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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읽기 : 요한일서 2장 7-11절(요약)

박이레 2025. 11. 30. 15:41

성경읽기 : 요한일서 2장 7-11절(요약)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요일2:7-11, 개역한글)

- 장승훈 형제님 사회 : 2장 1절에 들어서서 저희들의 대언자로 계시는 주님에 대해서 묵상했습니다. 2절은 주님의 대언자로써 일하시는 근거가 나옵니다. 그리고 3절부터 그의 행동과 간증이 불일치 되는 사람들,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1장 9절과 2장 1절의 말씀을 잘못 이해해서 죄를 그대로 범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구원받은 자가 아닙니다. 저희들의 믿음과 그 드러나는 행위가(부분적인 불일치는 있을수 있지만 대부분은) 반드시 일치해야 합니다.
7절에 와서 새 계명을 말씀하십니다. 새 계명과 옛 계명의 관계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 계명이 저희가 아는 새 계명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새 계명은 무엇이냐에 대해서 교제할수 있을 것입니다. 7-8절을 먼저 교제하고 이어서 9절 이하를 교제하도록 하겠습니다.

- 김윤철 형제님 : 7절에 요한 사도는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것이 아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요한복음에서 주님께서 주셨던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미 들었던 말씀, 계명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한 사도는 7절에서 새 계명이 아니라고 했는데, 8절에서는 새 계명을 쓴다고 말합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주님께서 오시기 전에도 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새 계명을 주셨기에 옛 계명이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랑의 본을 보이셨기에, 옛 계명이 새 계명처럼 빛난다고 생각해 볼수 있겠습니다.

- 장승훈 형제님 사회 : 이 새롭다는 말이 왜 붙었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8절에도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라는 것에 대해서도 교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최재홍 형제님 : 7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하는 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7절에 나온 새 계명은 이미 이스라엘 율법 아래서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것입니다. 레위기 19장 18절 말씀과 같습니다. '새'라는 것은 새롭다는 것이 아니라 진리와 정도에 있어서 새롭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내용은 오래전부터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의 본질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보입니다. 주님을 본받아서 그 삶에서 실제적으로 드러나야 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6절에서는 주님처럼 걸어가고, 7절에서는 주님처럼 살아야 함을 말씀합니다. 그 계명이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삶에서 실제적으로 드러나야 함을 사도는 말씀합니다. 주님의 삶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난 것이 사랑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도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할 것을 말씀하셨고, 스스로 그대로 행하셨습니다. 이 새 계명이 참된것은 주님의 삶에서 본을 보이셨듯이 저희도 그 삶 가운데서 그 모습이 드러나야 합니다. 옛 계명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고, 새 계명도 주님께서 저희를 사랑하신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8절에 "어두움이 지나가고" 이는 완전히 지나간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해서 물러나고 있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참 빛이신 주님께서 비춰질 때 죄인들은 주님께로 돌이키고, 구원받고, 구원받은 성도가 서로 사랑하며 주님을 닮아가도록 부르고 계시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형제님께서 언급해 주신 말씀중에서 레위기에서 하나님께서 계명을 주셨지만 이스라엘은 지킬수 없었습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레19:18, 개역한글)

그리고 마태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이 계명을 언급하십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5:43-44, 개역한글)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에 자기를 못박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실제로 그 말씀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이와같이 행하고 있었습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마5:46, 개역한글)

율법으로는 우리가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율법은 우리가 죄인인 것을 알게 해주고,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을 보면, 주님께서 계명의 본질을 말씀하시고 그 본을 보이셨습니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을 받습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으로 구원받지 못한 이유는 사람이 율법으로 구원받을 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율법으로 구원받을 만한 능력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받기도 전에 우상숭배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옛 계명을 지킬수 없는 자였지만, 은혜로 구원을 받고, 성령을 주셔서 주님의 본을 따라 살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어서 9-11절을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김보영 형제님 :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13:34, 개역한글)

이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신 이유는, 이 사랑이 모든 계명을 완성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22:37-40, 개역한글)

그리고 이 사랑은 주님의 사랑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할 때에 율법은 완성됩니다.
그렇다면 왜 사도요한은 옛 계명과 새 계명을 혼합하며 이렇게 어렵게 말씀하고 있을까요? 이는 영지주의자들과 여전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만이 하나님께 말씀을 받아 전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 전의석 형제님 : 7절은 "사랑하는 자들아"로 시작합니다. 영어성경으로는 "형제들아"로 시작합니다만, 저는 한국어 성경으로 번역된 것이 더 마음에 아멘이 됩니다. 요한은 이 말씀을 받을수 있는 자들을 "사랑하는 자들"로 전제합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자들이며, 그렇기에 형제를 사랑할수 있습니다. 이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저희들이 받은 사랑과는 질적으로 다른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신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잘 나타냈다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가장 낮은 자리에서 우리를 사랑하셨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이 어두움을 저희 마음 가운데 제거해 주셨습니다. 빛이 비쳐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오셔서, 주님의 다스리는 때가 오면, 영원한 나라에서는 밤이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곧 그날이 올것을 8절에서 계시해주고 계시다고 생각됩니다.

- 김윤철 형제님 : 9-11절은 사랑과 미움, 빛과 어둠을 대조하며 성도들의 믿음 생활을 강조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9절에 빛가운데 있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의 판단이며, 그렇게 말하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움 가운데 있음을 말씀합니다. 미움은 어둠이라는 것을 여기서 확인할수 있습니다. 미움은 우리 마음에 자리잡고 있다면 우리 믿음에도 크게 영향을 주고 어둠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고 내 마음속에 미움과 원망이 있는지 생각해보고 점검해 보게 되었습니다.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11절) 형제, 자매를 향한 미운 마음을 잠시라도 갖는다면 그것은 우리 마음에 뿌리를 내려 외곡된 현실을 보게 할 것입니다. 빛이 비춰져도 그 빛을 제대로 볼수 없을 것입니다.

- 김보영 형제님 : 8절을 좀더 보충해서 교제하겠습니다.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비취신 참빛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빛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1. 아들 하나님을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그 놀라운 사랑을 봅니다. 2. 이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처럼 십자가로 가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의롭다 하셨습니다. 3. 성령 하나님을 보내사 성령 하나님을 좇아 살며 주님과 같이 빛된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 전의석 형제님 : 9절에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이를 저희들이 어떻게 봐야할지 모르겠습니다. 형제를 향해서 끊임없이 미워하는 태도를 보이는 자를 구원받지 못한 자로 봐야 할 것인지... 그런데 이것은 가끔 화를내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악한 마음을 품는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10절은 대조적으로 형제를 사랑하는자가 나오는데요. 이도 지속적으로, 습관적으로 형제를 사랑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형제로서의 지위에 합당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같이 계속 나아가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리낌이 없는, 걸림돌이 없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는 잘못하고 있는 형제를 보았을 때, 그렇다면 죄를 미워하고 형제를 미워하지 말아야 하는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럴때는 여기 말씀을 대입하지 않고 다른 말씀을 대입해야 하지 않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형제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 합니다. 죄는 미워하고 형제를 미워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마18:15, 개역한글)

권고하는 것은 형제를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그 형제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말을 하는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권고의 말을 들었을때 그 사랑하는 마음을 받는것이 아니라, 듣기 싫은 말을 했기에 싫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모임 안에서 권고를 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그 권고의 내용을 봐야 합니다.

그리고 형제님께서 질문하셨던 부분도 저도 계속 고민하는 부분인데요. 저는 이 사람이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모임안에는 있는 것입니다. 빛가운데 있다고 말하면서 형제를 계속 미워하는것은 어둠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10절은 빛가운데 거하면서 형제를 사랑합니다. 그렇기에 그 중간은 없습니다. 우리가 일시적으로 실수할수 있지만, 우리가 계속해서 이러한 행동을 반복한다면, 어둠인 것입니다.
이 모임 안에 이미 빛 가운데 있는 사람이 있고, 어둠 가운데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빛 가운데 있는 사람이 일시적으로 어둠에 있을수 있지만 그는 다시 빛에 거합니다. 그리고 어둠 가운데 있는 사람이 나는 빛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그 행동이 어둠이라면 어둠 가운데 거하는 자인 것입니다.

- 김보영 형제님 : 9절은 7-8절과 연관해서 생각할수밖에 없습니다. 참 빛을 받은 자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어 구원받으면 반드시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할수밖에 없습니다. 그같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나 구원받지 않은 자는 그 사랑이 없기 때문에 형제를 사랑할수 없습니다.

- 최재홍 형제님 : 9절에 "빛 가운데 있다"는 것은 하나님과 교제하며 동행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대로 순종하는 자는 당연히 형제를 사랑하는 것을 드러낼수 있습니다. 성도의 믿음이 진실한지를 보려면, 사람과의 올바른 관계로 볼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바른 사람이 성도들과의 관계가 바르게 드러납니다.
"미워하는 자는" 이는 현재분사형입니다. 이는 한번이 아니라 지속적인 행동을 말합니다. 단지 싫어하는 감정이 아니라 무관심하고, 배려하지 않고, 해를 끼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이는 사도요한이 지금 글을 쓰고 있는 현재의 상황까지를 말합니다. 곧, 빛 가운데 있다 주장하면서 어두운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요한일서는 계속해서 빛 가운데 있는자와 어두운 가운데 있는자, 성도와 믿지 않는 자를 대조적으로 보여줍니다. 그 믿음은 그 형제를 사랑하는 모습으로써 드러남을 말해줍니다.

10절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를 말해줍니다. 그는 빛 가운데 머무릅니다. 하나님의 진리와 말씀을 사랑하며 그 안에 거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계속해서 유지되는 사람입니다.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거리낌은 걸림돌, 덫, 실족하게 하는 것입니다. 두가지를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1. 그가 빛 가운데 있기 때문에 그가 잘 넘어지지 않습니다. 2. 그리고 그가 빛 가운데 있기 떄문에 다른 성도를 실족하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서신서가 쓰여진 이유는 성도가 하나님과의 교제로 기쁨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 장승훈 형제님 : 8절에 주님께서 그 빛을 비취시고 있는데, 9절에도 그럼에도 그 빛을 받지 않는 사람들이 있음을 말씀합니다. 그는 어둠 가운데 있고, 어둠 가운데 행합니다. 그리고 그의 가게 될 결국도 말씀합니다.(11절) 일시적으로는 모임안에서 믿는 사람처럼 행동할수 있지만, 그 사람의 결국을 이 말씀을 통해서 알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