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모임(요약글)/덕언 말씀(요약)

덕언 :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

박이레 2025. 10. 12. 12:43

  덕언 :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 / 25년 10월 12일 일요일(요약) / 장승훈 형제님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롬4:25, 개역한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롬8:32, 개역한글)

두 말씀을 보면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주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내어주셨고, "그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 가운데 여자를 통해서 난 모든 자는(주님을 제외하고), 죄 가운데 난 자이므로 그 죽음으로 죄를 사할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사람이 되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사53:10, 개역한글)

하나님께서 저희들의 죄 문제를 위해서 주님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사야서 말씀에는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이라고 말씀합니다.
창세기 22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드리라고 하셨을 때에 아브라함은 기꺼이 순종했습니다. 사람의 상식으로 보기에 이것은 미친 짓입니다. 이것이 믿음과 연관있지 않았다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이삭은 믿음 가운데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도 순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을 원하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53:5, 개역한글)

주님께서 이같이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신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고 로마서와 이사야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를 기록하였고 주님께서는 그 말씀을 그대로 다 성취하셨습니다.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사53:9, 개역한글)

주님께서는 온전하신 인성을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저희들이 아무리 선하다 한들, 이러한 표현을 저희들에게 쓸수는 없습니다. 온전해 보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저희 속을 들여다보면 참 흠이 많고 죄가 많은 사람입니다.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9절),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힘을 입었음이라"(12절)
주님께서 죽음의 길을 가는 것까지 저희들의 죄를 완전히 사하시는 것을 완수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묘실이 부좌 함께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아리마대사람 요셉의 묘실에 장사되셨습니다. 이 모든 구약의 말씀을 주님께서는 성취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주님의 시신은 부자의 묘실에 장사되었을까요? 이는 하나님께서 주님의 하신 모든 사역에 대해서 인정하시는 것이 되겠습니다. 만족히 여기시고 주님의 시신을 부자의 묘실에 두셨습니다.

저희가 주님의 무덤을 남은 시간에 생각해 보겠는데요.

눈을 들어본즉 돌이 벌써 굴려졌으니 그 돌이 심히 크더라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막16:4-6, 개역한글)

여인들이 주님의 시신을 염하기 위해서 안식후 첫날 찾아갔습니다. 그들의 걱정은 무거운 돌을 어찌 옮길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갔더니 그 돌은 옮겨져 있고 그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천사가 주님께서 살아나셨음을 말하는 내용입니다.
문이 열려 있는데요, 사실 문을 열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벽을 통과하셔서 제자들 앞에 나타나시는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무덤문을 여신 이유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무덤이 빈 무덤임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곧, 주님께서 살아나심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죽으심과 사역을 흠향하시고 인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롬6:9, 개역한글)

주님의 십자가의 부활하심은 첫번째로 다시는 사망이 주님을 주장하지 못함을 분명하게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에 있을 추가적은 수많은 다른 열매들이 있다는 것을 이 첫 열매가 상징합니다. 저희들이 부활한 몸을 입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고전15:50, 개역한글)

저희들의 이 몸은 썩을 몸입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죽을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주님께서 일찍 오신다면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갈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더디 오신다면 모두가 다 죽을 몸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썩은 몸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수 없습니다.
저희들이 가진 소망과 복은 이것입니다. 저희가 죽더라도 주님과 같이 부활할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저희들이 명절을 마쳤고요. 차분하게 저희들에게 주어진 복을 생각하며 저희들에게 맡겨진 것을 묵묵히 감당하는 한주가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