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언 :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 강성찬 형제님 / 26년 2월 15일 일요일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엘리사벳이 수태를 못하므로 저희가 무자하고 두 사람의 나이 많더라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제사장의 직무를 하나님 앞에 행할쌔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고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주의 사자가 저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천사가 일러 가로되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눅 1:5-13).
우리는 여기서 사가랴의 기도 응답을 보게 됩니다. 사가랴는 제사장이었고, 또 그는 그 제사장 직분에 대해서 아주 귀중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제사장 직분이 또한 자신의 가문에서 계속 이어지기를 원했고, 또 그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어떤 여자가 아니라 아론의 자손과 그는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는 분명히 이 제사장 직분이 순전하게 이어져 가는 것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나이가 오래되도록 자녀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가 느꼈을 여러 어려움들을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가정에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에, 그것을 기도할 때에, 하지만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 많은 어려움을 느낍니다. 그런데 우리가 더 어려움을 느낄 때는 그것이 하나님의 일과 관계된 것일 때입니다. 이것이 단지 자신의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일 때, 이 하나님의 일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되는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 많은 어려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에게 하여금 그 믿음을 흔들리게 하는 그런 작용을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복음서에 보면 제자들이 주님과 함께 바다를 배를 타고 건너가는 장면이 나온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배에서 주무시고 계셨고 그리고 그때 큰 풍랑이 일어서 매우 위험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그저 주무시고 계시고, 이제 제자들은 두려워하면서 주님을 깨우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 그들은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합니까?"라고 주님께 말하였습니다.
그 제자들이 이제 자신들이 위험에 처해 있어서 이렇게 주님을 깨운 그런 부분을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그 배에 주님이 함께 타고 있었기 때문에 또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죽게 된 것', 이게 그 제자들뿐만 아니라 주님까지도 지금 같이 이 배에서 사고를 당하는 것 아닙니까? 이러면 이 간증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가 주님을 참으로 메시아라 증거하면서 우리가 따르고 있는데 그분이 탄 배가 가라앉아버리면 그 간증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것을 왜 돌아보지 않습니까?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그와 같은 제자들의 무서움을 공감할 수 있습니다. "이 일이 이렇게 되면 안 되는데" 이렇게 되면 그 제사장직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데, 그 하나님의 일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데, 이런 어려운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제 사가라에게 천사를 보내셔서 분명하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3절에 보면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하나님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관심 없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너의 간구함을 계속 듣고 있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 이제 '간구함이 들린지라'라는 말씀이 '이제 내가 들었다'라는 내용이 아닙니다.
우리도 어떤 표현을 할 때에 예를 들어서 '어떤 노래를 들었다', 이런 말을 한다면 그게 이제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들었다는 것입니다. 노래가 시작돼서부터 끝까지 다 들었다. 이제 이런 표현을 이제 할 때가 있습니다. 단지 그냥 노래를 지금 부르고 있는 것을 들었다가 아니라, 그 노래를 전곡을 완전히 부르는 것을 들었다, 이렇게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말에는 그게 조금 애매하지만 헬라어는 이제 그런 것을 표현하는 그런 형태가 있습니다. 여기 '간구함이 들린 지라'가 네가 기도하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듣고 있었다라는 그런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처음부터 지금까지 다 듣고 있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참 우리는 이것에 대해서 또한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대해서 그와 같이 듣고 계십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눈에는 하나님께서 듣지 않고, 또 관심이 없고, 어떠한 액션도 취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다 듣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이제 그 사가랴에게 아들을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단지 제사장이 아니라, 이제 그는 메시아 앞에서 그 메시아를 예배하는 그 놀라운 일을 할 사람을 아들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서야 왜 그동안 그 기도 응답이 바로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왜 아들이 즉각적으로 주어지지 않았는지, 우리는 그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시는 그 계획을 이루시기 위하여, 그 계획과 관련돼서 이제 메시아가 오실 때에, 그때 바로 그 직전에 예배하는 자로서 그 아들을 보내시기 위해서 이제 그 응답을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가랴에 있어서 특별한 기도 응답이었지만 또한 우리에게 있어서도 동일하게 이것도 우리에게 동일하게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기도 응답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것도 결국에는 그리스도와 관련되어 이루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아뢰는 많은 기도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 주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때가 언제냐면 그리스도와 관련돼서, 그리스도와 관련된 더 영광스러운 일을 위해서 그 일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로마서 8장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28-29).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일어나는 그 모든 일들에 대하여 이 일을 이루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아들, 그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참으로 그분께서 우리 모두 그리스도인들의 맏아들로서 합당한 영광을 받게 하기 위하여 이 일을 이루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서 성령께서 기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 놀라운 일을 위하여 성령께서 기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여러 이와 같은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도 기도합니다. 다니엘도 기도했을 때에 그는 더 놀라운 기도 응답을 받게 됩니다. 다니엘은 다니엘서 9장에 보면 이제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 기도 응답은 메시아와 관련된 더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메시아가 오시고, 그 메시아가 고난 받으시고, 그리고 그 죄악이 완전히 영속되는, 그것이 완전히 회복되는, 단지 그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뿐만 아니라 메시아가 오시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히 죄에서 회복되는 놀라운 일을 다니엘에게 기도 응답으로 주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더 놀랍게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 응답은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그 놀라운 계획,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실 그 일과 연관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이러한 그 영광을, 그 기도에 담겨져 있는 그 놀라운 하나님의 뜻을 알고, 또한 계속적으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기도하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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