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 사도행전 16장, 사람이 만들어 낼수 없는 복음 > 강성찬 형제님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경 첫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밖 강 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 두아디라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저와 그 집이 다 침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을 크게 이하게 하는 자라 바울과 우리를 좇아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와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종의 주인들은 자기 이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잡아 가지고 저자로 관원들에게 끌어 갔다가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케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송사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분부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그가 이러한 영을 받아 저희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더니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줄 생각하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바울이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밤 그 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침례를 받은 후 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행 16:9-34).
예,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가 읽은 대로 이제 사도바울 일행이 특별히 빌립보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구원받은 그 역사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복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먼저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이제 얼마 전에 이제 선혜와 또 다른 모임의 자매님들이 베네수엘라를 방문하였습니다. 남미에 있는 나라이고 우리나라와는 이제 정 지구 반대쪽에 있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고 가야 되는데 너무나 거리가 멀어서 이제 직항으로 가는 비행기가 없고, 터키에서 비행기를 한 번 갈아타고 이제 가는 그런 여정입니다. 여기서 터키에 있는 이스탄불이라는 도시까지 가는 데 한 열몇 시간이 걸리고, 거기서 한 9시간 정도 기다리다가 또 다음 비행기를 타고 이제 베네주엘로 가는 그런 여정입니다. 굉장히 오랜 그런 여정인데요. 제가 왜 특별히 이 여정을 언급하냐면, 거기 중간에 멈추었던 터키라는 나라의 이스탄불, 거기서 이제 비행기를 갈아타고 갔는데 그 이스탄불 근처가 오늘 말씀드리는 이 내용의 배경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지도를 보시면 알겠지만 이제 이스탄불이라는 도시가 굉장히 좀 특별한 그런 도시입니다. 보통 서울, 뭐 이렇게 어떤 도시를 말하면 우리는 이제 아시아에 이제 있는 거죠. 그리고 파리, 뭐 이런 도시라고 하면 유럽에 있는 도시잖아요. 뉴욕 하면 이제 미국 대륙에 있는 도시고, 그런데 이스탄불은 특이하게 아시아에도 있고, 유럽에도 있는 도시입니다. 이렇게 양쪽에 이렇게 걸쳐져 있는 도시입니다. 아시아 대륙을 살펴보면 이렇게 큰 아시아 대륙이 있는데, 그게 이제 이스탄불이라는 곳에서 이렇게 좁아져서 유럽하고 만나는 데입니다. 거기가 이제 흔히들 이제 '아시아와 유럽의 관문'이라고 불리우는 그런 지역입니다.
오늘 여기 사도 바울 전도 일행이 원래는 아시아 쪽에서 이제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환상 가운데 마게도냐 사람이 "이리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이런 모습을 보았어요. 이 마게도냐가 어디 사람이냐면, 이쪽 건너편에, 아시아 건너편 이스탄불의 건너편, 유럽 쪽에 있는 지금의 그리스, 조금 더 가면 그리스라는 나라가 있는데 이제 그쪽 지역을 말을 하는 겁니다. 유럽에 있는 마게도냐 사람이 아시아에 지금 있는 전도자를 지금 환상 가운데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리로 와서 우리를 도우라." 이렇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이 우리를 이제 유럽에서 복음을 전하라고 부르시는구나, 라고 하고 이제 사도바울 전도 일행이 유럽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는 이제 그러한 내용입니다.
제가 왜 이것을 특별히 말씀을 드리냐면, 이게 사실 이제 인류의 문명의 흐름으로 봤을 때는 좀 이상한 거예요. 왜냐하면 이 마게도냐 지역이 문명이 더 그 시대에 발달해 있었거든요. 여러분이 그리스 로마,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리스 아테네, 그리스의 철학자들, 많이 들어봤을 겁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플라톤, 소크라테스, 그리스 철학자들이죠. 그리고 지금 여기 건너갔더니 거기가 "로마의 식민지라" 이렇게 되어 있는데, 거기가 그 시대에 가장 큰 제국인 로마가 다스리고 있던 그런 지역이었습니다. 이제 로마라고 한다면, 그 시대에 이제 가장 큰 권력 가장 큰 영토, 그리고 가장 발달된 그런 정치 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그런 나라입니다. 그런데 그런 선진국에서 "이리로 와서 도와달라."라고 하고 있다는 겁니다. 마케도니아 사람이 이 아시아에 있는 사람한테 여기로 와서 도와달라,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 제가 이것을 통해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참 이 복음이라는 것이, 이 성경이라는 것이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이 복음을 전하다 보면 많은 분들이 "이 기독교라는 것도 결국에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게 아니냐?" 이렇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냥 문화가 발달하다 보니까 그런 문화에서 이제 종교가 생겨나고, 그 종교의 하나로서 이제 기독교가 나온 것이 아니냐? 그리고 특별히 지금은 서방 세계가 이 온 세상에 그 패권을 장악하고 있으니까, 그 서방 세계가 많이 믿고 있는 기독교가 많이 퍼져 있고, 우리나라에까지, 이 아시아에 우리는 원래는 유교라든지, 불교를 믿는 나라인데, 우리나라까지 그 미국과 유럽의 종교가 들어와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니냐?" 이렇게 많이들 이제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성경의 기록을 보면 전혀 그런 사람들의 이제 문명의 발달의 방향하고는 반대 방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문명이 발달한 더 힘이 강한 그 그리스 로마 제국에서 이제 이쪽으로 와서 도와달라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가장 발달한 문명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제 어떤 문제입니까? 죄의 문제였습니다. 그 죄로 말미암은 사망의 문제였습니다. 이 사람이 죽는 문제에 대해서 아무도 해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놀라운 문화를 만들어내고, 참 놀라운 사상을 생각해낸 그런 사람들이 죽는가? 그 앞에서 참으로 이 인생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도대체 해답을 찾을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이쪽으로 와서 우리를 좀 도와달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가장 선진 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이쪽으로 와서 도와달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죽음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우리 인류에게 들어온 것입니까? 성경은 이것을 분명하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하나님을 불순종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이 죄이고, 그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온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참 그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그 생명의 근원으로부터 떠났다면, 그 생명의 근원을 싫어하고, 그 생명의 근원과 함께 있기를 싫어한다면 그들은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이 사망이 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은 또한 분명하게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 죽은 후에는 또한 심판이 있는 것입니다. 그냥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고 나서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죽은 후에는 그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무서운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불순종한 모든 사람들은 다 지옥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불못 가운데로 던져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가장 선진화된 그런 문명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그러한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마게도냐 사람은 이리로 와서 우리를 도와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복음을 들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그 길을 말하고 있는 복음을 들고 그 마게도냐로 건너간 것입니다.
이제 건너갔을 때에, 16절에 기록된 이야기를 먼저 이제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데요. 여기 귀신 들린 여종이 나옵니다. 왜 이 이야기를 먼저 말씀을 드리냐면 그 가장 문명화된 사회의 단면을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시대에 가장 선진 문명이라면 거기에 뭐가 있어야 될 걸로 생각이 듭니까? 거기서 우리는 뭘 기대해 볼 수 있겠습니까? 가장 선진화된 문명이라면 공평하고, 모든 사람들이 부유하게 행복하게 잘 사는 그 정도 좋은 나라를, 좋은 사회를 만들어 놨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 가장 선진화된 그런 문화에서 거기 보면, 사실 12절에 그 "빌립보성이 마게도냐 지역의 첫 성이고 로마의 식민지라" 돼 있는데요. 이게 이제 '첫 성'이라는 것이 이제 첫째 가는 성, 아주 중요하고 큰 성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번창하고 발전된 도시인데 거기서 볼 수 있는 것은 귀신 들린 노예입니다. 어떤 여자가 있는데 귀신이 들려서 뭘 하고 있냐면, 다른 사람 점을 쳐주는 걸 하고 있는 거예요. 귀신이 이제 다른 사람들의 미래를 이렇게 말을 해 주는 거예요. "다 이제 어떻게 될 거야. 너는 이거 조심해야 돼." 뭐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신통한 그런 능력이 있으니까, 그 여종의 주인들이 그 여종을 이용해서 돈벌이를 하는 거예요. 돈을 많이 벌고 있는 거예요. 이게 그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저는 때때로 우리나라에서도 굉장히 공부를 많이 하신 분들이 생각외로 점을 보러 다닌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 그건 미신이야."그럽니다. 사람들이 과학 아닌 것을 되게 싫어합니다. "그건 비과학적이야." 이런 말 아주 입에 달고 삽니다. 우리가 성경 이야기를 하면 "그건 과학이 아니잖아. 그건 비과학적이야."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사람들이 더 비과학적으로 행동을 합니다. 미신을 아주, 우리 교회에도 한 성도님의 부모님이 계시거든요. 그 부모님이 큰 부자예요. 사업을 잘 하셔서 큰 부자예요. 그런데 그 사업을 하실 때 보면, 그 성도님이 그 부모님에 대해서 이렇게 하신 얘기를 제가 들었는데 항상 점을 보신다는 거예요. 사실 100억을 투자하는데 마음이 불안한 거죠. 이걸 100억을 날릴 수 있으니까, 점을 봐서 이게 성공할지 안 할지를 보고 한다는 겁니다. 이와 같은 모습이 참 부유한 도시일수록, 발전화된 도시일수록 나타나는 비과학적인, 어리석은 그런 모습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가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인류의 문화가 최고로 발전해서 종교를 만든다면그 종교가 어떤 모양일 것 같아요? 바로 딱 이 모습인 것입니다. 자기의 미래를 점쳐주는, 내가 지금 여기다가 땅을 사면 이게 성공할지, 안 할지, 이걸 말해주는 그런 종교. 그런 종교가 사람들이 원하는 종교입니다. 가장 발전된 문명에서 만들어내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 성경의 기독교는 사람들이 도대체 생각해 낼 수가 없는 그런 종교입니다. 사실 우리가 나중에 더 살펴볼 텐데요. 굉장히 성경의 내용과 이 사람들의 모습과 너무나 차이가 나는 것을 이제 보게 됩니다. 여기 보면 이 사람들은 가장 큰 관심사가 이제 이익입니다. 돈벌이, 나한테 이익이 있냐, 없냐? 어느 정도까지 이익을 챙기냐면 다른 사람을 희생해서, 한 사람을 노예로 삼아서 그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거예요. 나중에 보면 여기 이제 사도 바울이 그 귀신을 내쫓습니다. 그래서 그 여종은 이제 자유롭게 된 거죠. 이제는 더 이상 귀신의 속박을 받을 필요가 없어요. 참 이거 얼마나 잘 된 겁니까? 그 귀신의 억압 가운데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던 그 여자 노예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그 노예가 고쳐졌을 때에, 그 귀신 들린 요정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아요. 오히려 엄청나게 화를 냅니다. "아니, 나한테 돈벌이가 됐는데 그 귀신을 쫓아내면 어떡해?!" 이렇게 되는 겁니다. "이제 더 이상 점을 볼 수가 없잖아! 그 귀신을 쫓아내버려가지고," 계속 그 노예가 그냥 나의 도구로, 돈 벌어를 다 주는 그렇게 사용됐어야 되는데,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가장 문명화된 사회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기적인,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도구로 생각하는 물질주의의 그 모습이 이 가장 큰 성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들은 참 재미있는 말을 합니다. 19절에 보면 "종의 주인들이 자기 이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그들에게 있어서의 소망은 '이익의 소망'입니다. 그들은 정말 인간으로서 정말 참된 소망다운 소망을 가져본 적이 없어요. 정말 그들이 바래야 되는 것, 그들이 원하고 소망해야 되는 것, 그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고귀한 것들을 소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단지 이익만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바램은 부자 되는 것, 이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귀신을 내쫓아준 고마운 바울과 실라에게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고 오히려 잡아서, 이제 이 사람들이 우리의 재물을 손상시켰다고 이제 잡아달라고 재판에 넘겨버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케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행 16:20-21).
그들에게 있어서 이 복음이라는 것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입니다. 이것은 결코 사람의 문화가 만들어낼 수 없는 그런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것, 받지도 못하고 헹지도 못할 풍속,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복음이라는 것은 너무나 안 맞는 거예요. 자기한테, 그들이 받을 수도 없고 행할 수는 더더군다나 없는 그런 내용인 것입니다. 이건 도대체 사람이 생각해 낼 수가 없는 그러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제 로마 사람이라고 이제 자랑스럽게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아주 큰 문명을 이제 발달해 냈다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재미있는 것은 그들이 그렇게 자랑하는 그들의 로마법도 그들 스스로 지키지 않는다는 겁니다. 여기 보면 이제 그 바울과 실라를 잡아서 일단 그냥 막 때렸어요. 막 때리고 감옥에 가둬 놓습니다. 그런데 그게 로마법에는 안 맞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보면, 37절에 보면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우리를 내어 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저희가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대"(행 16:37).
그러니까 로마 사람은 그렇게 함부로 때리면 안 되고 먼저 재판을 해서 정말 죄가 있구나라고 이게 판결이 되면 이제 그제서야 이제 때릴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로마법을 자랑하지만 그대로 안 하는 거예요. 일단 잡아서 때린 다음에 감옥에 넣어놓은 거죠. 그러고 나서 보니까 로마 사람이네? 하고 그것을 무마하려고 가만히 내보내려고 합니다. 아무 말 안 하고, 사람들은 죄를 처리하는 방법을 이렇게 하는 겁니다. 공의롭게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가만히 눈 감고, 그냥 은글슬쩍 처리하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를 이렇게 처리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죄는 그렇게 처리될 수가 없는 겁니다. 죄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죄의 대가는 항상 죽음입니다. 그 피를 흘려야 되는 겁니다. 그 생명을 말하고 있는 피가 흘려져야지만 죄를 의롭게 해결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항상 죄를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하는 겁니다. 이게 사람의 최고 발전된 문화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잘못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로마법을 굉장히 훌륭하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한국의 지금 법도 기본이 로마법입니다. 그 정도로 그 오래된 로마법이 잘 만들어진 법입니다. 굉장히 훌륭하게 만들어진 법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법은 훌륭하게 만들 수 있지만 지키지 않는다는 겁니다. 지킬 수가 없는 겁니다. 여기 이 사람들도 자기들은 로마 사람이라고 자랑하지만, 정작 자기한테 불리할 때는 지키지 않는다는 거죠. 이게 또한 그 사람이 만든 것과 하나님의 복음과의 차이가 있는 겁니다.
이제 이제 다시 앞으로 와서 그 가운데 있는 한 사람의 구원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루디아라는 여자입니다. 13절에 보면 이제 '기도처'라는 곳에 사도바울 일행이 가게 됩니다. 거기에 이제 여자들이 모여 있었는데요. 그 가운데 14절에 보면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를 만나게 됩니다. 루디아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고요. 두아디라라는 성은 아시아 쪽에 있는 성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이제 유럽까지 와서 이제 왔다 갔다 하면서 자주 장사를 하는 거죠. 자주 장사라는 것이 자줏빛 물이 들은 그런 옷감을 장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 여인은 또한 이제 하나님을 공경하는 여자였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고, 정말 하나님이 온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알고,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이제 잘 듣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아주 종교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여기 성경의 표현으로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종교적인 사람도, 그냥 교회를 잘 다닌다고 해서 구원받았다는 것이 아니라, 여기 보면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종교적인 사람도 우리 말로 하자면, 이제 교회에 잘 다니고 이 자리에 나와서 앉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사람,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라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서, 그 하나님의 말씀이 그 안에 들어가야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아야 된다는 것을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냥 이 자리에 그냥 나와서 앉아 있는 것으로 하늘나라 간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이 자리에 나와서 말씀을 듣는 것으로 죄가 용서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열어서 그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마음 가운데 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루디아라는 여자도 그게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이 여자도 그것이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왜 이 말씀을 이제 강조해서 드리냐면 여기서도 다시 한 번 이 복음과 구원이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냥 단지 사람이 만든 종교가 아니라, 그냥 사람이 열심히 선행을 해서, 사람이 열심히 종교적인 행위를 해서, 그가 이제 하늘나라 가고, 그가 하나님께 인정받고, 이런 것이 아니라 여기 보면 특별히 주님께서 하신 일이 있습니다.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반드시 이 일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스스로 내 마음속에 한번 이것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주께서 내 마음을 여시고, 내 마음속에 그 말씀을 두셨는가? 여기 "청종하게 하셨느니라" 이렇게 돼 있잖아요. 이 '청종하다'는 것이 그 말을, 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제 잘 들었다, 이런 내용인데요. 이제 주의 깊게 이제 잘 들었다 이런 내용입니다. 특별히 그 앞에도 루디아라는 여자는 말을 듣고 있었습니다. 계속 듣고 있었어요. 그런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여셨을 때, 그는 이제 그 들려지는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은 것입니다. 그냥 사람들이 지어낸 말, 그냥 사람들의 문화 가운데서 생겨난 말,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로 하나님이, 온 세상의 창조주가 나에게 하시는 말로 겸손하게 들었다는 겁니다.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은 것입니다. 참 이 구원이라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리고 15절에 보면 그는 이와 같이 변화되게 됩니다.
"저와 그 집이 다 침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행 16:15).
그는 사도바울 일행을 초청해서 그 집에서 접대를 합니다. 그에게 이제 사랑을 베풀어주는 것이죠. 이것은 빌립보의 그 세상 사람들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그 성의 사람들은 이기적이고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는 그 귀신 들린 노예를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이용하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 이 구원받은 사람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는, 다른 사람을 도와주려고 하는, 그런 모습이 우리는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문화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그런 모습인 것입니다.
이제 두 번째, 이 성에서 구원받은 사람을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에 그 빌립보의 간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바울과 실라를 이 사람들이 우리 걸 다 망쳐놨다고 해서 이제 감옥에 가둬놓게 됩니다. 그리고 그 바울과 실라를 든든히 잘 지키라라고 이제 간수에게 맡겨놓습니다. 그 간수는 바울과 실라를 이제 그 옥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다가 가둬놓고 그 발에 쇠사슬로 착고를 채워서 가둬놓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지진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감옥에 지진이 일어나고 그 감옥 문이 다 열리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가운데에 이 간수가 구원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앞에 루디아라는 여자하고 비교해 보면, 이 사람은 종교적이지도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지식도 많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도 하나님의 역사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앞에서 루디아는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여기 이 간수에게 있어서는 그 감옥의 옥문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 가운데서, 그 하나님만이 행하실 수 있는 그 일 가운데서, 그는 깜짝 놀라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하나님의 행하심으로 이루어지는 구원을 우리가 발견해 볼 수 있습니다.
참 이 간수는 그다지 지식적이지도 않고, 종교적이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이 빌립보 사회에서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제 간수라는 공무원 직을 맡아가지고 나름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잘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안정적인 생활을 흔드는 그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지진이 일어난 것이죠. 그리고 그 지진으로 감옥의 문들이 다 열려버렸습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지진을 일으키십니다. 여러분이 안정적으로 잘 살아가고 있을 때, 아무 문제없이 살아가고 있을 때, 그냥 가정에서도 아이들이 잘 크고 사업도 잘 되고, 아무 건강에 문제도 없고, 그럴 때에 하나님은 반드시 지진을 일으키십니다. 여러분을 괴롭히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생각해 보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더듬어 찾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내가 안전하다고 믿고 있었던 것들이 안전한 게 아니었구나라는 것을 알도록 그걸 흔드시는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안전하지 않은 것을 모래성 같은 것들을 이걸 견고하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 인생의 조금만 그 하나님의 역사가, 그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있다면, 금방 그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확 무너집니다. 정말 이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이 얼마나 연약한지 생각하게 됩니다. 아무 문제없이 10년, 20년, 이렇게 살 것 같았는데 정말 갑자기 가족 안에 큰 병에 걸리는 것입니다. 암에 걸리는 겁니다. 이랬을 때 우리는 생각해 봐야 됩니다. 내가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정말 그게 안전한 게 아니었구나. 이 세상에 정말 안전한 곳은 어디에 있는가?
성경은 하나님을 참으로 우리의 견고한 반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여러분의 삶이 흔들릴 때에 이 하나님 앞에 나오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이 흔들릴 때에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내 삶에 견고한 것이 어디 있는가? 우리의 쌓아놨던 부, 우리의 쌓아놨던 열심히 일했던 직장, 순식간에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 간수는 그 옥문이 다 열리고, 그 지진이 일어나서 옥문이 다 열렸을 때, 그는 자결하려고 합니다. 죽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때 당시에 죄수가 한 명이 도망가면. 간수는 그 죄수를 대신해서 자기 목숨을 대신해야 됩니다. 그게 간수의 책임입니다. 그래서 그 간수는 그 지진으로 인해서 옥문이 다 열린 것을 보고 나는 이제 망했구나, 생각하고 죽으려고 합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아마 그런 생각을 하신 적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이 안전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다 무너져 버렸을 때, 갑자기 무너져 버렸을 때 나는 정말 망했다. 난 이제 진짜 끝났다라고 생각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에 이 바울과 실라가 그 간수를 막습니다. 자결하지 말라고, 죽지 말라고 하면서 "우리가 지금 다 여기 있다. 누구도 도망간 사람이 없다." 이렇게 하면서 죽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경험을 하게 됩니다. 내가 심각한 병에 걸려서 나는 이제 망했구나라고 생각했을 때, 내가 하던 사업이 망해서 나는 이제 진짜 망했다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더 이상 앞길이 안 보인다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실제로 그게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었던 거예요. 또 살아지는 거예요. 이제 난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그 가운데서 어떻게 살 길이 나오는 겁니다. 이걸 통해서 이제는 어려운 게 다 끝났다라고 그냥 넘어가실 것이 아니라 다시 생각을 해보셔야 됩니다. 내가 정말 그렇게 큰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 이거 무너지면 나는 망한다라고 생각했던 것들, 그게 사실은 별게 아니었구나. 정말 그러면 나한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것을 생각해 봐야 됩니다. 간수는 그 생각을 했습니다. 간수는 이 죄수가 다 도망가 버리는 것, 이게 가장 큰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했을 때 죽으려고 했지만, 그게 그다지 큰 일이 아니었다라는 것을 알고, 죄수들이 다 도망가지 않았는데 그것을 알고도 이제 29절에 보면 다 문제가 해결됐는데,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행 16:29).
그는 이제 정말로, 제대로 무서워합니다. 정말 문제가 무엇인지를 그는 생각해냈던 것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안전을 주고 있는 것은 그의 안정적인 직장이 아닙니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그 직장을 빼앗아가 버리는 죄수들이 도망가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는 심지어 그것 때문에 자결까지 하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랬던 그가 지금 더 무서워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는 바울과 실라가 찬송을 드리는 그 하나님, 그분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수가 바울과 실라를 감옥에 가둬 놨을 때 바울과 실라는 기도합니다. 그 감옥 속에서 바울과 실라는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찬미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죄수들이 듣습니다. 그리고 간수도 듣는 겁니다. 이 사람이 죄수인데, 지금 매 맞고 고통 가운데서 깊은 감옥 가운데 갇혀 있는데, 그는 거기서 기도하고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고 있는 겁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누구고 그런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저 사람들은 누군가? 이것은 그 간수가 살고 있는 그들의 문화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자기의 이익이 손상되면 분노하는 그런 모습과 전혀 달랐습니다. 그 하나님께 오히려 감사드리고 있는, 그런 안 좋은 상황 가운데서도 찬미하고 있는, 저들은 누구고, 그 대상인 하나님은 누군가?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정말로 저 사람들에게 안전을 제공해 주시는 분이구나, 이걸 간수는 안 것입니다. 심지어 깊은 감옥 가운데 갇혀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주시는 그 안전을 빼앗아 갈 수가 없는 거구나. 저들이 가지고 있는 안전은 내가 가지고 있는 안전보다 더 놀라운 것이다. 더 견고한 것이다. 그 간수가 알아차린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가지고 있는 안전은 흔들 수가 없는 거구나라고 안 것입니다. 참 여러분도 이 안전을 구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정말 참된 안전, 이 구원의 안전을 구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 안전을 주시는 분, 그분을 가장 높은 분으로 모시고 그분을 두려워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참 간수에게 있어서는 이제까지는 가장 두려운 사람이 자신의 상전이었을 것입니다. 자신한테 명령하는 사람, 이제 바울과 실라를 든든히 지켜라고 명령하는 사람, 그 상전이 가장 무서웠을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도망가면, 자신이 자신의 목숨을 뺏앗어가는 그 상전을 가장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간수는 그 상전이 아니라 바울과 실라가 찬양을 드린 그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참 이분을 두려워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는 29절에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그 바울과 실라 앞에 이제 엎드려 가지고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행 16:30).
이것을 물어본 것입니다. 참으로 여러분들이 이 질문을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 지진이 일어났을 때, 그때 내가 이제까지 믿고 의지했던 것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었구나라는 것을 알고, 정말 두려워해야 되는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알고,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으리까라고 물으시기 바랍니다. 참 이렇게 묻는 것이 이제 우리가 앞에 루디아로 치자면, "주께서 그 마음을 여사"와 같은 것입니다. 루디아에 대해서는 "주께서 그 마음을 여사"로 표현이 되어 있고, 이제 거기서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 주님께서 하신 일편을 이렇게 말을 한 것입니다. 여기서는 사람이 하는 그것에 대한 반응,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때 이 간수는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까?" 이게 그의 마음이 열린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이제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제가 듣겠습니다. 말씀을 하십시오. 제가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저 같은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참 이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질문 앞에, 이 열려진 마음 앞에, 단순하게 이 복음을 전해줍니다. 31절에 "주 예수를 믿으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를 믿으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여러분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이 주 예수를 믿으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필요가 없으신 분이었습니다. 죄가 하나도 없는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로 여러분을 위해서, 여러분을 대신해서 여러분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여러분의 죄의 모든 대가를 십자가에서 치르신 것입니다. 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을 것을 분명하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들이 이 예수그리스도를 믿으시고, 참 이 구원을 얻기를 바랍니다. 참으로 이 사람도 이제는 완전히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복음이라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그냥 좋은 내용만 있고 아무 사람도 지킬 수 없는 그런 로마 법과는 달리, 이것은 놀라운 은혜의 말씀이고 그리고 그 말씀을 믿은 사람들이 변화돼서 정말 그 말씀을 따라 살게 하는 이제 그러한 놀라운 능력의 말씀인 것입니다. 이 사람은 이제 완전히 변화돼서, 이 간수는 바울과 실라를 씻기고 그리고 음식을 차려주고 함께 기뻐하고 교제를 나눕니다. 참 이게 우리의 복된 복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참으로 이 복음의 말씀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만들어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내용 자체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사람들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서 도움이 필요하는 그러한 것을 복음이 채워주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여러분의 이 필요를 아시고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오늘 구원을 얻으실 것입니다. 참 여러분에게 이 모든 은혜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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