제 영적으로 피폐해져 가는 것을 또한 보게 됩니다. 우리는 때때로 영적으로 아주 피곤하고, 지치고, 낙심하게 되는 광야의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일부분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광야의 경험에서 배우는 교훈을 놓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광야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만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13장에서 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또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이 광야에서 아주 귀한 교훈들을 배운 것처럼 우리도 광야의 경험에서 그 교훈을 배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밤에는 그와 같은 '여호수아'에 대해서 집중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또한 그가 배웠던 '세 가지 교훈'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13장과 14장의 초반부에 보면,
1. 첫 번째 교훈은 다른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편을 취하지 않고 떠난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편에 있어야 된다'는 것을 첫 번째 교훈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 많은 도전 중에 하나는 우리가 많은 사람들의 편에, 그냥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는 쪽에 서기 쉽게 그런 성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역사적으로 일어난 일을 살펴볼 때도 여기 12명의 정탐이 나갔습니다. 저희 주일학교에는 이런 찬송가가 있습니다. 그 가사는 우리가 그 멜로디는 없어서 제가 부르지는 못하겠습니다마는, '12명의 정탐이 나갔는데 10명은 악평을 했고, 2명이 좋은 평가를 했다.'는 내용입니다. 단지 그 10명이 60만에 넘는 그 백성들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님의 편에 선 더 적은 수의, 소수의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그 광야의 삶과 같은 이유 중에 하나는 이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반대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데 실패한, 하나님께 대하여 거절하는 이 가운데 우리가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열매를 풍성하게 맺을 수 있는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이제 황무지로 바꿔버리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겪는 그 어려움들이 단지 외부의 그 악함과 외부의 불순종 때문만은 아닙니다. 분명 우리 안에 있는 악함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고 그분을 따르고자 할 때도, 우리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반대하는 길로 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가운데 많은 어려움과 낙심을 겪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지점이 우리에게 아주 특별한 기회가 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 순간에 그 주위에 그 어두운 많은 다수의 붙여가지고 따라가는, 그렇게 쉬운 결정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어두운 가운데 참 작은 불빛이 아주 분명한 빛을 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도시에 많은 불빛에 오염되지 않았을 때 우리는 그 작은 별빛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주위의 세상이, 이 주위의 문화가 모두 어두워 있을 때, 여러분은 그 가운데 분명하게 하나님을 위해서 빛을 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에스더 안 킴'이라는 분이 한국에서 1900년 초반부에 태어난 분이 있습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이제 그분은 일제 시대에 태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그 일제의 억압 가운데 사셨던 분입니다. 그리고 그때 당시 그 20세기 초반에 이 한국에 복음이 활발하게 전해지던 시기였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때 당시에 일제는 그런 믿음을 허락하지 않고, 이제 신사 참배를 많은 한국인들에게 강요하였습니다. 그 고대 일본 황제에 대해서 그 앞에 엎드려 절하라는 강제로 명령을 내렸습니다. 만약 그것을 거절한다면 여러분은 감옥에 들어가거나 이제 고문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에스더라는 분의 어머니는 그리스도인이었고, 그 딸이 어렸을 때부터 복음 말씀을 듣고 그리고 구원받도록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어른이 되었을 때 그분은 그리스도인 학교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어느 한 날, 그 일본 군병들이 그 학교에 들어와서 이제 선생님과 모든 학생들을 줄세워서 신사로 데려가서 그 앞에 절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리고 만약 "네가 이것을 절하는 것을 거절한다면 이제 너희들은 심한 고문을 당할 거야."라고 엄포를 하였습니다. 이제 그 에스더 자매님은 어떻게 해야 되나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 신사를 향해 걸어가면서 그분의 마음속에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벤느고의 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그 신사로 가는 길에 이렇게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 신사에 가서 거기에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는 이렇게 큰 소리로 외칠 것이다. "참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위해서 내가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이제 그 일본 군사들은 이제 그 학생들과 선생님에게 이 거짓 신 앞에 절하라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때 그 앞에 모여 있는 많은 군중들은 다 엎드려서 절을 하였는데 오직 한 사람만 서 있었습니다. 그분이 바로 이 에스더 였습니다. 그 에스더 자매님이 그 앞에 둔 고문을 생각하게 될 때에, 그분은 우리가 앞에 불렀던 그 찬송가의 두 번째 가사를 생각하면서 그것을 이기고 있었습니다. '내주는 강한 성이요' 384장의 두 번째 가사는 이렇게 됩니다. '내 힘만 의지할 때 패할 수밖에 없도다. 힘 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하여 싸우네. 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 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우리 한국어 찬송가에는 '이 강한 장수'라고 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였는데요. 영어 성경에서는 '이 합당하신 분이 우리 편에 서 있다.' 이런 가사로 돼 있습니다. 우리 편에 서 계신 분이 그 '이기실 자다.'라고 가사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에스더 자매님은 그 사로잡히는 것에서 면하였고 이제 기차를 타고 밤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 깜깜한 밤에 떠 있는 그 별을 보면서 생각하였습니다. '참된 믿음이라는 것은 저 별과 같구나.' 이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참된 믿음이라는 것은 그 깜깜한 어둠 가운데 있을수록 더 밝게 빛이 나는구나. 참 이와 같은 반응을 하였을 때, 이런 어려움 가운데 이런 반응을 나타냈을 때,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기쁨을 얻으시겠습니까? 참 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이 어두운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을 향하여 그 순한 순이 나와 있는 그 모습을 볼 때에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참으로 바로 이 광야 같은 세상에 그와 같이 서 계셨던 한 분이 계십니다. 참으로 이사야서 53장이 그것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마른 땅에 난 순과 같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연한 순은 밟히고 이제 사람들에 의해서 핍박을 받았지만 결국에는 그 순에서 아름다운 놀라운 승리가 나온 것입니다. 참 다른 모든 사람들이 전부 반대쪽에 서 있을 때, 이제 하나님 편에 서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기쁨이 되는 것입니까?
여기 민수기 14장에서는 60만에 그 이상의 사람들이 반대하는 쪽에 서 있고, 이제 모세와 아론과 그들의 아들들과 이제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하나님 편에 서 있습니다. 이 민수기 14장을 다시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서는 그 얼마나 다수가 반대쪽에 서 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14장 1절에,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그리고 2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그 모든 온 회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5절에,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그리고 10절에,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 동시에" 참으로 나 말고 다른 모든 사람들이 나와 반대로 믿고 있는데, 그것을 앞에 두고 서 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바로 그 앞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이 이 진리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준비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그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참 하나님의 능력과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된 그 축복이 얼마나 사실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진리는, 이 진실은 항상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것입니다. 참으로 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에서 누리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바로 이 '진리'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진리를 두려워하고, 참 이 약속의 땅에 그 놀라운 것들을 두려워하고, 오히려 거짓된 광야에 머무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주 열매 맺는 좋은 땅을 주시길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 만족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그 직분이 이 온 세계를 동산처럼 그 열매 맺는 풍성한 곳으로 만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반대로, 거꾸로 이 세상을 황무지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와 같은 광야에 시험을 받으러 들어가셨을 때 결코 사단에게 절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8장에서 그로부터 수년 후에 우리 주님께서는 이렇게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진리를 말한 자를 너희가 죽이려 하는도다." 이 세상은 지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동일한 그러한 태도로 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진리를 싫어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말하는 자를 대적해서 서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 광야에서, 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진리를 가지고 서 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그러한 편을 택할 때 이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참 어떤 사람이 이 주장을 하는데 그 수가 많다고 그 주장이 맞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항상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말하고 있는가가 아니고 '하나님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는가?' 이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 여자라 할지라도, 그가 하나님 편에 있다면 그쪽이 다수가 되는 것입니다. 참 오늘날 이 시대는 그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 그 하나님의 지혜와 의로우심을 다수가 대적하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민수기 14장에서는 바로 그러한 다수가 얼마나 쉽게 잘못된 선택을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직 두 사람만이 올바른 편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여기 60만이 넘 넘는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고 있지만, 이제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과 함께, 이 편에, 오른편에, 하나님과 함께 있기를 택한 것입니다.
얼마 전에 참 저희에게 많은 큰 도움이 됐던 한 신실한 가정이 아주 끔찍하고 어려운 그런 고난을 겪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어느 날 그 가정의 어머니가 저에게 전화를 걸어서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그분에게 때때로 하고, 또 했어야 되는 일인데 또 그때는 그분이 저한테 안부를 물으셨습니다. 참 그분이 하신 말씀 중에 여러 가지 것들이 제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이 있는데요. 그중에 하나가 이러한 말씀이었습니다. "메튜 형제님, 그 인생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참 당신 앞에 어떤 시험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하십니다. 오히려 당신이 그것을 알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먼저 행동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여호수아가 겪었던 것과 같은 경험입니다. 다른 백성들은 모두 그 악평을 듣고 두려워하고 있는데, 이제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하면서 그는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참 그것에 대한 보상은 늦게 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라도 우리는 하나님 편에 있는 것이 좋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의 경우에는 좀 더 빠르게 그 상급을 받게 됩니다. 10절에 보면,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료하는 동시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참 이 장면을 우리가 생각해 볼 때 참 감사가 되는 면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제 돌을 들고 여호수아와 갈렙을 해치려고 달려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이제 여호수아와 갈렙이 보호받는 것입니다. 참 이것은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얼마나 큰 격려가 됐겠습니까? 이제 그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죽이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시고, 영광을 보이시고, 이제 그들은 안전하게 보호를 받는 것입니다. 이제 이후로도 여호수아는 계속해서 이러한 반대를 그의 생애 가운데서 받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찾아보면 여호수아는 그러한 도전에도, 어떠한 경우도, 단 1센치라도 하나님의 편에서 밖으로 벗어나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치 요셉과 다니엘의 생애처럼 그 여호수아에 대한 기록에서는 그가 어떠한 결함이 있는 것이 기록되지 않은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의 그 같은 이름을 가지신 그 '예수'라는 분의 여호수아는 아름다운 그림으로써 그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이제 그 광야에 여정의 서두에서 여호수아는 아주 귀한 교훈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것을 살펴보았고 이제 시간을 좀 지나가서 그 여정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가 배우는 교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민수기 27장을 살펴보도록 할 텐데요. 여기서는 우리가 '불순종'이 그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참 하나님을 순종한다는 것은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지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것은 그것도 역시 더 많은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것입니다. 27장 12절부터 23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이 부분에서는 모세가 하나님에 대하여 올바르게 나타나지 못했을 때, 이제 그가 또 책망을 받고 그러한 사건이 있은 후에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아바림산에 올라가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을 바라보라 본 후에는 네 형 아론의 돌아간것 같이 너도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이는 신 광야에서 회중이 분쟁할제 너희가 내 명을 거역하고 그 물 가에서 나의 거룩함을 그들의 목전에 나타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이 물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이니라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와 가로되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원컨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으로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신에 감동된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그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들의 목전에서 그에게 위탁하여 네 존귀를 그에게 돌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 그는 제사장 엘르아살 앞에 설 것이요 엘르아살은 그를 위하여 우림의 판결법으로 여호와 앞에 물을 것이며 그와 온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은 엘르아살의 말을 좇아 나가며 들어올 것이니라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하여 여호수아를 데려다가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에게 안수하여 위탁하되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하였더라"(민 27:12-23).
이 부분에서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로 지명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모세가 그와 같은 후계자를 이제 세워야 돼야 될 필요가 있게 된 것이, 그가 20장에서 가데스에서 그가 하나님을 잘못 나타낸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 '반석에게 명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도 물론 말했습니다. 하지만 모세가 말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하였고, 반석에게는 지팡이로 때렸습니다. 참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을 모세는 그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얼마나 거역하는 백성인지 그들을 비난하였습니다. 이제 모세는 하나님에 대해서 백성들에게 잘못 나타냈고, 그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그 '반석을 두 번 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반석은 그 여정의 초반부에서 이미 한 번 치임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고난을 한 번만 받으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사역은 온전해서 두 번 받으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또한 여기서 모세는 그분의 사역을 잘못 나타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을 잘못 나타낸 결과로, 이제 모세는 그를 대신하는 후계자를 새워야 될 필요가 있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는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는 그 인도자의 아주 훌륭한 본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외모로 취하지 않는 분입니다. 그가 얼마나 뛰어난 사람이든지 간에, 이제 그가 행한 행동에 대해서 그 결과를 그는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참 제 인생의 어떤 부분에서 이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서 그 모세와 같이 제가 아직 그 엄중한 명령을 받고 그것을 잘못 실행한 그런 기회는 없었습니다. 참 저의 그 영적인 경험이 아직 모세와 같이 아주 중요한 지점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야 되는 그러한 단계까지는 아직 경험해 보지는 못했습니다. 여호수아의 경우에 있어서는 이제 그 광야의 긴 여정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그 불순종의 결과로 죽는 것을 보았습니다. 히브리서 4장에서는 이것을 아주 명시적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그들이 불순종하였기 때문이다." 여호수아는 참 그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수많은 사람들의 경우를 보고 그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는 백성들이 아니라 이제 인도자가 그러한 일을 겪는 것을 여호수아는 보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에게 있어서 이것은 얼마나 중요한 그런 교훈이 되겠습니까? 여호수아 자신이 이제 그 인도자의 자리로, 백성들을 인도하는 자리로 올라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도자가 된다는 것이 그가 다른 하나님의 명령들 위에 있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만 어떤 특별히 면제되고, 제외되는 그런 자리에 올라간다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수아에게 있어서 아마도 40살이 많았을 그 모세로부터, 그는 그 선배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여호수아는 애굽에서 자라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요셉 가문이기 때문에, 그는 애굽 사람과 결혼한 그 애굽 사람의 피가 그에게도 흐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모세가 그 애굽의 죄악된 삶과 그 모든 쾌락을 등을 지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하기를 선택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앞에 담대히 무서워하지 않고 선 것을 여호수아는 또한 보았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인도 하에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백성들, 이 나라 앞에 서서 그 광야를 인도한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모세가 행한 그 놀라운 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하나님을 백성들 앞에 잘못 나타내도 된다는 그 허가를 주는 것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모세를 존중하시고, 그의 장사를 굉장히 특별한 방식으로 치러주십니다. 하지만 그는 그 요단강의 동편에 묻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의 불순종은 그로 하여금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그 비싼 대가를 치르게 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불순종은 그걸로 인해서 그의 구원을 상실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히 그 불순종은 그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상급과 기쁨을 앗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히브리서 12장에서 이것에 대해서 우리 그리스도께서 분명한 본을 보여주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그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에서도 동일하게 우리 주님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지극히 높이셨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순종'에는 분명한 '상급'과 '기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그것을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호수아를 보게 될 때 여호수아가 즉각적으로 그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율법의 사람'입니다. 그 율법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주고 있는 것은 그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여 낸 그 인도자의 이름이 '여호수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호수아에 대한 신약의 이름이 예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주의 이름인 것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 '여호와의 구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그분의 이름의 뜻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기 백성을 그의 죄에서 구원하실 자라." 그래서 여호수아는 이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세와 그 율법은 우리를 그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하늘의 여호수아께서 바로 그 하늘의 모든 축복으로 우리를 인도해 드리시는 것입니다.
3. 우리가 이 광야의 처음 부분에서 배우는 교훈을 말씀드렸고, 이 광야의 마지막 부분에서 배우는 교훈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종합적으로 이와 같은 교훈을 한 가지를 더 말씀드리자면, '인내하고 견디는 것'이 그 여정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 수년 전에 40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40대가 되면, 이제 여러 가지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제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이 저는 "저 사람은 아직 어린 사람이야." 이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라고 그런 나이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어린 사람들은 이제 제가 40대가 되었을 때 '40세가 되면 뭐를 더 특별히 할 수 있고 알겠지.'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지만 여전히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인생의 여정을 통과하게 될 때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이것입니다. 참 여전히 내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그 에너지와 건강과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사실 어떤 면에 있어서 40세라는 그 인생의 지점에서는 쉬운 것은 아니지만, 또한 저를 더욱 자유롭게 섬길 수 있게 하는 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때에 여호수아는 그의 40대부터 80세가 될 때까지 그는 광야를 여정을 하게 됩니다. 그러한 기간 가운데 여호수아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그는 그의 40대부터 80세가 될 때까지, 계속해서 그 긴 시간 동안 광야를 방황하는 가운데에 이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내 말을 들었으면, 그들이 내 말을 들었으면, 우리는 지금 그 약속의 땅에 있을 텐데.' 그런데 그와 같은 38년간의 광야에 기간 동안 여호수아를 살펴보면, 여호수아가 그런 생각을 한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여호수아를 보고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유, 참 불쌍한 사람이다. 얼마나 그의 인생을 허비하게 되었는가?'
하지만 그것은 결코 허비되는 기간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준비하는 기간'이었습니다. 마치 모세가 훈련을 받은 것처럼, 이제 그가 80세가 되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들여보내도록 하나님께서는 그를 준비시키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는 광야의 시간을 낭비한 것이 아니라, 그 기간 동안 모세를 통해 배웠고, 하나님께로 배웠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가운데 우리의 믿음의 여정에서 '오래 참는 것', '인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웠던 것입니다.
우리는 매우 근시안적으로 우리가 순종한 것에 대해서 금방 결과가 눈에 보이도록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것은 그 똑같은 방향으로 계속해서, 그 옳은 방향으로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인내하면서 참으면서 가야 되는 그러한 길인 것입니다. 참으로 이 긴 광야의 여정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들을 배우고,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 길을 참으면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참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서도 나에게 있어서 광야와 같았던 그 시간들, 그때 당시에는 이것은 완전히 망한 시간이야라고 하면서 걸어갔던 그 시간들이, 이제 조금 시간이 지난 다음에 그것을 돌아보면 그것이 나의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필요했던 시간이고, 내 인격을 주님을 닮아가게 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었던가를 알게 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제가 앞에 말씀드렸던 '에스더 안 김'이라는 분에 대해서 다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분은 또한 체포되고 감옥에 갇혀서 아주 어려운 시간을 겪어야 될 때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그분에게 있어서 광야의 기간과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그 시간을 단지 허비하는 광야의 시간으로 버려지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그 시간을 마치 사도행전 28장에 나오는 사도 바울과 같이 감옥에서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꽤 몇 명의 사람들이 그분께 나와서 복음을 듣고, 심지어는 간수들도 그분에게 나와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께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이 것은 또한 어두운 밤에, 그 광야와 같은 어두운 세상에서, 그 작은 별빛이 아주 밝게 빛난다는 좋은 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 황무지와 같은 광야에서, 그 홀로 있는 시간 가운데서, 하나님을 위하여 그 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참 이 인내와 오래 참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여정 가운데서 이것은 가장 귀한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그 광야의 여정에서, 우리가 이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때 당시에는 아무 의미 없이 보이는 그러한 시간이라 할지라도, 그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교훈을 가르쳐 주시고 아주 귀중한 시간으로 만드실 것입니다. 야고보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 시험이 인내를 만들어낸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그 시험이 여러분 안에서 온전히 역사에서, 참으로 그것이 여러분에게 인내를 만들어내고, 참으로 어떠한 것도 부족함이 없게 하도록 하시기를 바라게 됩니다.
여러분께서 경청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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