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집회/덕언 말씀

덕언 : 온전케 하사(요약)

박이레 2025. 9. 21. 17:30

덕언 : 온전케 하사 / 25년 8월 17일 일요일(요약) / 강성찬 형제님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찌어다 아멘 (히13:20-21, 개역한글)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디도서 2장을 보게 될 때에 "선한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을 삼기 위하여 우리를 구속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이 두 구절 모두 저희를 놀라게 하는 구절입니다.
우리는 선한 일에 열심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선한일에 열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악한 일에 빠르고 열심하고 몰두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실 때에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을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그 선한일을 하는데 '온전케' 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선한일을 하는데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님께서 선한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셨다"고 합니다.

이 선한일에 온전케 하는것은 죄가 없는 완벽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단어는 갈라디아서 6장에 사용되었습니다. 범죄한 사람이 나오는데 그 사람을 '바로잡다'는 단어로 사용되었습니다. 범죄한 형제를 다시 제자리에 두는 것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마치 빠진 어깨뼈를 제자리에 두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온전하다'는 첫번째 뜻은 제자리에 두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 제자들은 어부이고 그물을 깁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깁다, 손상된 부분을 고치는 것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세번째는 에베소서 4장 12절에 은사를 주신 목적에 대해서 설명할때 사용되었습니다. 거기서도 온전케 하다로 사용되었는데, 성도들이 기능하다, 봉사하게 하다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단어는 제자리를 찾아주는, 고쳐주는, 그리고 기능하게 하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선한일을 할수 있도록 자리에 두고, 고치고, 기능하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망가졌을때, 우리가 있던 자리에서 벗어났을 때, 기능하지 못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폐기하고 다른 새로운 존재를 만드실수 있으셨지만 우리를 고치시고 다시 기능하게 하십니다.
이것은 우리 사람도 하지 않는 일입니다. 우리는 어떤것이 망가지면 그냥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바꿔버립니다. 그것이 더 쉽고 힘이 안드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번거롭게 우리를 고치시고 다시 기능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이것이 가능한가,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실수하고 낙심에 빠졌을 때에, 내가 뒤로 물러나 있을 때에 다시 회복되는 것이 가능한가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선한일을 하도록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그뿐만 온전케 하는, 그 선한일을 하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내용은 기도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께서 이 선한일을 이루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에서 계속해서 우리 주님의 온전하심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이 얼마나 놀라우시며 하나님의 계획의 정점이심을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히브리서 기자는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를 선한일을 하는데 온전케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대상은 '평강의 하나님'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를 양의 큰 목자로 언급합니다. 그 목자는 양을 사랑해서 그 목숨을 버리는 목자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피가 언급됩니다. 이 피는 의로운 근거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복을 베풀기에 부족함이 없는 근거를 말씀합니다. "죽은자 가운데서 이끌어내신"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의로우신 근거, 하나님의 능력이 언급됩니다. 이 세가지가 평강의 하나님을 합당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기 위해서 이 세가지가 필요합니다. 우리에 대한 사랑과, 올바른 근거가 있어야 하고,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럴때에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에게 평강을 주실수 있는 평강의 하나님이라 부를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를 모든 선한일에 온전케 하실수 있는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모든 선한일을 행할수 있게 되었을 때에 참된 평강을 누릴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만히 있다고 평강을 누리를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할때에 평강을 누릴수 있습니다.

이 온전케 하다는 단어가 히브리서의 다른 장소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것이 아니니라 (히11:3, 개역한글)

여기서 이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고 할 때에 온전케 하다는 것과 같은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히10:5, 개역한글)

여기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가 온전케 하다와 같은 단어입니다. 그래서 언듯 봐서는 굉장히 어색한 단어입니다. 세상을 만드실 떄에 창조하셨다는 단어를 쓰시면 되는데 이 온전케 하셨다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몸을 예비하셨다는 단어를 사용할 때에도 온전케 하다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 하나님의 법칙에 따라서 한치의 오차도 없이 얼마나 잘 운행되고 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또 주님의 몸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하나님의 뜻을 잘 이행하셨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에 그 수준까지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이 기도로 말미암아 힘을 얻게 됩니다. 우리를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선한 일을 행할수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평강의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이 선한일을 행해 나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