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형제님/조나단 블락 형제님

성령님 3 : 평안과 목적

박이레 2025. 7. 15. 20:57

< 성령님 3 : 평안과 목적 > 조나단 블랙 형제님

예, 오늘 이 시간이 저희가 계속 함께 보고 있는 '성령님'에 대한 주제로 말씀 집회의 마지막 밤입니다. 특별히 이 기회를 빌어서 또 저를 초청해 주신 마포 모임께, 또한 친절하게 저희를 접대해 주신 성도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 자정에 저의 귀국 비행기가 일정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오늘 집회를 조금 짧게 하는 것에 대해서 양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요한복음 14장 말씀 보도록 하겠습니다. 15절부터 17절까지 보겠습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5-17).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거하느니라"(요 15:26-27).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요 16:13-14).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행 8:29-30).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니라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행 16:5-9).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고전 12:1-6).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고전 12:28).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6-17).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찌니라"(갈 5:22-26).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엡 5:17-20).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엡 6:18).

우리는 지난 두시간 동안 성령께서 그분이 어떤 분이시며, 그분이 또한 어디에 있는지를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제는 또한 로마서 8장 말씀을 통해서 성령님의 능력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능력이 ‘영을 쫓는 사람’ 안에 역사하는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신자 안에 있는 그 놀라운 자유케 하는 능력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불신자와 대조되는 모습을 보여드렸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성령님께서 이 '신자들에게 주시는 평안'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또한 그 성령께서 그와 같이 인도하시는 우리 삶에 있어서의 '목적'은 무엇인지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 마지막 부분에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시간에 특별히 강조해서 말씀을 드리는 것은 그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가 구원받은 순간부터 시작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우리가 구원받은 순간부터 우리는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그 위대한 '학교'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요한복음에서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고자 하는 그 목적에 대해서 말씀을 읽게 됩니다. 참 그 복음서에서는 성령께서 신자들을 인도하시는 위대한 '선생님'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성령께서 우리가 함께 모일 때에 그 모임을 '인도하시는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거기서는 우리의 위대한 '인도자'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그와 같은 성령님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또한 영적인 '은사'를 주신 것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성령께서는 이와 같은 일들을 이루시는, 역사하고 계시는, 그 행정을 하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인 집합적으로 어떤 '목적'을 성령께서 이루고 계시는지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거기에 우리의 위대한 멘토가 있는 것입니다. 참 우리에게 항상 좋은 '멘토'가 있다는 것은 아주 우리에게 유익한 것입니다. 그 멘토라는 것은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서 아주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제 여러분과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시는 분은 바로 이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13장부터 17장까지 그 '다락방'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다락방은 마치 '교실'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교실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아주 슬픔 가운데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제 그들의 선생님이 떠나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께서 이제 하늘로 돌아가신다는 것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그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며 그리고 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가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14장에서 주님께서는 그러한 제자들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내가 지금 떠나가지만 나는 다른 한 분을 너에게 보낼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단지 성령님을 대체 '보조교사'로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 수년 전의 일입니다. 저의 담임 선생님이 이제 병으로 휴가를 내신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체 보조교사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대체 교사는 원래 담임 선생님보다 그렇게 좋은 분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너희들에게 더 이상 불리한 것이 없다. 왜냐하면 이 성령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그분은 나와 동등하신 분이다. 아버지께서 바로 그분을 보내신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 아름다운 명칭으로 그분을 소개하십니다. "보혜사" 그래서 이 보혜사께서 그들에게 오시고 그분의 목적은 이제 그 제자들을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요한복음 14장 17절에서 그분을 "진리의 영"이라 말씀하시는 것을 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나는 진리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떠나시고 다른 분이 오시지만 그분도 역시 '진리'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26절에서 그분이 하실 일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그리고 그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는 바로 그분이, 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좋은 선생님의 유능한 자격 중에 하나는 가르친 것을 제자들이 다시 생각할 수 있도록, 생각나게 해줄 수 있는 선생님입니다. 바로 성령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것을 제자들이 다시 생각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성령께서는 지금도 여러분의 삶과 또 저의 삶에서 핵심적으로 하시는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성령께서는 바로 여러분의 마음을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도록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어려운 상황 가운데 처해 있을지라도, 여기서 내가 무엇을 해야 될지 모르는 그런 가운데 있을 때, 그런데 그때 갑자기 그 순간에 성경의 한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생각나면서 여러분에게 큰 위로를 주게 되는 것을 경험하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께서 그 말씀을 여러분의 마음속으로 깨닫게 하신 분입니다. 첫째 시간에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에 성령께서 또한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일하셨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성령께서는 성경에 있지 않은 다른 말씀을 여러분에게 생각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은사주의가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성령님의 작용에 대해서만 강조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참으로 성령님의 그런 영역은 오직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50%만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에게로 생각나게 하시는 분인 것입니다.
수년 전에 저와 제 아내가 어떤 한 수양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에스더서를 통해서 어떤 한 형제님께서 교제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일들을 이제 섭리 가운데 제자리에 두시는 것을 그 책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시간에 아주 피곤해서 그 메시지가 가르쳐주고 있는 것에 대해서 잘 그때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 6개월 후에 제가 어려운 그런 일을 경험할 때가 있었습니다. 제가 병원에서 그때 일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나쁜 소식을 또한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저는 제 마음속에서 생각난 한 가지 말씀을 제 아내에게 전해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아내도 그 말씀이 똑같이 생각났다고 했습니다. 우리 둘 다 6개월 전에 그 집회에서 들었던 말씀이 생각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우리에게 큰 위로를 주었습니다. 참 우리에게 무엇에 관심을 갖도록 만들어주고 있습니까? 우리는 그것을 이미 들었지만 이미 오래전에 잊어버린 그 말씀이었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놀라운 능력으로 다시 생각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참으로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십니다.

우리는 15장 26절에서는 '성령님의 목적'에 대해서 볼 수가 있습니다. 앞부분에서는 모든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성령님의 그 위대한 선생님으로서 행하심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이 성령님을 통해서 또한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다락방에서 제자들은 그 모든 말씀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이제 곧 성령님이 그들에게 오시면 제자들이 주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알았습니다. 그리고 또한 성령께서 그들에게 가르치시는 위대한 진리 중의 하나는 교회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어떻게 한 몸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지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성령님의 역사로 완성된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말씀을 가르침을 받고자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모든 진리로 인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에 대해서 순종하는 영으로 들어야 됩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도록 우리가 준비되어 있어야 됩니다.
또한 이러한 성령님의 역사는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아주 실제적으로 역사합니다. 우리가 사도행전 8장에서 빌립이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할 때 그 상황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성령께서 빌립으로 하여금 그 병거에 가까이 가도록 인도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복음을 증거할 때에 우리는 성령님의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여러분이 어떤 다른 사람에게 특별히 성령님께서 복음을 전하라고 마음을 주시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순간에 선택을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 성령님의 역사대로 가서 전할 것인지, 우리는 그 성령님에 대해서 따르지 않을 것인지, 우리는 때때로 두려워해서 그것을 따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빌립은 그날 그 명령에 순종해서 나아갑니다. 이제 그로 인해서 이 복음은 아프리카에 전파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그와 같이 어떤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길 때에, 이것은 우리의 육신으로 말미암아 생긴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시고 역사하시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이제 저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 이 기회를 사용할 수 있도록 나에게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6장에서는 성령께서는 이제 반대로 일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비두니아로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그의 가는 방향을 돌리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그 소원을 가진 것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해야 되는 다른 일을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케도니아 사람이 이리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라고 하는 환상을 보게 하십니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할 때 항상 성령님께 순종해야 됩니다. 또한 우리가 그러한 가운데 문이 닫혀지게 될 때, 우리는 성령님께서 그러한 상황 가운데서 어떠한 다른 길로 인도하시는지 민감하게 따라가야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가능한 것에,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것에 기꺼이 따라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참으로 이 성령님보다 더 위대한 우리의 스승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순간 우리는 이 놀라운 대학교에 입학한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는 그 학교를 졸업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항상 배우고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계속적으로 우리를 가르치시고 인도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이 '지역 모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는 또한 이 지역 교회를 인도하시는 데에 놀라운 '인도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고린도전서 3장에서 지역 교회에 대한 그림으로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는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 교회’는 다른 말로 하자면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소’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 가운데 임재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 성령께서는 우리의 예배 가운데 인도하시는 인도자가 됩니다. 성경에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에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락방에서 성령님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성령님께서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시는 것이 그분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높임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성령님께서 이 가운데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공적으로 그 예배에 참여하게 될 때, 우리는 거기서 내 자신에 대해서 말하기 위해 이 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참 우리를 통해서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지역 교회와 함께 중요한 역할은 그분께서 지역 교회의 '하나됨'을 유지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에베소서 4장 3절에서 이 성령님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3).

오늘날 이 ‘하나됨’에 대해서 많은 오해가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다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을 생각합니다. 여기에 이제 인기 있는 그런 견해가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신자들이 함께 다 한자리에 모이는, 이제 그런 것들을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단지 믿기만 하였다면, 당신이 무엇을 어떤 교리를,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상관하지 않고 다 함께 모이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하나 된 것은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어떤 혼란한 가운데 사람들을 한데 모으는 것을 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항상 모든 진리 가운데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역교회에서 중요한 것이 단지 어떤 사람이 구원받은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고 침례를 받아야 되는 것이고, 또한 중요한 것이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 '하나됨의 기반'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의 기반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창조시에도 보았고 성령께서 운행하시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지역 교회 안에서도 '성령께서 운행하시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단지 성령님만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우리가 계속 지킬 수 있도록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 지역 교회의 하나됨을 방해하는 가장 큰 적은 바로 여러분과 제 안에 있는 '육신'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갈라디아 5장에서 성령과 또한 육신 가운데에 그 싸움을 보게 됩니다. 이 지역 모임을 이루는 각 개인의 그 영적인 상태가 그들이 모인 지역 모임의 영적인 상태를 결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에 일곱 지역 교회를 보게 됩니다. 그 가운데 어떤 교회의 지체들은 성령님의 인도하심대로 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한 다른 신자들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거기에 '이세벨'이라는 한 여인을 보게 됩니다. 그 이세벨은 육신대로 행하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일으키는 문제는 지역교회의 문제로 크게 전염이 됩니다. 또한 우리는 빌립보에 두 자매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한 마음으로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지역 교회의 하나됨을 해치는 그런 결과를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이 성령님에 대해서 진지하게 인도함을 따르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이 지역교회 전체에 그 영향을 끼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3장에서 사도바울이 이렇게 경고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여러분은 구약의 솔로몬 성전에 대해서 아시고 있을 것입니다. 이제 사람들이 그 성전을 지으면서 거기에 무엇으로 쌓았는지 아주 주의 깊게 행해야 했었습니다. 이제 어느 날 웃시아 왕은 자신이 마치 제사장처럼 그 안에 들어가서 향을 올리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제사장들이 그를 막고 당신은 여기 들어와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교회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원칙 중에 하나는 우리가 어떤 사람들을 교제 가운데로 영접할 때 우리는 그것을 테스트해 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함께 살펴보았던 로마서가 실제적으로는 '천거서'로 사용된 것을 알게 됩니다. 뵈뵈 자매가 이 서신을 가지고 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이 자매를 주 안에서 영접할 것을 그들에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주 안에서 성도들이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라." 이것은 그 자매를 천거하고 성도들이 그를 영접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것은 지혜로운 실행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이 하나님의 집의 거룩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서는 "성령께서 각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라는 그 격려를 듣게 됩니다. 이 성령께서 우리의 모든 지역 교회의 집회 가운데서 인도하고 있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집회를 계획하고 또한 여러 가지 순서를 준비합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것을 하는 가운데 기도하면서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마지막 부분에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18절에 보면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한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성도들을 보존할 길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12월달에 네팔을 방문하였습니다. 참으로 그곳의 성도님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아주 관심이 많은 것을 볼 때의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매시간마다 모여서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저에게 더욱 많은 감명을 준 것이 있었습니다. 수요일 밤 기도 집회 시간이었습니다. 그들이 모두 다 참석해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 장소가, 그 시간이, 이 지역 교회가 힘을 얻고 있는 시간이 된 것입니다. 이 기도 집회는 지역교회의 영적인 상태를 보여주고 있는 그러한 시간입니다. 그들은 이 기도하기를 원하고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실행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이러한 기도 집회는 또한 여러분과 저의 영적인 상태를 보여주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와 같이 오늘 기도하셨습니까? 우리는 기도해야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위해서 함께 힘쓸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령 안에서' 기도할 것을 말합니다.

이제 세 번째로 지역 모임 안에 또한 성령께서 '은사'를 주시고 역사하시는 것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것은 아주 방대한 주제이기 때문에 저는 이제 겉핥기로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어떤 분들은 우리가 모두 성령님을 우리 안에 모시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다 같은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어떤 영적인 그런 쌍둥이가 아닌가? 생각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똑같은 것을 하고 똑같은 것을 말하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스리실 때, 성령께서는 이 은사를 각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구원받은 사람들 각자에게 주시는 영적인 능력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 필요한 그 영적인 능력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모두 성령님을 모시고 있지만 우리는 이 영적인 능력과 관련해서는 모두 다양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6절이 바로 이러한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은사와 직임과 역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으며, 주는 같으며, 또한 하나님은 같은 것"입니다. 또한 오늘날 교회 가운데 많은 혼란이 있는 부분이 또한 이 부분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성령께서 역사하시는지에 대해서 또한 오해가 있는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월요일 첫 번째 시간에 먼저 성령님에 대해서 전체적인 모습을 여러 군데에서 살펴봐야 된다고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역사를 하실 때에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역사를 하십니다. 우리는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성령님께서는 우리 안에 있지는 않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여러분과 저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또 우리는 이 완성된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계시와 관련된 은사는 이제 더 이상 그 목적을 이룬 후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는 지금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았고 나는 예언하는 은사가 있다."라고 말한다면, "내가 밤에 그 계시를 받았다."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에게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 여러분이 대답할 수 있는 한마디가 있습니다. "당신이 말한 예언이 이 성경에 어느 부분에 해당하는지 한번 보여주십시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다니엘 뒤에 여러분이 말하고 있는 그 예언을 새로 끼어넣을 것입니까? 또한 스가랴서 앞부분에 위치한 예언이 되겠습니까? 이제 이 완성된 성경에 더 다른 것을 더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은사는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두 번째로 '어떤 것을 확정하는 은사'가 있습니다. 이것은 사도들의 말하는 바를 증거하고 확증하기 위해서 주어진 은사입니다. 이것은 마치 '방언'과 같습니다. 이것은 '표적의 은사'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의 사도들의 역사를 확증하는,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사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다고 동의하고 있습니다. 이 사도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을 실제로 본 증인들이 돼야 됩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사도의 마지막 사도가 죽고 난 후에는, 이제 사도라고 주장하는 거짓 사도들이 등장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것이 거짓이고 어떤 것이 참된 것인지 그 은사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이 시대에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져 있는 그 은사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르치는', 또한 '전하는' 그런 은사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2장 28절에 보면 그런 은사들 외에 우리가 종종 생각하지 못하는 은사가 기록된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이 구절의 마지막 부분에 나와 있는 것인데요. '돕는 은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은사에 대해서 잘 생각하지 못하고 내가 이것을 가지고 있는지 모를 수가 있습니다. 이제 다른 사람을 돕는 은사입니다. 다른 신자들을 돕는 은사입니다. 이 지역 교회를 돕는 은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공적인 은사보다도 또한 이런 것들을 가치 있게 본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참 이러한 은사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로부터 온 것입니다.
참으로 특별히 젊은 성도님들에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은사를 사용하시기를 격려를 드립니다. 이 지역교회 여러 활동 가운데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은사를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섬기는 가운데 여러분에게 주어진 은사가 무엇이든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저는 어떤 자매님들이 개인적으로 만나서 복음을 전하는 데 분명하게 은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들이 일상적으로 나누는 대화 가운데 이제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자매님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복음을 들으러 초청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자매님이었습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은사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사용하시고 더욱 개발하시길 바랍니다. 참으로 이 성령께서는 우리가 이와 같은 은사를 사용할 수 있도록 계속적으로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특별히 또한 나이 드신 성도님들에게도 말씀을 드립니다. 어떤 젊은 성도가 어떤 은사를 가지고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게 된다면, 참으로 그 젊은 성도를 여러분께서 계속 격려해 주시고 그들을 북돋아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디모데는 그의 성격상 수줍어하는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에게 편지를 보내서 그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 하고자 한 것입니다. 참으로 이 지역 교회가 그러한 여러분을 필요로 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고린도전서 12장 전체를 보게 될 때에 여기서 지역 교회를 마치 '한 사람의 몸'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모든 지체가 다 필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누구가 할 수 없는 것을 여러분은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어떤 몸의 지체는 그렇게 아름다워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지체도 꼭 필요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아, 그것은 별로 필요하지 않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지체는 없습니다. 참 이 지역 교회에 가장 약하게 보이는 지체도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 번째로 성령님께서 '우리가 성장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에서는 우리가 '성령을 쫓아 행하는 것'의 '중요성'을 배우게 됩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

다르게 말씀을 드리자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항상 활동적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 신약 성경에서는 '행하다'라는 것을, 이 '걷는다'는 것에 대해서 자주,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적용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 '걸어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 가운데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도 또한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성령’과 ‘육체의 소욕’이 서로 싸우기 때문에 일어나는 어려움입니다. 이 육체의 소욕이 우리가 원하고자 하는 일을 못하게 막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젊은 성도님들이 영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 소원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말씀 집회에 나와서 이제 하나님을 위해서 섬기고자 하는 그 마음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집회 후 그다음 날에 다시 자신의 연약함을 느끼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가운데 다시 그 육체가 방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19절의 '육체의 일'을 이루어서는 안 됩니다. 22절과 같이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됩니다.
우리는 성령과 관련돼서는 '열매'를 언급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육체와 관련돼서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열매를 생각할 때에는 그 열매를 맺게 하는 어떤 자원이 그에게 공급된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맺을 수 있는 그런 열매들은 모두 이제 그런 특별한 자원을, 능력을 성령님으로부터 받을 때입니다. 그리고 이 성령님의 열매는 '사랑'으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희락'입니다. '화평', '오래 참음', 그리고 '자비', 양선', 그리고 '충성'. 이것은 아주 단순하지만 또한 분명하게 그리스도인들이 어떠한 특징이 있어야 되는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모습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그리스도를 사랑하시는 분이 있다면, 그분은 참으로 우리에게 희락을 가져다주신 분입니다. 그분은 이 땅에 화평을 주신 분입니다. 그분은 오래 참으셨고 어느 누구도 멸망받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참으로 이 가운데 누구보다도 자비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한 서로에 대해서 자비로 대해야 됩니다. 때때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사납게 대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그 '자비'가 그의 성격이 돼야 됩니다. 우리의 말에서 자비롭게 해야 됩니다. 우리가 행동할 때 자비롭게 해야 됩니다. 때때로 우리 가운데 있는 어느 누가 실패한다 할지라도, 그들을 우리는 자비롭게 대해야 됩니다.

우리가 에베소서 5장 말씀을 보게 될 때 이 말씀을 드리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5장 18절에 사도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저는 이것에 대해서 첫 번째 시간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서 성령님의 '통제' 가운데, 성령님께서 '주관'하시는 가운데 있는 것이라는 의미를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어떤 사람이 술 취해 있는 그런 모습을 보여줍니다. 왜 그는 술 취해 있습니까? 그들은 그들이 취한 그 술에 영향력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와 같이 술에 주관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에 의해서 주관돼야 된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이 이제 술을 마셔도 된다는 그런 경향이 슬프게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가 "너의 몸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한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그러한 몸에 우리를 주관하는 다른 것을 넣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항상 영적으로 성령께서 주관하는 자가 돼야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감사하는' 사람이 돼야 됩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감사를 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무엇을 듣는가'를 중요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젊은 성도님들에게, 이제 인터넷에서 많은 노래들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분들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이 그와 같은 노래를 들을 때에 과연 성령님께서 그 가운데서 평안하게 계실 수 있는지를 질문해 봐야 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감사하는 사람들이 되길 바라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주의 날에 모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형제들이 입을 열어서 공적으로 감사를 올려드리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그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성령님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분은 ‘인격’이십니다. 그분은 ‘우리 가운데 거하’십니다. 그분은 ‘능력’을 주십니다. 우리에게 큰 ‘위로’와 ‘평화’를 주고 계십니다. 오늘날 그분이 여러분을 향한 ‘목적’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매일과 같이 이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으로 여러분을 축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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