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언 :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 이레 /25년 9월 21일 일요일(요약)/ 한봉래 형제님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창22:1-3, 개역한글)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창22:7-8, 개역한글)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창22:13-14, 개역한글)
저번에는 요한복음에서 나는 무엇무엇이다라는 일곱개의 말씀을 살펴봤습니다. 이번시간부터는 구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복합적인 이름 여섯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 시간으로 "여호와 이레"를 살피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가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고, 아브라함이 이 명령을 순종합니다. 아브라함이 아침 일찍 일어나 순종하려고 가는 모습에 저희들이 굉장한 도전을 받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모습은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의 모습을 그림자적으로 보여줍니다.
여기서도 아브라함의 모습을 비쳐보면, 아브라함은 어떻게해서 이같은 명령을 수행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위해서 네가 죽어라고 하면 그것을 할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라는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 명령을 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순종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가 순종하고 믿음의 삶을 살면서 그가 영적으로 성장하면서 배운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옳다, 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신다고 했는데 부르신 이후에도 수년이 흘렀지만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라의 조언을 따라 하갈을 취했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하나님께서는 사라를 통해 아들, 이삭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것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아무리 말이 안되는 것처럼 보여도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사사기에 보면 입다가 자기 딸을 제물로 바쳤을까요. 그가 하나님께 맹세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에 집에서 제일 먼저 나온 존재를 번제로 드리겠다고 합니다. 그럼 입다는 그를 환영하러 집에서 처음으로 나온 존재가 과연 짐승이라고 생각했을까요? 당연히 사람이 아닐까요? 입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고 자기가 맹세한 그 자존심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서 딸을 번제로 드립니다. 아브라함은 이 하나님의 모순된 명령에도 기꺼이 순종하려 했습니다.
이삭이 나무를 메고 가며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묻습니다.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 있습니까?" 구약의 이삭이 이렇게 묻고 신약의 침례 요한이 대답하는 것입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그리고 이삭의 질문에 아브라함은 대답합니다. 여호와 이레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자신을 위해서 준비하실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분별이 두개로 나뉘는데요.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고 자신을 위해서 준비하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하나님이 친히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실 것이다, 입니다.
그리고 이삭을 결박하고 잡으려고 할때, 하나님께서 잡지 말라고 하고 눈을 들어보니까 양이 있어서 그 양을 번제로 드립니다. 이삭이 물은 "어린양"은 영어로 '램'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걸려있는 양은 다 자란 "수양"입니다. 그래서 어린양과 수양의 용도가 뭐가 다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린양은 번제에 쓰이고, 수양은 속건제에 쓰입니다.
여호와 이레는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공급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레라는 단어가 보다는 뜻이 있고요. 우리에게 뭐가 필요한지,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다 보고 계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필요를 공급해 주신다는 뜻도 있습니다. 여호와 이레에서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다.'라는 뜻입니다.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우리에게 내어주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죄악된 현실은 하나님과 거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거룩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상황을 보시고 우리와 함께 계시고 그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 여호와 이레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여야 하는 그 상황속에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고, 그 상황을 보고 계시고, 그리고 필요한 양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오늘 감사하는 내용에서 나왔는데요. 하나님께서 결혼식에서 포도주가 떨어졌는데 그 포도주를 주셨습니다. 또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주신 대표적인 것이 오병이어의 기적이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말하는 것은, 주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다. 그분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늘 공급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또 진전을 시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데요. 사도바울에게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도에게는 사단의 가시를 주십니다. 우리 생각에는 필요한 모든 것들을 다 주실것 같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는 고난을 주십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이 세번이나 기도했는데 이렇게 응답하셨습니다. "네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것이 여호와의 이레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는 것 중에 하나가 고난입니다. 사도 바울 그가 높아지지 않도록, 과거의 잘못이 반복되지 않도록 고난을 주셨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죄가 교만한 것입니다. 사람이 복음을 거부하는 이유가 그 마음이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아니라고 하거나, 그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다른것을 생각하거나, 입니다.
저희들이 한주를 살아가면서 다니엘의 세 친구들의 고백을 저희들의 삶에 적용할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느부갓네살이 신상을 만들고 모든 사람들에게 절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의 세 친구가 절하지 않습니다. 느부갓네살이 절하지 않으면 풀무불에 넣겠다고 위협했습니다. 그때 다니엘의 세 친구가 한 말입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용광로에서 나를 구하실 수 있습니다." 여호와 이레입니다. 나의 상황을 아시고, 나의 상황속에 함께 오셔서, 나의 필요를 채우실수 있는 분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나는 절하지 않겠습니다." 아무리 급박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우실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나는 하나님을 의뢰하겠습니다.
"피할길을 내사 능히 감당케 하시느니라" 피할길이 '여호와 이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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