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성경읽기(요약글)/요한일서 성경읽기(요약)진행 중

성경읽기 : 요한일서 2장 3-6절(요약)

박이레 2025. 11. 16. 15:36

성경읽기 : 요한일서 2장 3-6절(요약)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 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대로 자기도 행할찌니라 (요일2:3-6, 개역한글)

- 김민원 형제님 사회 : 2장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나옵니다. 그리고 4절부터 10절까지 '어떠어떠한 자'에 대해서 나옵니다.
먼저 4-6절까지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김윤철 형제님 : 4절에서 요한사도는 하나님을 안다는 고백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삶과 떨어질수 없음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것은 거짓말하는 자이며 진리가 그속에 없는 자입니다. 사람은 진리 가운데서 빛가운데 걷거나, 어둠가운데 행하는자, 둘 중에 하나입니다.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이는 그가 구원받지 않았음을 뜻하는 것일 것입니다.
계명은 말씀이 될수 있지만, 말씀을 계명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도 계명을 지키는 것과 말씀을 지키는 것을 구분하셨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이 명확히 명령하신 것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말씀은 계명보다 더 크고 넓은 개념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안에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말씀을 지킨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한 칭찬으로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을 얼마나 기뻐하시는지를 계시록 말씀을 통해서 보이십니다. 또한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삶 가운데 거하는 것은 그 생명을 드러내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대로 자기도 행할찌니라 (요일2:6, 개역한글)

주님과 같은 생명을 가진 자라고 고백한다면, 이 땅 가운데서 실제로 주님의 행하심을 닮은 삶을 드러내는 삶을 살것입니다. "행할찌니라"라고 사도는 명령형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완전하게 행하는 삶을 사는 것은 사람의 시선으로는 불가능하게 보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는 그 안에 거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주어졌기에 그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본을 따라 살수 있음을 말씀합니다.(6절)

- 전의석 형제님 : 4절은 3절에 있는 말씀에 대한 반대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안다고 말하지만 그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가 있습니다. 복음 말씀시간에도 말씀되었지만, 이 안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들의 신앙고백과 저희들의 삶은 자연스럽게 일치가 되어야 합니다. 그와같은 것이 100%라고 할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그와같이 나아가는 삶은 진리를 드러내는 것을 교훈해 주고 계신것 같습니다.
그래서 5절에서 말씀을 지키는 것과 계명을 지키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는 윤철 형제님의 말씀대로 순종을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그의 행하시는대로"(6절) 주님의 행하시는 대로 우리도 똑같이 행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복음서에 주님의 행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계명을 순종하는 것을 넘어서서 주님의 삶은 본받는 것이 저희들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또 주님께서 저희를 사랑하신 것처럼, 형제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4절에 계명이라고 했을 때에 이 '계명'이 복수입니다. '계명들'입니다. 그러나 '새 계명'은 단수입니다. 새 계명은 주님께서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하신 요한복음 말씀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때 이러한 것들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 김보영 형제님 : 4절 말씀을 보충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를 아노라 하고" 가정법을 1장 8절에서 설명했습니다. 사도는 가정법을 사용하고 그 가정이 거짓말임을 밝히기 위해서 모순된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말로는 자기가 하나님을 안다고 하고 실제로 행치 않으면 하나님 편에 있지 않은 자임을 말씀합니다. 야고보서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말씀과 일맥 상통한다고 할수 있습니다.
사도는 계명을 요한복음에서 진리의 말씀, 하나님, 빛이라고 보았습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않는다면 어둠 가운데 있는 마귀의 자녀임을 사도바울은 말씀합니다. 이런 자들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없고 성도를 사랑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 최재홍 형제님 : 하나님이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자가 하나님을 안다고 한다면 그것은 자기 기만이고 세상 종교의 모습을 하는 것입니다.(4절), (마태복음 7장 21절)
또 주님을 아는 것과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같은 것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을 믿은 자는 주님안에 거하기 때문입니다. 또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지속적으로 말씀을 순종하는 자입니다.
"온전케 되었나니"(5절) 수동형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지속적으로 우리 안에서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5절) 그 삶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말씀을 지키는 자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하게 된다는 것은, 그 사랑이 감정 표현이 아니라 순종이라는 행동으로 실제적으로 드러남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거하고 실제적인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합니다.
주님의 거룩하심, 순종하심, 사랑하심, 용서하심들을 본받아서 저희들의 실제 삶에서 그대로 나타내야 합니다. 이미 본으로써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는 지를 나타내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저희도 주님을 따라 살아갈수 있습니다.
"저안에 거한다"(6절) 이는 지속적으로 그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친밀한 표현이며, 주님과 가까운 사람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그의 행하시는대로" 원어의 뜻이 행동하다, 생활하다는 뜻입니다. 그 사람의 삶 전체의 방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저희들의 삶의 방향이 어디로 되어 있는지, 주님을 향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자신의 삶에서 주님을 경험적으로 아는 자는 주님을 닮아갈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 가운데 걸어가는 사람은 주님의 길을 자연스럽게 따라갈수 있습니다. 사도요한이 말씀하는 바는 교제의 깊이는 그 사람의 삶의 순종과 성도의 거룩함으로 드러남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순종하고 세상의 죄에서 떠나서 얼마나 구별되어 생활하고 있는가가 드러내주는 것입니다.

- 김보영 형제님 :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5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서 온전케 되었기에 우리가 말씀을 지키게 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이것이 상당히 난해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저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대로 자기도 행할찌니라"(6절) 이는 요한복음 12장 포도나무의 비유에서도 많이 사용되는 표현 같습니다. 저안에 거한다는 것은 성도가 주님 안에서 안식함을 나타내는 표현 같습니다. "그의 행하시는대로 자기도 행할찌니라" 이는 구원받은 자만이 행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정말로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가도 살피게 되었습니다.

- 김민원 형제님 : 3-4절을 볼 때에 주님을 안다고 하는 것은 입으로 주님을 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주님의 계명을 지키고 순종하는 것이 주님을 아는 것입니다. 또 5절에서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나옵니다. 4절까지는 계명이 복수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계명들을 지키고 순종하는 것이라면, 5절은 단수형입니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주님을 따르는 것을 말씀하는 것으로 생각되고요.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그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온전케 해주셨기 때문에 본성적으로 계명을 지키는 자가 되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주 안에 거하는 자가 되었을 때에 그의 행하시는대로 행하게 됨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7-8절 사랑하는 자와 미워하는 자에 대해서도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전의석 형제님 : 5절을 좀더 첨언해 보고자 합니다. 온전케 되었다는 것,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사 그 안에서 순종케 하는 자들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 한 측면으로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그 사랑이 순종을 통해서 나타나게 되는 것, 그래서 온전하게 되는 것, 이 두가지 측면이 다 나타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 장승훈 형제님 :  3절로 와서 계명을 지킬것을 말씀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신분적으로 온전케 된 자들입니다. 상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2장 3절부터 계명을 지킬것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계명을 지키지 않은 자들은 거짓말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것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3:20, 개역한글)

율법의 역할은 예수 그리스께 저희들을 인도하는 몽학선생과 같은 역할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롬3:31, 개역한글)

그리고 계명을 지키는 것은 요한복음 14장입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14:15, 개역한글)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14:21, 개역한글)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요14:23, 개역한글)

그러면 우리가 실제적인 삶에서 계명을 완전히 지킬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요14:16, 개역한글)

저희와 함께 영원히 계시는 성령 하나님이 계십니다. 주님께서 계명을 언급하시면서 성령님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것을 보는 눈이 트인 자들입니다.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14:17, 개역한글)

순종은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과 저희와의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요14:23, 개역한글)

이 말씀은 계시록 3장으로 연결됩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계3:21, 개역한글)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이 함께 앉아있는 것처럼 이기는 자들을 함께 앉게 하겠다고 말씀합니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단순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나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사이에 주님께서 저희들에게 어떠한 것을 주셨는지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26절에서 저희에게 진리를 알게 하시는 성령님을 말씀하고 27절에서는 세상이 주는것과 같지 않은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말씀해 주십니다. 이런 주님께서 주시는 것들을 저희들이 부단히 지키는 노력을 하는 자들입니다.
저희가 모든 계명을 지킴으로써 주님을 완전히 사랑하고 있다고 말할수 있는 자들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계명을 지킨다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1장 9절에 나온것처럼,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 앞에 자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항상 감사하고, 주님께서 약속해 주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저희들이 기억하고, 순종들이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저희들이 불완전한 저희 가운데서도 순종 가운데서 온전케 되어갑니다. 이것이 잘 이해는 안되지만 이렇게 이해해 볼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2장은 이어서 형제 사랑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5절 이하에서 나오는 계명은 단수로 계속 나옵니다. 7절에는 새 계명과 옛 계명을 나눠서 말씀합니다. 사실 새 계명도, 옛 계명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를 1장부터 이어서 생각해 본다면, 성도들과의 사귐으로 계명이 확장됨을 이 말씀 가운데 말씀해 주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