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언 : 옳고 의로운 판결 > 강성찬 형제님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치 못하겠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고전 6:2-4).
여기서는 이제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뿐만 아니라 천사를 판단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볼 때에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아주 중요한 것을 맡기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이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옳은 일인지, 아니면 잘못된 일인지, 그 판단을 하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이 고린도전서 말씀을 보면 판단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게 언급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시고 성도들이 이것을 잘 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고린도전서의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이번에 히긴스 형제님 방문하였을 때 서울에서는 이 고린도전서를 함께 공부를 하였습니다. 형제님이 이 판단과 관련돼서 고린도전서를 이렇게 요약을 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에 보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사도 바울을 판단하는 게 나옵니다. 그건 판단하지 말아야 되는 것인데, 그 성도들이 사도의 권위를 의심하고 그리고 사도 바울이 나쁜 동기로 이러한 것을 할 걸로 생각하고 그 동기를 판단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사람의 동기는 우리가 판단할 것이 아닌데, 그건 주님께서 나중에 그 모든 것을 밝히 드러내실 것인데, 그래서 사람들이 판단할 일이 아닌데 그것을 판단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4장은 판단하지 않아야 될 것을 판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5장은 음행한 자가 교회 중에 있는데 그것을 판단하지 않은 것이 나옵니다. 그것은 마땅히 판단을 했었어야 되는데 판단을 안 한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이제 관대하다고, 우리들은 이런 것에 대해서 너무나 높아서 이런 것들은 중요하게 다룰 필요가 없다라고 교만한 마음으로 판단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고 그들의 잘못은 마땅히 판단했어야 되는 것인데 판단하지 않은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 고린도 성도들이 그렇게 행했을 때 어떤 결과를 낫게 되냐면, 판단할 능력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하지 말아야 될 판단을 하고, 해야 될 판단을 안 하면, 결국에는 자기들의 판단 능력이 없어져서 이런 것을 세상에게 부탁하는, "이걸 좀 판단해 주십시요." 그 교회 가운데 송사가 일어났을 때 이제 세상에 사람들에게 누가 옳고 그른 것인지 판단해 달라고 맡겨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은 엄중하게 책망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이 이제 우리 주님과 함께 이 온 땅을 다스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이 땅을 다스릴 때에 성도들이 뭘 하냐면 심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서에 보면, 제자들이 주님과 함께 보좌에 앉아서 열두 지파를 다스린다, 다스린다라고도 번역이 되기도 하고 그 열두 진파를 심판할 것이다, 이렇게 번역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땅을 다스린다는 것은 그 다스리는 핵심은 심판하는 것입니다. 그냥 내가 제일 높은 위치에 있다 해서, 어떤 섬김을 받는 그런 위치가 아니라 그 땅을 다스릴 때에 무엇이 정말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인지, 그것을 이제 밝히 드러내는 그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심판의 능력을 우리는 이제 이 땅 가운데서 키워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교회 안에서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잘못된 것을 치리하고 판단하는 가운데에 우리는 그러한 능력을 배우는 것입니다. 참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뛰어난 그런 능력은 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이것이 맞는 것인지, 아닌지, 그것을 판단하는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 가운데서 이제 그것을 키워나가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여기 한 가지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는데 솔로몬의 예를 찾아보겠습니다. 열왕기상 3장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이 재판하면 우리는 바로 이제 솔로몬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솔로몬에 대해서 열왕기상 3장 말씀을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그가 한 그 재판 가운데에 우리는 그런 이제 하나님의 지혜를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내용을 잘 아시니까 몇 군데 말씀만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왕이 이르되 산 아들을 둘에 나눠 반은 이에게 주고 반은 저에게 주라"(왕상 3:25).
이제 아시다시피, 그 창기 두 여인이 솔로몬 앞에 재판을 하러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재판의 내용은 각각 아이가 있었는데, 한 아이가 죽고 이제 한 아이만 산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산 아이가 누구의 아인지를 밝혀달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같이 DNA 검사도 할 수 없고, 참 어려운 그런 재판입니다. 그런데 이것에 대해서 솔로몬은 먼저 그 아들을 살아남아 있는 한 아기를 그냥 둘로 나눠서 반은 이에게 주고 반은 저에게 주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 산 아들의 어미되는 계집이 그 아들을 위하여 마음이 불붙는것 같아서 왕께 아뢰어 가로되 청컨대 내 주여 산 아들을 저에게 주시고 아무쪼록 죽이지 마옵소서 하되 한 계집은 말하기를 내 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나누게 하라 하는지라"(왕상 3:26).
그 참 어머니가 아닌 그 여인은 "좋습니다. 이걸 나누십시요." 이렇게 말합니다. 그게 공평하다는 것입니다. 이게 세상이 말하는 공평입니다. 똑같이 반으로 나눠 갖자,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판단을 내리면 안 됩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는 이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이 세상은 이게 공평하다고 합니다. 그것을 옳다고 말하고 그걸 받아들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쉬운 정의입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것은 쉬운 정의입니다. 눈에 보이는 절반씩 나눠 갖는 것, 이것을 세상은 정의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그런 판단을 내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고 있는 판단은 정말 하나님의 속한 지혜, 하나님의 정의를 우리가 판단을 내리기를 바라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와 아들과의 관계, 이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배우고 있는 사람들은 그 보이지 않는 핵심을 감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있기에 그 어머니의 사랑이 뭔지를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 어머니의 사랑이 뭔지 알기 때문에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가 있습니다.
솔로몬이 이렇게 말했을 때 금방 누가 정말 어머니인지가 드러나게 됩니다. "그 아이를 죽이지 마십시요. 내가 그 아이를 얻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 아이를 살게 하십시요."라고 말하는 그 사람이 정말 어머니인 것입니다. 이 솔로몬의 말은 누가 참 어머니인지가 드러나게 하였습니다. 내가 손해 본다 할지라도 자기 아기를 살리고자 하는 그 마음이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솔로몬은 이 판결을 통해서 그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산 아들을 저 계집에게 주고 결코 죽이지 말라 저가 그 어미니라 하매"(왕상 3:27).
이와 같은 판결을 우리 그리스도인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왕의 입술에 있은즉 재판할 때에 그 입이 그릇하지 아니하리라"(잠 16:10).
우리가 어떻게 이와 같은 판단력을 키울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입술 가운데 있을 때에, 재판할 때에 그 입이 그릇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배우고 묵상하고 있을 때 우리는 합당한 판결을 내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이 판결을 우리 주님으로부터 또한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도 이제 성도님들이 잘 아시는 내용이니까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은 거기도 한 재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우리 주님께 이것을 한번 판결해 주십시오라고 한 사건을 가지고 옵니다.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을 데리고 온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 주님께 재판을 부탁하러 나온 것이지만, 잘 알다시피 이것은 그 사람들이 자기가 재판장인 양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을 오히려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서 이미 그들은 판결을 내려놓고, 이 주님에게 어려움을 끼치기 위해서 그들은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께서는 정말 이 재판장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계십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정말 어떤 것이 의로운 것이고 어떤 것이 참된 은혜인지를 분명하게 드러내십니다. 이 가짜 재판장들, 이 사람들은 벌써부터 의롭지가 않았습니다. 그 불의한 재판을 그들은 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간음 중에, 현장에서 잡혔으니까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도 있었을 텐데 이 여자만 잡아서 온 것입니다. 그 남자는 무슨 일인지 그들과 어떤 관계가 있었던지, 그냥 내버려 두고 여자만 끌고 온 것입니다. 벌써 이렇게 불의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자신들도 많은 악한 것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것보다 더 큰 하나님을 대적하는 불의함이 그들 마음속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것보다 덜한 죄를 정죄하려고 그들이 의로운 척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건 불의한 재판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의롭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은혜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은혜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가르치시니까, "아니, 그러면 이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은 어떻게 할 건데? 이런 케이스는, 이 현장에서 잡힌 이 여인 같은 경우도 당신이 놓아주시겠습니까? 당신이 말한 은혜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을 하게 되는지를 아십니까?"라고 그들은 은혜가 거짓됨을 증명하려고, 그 은혜라는 게 실체가 없는 것을 증명하려고, 그들은 이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이 재판정에서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을 분명하게 나타내십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냥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께서는 결국에 십자가에서 그 여인의 죄를 대신하여 피를 흘리심으로 정말 그 은혜가 '의로운 근거'가 있음을 나타내십니다.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우리 주님께서는 분명한 하나님의 의로움을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그 의로움과 그 은혜가 온전히 조화롭게 행해질 수 있음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이게 우리 주님의 판결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도 그와 같은 판결을 내리기를 바라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게 우리가 그 나라에서 그리고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베푸는 그런 판결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지혜를 이 땅에서부터 배우기를 바랍니다. 하지 말아야 될 판결을 하지 않고, 우리가 마땅히 해야 되는 판결을 하면서, 우리가 주님의 지혜를 배우고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이와 같은 올바른 판결을 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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