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 : 요한일서 1장 5-9절(요약)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1:5-9, 개역한글)
- 김윤철 형제님 사회 : 지난 시간 4절에 대해서 제가 질문을 드렸는데요. 사도가 이 서신을 받는 자들에게 기쁨을 충만케 하려고 썼다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요한사도 뿐만 아니라 주님을 본 모든 사도를 우리라고 한다면, 그들의 그 증거를 들은 자들이 두번째 '우리'가 되어 또다시 전해져 기쁨이 충만케 되는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쁨이 충만해지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4절에서의 사귐의 본질이 이와같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은 5절부터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여기서 교제, 사귐이 나옵니다. 이같은 교제와 사귐은 다른것으로 하는것이 아니고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교제는 아버지와 아들을 통한 교제가 진정한 사귐입니다. 더 나아가면 같은 진리를 가지고 있는, 진리 가운데서 같이 행할때 기쁨과 교제가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 저는 '너희의 기쁨'과 '우리의 기쁨'이 조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사도요한 편에서 쓰는것은 우리의 기쁨이고, 수신자들이 너희의 기쁨이라고 본다면, 주님의 복음을 말하는 자들에게도 큰 기쁨이 있고요. 또 전하는 자들에게도 큰 기쁨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요한은 빛되신 하나님에 대해서 말할 때에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의 기쁨"을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 김윤철 형제님 :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5절) 사도는 주님으로부터 직접적으로 풍성함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전하라고 가르치신 복음이 요약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고, 절대적으로 완벽하시고 의로움 외에는 없으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과의 교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6절에 어둠 가운데서 행하는 것은 7절에 빛가운데 행하는 것과 대조됩니다. 6절의 사람은 아직 거듭나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어둠 가운데 있는 사람은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을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거룩하신 분이고 빛이시므로 그 안에는 어둠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행하는 우리도 그와 같아야 함을 7절에서 교훈받습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요한일서 1장 5절은 요한복음 1장 5절과도 대조된다고 생각합니다.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1:5, 개역한글)
아직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이와같다고 생각합니다. 요한복음서는 복음서이기에 이같이 써 있다면 믿는자들을 위한 요한일서는 성도들을 위한 이같은 내용이 써 있습니다. 주님은 빛이십니다. 빛은 생명과 연관되어 있고요. 또 도덕적으로는 거룩함과 연관되어 있고 지적으로는 하나님의 영광과도 연관되어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6절에서는 선언을 이렇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이는 신앙고백입니다. 그런데 어둠 가운데 행하면 그것은 거짓말임을 말씀합니다. 믿는 자이고 진리 가운데 있다면 그 신앙고백처럼 행함으로 나타내야 함을 말씀합니다.
7절에서는 그 신앙고백과 행함이 일치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사귐이 있고, 교통함이 있음을 말씀합니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7절)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9절) 모든 죄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해결 할수 없는 죄는 없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 주님의 이와같은 놀라운 피의 능력이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진리의 토대위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9절에서는 그 가운데서 우리의 삶이 여전히 죄 가운데 있다는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죄를 가복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죄를 용서하십니다. 우리의 삶에서의 죄는 자녀로서의 지위를 박탈 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사귐과 교제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그럴 때 우리가 회개하는 심령으로 자복하면 그 죄가 용서되는 은혜가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있음을 묵상하게 됩니다.
- 최재홍 형제님 : 앞서 5절에서 하나님은 빛이시라고 먼저 선언했습니다. 그래서 6절 이하에서부터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자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빛 가운데서 걷는 삶입니다. 6절에서 "항하다"라고 되어 있는데요. 이는 성경에서 삶의 방식이나 지속적인 생활을 뜻할 때에 사용됩니다. 6절에서 "어두움"이 나와 있는데요. 문맥적으로 죄, 위선, 도덕적 타락을 나타낸다고 생각됩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정반대의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한다 하면서 죄악된 삶을 산다면 스스로를 속이며 진리안에 있지 않음을 말씀합니다.
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것 같이 저희도 빛 가운데 행하라"고 합니다. 이는 지속적인 것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1절에서 선포된대로 하나님은 빛이심을 말씀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저희들의 죄는 낱낱히 드러날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귐에 앞서서 죄에대한 자백이 필요합니다. 이 빛이 비춰지는 것은 저희들을 심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은혜로 주어지는 것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 하나님과 교제 가운데 있다 하면서 다른 성도를 미워하거나, 분리 가운데 있거나, 교제하지 않는것은 하나님과 교제 가운데 있는것이 아닙니다. "그 아들의 피가...깨끗하게 하실것이요" 하나님의 죄용서의 기준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에 있습니다.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이는 현재 시제로 적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과거의 죄를 속하셨을뿐 아니라 지금도 지속적으로 죄를 속하는 능력이 있음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8절에서 죄는 단수로 적혀 있습니다. 그래서 죄의 원리나 본질, 뿌리를 말합니다. 10절의 죄는 복수로 적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죄의 행동이나, 그가 짓는 악행들을 말합니다. 그래서 8절에서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죄의 뿌리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는 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죄에 대해서도 모르고 하나님을 부정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자들은 죄에 대해서 민감하고 확실하게 반응하는 사람, 그리고 하나님 앞에 자백하는 들입니다. "스스로 속이고" 그리고 죄를 인정하지 않는 자는 가장 먼저 속이는 대상이 자기 자신입니다. 그리고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 김보영 형제님 : 8절을 교제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죄 없다하면" 여기서 '우리'는 누구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구원받은 성도를 지칭하는 것으로 분별합니다. 성도들이 죄가 없어서 의롭다함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가면서 때때로 죄를 짓고 삽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과거의 죄 뿐만 아니라 미래의 죄도 다 사해주셨기 때문에 이를 믿음으로 성도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적인 차원에서 구원받은 성도라도 죄를 짓습니다. 그래서 9절 말씀에서 회개가 필요한 것으로 받아들이면 이해가 쉽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 김대현 형제님 : 5절에서 하나님은 빛이시고 어둠이 조금도 없음을 말씀합니다. 이 빛은 하나님 안에 있는 진리와 성결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빛 가까이 있으면 어둠이 없지만, 그 빛에서 점점 멀어지면 어두워 집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성도는 빛되신 하나님과 가까이 거해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7절)
- 최재홍 형제님 : 9절을 교제하고자 합니다.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요. 먼저죄신 형제님들께서 다시 번역을 해주셨는데요. "자백하면" 현재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하시며", "깨끗케 하실 것이요" 과거형으로 적혀 있습니다. 그래서 옳게 번역하면 "우리가 자백하면 하나님은 이미 십자가에서 죄가 완벽히 처리되었다는 것을 보이신다." 입니다.
성도가 죄를 깨달았을때 그 죄를 즉시 하나님께 고함으로써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가운데 살수 있음을 말씀합니다. 저희가 자백할 때에 그때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해주시는 것을 말해주지 않습니다. 또는 언제 죄가 용서될지를 말해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의 미래의 죄까지 용서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이미 용서하신 사실에 대해서 감사를 드리는 것을 자백하는 가운데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9절에 미쁘심을 말씀합니다. 이는 신실하심을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근거로 죄를 용서하심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죄를 자백하는 자를 용서하시는 것 또한 하나님의 의로움에 근거한 것입니다. 저희들의 죄 사함은 완전하고 영원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희가 구원받은 후에도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해서 죄를 지을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죄를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이를 숨기지 않고 구체적으로 말씀드려야 합니다. 자백하다는 뜻이 고소당하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저쪽편이 말하는 것에 동의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곧, 하나님께서 죄라고 하시는 것에 옳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희가 자백할 때에 용서해주시는데요.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물로 씻음받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요13:10, 개역한글)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엡5:26, 개역한글)
하나님의 말씀은 저희가 동일한 죄를 또 범하지 않도록 저희를 보호해주시고, 또 저희가 죄를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수 있도록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죄를 이기고 항상 빛 가운데서 살아가야 함을 필요성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 김보영 형제님 : 9절 말씀이 형제가 교제해 준 대로 잘못하면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당시의 영지주의자들이나, 현대의 완전성화주의자들이 잘못 적용하는 내용들입니다.
여기 말씀에서도 우리가 죄를 짓게되면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하는 것처럼 되어 있지만, 우리가 주님을 믿는 순간에 그 죄는 모두 사해졌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육신의 죄를 지으면 영적인 침체에 빠지고 주님과의 교제가 단절됩니다. 그래서 "깨끗케 한다"는 주님과의 영적인 교제의 회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 장승훈 형제님 : 지난시간에도 영지주의자들에 대해서 언급이 되었습니다. 다시한번 이를 짚어보면요. 영지주의자들은 영은 온전하고 선하고 육은 악하다고 합니다. 영이 실제고, 육은 실제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육을 입고 오셨을리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에 대해서 요한일서는 4장 2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찌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요일4:2, 개역한글)
영지주의자들의 중요한 교리를 반박합니다. 그리고 1장 5절에서도 그와같은 것을 반박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생명이신 주님에 대해서 언급되었고, 5절에서는 빛이신 하나님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그리고 6절에서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면서 어둠 가운데 거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곧 말과 행동이 다른 자들입니다. 아마도 영지주의자들의 행동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영이기 때문에 육이 어떻게 행하든 상관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믿는 자들은 그 믿음에 합당한 행동을 한다.(로마서, 야고보서)
그리고 주님께서 육체를 입고오신 것을 부정합니다. 육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영이 중요하기에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마저도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것 같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데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입니다.(7절)
이 피로 말미암아 용서받은 자들은 건짐을 받을뿐만 아니라 그보다 훨씬 위의 단계로 하나님을 우리를 올리셨습니다. 빛 가운데 하나님과 교제하는 관계로 격상시키셨습니다.
8절에서 "우리가 죄 없다하면" 영지주의자들은 영이 중요하기 때문에 육이 어떻든 죄없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스스로 속이고 진리가 그 속에 없습니다.
9절에서는 형제님들께서 교제하신 것처럼 어떤 문제가 있느냐면, 자백하면 우리 죄를 사하신다 한다면, 자백하지 않고 죽으면 지옥에 가면 그것은 말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죄를 사하신 사건은 완료가 되었습니다. 이미 과거형입니다. 죄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거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죄가 들어옴으로써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해가 됩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내가 자백하지 않아도 천국에 갈수 있다고 생각하고 자백하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면, 이 사람은 정말 구원받은 사람이냐?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정말로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이 말씀을 가지고 우리가 자백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의 회복을 위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만일 그같은 모습이 없는 사람이라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구원받은 것이 맞는지를 되짚어 보아야 합니다.
'대전 중구 성경읽기(요약글) > 요한일서 성경읽기(요약)진행 중'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성경읽기 : 요한일서 2장 12-16절(요약) (1) | 2025.12.14 |
|---|---|
| 성경읽기 : 요한일서 2장 7-11절(요약) (0) | 2025.11.30 |
| 성경읽기 : 요한일서 2장 3-6절(요약) (1) | 2025.11.16 |
| 성경읽기 : 요한일서 1장 10절, 2장 1-2절(요약) (0) | 2025.11.09 |
| 성경읽기 : 요한일서 1장 1-4절 (0) | 2025.1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