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 : 요한일서 1장 1-4절(요약)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자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요일1:1-4, 개역한글)
- 김태우 형제님 사회 : 요한일서 저자는 사도 요한입니다. 시기적으로는 주후 90-95년으로 밧모섬에 유배되기 전으로 보고 있습니다. 내용적으로도 이 시기의 영지주의자들이 이단의 교리를 가지고 들어와서 지역교회 안에 있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들은 헬리즘, 오리엔트 사상, 신비주의가 혼합되어 있습니다. 모든 물질은 다 악하다는 원칙으로 양 극단으로 나눠집니다. 극한의 금욕주의, 극단의 방임주의로 나타났습니다. 또 헬라의 철학이 결합됨으로써 복음 외에 새로운 지식들이 더해져야 구원을 얻을수 있다는 사상들이 더해졌다고 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주장하는 거짓 교사들이 모임안에 들어왔을 때에 사도요한이 요한일서를 저술한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영지주의의 주장으로는 모든 물질은 다 악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성육신 하신것을 부인합니다. 그래서 1절에 주님에 대해서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라고 기록합니다.
요한일서에 대한 대략적인 개관이나 내용들을 형제님들께서 교제해주시면 좋겠고요. 오늘은 1-4절까지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김윤철 형제님 : 요한 서신서는 사도요한이 에베소 교회에 보낸 서신서입니다. 그 당시에는 거짓된 교리가 지역모임에 침투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영지주의자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이 세상에 오심을 부인했고, 또 지식주의로써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부족하다고 하고 영적인 지식을 취득해야 함을 주장했습니다.
이 외에도 영지주의자는 육체는 악하고 영혼만 선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악한 육체를 입고 이땅에 오셨을리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크신 사랑으로 이땅에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요한은 이를 말하고 있고 있고, 이것이 요한일서의 핵심적인 주제라 할수 있겠습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저도 개요에 대해서 교제하고자 하는데요. 요한복음은 믿지 않는 자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하도록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20:31, 개역한글)
요한일서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생이 있다는 것을 확신 시켜주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요일5:13, 개역한글)
요한일서를 왜 썼는지에 대해서 사도는 계속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요일2:19, 개역한글)
믿는 그리스도인 가운데 떠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떠난 사람들 때문에 많은 믿는 성도들이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을 넓혀보면, 믿지 않는 자들이 교회 가운데 들어오고 또 떠남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에게 미치는 영향 때문에, 사도요한은 이를 교정해 줄 필요를 느껴 요한일서를 기록합니다.
요한이서, 삼서는 요한은 자기를 장로로 나타냅니다. 그러나 요한일서는 그러한 언급으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이어서 '태초'로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잘못된 영지주의자들이 나타났습니다. 지금도 주님의 성육신을 부인하고 한 사람으로써 주님을 평가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성육신 하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가장 잘 말할수 있는 사도는 사도요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주님의 품에 기대 누웠고, 또 주님께서 시장하시고 피곤해 하시는 것을 직접 보았습니다. 주님의 손길을 누구보다도 잘 경험했던 사도입니다.(1절) 그리고 요한일서를 기록합니다.
2절은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자니라"라고 합니다. 요한복음에는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기록하는데요. 요한일서에서는 이 하나님이 믿는 자들의 아버지가 되셨음을 말씀합니다. 요한일서에서는 가족관계를 빗대어 많이 말씀하십니다. "아비들아", "청년들아", "아이들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이같이 밀접하고, 또 강건하게 서야 함을 바라는 가운데서 사도요한이 기록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 김윤철 형제님 : 1절을 교제하겠습니다. "태초부터" 이 말씀은 창세기 1장 1절을 생각나게 합니다.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시작이 되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은 이 시작이 시작되었을때 말씀이 계셨던 것을 기록합니다. 이 말씀은 아버지 곁에 계시는 영원하신 아드님이십니다. 주님은 태초로부터 오신 분입니다.
영원 전부터 계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어 이땅에 오셨습니다. 그때에 우리가 주님을 보고 만졌습니다. 특히나 사도요한은 직접 주님을 보았고 또 손으로 만졌습니다.
"우리가" 이는 사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요한은 주님을 직접 만나고 마지막으로 남은 사도로써 이 요한일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2절에 다시한번 주님에 대해서 "생명"이라고 기록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와 가까이 계셨으며 자기를 나타내시며, 대신하여 죽으사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14, 개역한글)
- 최재홍 형제님 : 1-2절을 통해서 사도요한이 주님과 동행한 사실들을 살피려고 합니다. 마가복음에서 요한과 야고보는 우뢰의 아들로 불리웁니다. 그 둘은 성격이 불같고 칼같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주님과 동행함으로 그들의 성품이 바뀌고 사랑의 사도로써 나타납니다.
요한은 주님의 품에 누웠던 자였고, 주님을 따라서 대제사장의 뜰까지 가고, 주님을 따라 십자가 앞까지 갔습니다. 그래서 1절에서 주님께서 성육신하신 것이 실제적인 것임을 사도요한은 증거합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실제적으로 주님의 음성을 들었고, 실제로 손으로 만졌습니다. 이것이 실제적인 것을 강조합니다. 주님은 환상이 아님을 말합니다.
또 태초부터 계신 이로 시간을 초월하신 분임을 말씀합니다.
"우리 손으로 만진바라" 주님과 교제하였음을 실제적으로 말합니다.
2절은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이 우리에게 오셨음을 명백하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친히 울에게 먼저 다가오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실제적으로 보고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주님을 증거하는 참 증인드입니다.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요한의 경험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의 사람들에게 증거할 책임이 있음을 말씀합니다. 요한일서에서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주님의 신성과 인성입니다. 이를 계속해서 말씀합니다.
- 김보영 형제님 : 요한일서가 쓰여지기 직전에는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태였다는 것을 우리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안에 진리가 확고하게 세워지기 전에 이단들이 교회 안에서 성도들을 미혹하고, 그중에 일부는 미혹되어서 교회를 떠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이 서신서를 쓰는데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있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은 주님께서 실제적으로 이 세상에 오신것이 아니라 가상적으로 역사하셨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주님에 대해서 직접 자신이 경험한 것을 기록합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 주님께서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밝히면서 시작합니다. "들은 바요", "본 바요" 모두 완료형 단어입니다. 이미 듣고 본 사실이 연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뜻합니다. 과거에 이미 보았고 지금도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했던 사실이, 지금은 주님께서 승천하셨지만, 지금도 사도요한은 주님을 보고 있다고 말합니다. 영원한 생명의 연속성을 말씀합니다.
2절에서는 태초 이전부터 계신 주님께서 성육신 하셔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명확하게 증거하기 위해서 말씀합니다. 주님께서는 육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지만 그는 분명 하나님이십니다.
영지주의자들의 혼란된 주장들을 잠재우기 위해서 사도요한은 주님께서 태초부터 계시며, 만물의 근본이 되신 분이며, 이땅에 오셨을 때에 완전한 사람이시며, 그러나 또 죄는 전혀 없으심을 사도요한은 말합니다.
- 김태우 형제님 : 사도요한이 시간적으로 볼 때에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사도로 보입니다. 계시록 2장에 보면 에베소 교회에 대해서 칭찬하는 구절이 있는데요. 거짓 교사를 드러낸 것에 대해서 입니다. 아마도 요한일서의 말씀을 받아서 거짓 교사들을 모임에서 내어쫓는 일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어서 3-4절도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전의석 형제님 : 3절에 "사귐"이 나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는 사귐은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면서 사귐이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를 좀더 확장해보면 건전한 교리 가운데 있을 때 우리의 사귐이 있을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요한일서는 하나님의 교리, 주님의 성육신을 부정하는 자들에 대해서 이를 거짓말하는 자들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할수 없음을 빛과 어둠으로 대조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기쁨이 충만케 되는 것은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기쁨이 충만케 됨을 생각하게 됩니다.(4절)
- 김보영 형제님 : 사도요한이 보고 들은 바를 전한것은 주님을 전한 것이고,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3절) 하나님과의 수평적인 교제가 가능한 것은 우리가 구원받아 의롭게 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또 교회는 사도바울이 전한 복음을 또 계속 세상에 전해야 하는 책임이 있음을 교훈받습니다.
- 김윤철 형제님 : 사도요한은 사도들의 마지막 남은 대표자로써, 주님을 직접 겪지 못한 성도들에게 주님을 증거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구원받은 자들은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한다는 사실을 말씀합니다. 우리는 우리 눈으로 주님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통해서 주님께서 이 땅에 성육신하심을 듣습니다. 그를 통해서 영생이신 주님을 볼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3절)
요한 사도가 요한서신서를 씀은,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이 기쁨을 충만케 하려 함이라는 것이 어법상 맞아 보입니다.(4-5절) Q. 그런데 4절에는 "우리의 기쁨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해서 영어성경으로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형제님들께서 교제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최재홍 형제님 : 3절에 "사귐"은 영어로 '펠로우쉽'으로 적혀 있습니다. 곧, '교제'를 말씀합니다. 우리의 교제는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사역으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와 교제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제는 함께 나누는 것, 공통점을 갖는것, 또 함께 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하나님과 함께하며, 구별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께서 부르시기까지 헌신합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행2:42, 개역한글)
또 교제는 사도들의 가르침과 연결되어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교제는 교리와 사도들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것에 있습니다. 또 교제는 행동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돕는 것도 포함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개인적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모임 안에서 성도가 이 삶을 함께 공유할수 있습니다. 사랑과 은혜와 진리로 지역모임으로 교제하도록 부르셨습니다. 저희들이 그렇기에 성경읽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들은 성경을 공부해야 합니다. 그래야 영적으로 풍성한 삶을 살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 (암3:3, 개역한글)
우리는 같은 진리를 알고 있고, 함께 이 교제에 참여하는 동반자이기 때문에 함께 뜻을 가지고 나가지 않으면 어려움이 있게 됩니다. 지역모임의 교제는 저희 삶의 일부분이 아니라 저희 삶의 전체가 되어야 함을 이 말씀을 통해서 교훈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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