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 : 요한일서 1장 10절, 2장 1-2절(요약)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요일1:10, 개역한글)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요일2:1-2, 개역한글)
- 전의석 형제님 사회 : 1장은 10절을 남겨놓고 있는데요. 10절을 교제하려면 앞의 8-9절을 맥락 가운데서 교제해야 합니다. 형제님들께서 교제해 주시고 이어서 2장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요한일서는 다른 서신서와 다르게 수신인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어느 지역모임이나 개인에게 보내는것이 아닙니다. 아비들과 청년들과 자녀들에게 라는 말로써 가족적인 관계로 사도요한이 저희들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마지막도 특이하게 끝납니다.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 인사말이나 그런것이 전혀 없이 권함과 권면으로 시작해서 권면으로 끝납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보다 요한일서가 더 뒤에 쓰여졌다고 합니다. 밧모섬의 유배가 끝나고 요한사도가 에베소에 가서 썼다고 역사적으로 남겨져 있습니다.
2장은 의로운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2장의 마지막은 의를 어떻게 행할지를 말씀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1-4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5-6 행하는 것, 7-11절까지 형제를 사랑하는 것, 그리고 이 모든것은 사랑이라는 주제 가운데서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한다는 것을 요한사도는 말씀합니다. 그리고 계명을 알면서 지키지 않는 것, 또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들, 이렇게 대조를 말씀합니다. 2장의 개요를 간단하게 말씀드렸습니다.
- 김윤철 형제님 : 2장 1절부터는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범했을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또 하나님을 아는 것에 대해서 시작합니다. "나의 자녀들아" 사도가 수신자들보다 연로한 입장에서 사용하는 친근한 표현입니다. 요한은 사도로써가 아니라 아비로써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가족 안에서 자녀들이 죄를 멀리하고 빛 가운데 거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이는 단순히 죄를 범치 말라는 것이 아니라 죄를 이길수 있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완전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 의롭다함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대언자는 헬라어로 법정용어입니다. 법정에서 대언하는 자, 중보자라는 뜻입니다. 사단은 우리의 죄를 고발하며 우리가 죄인이라고 고발하지만 주님께서는 주님의 십자가를 보이시며 그 죄를 이미 갚았음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죄를 결코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화목제물로써 그 죄를 다 갚으셨습니다. "우리만 위할뿐 아니요" 여기서 '우리'는 유대인을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있음을 말씀합니다. 그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만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적용받을수 있습니다.(2절)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3절) 여기서 안다는 것은 지식적으로 아는 것은 단순히 지식적으로 아는것이 아니라 친밀함 가운데서 믿음으로 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 최재홍 형제님 : 사도요한은 1절에서 성도들에게 죄를 가볍게 여기지 말것을 말씀합니다. 성도가 자백하면 하나님께서는 죄를 용서해주십니다. 그럼에도 죄를 범하는 것에 대해서 가볍게 생각하지 말것을 말씀해 주시는데요. 성도는 죄에 대해서 두려움과 증오, 거부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저희들은 구원받은 후에도 죄가 없는 완전한 상태로 있지 않습니다. 그럼으로 인해서 실망하거나 실족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 가운데 머물지 않고 살아가도록 부르십니다.
저희들에게는 성도를 위해서 중보하고 계시는 대제사장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저희들의 죄에 대해서 변명하거나, 대충 중보하거나, 감정적으로 호소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의 공의로운 속죄를 근거해서 법적으로 중보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저희들의 연약함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죄에 빠졌을때에 거기서 다시 회복되어 나아갈수 있는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그래서 대언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보좌앞에 담대히 나갈수 있습니다.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2절) 주님의 속죄는 단번에 이루어졌고, 그 효력은 믿는 자들 안에서 계속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구원에 대해서 저희들이 할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님 쪽에서 이 모든 것을 다 예비하시고,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덮고 그냥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속죄로 법적으로 해결되었음을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의로우심으로 죄에 대해서 심판하실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 심판을 감당할 어린양을 친히 예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화목제물이 다 드려진 이후에 저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저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 화목제물을 예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사랑하시고 이 모든 구원 계획을 예비하시고 이루셨습니다.
"온 세상의 죄를 위함이라"(2절) 온 세상의 사람들에게 이 구원의 길이 열려 있음을 말씀합니다. 저희들이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든지간에 상관없이 용서의 근거가 되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주님의 속죄는 과거에 단번에 완성하셨습니다. 이는 모든 민족, 모든 세대, 모든 사람들에게 효력이 있는 속죄의 근거입니다.
- 김보영 형제님 : 2절에서 '화목제'라고 하는 원어는 주님께서 그 거룩하신 생명을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달랬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1절의 '대언자'와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우리만 위할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그리고 이 주님의 대속사역 온 인류의 죄를 위한 대속사역입니다.
이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온 세상 사람의 죄를 단번에 다 정리했다면, 그것은 우리의 믿음과 상관없이 다 구원받는것 아니냐는 만인 구원론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믿은 사람만이 주님의 십자가의 구속의 효력을 적용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복음을 듣고 믿어 무리가 된 자들이 구원받는 다는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고 주님을 믿는 모든 자들은 구원받을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 전의석 형제님 : 1장 10절에서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라고 합니다. 이는 단순히 하나님을 단순히 거짓말하는 분이 아니라 그 성품 까지도 거짓말하는 분으로 비난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요한일서의 배경이 되는 영지주의자들의 주된 주장이었다고 합니다.
영지주의자에 대해서 좀 찾아보았는데요. 영지 할때에 영에 대해서 잘 안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곧, 영에 대해서 자신들이 다 알고 있다고 주장한다고 합니다. 그들의 주장에는 세가지가 있는데요. 첫째는 예수님을 하나님이 아니고 한낮 인간이라고 주장하는 주장이 있고, 또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지 않고 영으로만 계신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또 마지막 주장은 겟세마네 동산 전까지는 주님의 사역이었지만, 겟세마네에서 주님의 영이 떠나가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인간인 예수의 죽음이었다, 한낮 인간의 죽음이었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그와같은 맥락 가운데서 2장이 시작됩니다. 이어서 형제님들께서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장승훈 형제님 : 저희들이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해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것이, 사도요한이 그들의 어떠한 주장에 반박하셨는지를 저희가 살펴볼수 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의 뜻이 영적인 것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면 저희들이 영지주의자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것을 안다고 하면서 교만해졌고, 도덕적인 방종으로 이어졌습니다.
1장 10절에서 "만일 우리가"라고 시작합니다. 이는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하는 말이 아닙니까? 그래서 구원받기 전의 상태가 아니라 구원받은 이후의 상태에서 하는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이후에 "범죄하지 아니하였다"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7장 마지막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하고 탄식합니다. 구원받은 자들은 죄에 대해서 더욱 민감합니다.
2장에 들어서서 주님께서 대언자이심을 말씀합니다. 이는 1장 9절과 연결되는 구절 같습니다. 저희들이 죄인지 모르고 짓는 죄가 있습니다. 제가 어떤 일을 잘 처리했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저희들이 모르는 죄가 있을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저희를 돌아보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이 1장 9절의 자백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저희가 부지중에, 연약해서 죄인지 모르고 죄를 지을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앞에" 우리에게 대언자가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위해서 대언하시는 분이십니다.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1절) '예수'라는 이름 자체가 이땅에 오신 우리 주님의 이름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에 반박하는 내용이 주님의 이름인 '예수'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은 겉으로 드러난 그들의 행위 자체만으로 진리가 아님을 드러납니다.
화목제물에 대해서는 저희가 다 아는 바입니다. 그리고 이 화목제물되신 주님이 대언자로써 일하시는 주님의 근거가 됩니다. 저희들의 법적인 죄용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이후에 죄를 지을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고, 죄를 지으면 하나님 아버지와의 거리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가 죄를 자백하고 다시 하나님 앞으로 나갈수 있는 대언자로 주님께서 계십니다. 그리고 그 중간에 화목제물되신 주님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저희를 하나님 앞에 데려오신 화목제물이 되셨고, 영원히 계시며, 또한 저희들의 대언자 되십니다.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를 사하고도 충분할 화목제물되신 주님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전의석 형제님 : 대언자되신 주님에 대해서 교제할 때에, 죄를 지어도 된다, 라거나 죄를 가벼이 여겨도 된다는 내용은 결코 아닙니다. 성경의 모든 곳에서는 죄에 대해서 심각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세번 부인했을 때에 그는 그것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달려나가서 통곡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를 보셨고, 그를 다루셨고 회복시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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