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형제님/조나단 블락 형제님

성령님 2 : 능력

박이레 2025. 7. 12. 21:51

< 성령님 2 : 능력 > 조나단 블랙 형제님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1-2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이번 시간에도 계속해서 우리가 함께 상고하고 있는 주제인 '성령님'에 대해서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분이 ‘누구신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분은 한 인격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을 어디에서 우리가 찾아볼 수 있는지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그분이 ‘역사하시는 능력’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래서 그와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는 신약 성경에 아주 중요한 장인 바로 이 장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로마서 8장은 물론 단지 성령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는 장은 아닙니다. 특별히 이 장은 성령께서 신자들에게 있어서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로마서 이 책은 복음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책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장은 “이 복음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은 우리를 구원하는 능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믿은 신자들에게 이 성령님을 임재하게 하시고,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능력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집회가 끝났을 때에는 우리 각자가 이 신자들 안에서 역사하시는 그 성령님의 능력을 또한 새롭게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물론 우리가 이것을 가지고 자랑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오히려 우리를 겸손케 만드는 것입니다. 이 성령께서는 결코 그 교만한 마음을 만들어내시는 분이 아닙니다. 반대로 이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를 닮게 하시면서 그래서 그리스도의 겸손을 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로마서 8장이 이 로마서 전체 서신서에서 중간에 위치한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 가운데 있는 이 장이 전체 서신서의 주제와 얼마나 잘 어울리게 그 자리에 있는지를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신약 성경의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을 생각하게 될 때에 거기서는 우리는 이 '복음의 구주'에 대해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보게 될 때에는 이 '복음의 전파'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로마서에 와서는 그 '복음의 구조'에 대해서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못과 그리고 넛트, 이런 것들을 말하는 구조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 신자들이 꼭 이해해야 되는 아주 기초적인 그 구조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구원을 받은 날 저는 지옥에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감사를 드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후에 저는 또한 나도 역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면에서 로마서는 세 가지 단락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1장부터 8장까지는 이 복음의 구조를 '교리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9장부터 11장까지는 이것이 특별히 '이스라엘 나라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가 12장부터 16장까지입니다. 이것은 '복음이 우리의 삶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8장이 그 ‘첫 번째 부분의 마지막’에 위치하고 있는 장입니다.
이제 이 책을 1장부터 8장까지 먼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다시 1장부터 8장까지를 이렇게 나누어 보겠습니다. 1장부터 4장까지는 우리는 그 '칭의'에 대한 위대한 교리를 보게 됩니다. 거기서 사도는 이제 법과 관련돼서 이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한 사람이 법적으로 의롭게 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5장부터 8장까지는 이제 어떻게 '성화'가 이루어지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단지 의롭다 선언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 구원으로 말미암아 ‘자유롭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장부터 4장까지는 ‘칭의’이고 5장부터 8장까지는 ‘자유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5장에서 하나님의 '진노'에서 우리가 자유롭게 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6장에서는 '죄'에서 자유케 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7장에서는 우리가 '율법'에서 자유케 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8장에서는 '사망'으로부터 자유케 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이 복음이 우리를 제한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이 복음이라는 것은 저의 인격을 어떤 방향으로 인도해 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로마서에서는 우리가 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자유케 되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그리고 8장 마지막에서는 “어떠한 것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는 것이 없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8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의 진노를 맞닥뜨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묻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율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우리가 이것을 해야 된다.', '이것을 하지 말아야 된다.' 그런 행위의 목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부딪히게 되는 그 '사망'이라는 것도 우리를 오히려 더 높은 곳으로 인도하는 것이 되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자유케 함에 있어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이 바로 이 '성령님'이십니다. 우리는 5장 5절에서 이 성령이 처음으로 언급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롬 5:5).

이 성령께서 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마음에 부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참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떠한 사랑을 부어주셨는지 그것을 계속적으로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참으로 복음을 전하는 모든 형제님들이 이 로마서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계셔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이 여러 가지 진리를 어떻게 제시하고 있는지를 잘 배워야 됩니다. 사도는 1장부터 3장까지 이 성령님에 대해서 먼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서는 사람이 어떻게 죄로 말미암아 타락하였는지를 다루었습니다. 사람의 그 죄악됨을 먼저 선언한 후에, 그리고 나서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말씀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8장에 도달할 때까지 이 성령님의 위대한 진리에 대해서 아직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은사주의 교회에서는 그들이 복음을 전하면서 처음부터 이 성령님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참된 복음이 되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이 ‘복음’에 있어서 먼저 ‘죄’와 그들이 ‘죄인 됨’을 이해를 해야 됩니다. 이 구주를 영접하기 전에 그것을 먼저 말씀을 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 로마서 8장에서는 두 사람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영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불신자가 있습니다. 우리가 8장에서 다루고 있는 두 대조적인 사람이 신자의 다른 두 종류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육신을 쫓는 사람은 불신자’인 것입니다. 그리고 ‘영을 쫓아 행하는 자가 신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이 신자와 불신자의 그 대조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영을 쫓는 사람이 어떠한 자유를 누리고 있는지를 함께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이 영적인 사람, 이 신자가 어떠한 존재인지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요즘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온라인에 어떤 자기의 신상을 올려놓게 됩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자기의 정보를 올려놓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참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자기소개는 어떠해야 되는지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로마서 8장에서는 ‘영을 쫓아 행하는 그리스도인의 참된 모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성령님에 대해서 이 장에서 5가지로 언급하고 있는 것을 먼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절부터 4절까지는 "생명의 성령"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그 영적인 사람의 ‘자유’를 함께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5절부터 11절에서는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성령님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9절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는 이 영적인 사람의 ‘생명’에 대해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12절부터 22절까지는, 여기서는 "하나님의 영"이라는 표현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그 사람이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여기에 '양자의 영'이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그리고 22절과 25절에서는 이 영적인 사람이 무엇을 '고대'하고 있는지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리고 26절과 27절에서는 그 영적인 사람의 또한 '제한과 한계'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성령’ 그분, 그 자신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26절에서는 그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신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이 장에서 성령께서 20번가량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제 1절부터 4절까지 이 ‘영적인 사람의 자유’를 먼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절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어떠한 '신분'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므로’ 우리에게 더 이상 정죄는 없는 것입니다. 이 정죄라는 것은 심판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이제 결코 우리를, 죄를 심판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존재로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러분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라고 물으실 것입니다. 여기서 이 '안에 있다' 이 전치사가 의미하는 것은 그분과 우리가 '결합되어 있다'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이 서울의 중심에 있는 역에 가게 됐을 때에, 여러분께서 저를 그 역에 내버려 두고 떠났을 때에, 저는 "나는 지금 여기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이제 문자로 보낼 것입니다. 또는 "나는 지금 기차에 있습니다."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10분 후에 "나는 기차에 탔다고, 기차 안에 있다."라고 문자를 보낼 것입니다. 여기에 뭔가 다른 상황이 있는 것입니다. 제가 기차 안에 있을 때에는, 기차가 어떻게 움직이냐에 따라서 그것이 저에게도 그대로 발생하는 일입니다. 저는 그 기차와 지금 결합되어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오늘 밤 제가 감사드리는 것은 여러분과 제가 그와 같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리스도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그리스도와 연결돼 있는 우리에게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을 때, 그러므로 저도 죽은 것입니다. 그분이 장사되었을 때, 또한 그분의 부활 가운데, 이제 함께 연결되어 그것이 나에게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저의 침례로 말미암아 또한 상징적으로 보여지게 됩니다. 제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 전에는 저는 아담 안에 있었습니다. 바로 그 사람이 육신을 쫓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그 아담과 제가 연결돼 있는 그 고리가 끊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리스도와 영원토록 그 연결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시고 ‘네가 의롭다’라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이 정죄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얻게 된 이 새로운 신분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리고 2절에서는 '새로운 원리'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그 '성령께서 내 안에 있다'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그 성령에 대해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것은 원리인데요. 이것은 어떤 것을 일어나도록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그럼 ‘성령께서 내 삶에서 무엇을 일어나도록 하고 계시는지’를 이해해야 됩니다. 제가 구원받기 전에는 나에게 적용하는 그 힘은 죄를 짓고 그로 인해서 사망을 얻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돌아보게 될 때에 참으로 이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 죄를 행하기를 좋아합니다. 그것이 그들의 생각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들을 죽음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우리가 육체로 죽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되는 영적인 죽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러한 모든 것에서 우리가 자유케 된 것은 얼마나 감사할 일입니까?
우리는 이러한 원리를 한 가지 예로 설명을 드릴 수 있습니다. 특별히 여기에 있는 젊은 성도님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여러분께서 이제 비행기를 타고 높이 올라가서 낙하산을 메고 떨어진다고 했을 때에, 여러분은 떨어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중력의 힘의 원리’에 적용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중력의 힘이라고 부릅니다. 여러분이 계속해서 그 중력의 작용을 받는다면 이제 땅에 떨어져 그리고 죽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지혜롭게 그 낙하산에 줄을 당기고 낙하산이 펴진다면, 이제 여러분에게 다른 원리가, 다른 힘이 작용되기 시작합니다. 그 물리의 용어로는 ‘항력’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공중으로 다시 솟아오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중력의 힘을 이기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이제 그 땅에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담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죄와 사망의 법 가운데 있었습니다. 우리는 땅으로 떨어지고 있었으며 그리고 이제 땅에 부딪혀 죽게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구원받는 순간, 이제 그것은 마치 낙하산이 펴진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새로운 원리가 우리에게 작용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는 이제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십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결코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하늘에 안전하게 착륙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2절이 말하고 있는 그 두 가지 원리입니다.

그리고 3절에서는 이것을 가능하게 한 그 지불을, ‘대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해서 할 수 없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율법은 결코 의로움을 만들어낼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면서 또한 율법을 동시에 전하지 않습니다. 율법은 다른 용도로, 두 가지 용도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로 이것은 "죄로 말미암아 더해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알고 그들이 얼마나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지를 깨닫게 하려고 주신 것입니다. 또한 두 번째로 율법은 우리에게 "몽학 선생"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 율법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그 율법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죽으실 때에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그리고 새롭고 산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에서 바로 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를 의롭다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3절에서는 이 ‘그리스도께서 지불하신 그 놀라운 대가’에 대해서 보게 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죄 없는 것'을 아주 주의 깊게 다루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죄를 인하여", "육신의 죄를 정하사" 바로 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게 정죄가 없는 것입니다. 바로 그분께서 십자가에서 죄로 정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율법은 그 모든 의로운 요구가 만족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 대한 모든 요구가 만족된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놀라운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그 율법을 지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같은 사람이 어떻게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분께서 바로 우리를 위하여 죄로 정죄를 받았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얻기 위하여 그분이 희생 제사를 드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에게는 새로운 길이 열렸고 이제 성령님을 따라 그 길로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1절부터 4절까지는 우리가 ‘어떻게’ 이와 같은 자유를 안전하게 얻게 되었는지를 말합니다. 참으로 우리 안에는 이렇게 자유케 하는 이 ‘생명의 성령께서 거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5절부터 11절까지는 이제 우리가 얻게 된 그 교제가 또한 얼마나 ‘안전’한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 영적인 사람의 그 삶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사람은 그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 영적인 삶을 이행해 가도록 도와주고 계십니다. 물론 우리는 육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우리에게 그 육신이 우리를 이기는 그 원리는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5절에서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라고 말씀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5절에서는 영적인 사람의 ‘마음’이 어떤 것과 대조되는지를 보게 됩니다. 부패한 사람의 마음과 대조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 구절에서 잠깐 '마음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가장 큰 도전은 우리 마음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됩니다. 또한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그러한 생각들로 우리의 마음속을 채우고 있는 법을 배워야 됩니다. 참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하게 생각할 줄 알아야 됩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바가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이제 외모가 어떤 것을 볼 수 있지만, 그런데 단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다른 사람이 여러분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안다면, 그들은 여러분을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이제 성령께서는 그와 같은 우리의 생각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특별히 우리가 "영의 일"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과 관련돼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장에서 또한 조언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무엇이든지 참된 것을 생각하라,", "무엇이든지 경건한 것을 생각하라", "옳은 것을 생각하라", "정결하며 무엇이든지 칭찬할 만하며"
, “이러한 것들을 생각하라”고 그는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도와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세상은 참 정결한 것과 거리가 먼 세상입니다. 여기에 있는 젊은분 뿐만 아니라, 모든 분들이 매일과 같이 이 인터넷을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우리의 생각을 더럽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단지 그 제목들만 봐도 우리의 마음이 금방 더러워집니다. 그 헤드라인 자체가 부도덕한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냥 뉴스의 한 제목인데도 그렇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이제 결정을 해야 될 것입니다. 내가 그 헤드라인을 눌러볼 것인가, 만약에 그것을 누른다면 우리의 마음은 더 많이 더럽혀질 가능성이 큰 그러한 것들입니다. 아니면 이제 다른 곳으로 이동할 것인지 선택해야 됩니다. "무엇이든지 정결한 것을 생각하라", "무엇이든지 참되며", 참으로 이 세상은 가상적인, 그런 만들어진 것이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제가 이제 노하 공항에서 서울로 비행기를 타고 왔습니다. 그리고 비행기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제 영화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보고 있는 그 화면들을 가끔씩 어쩔 수 없이 쳐다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화면에 나와 있는 것들은 대부분 폭력적인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또한 참된 것도 아닙니다. 참으로 이 헐리우드에서는 이런 것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은 참된 것으로, 사실로 가득 차 있어야 됩니다. 이것은 특별히 젊은 성도님들에게 도전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안에는 성령께서 계십니다. 여러분은 ‘영의 일’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6절에서는 이 ‘영의 생각’이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생각은 ‘생명’과 ‘평안’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이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인도하시는 것 중에 하나는 이제 그 마음의 평안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가지고 있는 그 평안의 관계와는 다른 것을 말하고 있는 평안입니다. 그것은 이제 법적인 평안을 말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또한 또 다른 측면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위해서 이 성령님의 생각을, "영의 일"을 생각을 해야 됩니다.
제가 그 인터넷에서 보는 뉴스 환경을 한번 다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거기서 보여주고 있는 뉴스로 우리의 마음을 채운다면, 우리의 마음이 계속적으로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이 일이 어떻게 될지, 우리의 마음이 더 불안한 상황 가운데 있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마음에 무엇을 공급하는지를 주의를 기울여야 됩니다. 여러분께서는 오늘 얼마나 많은 시간 소셜 미디어에 시간을 보냈습니까? 그래서 많은 젊은이들이 오늘날 그들의 마음이 어려운 가운데 놓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다른 사람들의 온라인에서 올리고 있는 그런 소식들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과 경쟁해야 되는 그런 마음에 사로잡혀 버리는 것입니다. 그들이 보여주고 있는 그 외모와 경쟁하는 마음, 그들이 물질적으로 이룬 그런 것들과 경쟁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살률이 많이 높아지는 것을 또한 보게 됩니다. 참으로 젊은이들이 스스로 그들을 어려운 곳으로 내몰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런 것들을 말할 때 참 여기에 많은 도전을 받는 성도님들이 계실 것입니다. 참으로 여러분이 지금 누려야 되는 그 마음의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상태에 계신 분이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그 영의 일을 생각하지 않을 때 우리의 마음은 다른 곳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평안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핸드폰의 앱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에, 여러분은 거기서 마땅히 취해야 되는 그 쉼을 누리지 못합니다. 저는 수년 전에 제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지워버렸습니다. 저는 그 페이스북을 볼 때 많은 유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는 그 페이스북을 이용해서 복음을 거기다가 올리기도 하고, 그런 데 사용하였지만, 하지만 거기서 나오는 보이는 많은 것들이 저의 마음을 여러 가지로 혼란스럽게 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사실 이 로마서 8장은 이와 같은 실질적인 문제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장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여러분의 삶을, 이 생명과 평안의 길로 인도하시는 이 길을 쫓아가도록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7절에서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구원받지 않았을 때 또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8절에 반대로 우리 "구원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주신 이유입니다. 이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이렇게 도전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는가?' 참 주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마음으로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는다면 그는 간음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아주 큰 가치를 두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제 9절에서는 그 영적인 사람인 것의 '증거'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한 구절에서는 성령님에 대해서 두 가지 명칭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제가 증거하는 그 결정적인 구절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서 우리가 믿는 순간,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구절이기 때문에 이것이 중요한 구절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구절에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 성령께서 하나님이신 그분의 '신성'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은 우리 안에서 그분이 '무엇을 만들어내시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와 우리를 연관시켜 주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 성경 구절에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들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그 가운데 특별히 두 가지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어떻게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시는지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서로를 용서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용서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특별히 결혼 관계에서 그것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5장에서 남편들이 그 아내를 사랑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주심과 같이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남편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도 역시 남편이고 제 아내가 여기 있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말해야 될 것 같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은 남편이 돼야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남편이 하는 사랑은 ‘희생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나보다 더 먼저 두는 사랑인 것입니다. 내 자신을 주는 사랑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결혼에서는 이렇습니다. 남편이 '이제는 내 시간 좀 가져야지.' 이렇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이 남편이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역사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이 있으며, 그분은 하나님이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그래서 하나님을 닮은 것을 만들어 가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은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로마서 8장 10절로 돌아와서 여기에 이 '영적인 사람의 구성'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1절과 함께 그러한 그 영적인 사람이 어떻게 '변화'될 것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11절에서 바로 이 '성령'께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셨을 때 역사하신 '능력'이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똑같은 원리가, 그 똑같은 성령님의 역사가 우리가 부활할 때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여기서 이 '죽을 몸'이라는 것은 '죽은 몸'이라는 것은 아니라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령께서 죽어 있는 시체 가운데 거하는 그런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 우리의 몸에 작용하는 그 법은 이 사망의 법이었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사망으로 이끌어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다른 법이 우리에게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성령께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그 동일한 성령께서 우리를 그 죽은 자 가운데서 살려내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8장 후반부에 이 몸이 '변화될 것'을 듣게 됩니다. 이 영적인 사람은 과거를 돌아보면서 이제 더 이상 정죄가 없다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리고 현재로 이 성령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영의 생각을 하고 그것을 쫓아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현재의 교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것입니다.

그런데 12절부터 21절까지는 '하나님의 가정 안'에서 우리가 어떠한 '안전'을 가지고 있는지를 또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신자들이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여기서 배우게 됩니다. 12절과 13절에서는 우리가 '형제'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입니다. 14절과 15절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양자됨'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16절과 17절에서는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리고 17절에서는 우리가 '기업'을 얻게 되는 것을 말씀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고 있는 놀라운 기쁨입니다.

우리는 12절에서 우리가 '육신에 빚진 자가 아니라'는 말씀을 봅니다. 그리고 13절에서는 '몸의 행실을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우리의 책임은 이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행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오직 성령님의 능력으로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못 박힌다'는 것은 다른 외적인 힘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성령님의 능력만이 우리를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이 새로운 삶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되었을 때 누리는 기쁨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예전에는 '옛 사람'이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주의 깊게 이 사실을 전합니다. 우리가 구원이 우리에게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전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우리의 옛 본성을 다 깨끗하게 제거해 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참으로 새로운 생명이 구원받은 사람 안에 더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새로운 것이 온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육신의 몸의 행실을 죽여야 됩니다.

14절에서는 이 '아들됨'의 그 관계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16절에서는 이 하나님의 영이 ‘증거’하신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양자의 영”이라는 아름다운 성령님의 이름을 보게 됩니다. 이 하나님의 영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보여주게 됩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영의 그 음성이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5절에서는 바로 그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됩니다.
제가 오늘 서울의 시내를 구경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이제 아버지라고 서로 부르고 있는 그 관계를 보았습니다. 만약에 그런데 제가 그 지나가는 사람에게 아버지라고 부른다면 그 사람은 저를 이상하게 쳐다볼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 사람과 전혀 이러한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까? 우리는 주 예수님께 직접적으로 기도드리지는 않습니다. 또한 성령님께도 그렇게 기도드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 아버지라고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양자됨'이 말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어떤 사람을 그 가정의 아들로 두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성경에서는 ‘양자됨’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설명하는 몇 가지 예가 있습니다. 우리는 창세기 48장에서 그 한 가지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요셉이 그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야곱에게 축복을 받기 하도록 데려온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그때 그 두 사람이 르우벤처럼 나의 아들들이 될 것을 말하게 됩니다. 요셉은 그의 장자인 므낫세를 왼손으로 그 앞에 놓아주게 됩니다. 야곱이 그의 오른손으로 므낫세를 축복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적인 그 순서입니다. 장자가 그 장자의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야곱이 그의 손을 어긋맞고 이렇게 한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오른손으로 오히려 둘째 아들인 에브라임을 축복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아들들이 되어 그들은 성막에 따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그들의 자연적인 출생으로 얻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그 영적인 축복을 통해서 그들이 지파로서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참 요셉은 거절당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요셉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양자됨을 얻게 되었고 우리도 그와 같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정에 자연적으로 그 자리를 얻을 수 있는 권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자연적인 출생으로는 단지 아담의 안에 있을 뿐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저희와 같은 죄인들을 그분의 가정 안에 두기를 원하셨습니까? 우리 안에는 어떠한 것도 기대할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저는 어떤 분들이 이제 아이들을 입양하는 것을 볼 때에 많이 존경을 하게 됩니다. 그들에게 가정을 제공하고, 그런데 더 놀라운 그런 입양이, 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정을 제공해 주시는 양자됨이 있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그분의 가정 안에 우리를 두신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삼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대신 내어주심으로 이렇게 이루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특권을 얻게 된 것입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그분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양자로 삼기 위하여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셨는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 구속이라는 것과 양자됨라는 것은 같이 가고 있는 복음의 진리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그 아들의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놀라운 '미래'를 또한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6절에서 그리고 17절에서는 그 '기업을 상속받는 자녀'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후사다." 그래서 그 기업을 받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그 놀라운 기업을 준비하고, 그것은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라지지 않는 기업입니다. 때때로 사람들이 이제 그 상속분을 가지고 다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조금 더 많이 얻으려고 싸우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전부 우리가 다 이 땅에 두고 가는 그런 것들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준비하신 더 놀라운 그 유산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한 기업을 그리스도와 함께 얻게 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장에서는 계속해서 우리가 받는 축복을 더 놀라운 것으로, 더 놀라운 것으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행기가 이륙하는 것처럼 계속해서 위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그 놀라운 미래입니다. 그리고 바로 성령께서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확실한 것인지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과 함께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을 제 고향인 북아일랜드의 집으로 모신다면, 제가 여러분에게 한 작은 상자를 보여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상자 안에는 작은 시계가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값비싼 시계는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치있게 하는 것은 그 안에 있는 작은 종이입니다. 그리고 그 종이에는 어떤 날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첫 번째 날짜는 아버지가 그것을 저에게 준 날짜입니다. 그리고 그 위에는 그 할아버지가 제 아버지께 그 시계를 준 날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할아버지의 이름은 '리차드 블랙'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위에 또 증조 할아버지가 그 할아버지께 그 시계를 준 날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는 그 증조 할아버지가 해군에 입대한 날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 그 시계가 그를 위해서 주어진 시계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세대를 거쳐서 계속해서 그 시계가 물려 내려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어느 날 그 시계를 제 아들에게 물려주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교훈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저의 증조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입니다. 저는 그분을 본 적도 없고 그분을 알지도 못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분으로부터 이 유물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같은 그리스도 안에서 유업을 얻게 될 때, 단지 그것을 받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유물이 말하고 있는, 가지고 있는 그분과 함께하는 것을 공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아직 보지 못했지만, 우리는 22절과부터 25절까지 그 영적인 사람이 무엇을 고대하고 있는지를 보게 됩니다.

참으로 여러분과 저는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참 기다리는데 익숙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리고 또한 22절은 모든 피조물이 함께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피조물은 우리의 행성을 특별히 가리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엘리베이터를 탄 적이 있었는데요. 그 엘리베이터 안에 '지구를 구합시다.'라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지구를 구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밖에 없습니다. 이 지구를 만드신 분입니다. 이제 베드로는 어느 날 이 새 하늘과 새 땅이 있을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구속'이라는 것은 네 가지 다른 측면에서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구속의 결과’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구속하셨고, 그분께서는 또한 ‘이스라엘 나라’를 구속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몸’을 구속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이 모든 ‘창조 세계’를 구속하실 것입니다. 참으로 다른 말로 하자면, 이 우주 안에서 그 구속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이런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을 위해서 죽으셨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 구원하시기 위해서 선택하셨다. 하지만 그것은 이 구속이 말하고 있는 진리와 반대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보아스'가 그런 것처럼 모든 것을 다 사신 것입니다. 그는 모두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그 대가를 치르신 것입니다. 이 창조 모든 세계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값을 지불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에 대해서 작게 생각하지 않길 바랍니다. 참으로 이 구속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지구라는 행성은 아주 좋은 상태에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끝을 지금 붙잡고 계시는 것입니다.
단지 피조 세계뿐만 아니라, 23절에서는 우리가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린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라고 되어 있는데요. 여기 ‘처음 익은 열매’는 항상 그 이후에 또한 그와 같은 것들이 ‘많이 수확’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우리가 오늘 이 시간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진통제가 필요하지 않는 그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먹어야 되는 그 약들을 먹지 않는 그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 가운데 오랜 기간 동안에 많은 고통과 그 병을 앓고 있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 일일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고통을 덜어주는 그런 약의 도움을 받는 것에 대해서 또 감사를 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과 제가 모두 알고 있듯이, 죽음이 그런 모든 고통을 끝내는 최선의 것일 것입니다. 하지만 곧 이것이 바뀔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몸을 얻게 될 것이고 우리는 그때 이 몸이 변화될 것입니다. 그분의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할 것입니다. 부활의 몸을 입는 것입니다. 이것은 순식간에 일어나는 변화입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우리가 다 변화하리니"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휴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어느 누구도 죽는 것이 아니라 다 변화될 것입니다. 저는 그 변화되는 몸을 입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몸은 너무나 많은 제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7년 만에 여기 방문했는데 많이 늙어 보인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단지 그냥 제 몸은 점점 나빠지고 있을 뿐이죠. 하지만 어느 날 좋아질 날이 오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실질적인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몸에 대해서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은 너무나 많이 외모를 가꾸는 데 시간을 쏟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참된 변화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또한 이 몸의 구속이라는 것이 우리의 병을 단지 제거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야 됩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단지 조금 젊은 모습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기대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여기 로마서 8장에서는 이와 같은 우리의 '자유의 목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2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그 소망은 미래의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우리가 29절을 앞에서 읽진 않았지만 이것이 말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29).

‘하나님의 목적’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우리가 닮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하늘에 가는 그 놀라운 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그곳에서 서로를 다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늘나라의 기적은 거기 있는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그리스도를 닮아 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아들의 형상을 본받아 있는, 영원토록 본받아 있는 그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단지 병으로부터 자유케 될 뿐만 아니라, 물론 그것도 좋은 것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죄에서 자유케 된 것입니다. 참으로 그것을 우리는 그날 그리스도께 더욱 감사할 제목이 될 것입니다.

이제 26절과 27절에서 마지막으로 말하고 있는 부분이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우리의 '연약을 도우시기 위하여' 성령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수 없을 때에 이 성령님께서 하시는 역할 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참으로 이 성령께서는 ‘말할 수 없는 탄식’을 우리가 하고 있을 때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 여러분이 어떤 성도님들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분들은 지금 병원에 누워 계시는 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때는 아주 활동적으로 섬겼었던 분입니다. 그런데 이제 너무나 연약해져서 그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무거운 자리에서 기도할 수도 없는, 그러한 연약함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그러한 분을 이제 버리신 것일까요? 하지만 성령께서는 어떠한 제한도 있지 않습니다. 이 성령께서는 계속적으로 우리에게 능력 있게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그와 같은 상황에서 기도할 수 없을 때, 성령께서는 우리를 대신해서 계속해서 기도하시는 분인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될지 모르는 때도 적용할 수 있는 진리입니다. 그때도 성령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십니다. 27절의 말씀에 그때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신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성령의 생각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31절과 같이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오"

이제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로마서 이 책이 복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위대한 책임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이 복음을 전합니까? 여기에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첫 번째로 우리는 사람들이 그 ‘영원한 구원’을 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또한 이 두 번째 이유를 잊지 않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이 영광을 얻는 것’을 보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 하늘에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그 죄인들로 가득 차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을 닮은 그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결과로 말미암아, 참으로 이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려드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 아들을 향한 찬송이 될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그분께 찬송이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 성령께서 우리 각 사람 가운데 임재해 계십니다. 이 8장은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지적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8장 마지막 부분은 '결코 분리됨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보장이 바로 ‘성령님의 능력’ 가운데서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 축복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