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모임(요약글)/덕언 말씀(요약)

덕언 : 참 지혜

박이레 2025. 11. 2. 12:48

덕언 : 참 지혜 / 25년 11월 2일 일요일(요약) / 김보영 형제님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 네 이웃이 네 곁에서 안연히 살거든 그를 모해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거든 까닭 없이 더불어 다투지 말며 포학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며 그 아무 행위든지 좇지 말라 대저 패역한 자는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거니와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으며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미련한 자의 현달함은 욕이 되느니라 (잠3:27-35, 개역한글)

지혜자 솔로몬이 기록한 말씀입니다. 1장부터 보면 1장에서는 지혜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솔로몬은 말합니다. 2장에서는 지혜를 구할 때 나타나는 유익에 대해서 말씀하고요. 3장에서는 지혜를 순종함으로 받게되는 축복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지혜라고 말할 때에 이 지혜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지혜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지혜와 지식을 갖기 위해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 말씀하며,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가 진정한 지혜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지혜를 아는 것에는 유일하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을 때에 진정한 지혜를 가질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받은 사람이 어떻게 사는것이 지혜일까요? 오늘 읽은 말씀에서 이를 말씀합니다. 사단도 많은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단이 지혜롭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리석고 미련한 사단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 가진 지혜로 거룩하신 하나님을 좇지 않고 악을 좇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혜는 하나님을 좇는것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 (잠3:27-28, 개역한글)

이 말씀 속에서 내 이웃에 대해서 하나님과 같은 긍휼과 사랑의 마음을 갖고 자기 물질에 대해서 필요한 것을 공급할 것을 말씀합니다. 물론, 없는것을 베풀라고 하지 않습니다.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또 28절에 있는 것처럼 인색함이나 어거지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여기서 '마땅히 받을 자에게'는 원어로 '주인'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베푸는 자가 주인일 것 같은데 받는자가 주인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모든 물질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베푸는 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되는 것이기 때문에, 받는자가 주인의 입장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많은 도전이 됩니다. 우리가 베푸는 것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주변에 더 많은 베풂을 행할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올때에 빈 몸으로 오고 갈때도 하나도 가지고 갈수 없습니다.
욥기서는 보면 욥은 자기가 가진 재물과 자식들을 한날 한시에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의 건강이 다 망가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욥의 고백을 보시기 바랍니다.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1:21-22, 개역한글)

우리가 지혜롭게 산다고 할때, 이것은 주님이 베푼것에 대해서 흩어서 이웃에게 구제하거나 나눠줌으로써 베풀라는 사실을 먼저 말씀합니다.

네 이웃이 네 곁에서 안연히 살거든 그를 모해하지 말며 (잠3:29, 개역한글)

바로 내 옆이 있는 이웃이 나를 신뢰하고 평안한 가운데 살아가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그 이웃을 해할 마음을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간 관계에서 남이 잘 되면 배아파하는 마음 같은 것은 지혜자의 삶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네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거든 까닭 없이 더불어 다투지 말며 (잠3:30, 개역한글)

성도는 상대가 어떻게 나오든간에 다투거나 분쟁해서는 안되는 입장에 있습니다.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거든" 이는 내게 악을 행한 자에게 같이 보복해도 된다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실제로 신명기 말씀에는 내게 해를 끼친 사람에게 해를 가해도 정당한 것으로 말씀합니다.

네 눈이 긍휼히 보지 말라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니라 (신19:21, 개역한글)

율법 하에서는 해를 해로 보복하는 것이 정당하지만, 은혜 아래서는 주님께선느 원수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원수된 우리 인생들을 위해서 주님께서 생명을 내어주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혜자의 삶은 내가 좀 손해를 본다고 할지라도 복수하거나 분쟁하지 않고 그저 하나님을 의지해서 기도하는 자세를 취할것을 말씀합니다.

포학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며 그 아무 행위든지 좇지 말라 대저 패역한 자는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거니와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으며 (잠3:31-32, 개역한글)

이제 정직하게 살것을 말씀합니다. 정직한 자의 하나님과 교통함을 하나님과 깊기 교제하며,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모든 전반을 보살피고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정직하게 사는것은 성도의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그 기본을 우리가 잘 지키지 못한다면 오히려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같이 정직하지 못한자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 (잠3:33, 개역한글)

악인의 집에 여호와의 저주가 있다는 것은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 이는 칭의에 의한 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적으로 공의롭게 살아가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실제적인 삶에서도 의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잠3:34, 개역한글)

겸손이 우리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겸손함으로 하늘의 자리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겸손으로 아버지의 뜻대로 십자가에서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겸손하게 산다고 하는 그 자체가 주님의 지혜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깨닫게 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미련한 자의 현달함은 욕이 되느니라 (잠3:35, 개역한글)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을 경외할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모든것을 순종하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영광을 기업으로 주실 것을 하나님을 약속하셨습니다.
"미련한 자의 현달함은 욕이 되느니라" 이는 미련한 자가 높아지려고 하는 모습을 말합니다. 사단이 자기 분수를 모르고 높아지려고 하려다가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참 지혜라는 것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을 우리의 구주로 영접하는 가운데, 그의 말씀을 겸손하게 순종하는 자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그같은 자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이 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깨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