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언 : 마르다야 마르다야 / 26년 1월 11일 일요일(요약) / 전의석 형제님
저희가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촌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눅10:38-42, 개역한글)
마리아와 마르다에 대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38절은 주님께서 많은 이적과 행적 가운데서 베다니를 지나가실때에 마르다의 집에 잠시 머무셨습니다. 마르다는 자기 집으로 영접했습니다.
마르다는 좋은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영접하고 접대하고 대접해 드렸을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을 섬기는데 필요하고 유익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도 주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이러한 영접과 접대가 필요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을 기회가 있는대로 해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마르다가 만일 주님을 영접하지 않았다면 주님으로부터 배우는 기회를 상실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특별히 주님께서 마르다를 격려하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마리아라는 그의 사랑하는 동생이 있고, 또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나사로도 함께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제자들도 함께 했을 것입니다. 지금도 10명 이상의 사람을 집에 접대하면 많은 수고가 필요합니다. 지금에는 배달음식이라도 있지만 그때는 그런게 없었습니다. 준비하는 일이 많으니 마르다의 마음이 분주하고 염려와 근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더 중요한 것을 놓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르다가 주님을 영접하지 않았다면, 마리아가 주님의 발 앞에서 주님의 말씀을 들을수 있는 기회도 없었을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다른 사람을 보게 되고, 다른 사람이 주님의 쓰임을 받는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과 나를 비교합니다. 나는 왜 이러한 형편일까? 나는 왜 그러한 기회를 갖지 못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주님은 각각을 기억하시고 각각을 성장시키십니다.
나사로 또한 그의 말이 조금도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그의 몸으로 주님의 능력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마르다에 대해서 교제하고자 합니다.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준비하는 일이 많다는 것은 사실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준비하는 말이 많다는 것은 그 베푸는 것이 조금 지체된다는 것 뿐입니다. 함께있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주님의 말씀 교제를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체하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설사 그 준비하는 것에 큰 문제가 생겨서 음식을 먹지 못하는 상황이 생긴다 할지라도 그것은 주님 앞에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주님은 가나의 혼인잔치 때에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으며 오병이어로 오천명의 장정을 먹이셨습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을 너무나 중요하게 생각해서 실수를 하게 됩니다. 저도 또한 그런것 같습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너무 집중해서 불평과 불만을 갖게 됩니다.
마르다는 자기 동생, 마리아에 대해서 자기와 같이 생각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불평합니다. 그리고 그 부탁을 마리아에게 하지 않고 주님께 하게 됩니다. 주님께 왜 내 어려움을 알아주지 않으십니까? 하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내 생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생각과 주님께서 내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마르다에게 "마르다야 마르다야"라고 두번 부르십니다. 주님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이렇게 두번 불러 주십니다. 주님은 마르다를 강하게 질책하실수 있지만 마르다의 마음을 알고 계시기에 두번 그의 이름을 불러주심으로 격려해 주십니다. 많은 일로 염려하지 말고 가장 중요한 것만을 집중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또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의 일을 다른 사람이 도와주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묵묵히 작은일에 충성하는 청지기처럼 계속 충성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각자에게 기대하는 일이 있고, 우리 각자를 통해서 주님께서는 기대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다른 사람을 비교하고 낙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요11:5, 개역한글)
순서가 마르다고 그 다음이 동생이고, 세번째가 나사로입니다. 저같으면 마리아와 나사로와 마르다를 사랑하시더니 라고 할것 같습니다. 그런데 마르다가 먼저 나옵니다. 주님은 마리아를 사랑하셨으며, 마르다도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구절에서는 마르다가 더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저희들도 저희를 택하시고 사랑하시고 구원하신 계획이 창세전부터 되어 있음을 많이 교제를 받습니다. 주님은 영원하신 분이시기에 영원 전부터 저희를 생각하시고 저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이 슬픔을 느끼고 있을 때에 더 큰 관심을 두시고 바라보고 계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저희들의 삶 가운데서도 어려움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저희들이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에 더큰 은혜와 사랑을 베푸실 준비를 하고 계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마르다는 이러한 주님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놀라운 고백을 하기 때문입니다.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줄 내가 믿나이다 (요11:21-27, 개역한글)
이같은 어려움 가운데서 마르다는 참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부활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으면서, 주님께서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아는 가운데서 이러한 고백을 합니다. 베드로가 이러한 고백을 했을때에 주님께서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을 알게 하신 이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이심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저희들이 말씀을 이같이 아는것과 현실에서 주님께서 이러한 분이심을 깨닫는 것은 또다른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저희들의 삶 가운데서 말씀을 묵상할 때에 주님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삶 속에서 그것을 경험하고 깨닫는것은 또 다른 것이며 주님의 특별한 도우심이 필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께서 나사로가 다시 살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나사로의 무덤 앞에 가셔서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십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요11:39, 개역한글)
마르다는 놀라운 고백을 했고, 부활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돌을 옮겨놓으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에 현실적인 고백을 합니다. "돌문을 열면 썩은 냄새가 날 것입니다." 마르다도, 마리아도 부활의 때에 다시 살 것이다, 정도로만 알았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믿음을 확장시키셔서 네가 믿는 하나님의 아들은 이러한 분임을 이 사건을 통해서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큰 소리로 이 나사로를 나오게 하십니다. 마르다를 인해서 나사로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것을 물론 마르다의 공로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본래 마르다와 마리아와 나사로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마르다의 일은 이 일뿐만 아니라, 마리아를 부른 것입니다.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형제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요11:28, 개역한글)
주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이같은 놀라운 역사 가운데서 마르다가 이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같이 믿음의 놀라운 사람의 뒤에는 마르다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베드로의 놀라운 사람 뒤에는 그를 부른 그의 형, 안드레가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다 마리아만 있는것이 아니고, 다 베드로만 있는것이 아니고, 다 사도바울만 있는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 자매님들에게도 연결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모임에서 형제님들이 두드러지게 일하십니다. 그러나 그 뒤에는 보이지 않는 자매님들의 섬김이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번 한주도 주님을 알아가고 주님께 합당한 경배와 예배를 돌려드리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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