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집회/덕언 말씀

덕언 :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박이레 2025. 12. 4. 15:40

< 덕언 :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 강성찬 형제님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찌어다 아멘"(히 13:20-21).

특별히 21절에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이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저희가 디도서 2장을 보게 될 때에 거기서는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을 삼기 위하여 우리를 구속하셨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디도서 2장에서는 "선한 일에 열심하는이"고, 여기 히브리서 13장 21절에서는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라고 돼 있습니다.
사실 이 두 구절 모두 저희를 놀라게 하는 그러한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디도서 2장에서 '선한 일에 열심하다'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우리는 이 선한 일에 열심히 없었던 그런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선한 일에 열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이제 악한 일에 빠른, 이 악한 일에 아주 열심히하는, 공을 들이는 그것에 몰두하는 이제 그러한 사람이었는데, 참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제 구속하실 때에 그 선한 일을 이제 열심히 하는, 이제 그러한 친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말씀을 보게 된 뒤에 놀라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도 다시 한 번 놀라게 되는데요. 여기서는 이제 그 선한 일을 하는데 온전케 하셨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참 우리는 선한 일에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한 일에 이제 온전케 하사"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 이제 이 온전케 하다라는 말을 '온전케 하다'라는 게 무슨 의미인지를 좀 더 이제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요. 이것은 우리가 처음에 읽을 때 이게 어떤 의미로 여러분들에게 다가오실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이것은 죄가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주 퍼펙트한 이제 그러한 상태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단어가 이제 어디서 사용됐는지를 우리가 살펴본다면, 우선 이제 갈라디아서 6장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갈라디아서 6장에 보면 거기에 이제 범죄한 사람이 나옵니다. 그러한 범죄한 사람을 이제 바로 잡는데, 그 '바로 잡다'라는 표현으로 같은 단어가 사용되어 있습니다. 어떤 범죄한 형제를 그가 다시 올바른 자리에 있도록 제자리에 두는 것, 이제 이런 뜻으로 갈라디아서 6장 1절에서는 사용되고 있습니다. 마치 이제 어깨 뼈가 빠졌는데 그 어깨뼈를 그 지체를 제자리에 두는, 그런 것을 이제 바로잡다, 범죄한 형제를 원래 자리에 두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나온 이제 '온전하다'의 첫 번째 뜻은 '제자리에 두는 것'을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이제 두 번째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러한 부분일 텐데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 그 제자들이 어부였고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었습니다. 그 그물을 고기를 잡을 때 이제 사용하느라 그 가운데서 작업하다가 망가진, 이제 그물이 손상된 부분을 이제 깁는, 그래서 '손상된 부분을 고치는 것', 그럴 때 사용된 단어가 또 이 단어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잘 아시는 이제 에베소서 4장 12절에 은사를 주신 목적에 대해서 설명하실 때 이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거기서는 4장 12절에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거기서도 이제 온전케 하다라는 것으로 번역이 되어 있는데, 이제 거기서의 그 뜻의 의미는 '성도들이 기능하게 하다', 그래서 봉사 일을 하게 하는 그런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단어가 사용된 그 용례를 살펴보게 될 때에, '제 자리를 찾아주는', 그리고 또한 '고쳐주는', 그래서 '기능하게 하는', 이제 그런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그런 뜻을 우리가 함께 생각하게 될 때에 이것은 이 선한 일을 하도록 우리를 회복시키는, 그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자리에 두는, 우리를 고치는 그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이제 그런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참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회복하시는 분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생각할 때에 놀라운 그런 일입니다. 우리가 망가졌을 때, 우리가 있던 자리에서 벗어났을 때에, 그 기능을 하지 못할 때, 그냥 하나님께서는 쉽게 그것을 폐기하고 다른 존재를 만드실 수 있었는데, 하나님께선 굳이 번거롭게 고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시 회복시키시고 그 일을 다시 할 수 있도록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우리 사람도 그렇게 하지 않는 일입니다. 어떤 것이 고장 났을 때 우리는 쉽게 그것을 버려버리고 다른 것으로 대체해 버립니다. 그게 더 간편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더 힘이 안 드는 그런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굳이 번거롭게도, 힘들게도, 그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그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온전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이것이 가능한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실수하고 낙심에 빠졌을 때, 내가 뒤로 물러나 있을 때, 내가 다시 회복되는 것이 가능할까?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 자신도 나에 대해서 내가 다시 그것을 회복하고 그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가능할까?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그 선한 일을 하도록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회복시키시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 온전케 하는, 그 선한 일을 하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만드신다는 것을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읽은 이 부분은 '기도'입니다. 이 히브리서 기자는 참으로 이 하나님께서 참 이 일을 이루실 것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기도는 사실 이 히브리서 전체의 결론과도 같은 것입니다. 히브리서에서 계속해서 우리 주님의 온전하심에 대해서 말씀을 하였습니다. 그분께서 얼마나 놀라우신 분이신지, 그리고 그분이 하나님의 계획의 정점입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를 계획을 이루시고, 또 우리를 그 계획 안에서 하나님이 뜻하신 바를 다 이루시기에 부족함이 없으신 분으로 계속해서 말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히브리서 기자는 결론적으로 이렇게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를 그 선한 일을 행하는 데 온전하게 하시도록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20절에 보면 그 기도의 대상이 이제 "평강의 하나님"으로 나와 있습니다. 특별히 그 평강의 하나님과 언급된 그런 내용들을 보면,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 특별히 이제 우리 주 예수를 목자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목자는 양에 대해서 사랑하고 참 자신을 그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기까지 하는 그 목자의 사랑을 담고 있는 그런 표현입니다. 그리고 또한 "영원한 언약의 피"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 피라는 것은 의로운 근거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복들을 베풀어 주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근거, 그 의로운 근거를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내신"이라고 돼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말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도 그분을 일으켜 내실 수 있는 그 하나님의 능력, 여기에 종합해 보면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의로우신 근거, 하나님의 능력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것이 평강의 하나님을 합당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우리에 대한 '사랑'이, 그리고 그 올바른 '근거', 의로운 근거가 있어야 되고, 그뿐만 아니라 '능력'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참으로 우리에게 평강을 주실 수 있는, 즉 평강의 하나님이라 우리가 부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평강의 하나님이 "모든 선한 일에 우리를 온전케 하사"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모든 선한 일에 온전케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되었을 때, 그 모든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우리는 '참된 평강'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평화는 그냥 우리가 가만히 있어서 누리는 것이 아니라, 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그 선한 일을 우리가 행할 때에, 그 하나님의 뜻을 행할 때에 우리는 이 평강의 하나님의 참된 평강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잠깐 이제 한 가지만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기 이제 "온전케 하다"라는 단어가 히브리서에서도 사용된 부분이 있는데요. 이 13장 말고 다른 곳에 이제 두 군데 더 사용이 되었습니다. 이 한 군데는 11장 3절입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것이 아니니라"(히 11:3).

여기서 이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 '지어졌다'가 앞에 우리가 살펴본 '온전케 하다'라는 것과 같은 단어입니다. 그리고 또 한 군데 또 앞으로 가서 10장 5절에,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히 10:5).

여기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예비하셨도다'가 또한 '온전케 하다', 또 앞에 이제 '세상을 지으셨다'와 같은 단어입니다. 그래서 사실 굉장히 언뜻 봐서는 약간 어색한 그런 사용 용량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을 지으실 때에 그냥 세상을 만드셨다, 그냥 창조하셨다 하면 되는데, 굳이 이 단어를 사용하셨다는 겁니다. '온전케 하셨다'라는 그 단어를, 그리고 또한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에 그 주님께서 입으신 그 몸, 그 몸을 예비하셨다. 주님의 몸을 예배하셨을 때에도 그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 얼마나 질서 있게 창조되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그 하나님의 법칙에 따라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어떻게 잘 운행되고 있는지를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의 몸이 그 주님의 뜻하신 바에 얼마나 잘 작동하였는지를 보고 있습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다 이룬 것입니다. 이 세상이 그랬고, 또 주님의 몸이 그랬습니다. 그리고 그처럼 이제 하나님께서 선한 일에 우리를 온전케 하실 때에, 즉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에 그와 같이, 그 수준까지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이 기도로 말미암아 힘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선한 일에 열심히 하는 친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선한 일을 하기에 온전케 하신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크신 뜻과 은혜를 기억하면서 우리의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참으로 이 세상을 만드신 능력으로, 그리고 그 주님께서 이 땅을 사신 그 모습을 바라보며, 그와 같이 선한 일들을 행해 나가길 바랍니다. 이 히브리서 기자처럼 계속해서 평강의 하나님께 기도하며 이 일을 행해 나가기를 바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