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언 : 앉으신 주님 / 25년 10월 19일 일요일(요약) / 전의석 형제님
오늘 저는 주님께서 여러 행로 가운데서 앉으신 것을 교제하고자 합니다. 앉는다는 것은 쉰다는 것을 많이 의미합니다. 주님께서는 때때로 앉으셨지만, 앉으셨을 때도 쉬기 위해서 앉으신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앉으셨습니다.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 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 모친은 가로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양친이 그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눅2:46-50, 개역한글)
주님께서 열두살 되던 해에 유월절 절기를 따라서 성전에 가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열두살 때에도 충분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실수 있지만 선생들 가운데 앉으시고 들으시고 묻기도 하시며 주님이 어떠한 분인지를 나타내셨습니다. 주님의 유년 시절은 아주 적게 기록되어 있는데요. 주님은 나이가 적더라도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여기서도 알수 있습니다. 참으로 가르치실수 있는 분이지만 사람들의 말을 들으시고, 물으심으로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김을 받으십니다.
주님께서 무엇을 물으셨는지 저는 궁금하지만 성경은 그것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요셉과 마리아와 만난 부분을 기록합니다. 주님은 "내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합니다. 주님은 아버지의 일에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마리아는 이 일에 대해서 마음에 두었습니다. 이것이 기록된 마리아와 주님과의 첫번째 대화내용입니다. 마리아와의 주님의 마지막 대화는 십자가 위해서 요한에게 마리아를 부탁하시는 것으로 끝납니다.
4장으로 가면 주님께서 회당에 앉아 계신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눅4:16-21, 개역한글)
주님께서는 성전에서 앉으셨을 뿐 아니라 회당에서 앉으셨습니다.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신 후에 주님께서 다시 나사렛에 오셔서 책을 취하셔서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책을 주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책을 펴셔서 이 이사야서의 말씀을 읽으십니다. 주님께서는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그 회당에 있는 자들에게 응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구주로서, 구세주로써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주님께서 회당에 앉으셨고, 회당에서 주님을 주목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스스로 나타내보이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눅5:3, 개역한글)
이 내용은 베드로를 부르시고 요한과 야고보를 부르시는 대목인데요. 그 배에 앉으셔서 특별히 베드로를 부르십니다. 아마 베드로는 이 배에서 밤이 맞도록 수고했지만 소득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배에 오르시고 앉으셔서 무리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후에 베드로에게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릴것을 명하셨고, 그렇게 순종했을 때에 그물안에 고기가 가득했습니다.
주님은 이 가르치심으로 사람들이 어떤 상태에 있으며 주님이 전능하시며 이 우주를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놀라운 것은 회당에서 가르치셨을 때는 사람들의 반응이 좋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떠나 다른곳에서 복음을 전하십니다. 그리고 세베대의 아들들을 찾아가셔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십니다.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눅7:36-37, 개역한글)
우리 주님께서는 왜 바리새인의 집에 가셨을까요. 바리새인이 어떠한 사람인지 아시는 가운데서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이 바리새인은 주님께 발 닦을 물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합당하지 않게 주님을 대우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죄인인 여인을 위해서 앉으셨습니다. 그 여인은 주님을 위해서 향유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의 죄가 사하여 졌음을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죄인의 죄를 사하시는 분이심을 이 사건을 통해서 드러내십니다. 이 여인 뿐만 아니라 저희들에게 동일하게 이것을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22장에서 주님은 다락방에 앉아 계십니다.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눅22:14-15, 개역한글)
주님께서 다락방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그리고 사도들과 함께 앉으신 가운데 유월절을 먹고요, 만찬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고난받으실 것을 말씀해주시고 주님의 몸과 피를 우리를 위해서 내어주심을 보여 주십니다.
주님께서 다락방에 앉으신 이유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몸과 피를 다 내어주실 것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그러나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위에 있도다 (눅22:19-21, 개역한글)
그리고 주님께서는 팔리실 것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과 앉으신 가운데 이같이 놀라운 은혜로운 말씀이 예비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승천하신 이후에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쌔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막16:19-20, 개역한글)
주님께서는 승천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이 땅에서의 사역을 완전히 완수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 계시지 않고 앉아계신 주님을 봅니다. 그러나 그냥 보좌에 앉으셔서 그냥 바라보실 뿐만 아니라 저희들을 위해서 일하시고 저희들과 항상 함께 하심을 보게 됩니다.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저희들과 지금도 함께 계시고, 저희들이 주님을 증거할 때에 저희들과 함께 역사하고 계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한주를 보내게 될 텐데요, 주님께서는 함께하심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교회로 증거할 때에 주님은 함께하시며 역사하고 계십니다. 우리와 주님께서 함께하심은 저희들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그리고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말씀을 확실히 나타내 보십니다. 앉아서도 쉬지않고 저희들을 위해서 일하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대전 중구 모임(요약글) > 덕언 말씀(요약)'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덕언 : 변화산의 주님 (0) | 2025.11.09 |
|---|---|
| 덕언 : 참 지혜 (1) | 2025.11.02 |
| 덕언 :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 (0) | 2025.10.12 |
| 덕언 : 세상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0) | 2025.10.05 |
| 덕언 : 죄인을 대신해서 고소 당하신 예수님 (0) | 2025.0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