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언 : 주님의 부활 / 25년 12월 28일 일요일(요약) / 장승훈 형제님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찌기 해 돋은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눈을 들어본즉 돌이 벌써 굴려졌으니 그 돌이 심히 크더라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여자들이 심히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막16:1-8, 개역한글)
주님께서는 저희들의 범죄함을 인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죽으신지 사흘만에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16장 1절에 보는대로 안식일 다음날에 여인들이 주님의 무덤으로 갑니다. 여인들이 주님에 대한 열심이나 애정을 보게 될 때에 주님에 대한 열심은 남녀의 구분이 없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저희들이 주일아침 예배를 드릴 때에 형제님들이 입술을 열어서 기도를 드리지만요. 자매님들이 입술을 열어서 기도를 드리시지는 않지만 자매님들도 형제님들만큼 주님을 향한 애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갔을 때에 그들의 고민은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문에서 돌문을 옮겨 주리요?" 였습니다. 누군가 돌문을 열어줘야 주님의 시신에 염을 할텐데 그 방법이 없어 고민이었습니다. 그런데 4절에 보니 이미 돌문이 열려져 있었습니다. 뭔가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돌은 심히 컸습니다. 주님의 빈 무덤문은 매우 컸고, 그 빈 무덤을 누구나가 볼만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막으로 들어가는 그 문은 누구나가 들어올수 있을만큼 큽니다. 누구나가 듣고 보고 믿을수 있도록 큰 것입니다.
그리고 들어가서 보니까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를 지성소 안에 있는 스은좌의 두 그룹을 빗대어 교제해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이 청년은 놀라지 말라고 하고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여기 계시지 않으며 주님께서 누워 계셨던 자리를 보입니다.
주님께서 죽으셨지만 다시 부활하신 사건에 대해서 여러가지를 증거로 제시합니다. 첫 번째는 빈 무덤이고, 두번째는 이 청년의 증거입니다.
시몬 베드로도 따라 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개켜 있더라 (요20:6-7, 개역한글)
세번째는 주님을 감쌌던 천이 그대로 놓여 있는 것을 볼 때에 주님의 부활하심을 알수 있습니다. 마치 곤충이 탈피를 한것과 같은 모습인 것입니다. 또 네번째로 주님께서 아침과 점심과 저녁에 마리아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열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1. 부활하심을 통해서 저희를 의롭다 하셨습니다. 2. 부활하심으로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 되셨습니다. 물론 주님은 원래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부활하심으로 인정되셨습니다.
그리고 저희를 영접하기 위해서 공중에서 오실것입니다. 살아남은 자들은 죽음을 보지 않고 주님앞에 가게 될 것이고, 자는 자들은 살아남은 자들보다 먼저 변화되어 주님 앞에 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자는 자들의 부활이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예상됩니다.
지금까지 단 한사람도 여인의 후손으로 난 자들 가운데 죽었다가 부활해서 여전히 살아있는 자들이 없습니다. 죽으셨지만 부활하시고 여전히 살아계신 분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그것을 이 마가복음 16장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죽을지라도 다시 살아날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죽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를 씁니다. 그러나 저희가 죽음 이후에 주님과 영원히 함께 할 것을 소망하며 산다면 그것은 귀한 것이 될 것입니다. 저도 나이를 먹다보니 주변 분들의 죽음을 많이 보게 됩니다. 사람들이 점점 죽음을 향해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 죽음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만날 날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저희들의 믿음이 실제적인 믿음이 되는 과정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들의 믿음은 죽음에 가까울수록 더 강해지고 분명해짐을 느낍니다. 이 믿음은 참되고 살아있는 소망입니다.
올해가 지나가고 새해가 올 것인데요. 이것은 세상이 정해놓은 경계에 불과합니다. 저희는 계속해서 이 세상을 주님의 인도를 따라 갈 것입니다. 그와같이 계속해 주님께서 인도해주시기를 바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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