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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읽기 : 요한일서 2장 12-16절(요약)

박이레 2025. 12. 14. 15:33

성경읽기 : 요한일서 2장 12-16절(요약)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요일2:12-16, 개역한글)

- 최재홍 형제님 사회 : 저희가 요한일서를 계속 공부하는데요. 중간은 없는 것 같습니다. 빛 가운데 있거나 어둠 가운데 있거나, 사랑하거나 미워하거나, 입니다.
12절부터 오늘은 볼 것인데요. 자녀들, 청년들, 아비들이 나옵니다. 모두 성도들을 지칭하는 것인데요. 그들이 각각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 교제해 주시고,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도 말씀이 나옵니다. 그런 것들이 무엇인지, 예를 들어서 어떤 것들이 있는지도 교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16절의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무엇인지도 교제되면 좋겠습니다.
우선 12-14절까지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김윤철 형제님 : "자녀들아" 이는 나이가 어린 성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안에 있는 모든 구원받은 성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12절의 말씀은 권면의 내용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사실을 다시 기억시켜 주기 위해서 말합니다. 우리의 죄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사함을 받았습니다. 가능성이 아니라 이미 소유한 은혜임을 사도는 말합니다. 우리의 죄 사함의 근거는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역으로 인한 것입니다.
13절에서 아비들과 청년들, 14절에서는 아이들로 구분해서 말씀합니다. 이렇게 구분한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한일서가 쓰여진 당시에는 모임안에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이 많았습니다. 성도들은 그들의 주장에 흔들렸습니다. 이를 막고자 사도요한은 요한일서를 썼습니다. 세대는 차이가 있지만, 각 세대마다 붙들어야 할 말씀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세대가 주님의 은혜를 받았음을 알리기 위해서 구분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말씀의 지식이 부족할수 있지만 구원받아 아버지를 안다고 했습니다. 청년들은 말씀이 그 안에 있어서 이미 이겼다고 말씀합니다. 아비들에게는 태초부터 계신이가 변치 않음으로 너희의 믿음이 온전함을 말씀합니다.
저희들 교회에는 이 각각의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시련을 받는 분도, 막 구원받은 분도, 또 구원받은지 오래된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 사도는 너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받은 자들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사도는 12절에 먼저 "자녀들아"라고 부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 가족 전체를 나타내는 칭함이라고 보여집니다. 우리 모두는 같은 아버지를 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런 관계 가운데서 하시는 말씀은 우리 죄가 주님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어떤 공로나 노력으로 죄용서가 된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죄를 용서하심을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사함을 받았다고 말하면 종교인들은 그것을 참 교만하다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개인의 공로가 있다면 교만한 것이지만, 죄사함은 오로지 우리 주님으로 말미암아 주어졌기에 저희들이 담대하게 말할수 있는 것입니다.

13절에서는 아비들에 대해서 말합니다.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이 내용은 14절에도 중복됩니다. 아비가 된다는 것은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을 잘 아는데서 비롯된다고 생각됩니다. 단순히 지식적으로 아는것이 아니라 날마다 개인적인 관계를 갖고 그것을 누리면서 살아야 합니다. 주님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개인적으로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개인적으로 잘 알고 시간을 많이 보내고 누리고, 그분의 음성을 듣고 바라보는 경험을 많이 하신 분들을 아비라고 부를수 있겠습니다.
청년들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13절) 14절에서는 "너희가 강하고",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라고 합니다. 그럼 어떻게 강할수 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고"(14절)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속에 거하시는 가운데 말씀이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 청년들의 상태입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행하는 것을 교제해 주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 김대현 형제님 : 자녀들은 저희 구원받은 모든 성도의 모습으로 생각되었습니다.(12절)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고전6:9-11, 개역한글)

13절에서는 아비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청년들이 나옵니다. 왜 아이들이 안나오고 청년들이 나오는지 궁금합니다. 청년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흉악한 자를 이기었다고 말씀합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속에 거하시고"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아비들 뒤에 청년들이 나오는 것은 청년들에 대해서 강조하기 위해서 그 순서가 나오는게 아닌가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12절에 "자녀들아"가 나옵니다.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태어난 자들입니다. 저희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12절에서 말씀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저희 죄가 사함을 받았습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요일3:1, 개역한글)

주님은 우리 죄를 사해주셨습니다.(2장 12절)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 일컫게 해주셨습니다.(3장 1절)  
그리고 13-14절은 아비들, 청년들, 아이들에 대해서 언급되어 있습니다. 저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이같이 성장하는 자들이 됩니다. 그럼 우리가 거듭나면 무조건 성장하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이는 기본적으로는 맞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아이들, 청년들, 아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거듭난 자의 입장에서 자라가야 합니다. 성장해야 하는 책무가 있습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벧후3:18, 개역한글)

청년들이 어떻게 악한 자를 이기었는가 대해서는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라고 합니다. 사단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것을 막는데는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사단은 우리가 성장하지 못하도록 막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말씀으로 돌파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초림하셨을 때에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번의 사단의 유혹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신명기 말씀으로 승리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단에게 이기는 방법을 보이셨고 그것은 그대로 청년들에게 적용되고 저희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 최재홍 형제님 : 12절에 "사함을 얻음이요"라고 합니다. 사함은 용서하다는 뜻입니다. 시제가 '완료 수동 직설법'이라고 합니다.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결정적인 용서가 일어났고, 그 효과가 지금도 지속됨을 나타낼때 사용됩니다. 단번에 영원한 유효한 용서받은 사태를 말씀합니다. 이러한 죄사함은 저희의 노력이나 행위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동일하게 죄사함을 받았고 이제 말씀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12절에서 죄사함에 대한 확신을 주는것은 성도들이 이세상에서 영적인 싸움을 싸울때에 넘어지지 않도록 하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13절의 "알았음이요" "이기었음이라" 의 모든 동사는 '완료 능동시제'입니다. 한번 일어난 일이 지금까지의 결과로 계속 남아서 지속됨을 말씀합니다. 곧, 그것이 지금도 유효함을 말씀합니다.
14절의 아이들은 막 거듭난 성도들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수 있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안에 있는것을 분명하게 인식할수 있는 자들입니다. 아비들은 영적으로 성숙한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한번 알았을 뿐 아니라 오랜 시간동안 친밀한 교제 가운데 영적으로 성숙한 자들입니다. 청년들은 영적인 저투 한가운데 있는 자들입니다. 이기다는 시제도 완료형입니다. 그들인 이겨왔고 그 승리가 지금도 유효하다고 말씀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안에 거하기 때문입니다. 이 영적인 승리에서 보여주는 것은 내가 잘하거나 어떠함 때문에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거하심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있기 때문에 승리하는 것입니다.
저희들이 구원받은 이후에 그리스도를 알고 말씀을 알고 영적으로 계속 성장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15-17절을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김보영 형제님 : 교회 안에는 믿음이 성숙한 성도도 있고, 영적으로 성장해가는 성도도 있고, 구원받은지 얼마 안된 성도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자녀들아"를 성도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여기서 그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또 13절에 나오는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이 '태초부터 계신 이'도 우리 주님으로 저는 받아들입니다.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14절) 이 '알았음이요'라는 말의 의미가 영적인 체험을 통해서 아는 앎입니다. 이 말씀에서 가장 큰 문제를 일으키는 무리들이 영지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이 성도들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육체를 입고 오신 우리 주님께서 하나님이 아니심을 주장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 주님을 영적으로, 체험적으로 아는 자들이 구원받은 자들이고 악한 자들, 사단을 이긴 자들임을 강조합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17:3, 개역한글)

우리가 주님을 알았다고 하는것은 곧 아버지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을 알고 믿음으로 구원받고, 악한 사단의 세력을 완전히 이겼다는 것에 중심을 두고 있는것으로 분별됩니다.

- 전의석 형제님 : 15절에서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라고 말씀합니다.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다고 말씀한 다음에 세상을 사랑치 말라고 합니다. 아비들은 이 세상에 대해서 잘 알고 경험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사랑할수 있는 위험이있는 자들은 청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세상을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 양립할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때때로 세상을 이용하거나, 세상의 것들을 즐길수 있지만 세상을 사랑하는데까지로는 가서는 안됩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분명히 선택하는 것이고 의지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단이 주님을 시험할때 세상에 있는 것들을 다 보여주고 절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주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선택을 해서는 안됩니다. 사회적인 것, 상업적인 것, 스포츠 경기, 등등이 모두 세상적인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들이 저희들의 마음을 지배하면 저희들의 마음속에서 예배가 사라지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부족해지고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14절 청년 이후에 15절에서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서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 최재홍 형제님 : 15절에 "세상을 사랑치 말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혹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 마음을 당장 버리고 앞으로도 그러한 마음을 가지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사람일수 있고, 세상의 시스템일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님을 제외한 사단아래 있는 인류의 모든 것들을 말합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는 모든 것입니다. 생각들이나, 관습이나, 유행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이는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한번의 실수가 아니라 그 삶 전체의 가치관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미워했고 지금도 미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참된 성도는 하나님에 대해서 증오하고 대적하는 세상을 사랑해서는 안됩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 속에 없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대해서 죽었고 저희들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저희들은 이 땅에서 나그네이고 순례자임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 김보영 형제님 : 15절에서 사도요한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을 구원받은 믿음과 동일한 선상에 놓고 이야기 합니다. 만일 구원받았다고 하고서 세상을 사랑한다고 한다면 이것은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구원받기 전에 하던 일이지, 구원받은 이후에도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구원받았다고 말할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 성도를 사랑하는 사랑은 구원받은 사람만이 나타낼수 있는 행동입니다. 따라서 세상을 사랑한다는 그 자체는 그 안에 믿음이 없다고밖에 분별하게 됩니다.

- 김대현 형제님 : 청년들은 아주 강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것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취약하기 때문에 15절 이하에서부터 세상을 사랑하지 말것을 말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참 우리나라는 옛날과 달리 아주 살기 좋게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해도 사람들이 별로 반응하지 않습니다. 제가 어릴때에는 많은 것들이 부족했고, 즐길거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한국은 즐길거리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서 우리 성도들이 얼마나 자유스러운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벧전1:24-25, 개역한글)

열심히 주님을 따라가지만 아직 많이 부족함을 느낍니다.

- 장승훈 형제님 : 15절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구분해서 말씀합니다. 세상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체계 전체를 가리킵니다. 하나님 없이 행복할수 있는 사람들이 만든 체계입니다. 그리고 그 세상을 구성하는 각각의 것들을 세상에 있는 것들로 볼수 있을 것입니다. 저희가 어떤 사람을 좋아할 때에 그 사람 자체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 사람이 가진 몇가지 요소들을 좋아하기도 합니다. 그와같은 것이라고 봅니다.
저희가 세상에 있는 것들을 좋아는데 그중에 어떤 것들은 하나님께서도 좋아하실수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그 기준이 되는것이 주님이십니다. 세상은 주님을 미워했고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주님을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과 기름이 결코 섞일수 없듯이 세상에 있는 것들 중에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은 전혀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것들은 세가지로 구분할수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입니다. 그것은 전부 하나님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정욕은 우리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안목의 정욕은 외부에서 우리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생의 자랑은 세상의 체제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사람들은 과시하기 좋아하고 자랑하기 좋아합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세상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직접적인 예를 하나 첨언해 드리겠습니다. 세상을 사랑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은 데마입니다. 그는 누가와 동역했고, 사도바울과 초기에 또, 늦게까지 동역하다가 세상을 사랑해서 데마는 간것 같습니다. 충분히 훌륭한 그리스도인도 세상을 사랑해서 갈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구원받지 않은 성도이기에 그런 것일수도 있고요. 또는 그가 성도이지만 영적으로 파선해서 떠난 것일수도 있습니다.

- 최재홍 형제님 : 16절에서 사도요한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이 세가지가 세상에서 난 것임을 말씀합니다. 이 세상의 것은 하나님의 것과는 전혀 다름을 말씀합니다. 저희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 있을 때에, 그 마음이 채워져 있을 때에 세상의 것이 저희들의 마음을 채우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