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찬 형제님/복음 말씀

복음 :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박이레 2025. 12. 11. 17:04

< 복음 :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 강성찬 형제님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치 말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찌라도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 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 송이꿀을 먹으라 이것이 네 입에 다니라 지혜가 네 영혼에게 이와 같은 줄을 알라 이것을 얻으면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잠 24:11-14).

예, 우리가 금방 읽은 이 잠언 말씀에서는 이제 어떤 한 장면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어떤 사람이 지금 이제 사람들에게 끌려가고 있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큰 죄를 범했다고 사람들이 외치면서 이 사람은 죽여야 된다라고 하면서 끌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이제 얼마 안 돼서 곧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그 사람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겁니다. 그 끌려가는 사람에 대해서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데, 그와 같이 죽을 만한 죄를 지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사람을 끌고 가면서 아, 이 사람이 이런 짓을 했다고, 뭐 큰 보물을 훔쳤다거나, 아주 아주 나쁜 잘못을 했다고 말하면서 이 사람을 끌고 가고 있는데, 그런데 여러분은 그 사람이 그것을 안 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그때 딱 나타나서 "아, 잠깐만요! 이 사람이 그 잘못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말을 해 주면 이 사람이 살아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이런 상황에서 나와서 그렇게 사람들을 막고 이 사람이 잘못하지 않았다라고 용기 있게 말할 자신이 있습니까? 이 상황을 보면 지금 여러분 외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다 이 사람을 공격하면서 얘는 정말 나쁜 사람이라고 하면서 다 이제 화가 나 가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이 사람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잘못하지 않았어요!"라고 말한다면 아마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도 "너도 한패구나!" 하면서 같이 죽이려고 들지 모를 그런 분위기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가운데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마 많은 사람들은 그냥 입을 다물고 조용히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입을 다물고 있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구원하라."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주고, 살륙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중에 12절에 보듯이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이렇게 말하지 말라는 겁니다. 보통 이런 상황에 되면 사람들은 나중에 "아니, 네가 그때 말했으면 그 사람 살 수 있었잖아." 이렇게 할 때, "난 몰랐지, 내가 그거 몰랐어. 내가 알았으면 말했겠지." 이렇게 변명한다는 겁니다. 사실 많은 일들 가운데서 사람들이 하는 변명이 이겁니다. 내가 그걸 몰랐다, 내가 몰랐다라고 변명합니다. 뭐 어떤 거 잘못한 걸 이제 지적할 때 보면 "내가 몰랐어요. 모르고 한 겁니다." 다 이렇게 말을 합니다. 우리 세상에서도 많은 법정에서 이제 판사들 앞에 가서 이 죄인들이 하는 말이 "아, 몰랐습니다." 이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다 하지 마라. 마음을 저울질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알고 계시다. 어찌 그걸 모르겠느냐? 하나님이 모르겠느냐? 하나님은 이미 너의 마음속에 그것을 알고 있고, 네가 지금 말만 하면 한 사람을 살릴 수 있는데 겁이 나서 말을 안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라는 겁니다. 나중에 아유 몰랐다, 이렇게 말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여기 잠언 24장에다가 잠시 책갈피를 두시고 누가 복음 말씀 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가 복음 16장을 보겠습니다. 부자와 이 거지 나사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이 이 내용을 잘 알고 계시리라, 그래도 한번 들어보셨으리라 생각하고 전체를 다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그래서 이제 간단하게 마지막 부분만 읽어보자면 이렇습니다.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찌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눅 16:30-31).

이제 간단하게 줄여서 말씀을 드리자면, 이 부자가 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 부자는 살아있을 때에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다가, 그리고 죽고 나서는 지옥에 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고통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너무나 뜨거운 불 가운데서 고통 가운데 있어서, 그는 물 한 방울을 얻고자 하였지만 그것도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이제 자기는 여기 와서 어쩔 수가 없지만, 자기 형제들한테 정말 죽어보니 지옥이라는 곳이 있더라라고 누가 가서 말해 준다면, 그래서 그 형제들이 이곳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을 합니다. 특별히 이 나사로를 내 형제들에게 보내달라고, 그때는 나사로도 죽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나사로에 대해서는 그 집 사람들이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나사로가 그 집 앞에서 구걸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나사로에 대해서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서, 하지만 이 나사로는 살아있을 때 하나님을 알고 믿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죽고 나서 하늘나라에 가 있는 것을 이제 다시 형제들한테 가서 말해 준다면, 형제들이 그것을 듣고 정말 지옥이 있고 하늘나라가 있구나, 이것을 알고 다시 회개하고 이 지옥에 오지 않겠지, 이걸 바라는 마음으로 이 부자는 부탁을 한 겁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려서 우리 형, 동생들한테 보내주세요. 그리고 정말로 하늘나라가 있고 지옥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그가 말해서 이곳에 오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부자는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내가 살아있었을 때 그와 같은 증거를 받았더라면, 정말 죽은 후에 지옥과 천국을 경험하고 돌아와서 나한테 말해준 사람이 있었더라면, 나한테 말만 해줬더라면, 내가 알았으면 이곳에 안 왔지."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내가 몰라서 이곳에 왔다고 말하는 겁니다. 나는 몰랐어요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전 몰랐어요. 내 형들도 모르고 있으니까, 내 형들한테 가서 말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 아브라함은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이미 그들은 듣고 있다. 이미 그들은 잘 알고 있다." 여기 보면 31절,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거기는 이미 모세와 선지자들이 말하고 있다. 그게 죽은 사람이 가서 말하는 것보다 더 강력한 증거다. 이미 그들은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이곳에 온다는 것은 그건 몰라서가 아니다. 그것은 그것을 거절한 거다. 일부러 거절한 거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한번 여러분도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아주 좋은 것을 마련해 놓으셨어요. 이제 하늘나라라는 아주 좋은 것을 마련해 놓으셨어요. 그런데 그것을 꽁꽁 숨겨놓고 여러분에게 말씀을 안 하실까요? 몇몇 사람들한테만 살짝 말해서 "야, 너만 알아. 여기 아주 좋은 곳이 있어. 꼭 여기 너만 와." 이렇게 하실까요? 아주 너무나 끔찍한 고통스러운 곳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아무도 모르게, 그냥 그걸 알지 못하고, 그런 나쁜 곳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것에 빠져들게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실까요? 하나님은 절대 그런 분이 아닙니다. 제가 예전에 어렸을 때에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을 한 적이 있습니다. 88년도 올림픽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주 우리나라에 큰 행사를 한 겁니다. 그런데 이제 서울에서 올림픽을 하는 건데, 나라에서는 몇 년 전부터 서울뿐만 아니라 어디 그냥 지방 산골까지 올림픽을 한다고 광고하고, 이런 일이 있으니까 집 앞에 깨끗하게 청소하고 준비해야 된다라고 엄청나게 했습니다. 정말 우리나라의 온 동네 구석구석 시골에 사는 사람들까지도 올림픽을 서울에서 고작 그냥 잠실에서 하는 건데, 그걸 한다고 그렇게 선전을 한 겁니다. 그런데 이 하늘나라는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겁니다. 큰 잔치입니다. 이 큰 잔치 여러분도 잔치를 크게 벌려놓고 여러 사람들한테 알려주고 "야, 와서 먹고 가." 이렇게 하지 않겠습니까? 되도록이면 다 사람들한테 말해서 초청하고, 알려주고, 우리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이 큰 잔치에 대해서 얼마나 열심히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시겠습니까? 결코 여기 빠지지 말라고 전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렇게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중에 "몰랐어요."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마음을 알고 계십니다. 그 변명이 통하지가 않는 겁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이것을 이제 몰랐다고 하고 그것을 거절하는 것일까요?

여기 요한복음 조금 뒤로 가셔서 한 군데 말씀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요 8:45).

희한하게도 사람들이 진리를 말하니까, 예수님께서 진리를 말하니까 그것을 믿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 앞절에 보면은 마귀 사단이 있는데, 이 사단은 거짓말쟁이입니다. 44절 후반부에 보면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그는 항상 거짓말을 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이 사단이 거짓말하는 것은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그걸 잘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또 한 군데 보도록 하겠습니다. 조금 앞으로 가서 요한복음 3장 19절입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 3:19).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함으로, 자기가 그 나쁜 짓을 한 것이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아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입니다. 자기가 잘못한 것이 나타나지 않도록 진리보다는 거짓말, "네가 지금 하고 있는 거 문제없어.", "네가 지금 살던 대로 계속 그렇게 살아. 그게 올바른 방법이야. 다 그렇게 살아." 이렇게 거짓말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잘못을 지적하는 진리, 이것은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행위가 악함으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이 분명하게 말씀하시는데도 받아들이지 않고 "몰랐어요."라고 대답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이제 요즘에 번역기가 많이 나와 있는데요. 이제 우리가 어떤 말만 해주면, 우리가 한국어로 하면 영어로 싹 바꿔주고 이렇게 합니다. 그래서 여기에 이 여러분의 말에 대한 성경 번역기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말이 "나 이거 몰랐어요."라고 말하면 이 성경 번역기는 자동으로 딱 번역돼서 그게 무슨 뜻인지를 딱 말해줍니다. "나는 거짓말을 좋아합니다.", "나는 빛보다 어두움을 더 좋아합니다.", "내 행위가 악하므로 그것을 가리고 싶습니다." 이걸 말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이 이걸 분명히 아셔야 됩니다. 여러분이 나중에 하나님 앞에 가서 "너, 이거, 이거, 이거 잘못했잖아." 그럴 때 여러분은 결코 "난 이건 몰랐어요."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딱 말을 해도 자동으로 번역이 돼서 "저는 하나님이 싫어요."라고 딱 번역이 돼서 나옵니다. "하나님이 싫어서 나는 그것을 몰라, 스스로 나는 몰라, 이렇게 정한 겁니다." 한 거라고 번역이 돼서 나오는 겁니다.

다시 이제 잠언 말씀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여기 보면 12절에 하나님에 대해서 "마음을 저울질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나중에 "난 그것은 알지 못했다."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저울질하시는 이다. 그리고 그게 지금도 마음을 저울질하고 계시다라는 겁니다. 나중에 가서 저울질하신다는 게 아니라 지금, 내가 지금 억지로 끌려가고 있는 사람을 한 명을 보고 그 사람이 잘못하지 않았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말하지 않고, 그냥 모른 척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은 그 순간에 여러분 마음속에 말하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이와 비슷한 상황 가운데서 한번 경험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말만 하면 저 사람 풀려나는데, 여러분의 마음이 쿵쾅쿵쾅 마음속에서, 지금 여러분의 양심이 요동하고 있는 겁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말하지 않고 있으면, 내가 살려고 말하지 않고 있으면은 저 사람은 큰 어려움을 당할 텐데 내가 말해야 되나? 그런데 내가 말하면 내가 어려움을 당할 텐데, 이런 순간에 여러분의 마음속에 갈등이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갈등이 바로 마음을 저울질하시는 하나님이 여러분 마음속에 지금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이게 양심이라는 겁니다. 요즘에는 이제 저울이 좋아져서 무게를 딱 달면 바로 몇 킬로라고 딱 나오는데, 옛날에는 그런 저울이 아니라 이제 양팔 저울입니다. 그래서 이제 한쪽에 무게를 달아보고, 한쪽에 이제 추를 놔두고, 이게 10kg인지 추를 놔두고 무게를 달아보는 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 양쪽에 무게가 딱 맞으면 그 저울이 이제 평평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이게 10킬로구나 이렇게 딱 알게 되는 겁니다. 양심이 이제 그런 것 같습니다. 양심이 이제 저울과 같은 겁니다. 양심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에 대해서 아 이거는 올바른 일, 60점짜리입니다. 이렇게 딱 구체적으로 말해 주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양심은 그것이 옳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이것을 저울질해 줍니다. 우리 사람 마음속에 그게 있어요. 신기하게도, 어떤 일을 보고 내가 이 일을 하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건데, 이건 나쁜 건데,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몰라요. 그런데 내 마음이 알고, 내 마음속에 이미 그것이 잘못된 거라고 추가 이렇게 딱 기울어져 있는 겁니다. 양심이 그런 역할을 합니다. 참 우리가 그냥 우연히 홀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선과 악을 분명히 선언하신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겁니다. 그분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을 저울질하시는 이가 우리 마음을 통찰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은 내가 어떤 일을 행할 때에 그것은 이미 우리 마음속을 움직이고 계시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그 12절 뒷부분에 보면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얼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뇨" 하나님께서는 또 우리의 영혼을 지키시는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굉장히 민감한 것입니다. 굉장히 센스티브하고 손상되기가 쉬운 겁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이, 우리 몸이 이제 연약하니까, 우리 몸이 이제 점점 그냥 날씨만 조금 추워져도 감기 걸리고, 사실 우리 몸이 이제 편안하다고 느끼는 온도가 굉장히 좁은 범위에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 지구상에서만 살아서 이걸 잘 못 느끼는데, 우주적인 스케일로 하면은 이 온도라는 그 범위가 상상도 할 수 있을 정도로 너무 넓어요. 그런데 그렇게 엄청난 마이너스에서 엄청난 플러스에 이르는 그 온도 범위에서 사람이 살 수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온도가 10 몇 도 왔다 갔다 입니다. 몇 도 차예요 그리고 거기서 1도만 달라져도 느낍니다. 사람이, 여러분이 에어컨을 조금만 조작해도 사람들이 느낍니다. 그거를 겨우 1도 낮췄는데 사람들끼리 이제 싸움이 나는 거죠. 막 춥다고, 어떤 사람은 덥다고 하고, 막 이렇게 민감 정도가 굉장히 작은 범위에 있습니다. 우리 몸도 그런데 우리의 영혼은 더 심합니다. 우리의 영혼은 다른 사람이 저 멀리서 무슨 말만 한마디만 해도 사실 내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 내 얘기 비슷한 것 같은 하는 소리만 딱 들려도 '아, 뭐야.' 딱 이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의 혼이 그럴 정도인데, 우리 안에 있는 그 우리 사람의 핵심인 영은 더 민감한 겁니다. 우리의 영은 이제 하나님과 교통하는 그런 기관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영은 우리가 조금이라도 그 거룩하지 못한 것을 접촉하면, 죄를 범하게 되면, 금방 손상을 입는 겁니다. 금방 마음이 어두워지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사람들은 우리의 육체를 잘 지키려고 옷도 입고, 따뜻하게 하고, 뭐 여러 가지 다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제 어리석은 게 영혼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안 써요. 그런데 그 민감한 영혼을 하나님이 지키십니다. 하나님이 지키시지 않으면 우리의 영혼은 아마도 폭발할 거예요. 이 험난한 세상 가운데 제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저는 신기하게도 마음이 이상한 일이 있어서 그 순간에는 굉장히 심각하게 '아, 이거 어떻게 해야 돼?' 하고 있는데 시간이 좀 지나면 그게 신기하게 회복이 되더라고요. 이게 그냥 저는 처음에는 '시간이 약이구나. 시간만 지나면 다 그게 회복이 되는구나.' 이렇게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제가 이 말씀을 보니까, 시간이 회복시키는 게 아니라 이것을 회복시키시는 분이 있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된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회복시키시는 거예요. 만약에 하나님이 우리의 그 영혼을 붙들고 있지 않았으면 우리의 이 마음은 폭주할 겁니다. 그 슬픔과 낙심 가운데서 완전히 망가져 버릴 겁니다. 우리는 이것을 지금도 느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금 나의 영혼을 지키신다는 걸,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는 이제 장차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 12절,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여러분이 잘 기억하고 계시기 바랍니다.

여기 특별히 우리가 13절, 14절을 읽었는데 두 가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13절은 "꿀"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14절은 "지혜"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꿀은 이제 우리가 먹는 음식이죠. 달콤한 겁니다. 그리고 이게 우리한테 좋은 영양분을 주는 것입니다. 이 꿀이라는 것은 자연에서 나는 것 중에 자연의 액기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나무에서 꽃이 피고, 그 열매가 맺고, 그렇게 되잖아요. 그런데 꿀이라는 것은 그것의 액기스예요. 그 꽃에 아주 조금 분량이 있는 그 달콤한 그 자연이 줄 수 있는 최고의 것을 압축해서 준 겁니다. 열매보다도 그 꿀이 더 그것을 담고 있는 겁니다. 그것을 이제 먹으라고 우리한테 장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것이 우리 몸에 좋은 것을 말씀하시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제 하나님의 지혜가 우리에게 어떠한 것인지를 꿀에 비유해서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 자연이 주는 최고의 것, 그게 우리 몸에 좋고 우리 몸에 필요한 것처럼 우리 영혼에 필요한 것도 있다. 몸이 음식을 먹어야지 영양분을 취하는 것처럼, 우리 영혼도 그와 같은 영양분을 취해야 된다. 그리고 영혼에 줄 수 있는 최고의 것은 하나님의 지혜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걸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14절에 "지혜가 네 영혼에게 이와 같은 줄을 알라." 참 이 꿀이 우리 몸에 좋은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네 영혼에게 이와 같이 좋은 것인 줄 알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기울이면, 우리의 영혼이 지켜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강건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얻으면 정녕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그 마음은 항상 미래를 걱정합니다. 그리고 마음은 항상 소망이 있어야지 살 수 있습니다. 더 좋은 것, 더 기쁜 것, 이제 그 즐거운 날이 있겠지. 그 소망 가운데 있어야지 사람이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그것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 영혼에게 그것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다시 앞에 드린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러면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놔두고 왜 사람들은 도대체 거짓된 말을 선택하는 것입니까? 왜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나는 몰랐다라고 하는 것입니까? 사람들이 이 하나님을 거절했다는 것입니다. 변명의 여지없이, 그 하나님을 싫다라고 말하고 오히려 사단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것과 관련돼서 창세기 말씀 한 군데 보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3장 5절, 이 사단이 하는 거짓말입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5).

사단이 그 여자에게 이렇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지 말라. 그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사단은 그것을 거꾸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어도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오히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의 눈이 밝아서 하나님과 같이 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것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몰랐어요."라고 말하는 이유는 내가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따르지 않고 내 말대로 할 거야. 내가 원하는 대로 할 거야. 나도 내가 하고 싶은 일 정할 수 있지. 그리고 사단은 그것을 부추겨 줍니다. "그렇게 해도 돼. 그러면 너 자신을 찾을 거야."라고 말합니다. "너의 인생이잖아. 너가 알아서 살아." 그런데 이것이 거짓말인 게 그가 사단이 말한 대로 해서 그는 자기를 찾았나요? 그 아담과 하와는 오히려 자기를 잃어버립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주었던 그 위엄과 존귀를 잃어버립니다. 이제 더 이상 그 땅에서 합당하게 그 모든 피조물의 머리로서 그는 기능하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우리는 탕자의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어떤 아버지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버지 밑에서 살기 싫어서, 나도 이제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살겠다고 해서,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미리 달라고 그래서 그 유산을 가지고 먼 나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 탕자가 자기를 찾았나요? 그는 그 가진 재산을 모두 다 날려먹고 거지가 돼서 빌어먹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그래도 자기 인생인데, 다른 사람 말대로 사는 것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 망해도 좋고, 그렇게 하는 게 좋지 않은가요? 그게 자기 자기가 자기 찾은 거 아닌가요? 우리는 뭐 그게 내 인생이고 망해도 좋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실제로, 그래서 막 사는 거죠. 그 하나님을 떠나서 이게 참된 나 자신을 찾는 길이야, 그러면서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런 분들에게 이와 같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자기를 찾는 게 무엇입니까? 자기를 찾는 게 무엇입니까? 저는 자기를 찾는 게 그냥 아버지 밑에서 편안하게 안정적으로 농사 지으면서 잘 사는 그 삶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자기를 찾는다는 것은 그 사람이 원래 가지고 있던 그 가능성, 그 사람의 원래 가지고 있던 개성, 그것이 그대로 꽃피는 겁니다. 정말 그 사람이 가지고 있었던 가능성, 그게 온전히 실현되는 겁니다. 우리가 어떤 꽃을 보았을 때에, 정말 이 세상에는 정말 하나님이 만드신 게 다 그렇습니다. 정말 같은 꽃이 없습니다. 다 다른 꽃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꽃이, 그가 가지고 있는 그 아름다움, 본연의 아름다움을 결국에 잘 꽃피워서 나타냅니다. 그게 자기를 찾은 겁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그 개성을 온전히 아름답게 드러낸 겁니다.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을 그가 해낸 것입니다. 그게 자기를 찾은 겁니다. 그냥 방탕하게, 아무 제약 없이 마음대로 사는 게 자기를 찾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를 찾는데 훨씬 더 어려움을 겪는 겁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그 본연의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서 그는 얼마나 많은 훈련을 통과해야 됩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 모든 과정을 거치고, 정말 하나님이 의도하신 하나님이 그에게 둔 가능성을 온전히 나타냈을 때, 그가 자기를 찾은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이야말로 우리 각자가 자신을 찾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누구보다도 여러분보다도 더 하나님은 여러분이 자기 자신을 찾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원하고 계십니다.
한 가지 이제 대조되는 것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에베소서 2장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기서는 이제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2장 1절부터 나옵니다. 자기를 찾겠다고 이제 하나님을 떠나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말을 하고 있냐면,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2-3).

여기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인데, 그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 풍속을 쫓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 세상의 유행을 따라가 그냥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것을 사람들이 "와 멋있다!"라고 하면은 다 이제 그걸 쫓아갑니다. 이제 세상 사람들이 "저게 좋더라." 하면 다 그거를 얻으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본연의 모습이, 그들의 개성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모두 다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그냥 이 세상의 유행을 따라서 획일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기 보면 그들은 "공중에 권세 잡은 자를 따랐다"라고 돼 있습니다. 이건 사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건 내 일이니까 내가 결정해서 할 거야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 사단이 그들을 종으로 삼고, 사단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 결정 하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탕자는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자유롭게 살고자 하였지만 결국에는 그는 다른 사람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3절에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며" 그들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살아간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은 단지 그 죄악된 육신이 만들어내는 욕구일 뿐입니다. 그들은 자기를 찾겠다고 했지만 결국 자기를 잃어버린 겁니다. 그래서 사단이 한 말은 최악의 거짓말입니다. "네 마음대로 해. 네가 그 열매를 따먹으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네가 하나님처럼 되는 거야. 네가 하나님이야. 너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이게 최악의 거짓말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이제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3장 10절에 보겠습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여기 보면 아까와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이제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뭘 하냐면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이 온 우주에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냥 하나님의 지혜가 아니고 이제 "각종 지혜"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종류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사람을 다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종류로 나타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만이, 각 사람만이, 오직 그 사람만이 나타낼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가 있다는 겁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정말 그 자신을 찾은 겁니다. 그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셨던 그 기능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게 정말 자기를 찾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길을 가기를 원합니까? 여러분은 누구의 말을 들어야겠습니까? 정말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참 이 진리를 지금 듣는 가운데 여러분 마음속에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정말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것이 나의 최선임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나의 최대의 자유라는 것을 알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여러분에게 깨닫게 하기 위해서 여러분의 양심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지금도 여러분의 마음을 저울질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지금도 여러분의 마음을, 영혼을 지키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제 우리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이것을 계속 거절한다면, 나중에 여러분이 하나님을 그 심판자로 만났을 때 그분은 여러분의 모든 것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여러분은 내가 이것을 알지 못했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결코 그렇게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이제 처음에 말씀드렸던 그 이야기를 한 번 다시 드리겠습니다. 앞에 이제 어떤 한 사람이 끌려가고 있는 그 모습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사람은 잘못한 것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사람들의 그 미움과 시기로 인해서 그렇게 끌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류의 역사 가운데 일어났던 한 가지 사건입니다.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죄는 단 하나도 없는 한 분이,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을 사람들이 죽이겠다고 끌고 간 것입니다.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의 아들께서 그들 마음속에 빛을 비춰주시자, 그들이 지금 죄를 짓고 있고, 그들이 지금 그렇게 계속해서 살다가는 지옥에 가서 큰 고통을 당한다고 말씀하시자, 사람들은 그것을 싫어한 것입니다. 더 이상 그 말을 듣기 싫어한 겁니다. 그래서 어두움을 선택하고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고 거기서 죽게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이 일에 대해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속에 이것을 볼 때에 여러분의 양심이 요동치고 있을 것입니다. 내가 이것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할 것인가, "이건 잘못된 일이다. 저 사람은 죄가 없는 분이다. 저렇게 죽여서는 안 된다!" 이렇게 말할 것인가, 그런데 이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저 사람을 미워하고 죽여야 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을 것인가, 여러분은 이것을 선택하셔야 됩니다. 여기에 이 예수님에 대해서 "저 사람은 죄가 없는 분이다." 이렇게 말한 사람이 한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복음 말씀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눅 23:41).

여기 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 그 예수님 옆에 또한 두 강도가 양 옆에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지만 여러분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하지만 그 양 옆에 달린 두 강도는 자기들이 강도 행위를 했기 때문에, 그 잘못을 범했기 때문에 그 십자가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강도 중에 한 명이 이 예수님을 보고, 이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의 고난을 묵묵히 받으시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게 그것을 잘 감당하시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게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을 향해서 욕하거나 군중들을 향하여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볼 때에, 이 강도는 참으로 이분이 자기하고 다른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다." 나는 지금 이 사형을 받는 것이 마땅하지만,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다라고 분명하게 말한 것입니다. 참 이분은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또한 말합니다.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눅 23:42).

그는 이제 이분에게 부탁을 드리고 있습니다. 이분을 왕으로서 인정하고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부탁한 겁니다. 참 여러분도 이 강도와 같이 말하시기 바랍니다. 이 강도와 같이 분명하게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이분은 잘못한 것이 없다. 이 예수그리스도는 거룩하신 분이다. 이분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오직 나와 같은, 그리고 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다. 그리고 이분께 구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저를 생각해 주십시요." 주님께서는 결코 이와 같은 간청을 거절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그 강도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3:43).

그 강도에게 이와 같은 구원의 확신을 주고 계십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그 부자가 들어간 지옥이 아니라, 그 부자가 고통받고 있는 그러한 곳이 아니라, 나사로가 갔던 낙원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부자처럼 나는 알지 못했다. 이렇게 말하지 않길 바랍니다. 지금 우리는 이 땅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분이 죄가 없이 끌려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걸 분명하게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이분은 죄가 없는 분이다. 그분은 나를 위해서 죽으신 분입니다.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부탁하시기 바랍니다. 분명하게 여러분에게 구원의 선물을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