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형제님/조나단 블락 형제님

주님께서 세우신 지역교회의 본

박이레 2025. 7. 4. 22:42

< 주님이 세우신 지역교회의 본 > 조나단 블랙 형제님

안녕하세요. 이곳 제주 모임 성도님들께 먼저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께서 저희들에게 보내주신 친절과 또한 접대에 대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참으로 여러분들의 친절을 받을 만한 그러한 자격이 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또 우리가 내일 떠나게 되는데 그것을 위해서도 기도를 드립니다. 또 통역해 주셔서 이 형제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먼저 역대상 28장 10절 11절 말씀 읽겠습니다.

"그런즉 너는 삼갈찌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택하여 성소의 전을 건축하게 하셨으니 힘써 행할찌니라 다윗이 전의 낭실과 그 집들과 그 곳간과 다락과 골방과 속죄소의 식양을 그 아들 솔로몬에게 주고"(대상 28:10-11).

히브리서 8장 5절입니다.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히 8:5).

마태복음 18장 1절부터 5절까지 말씀입니다.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마 18:1-5).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15-20).

이제 우리는 이 2시간 동안에 걸쳐서 교회에 관한 교훈들을 살펴볼 것입니다. 특별히 '지역 교회에 관한 교훈'입니다.
여러분들이 길거리에 가서 이런 질문을 듣게 될 것입니다. "교회가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은 세상에서 교회에 관한 많은 답변을 드릴 것입니다. 제주에서 또 이런 질문도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런 질문에 대해서도 아주 다양한 답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침례를 받는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많은 다양한 답변들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 가지 다른 답변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가장 정확한 답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진리에 관해서 이 성경 말씀이 첫 번째가 되어야 되고 또한 결론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이 시간 말씀을 드릴 때 이 하나님의 말씀을 100% 사용하여 그것을 근거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아까 전 시간에 이제 북아일랜드에서 유명했던 타이타닉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그 배가 가라앉았던 그 사건에 대해서도 알고 있습니다. '토마스 앤드류'라고 하는 분이 그 배를 설계하였습니다. 그도 그 배와 함께 같이 가라앉아 버렸습니다. 벨파스트에 있는 그 박물관에 가면 유리로 된 이렇게 관이 있습니다. 그 유리관 안에 그 타이타닉 배에 대한 정확한 모형이 그 안에 그려져 있습니다. 그것은 아주 비싼 돈을 들여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 배에 관한 정확한 설계도입니다. 설계도는 토마스 앤드류라고 하는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설계도에는 유감스럽게도 단점이 한 가지가 들어 있습니다. 그 배는 아주 완벽해 보입니다. 그런데 그 배에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그 배는 이제 불완전한 것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에는 이 지역 교회에 관한 하나님의 완벽한 설계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 지역 교회에 관한 본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 그분 자신께서 이 하나님의 교회에 관한 이 본을 만드신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근본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가치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에서는 불완전함이라는 것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지역 교회에 관한 진리를 생각할 때마다 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본을 찾아봐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이와 같은 질문을 할 수가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교회 가운데 이와 같은 많은 어려움들이 있을까?" 그 어려움들은 하나님께서 이 본을 잘못 만들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어려움들은 사람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언급하신 이 최초의 지역 교회에 관한 이 말씀을 살펴볼 때 그 '문맥'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마태복음은 그 왕국에 관한 '왕국 복음'입니다. 제자들은 주님과 같이 다니면서 하나님께서 세우실 왕국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왕이 곧 오셔서 그 왕국을 다스릴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 앞장인 마태복음 17장에 보면 주님께서 변화산상에서 변화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참으로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세울 그 영광의 나라에 관한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제 제자들은 이 18장에 들어와서 주님께 이와 같이 묻습니다. "그 천국에서는 누가 큰 사람입니까?" 그 제자들은 그 위대한 나라에서 자신들이 뭔가 많은 것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제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 우선적인 것인지를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그 왕국을 세우시기 전에 십자가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주님께서 죽으신 이후에, 주님께서 세우신 그 '교회'에 대해서 지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유대인들과 또한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 신약 시대는 구약 시대 때 예언되었던 것이 아닙니다. 구약 시대 때 예언되어 있던 모든 것들은 그 하나님께서 나중에 세우실 왕국에 관한 예언들입니다. 그들은 이 천국에서 무언가를 가장 많은 것들을 얻기 전에, 주님께서는 이 지역 교회에 관한 이제 그 본을 제시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와 같은 교회 안에 문제가 있을 것을 또한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알고 계십니다. 이 18장의 첫 부분에서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무엇이 있는지를 드러내 주십니다. "너희들은 너희들의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제 너희들은 너희 자신을 높이는 그 태도에서 겸손한 태도로 바꾸어야 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역 교회에서 자꾸 문제들이 발생하는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는 저희들 마음속에 겸손함, 낮아짐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는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어야만 합니다. 여러분들은 또한 죄에 대해서 아주 심각하고 분명한 태도를 취하여야 합니다. 참으로 지역 교회에서, 하나님의 교회에서 문제들이 발생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또한 이러한 '죄' 때문입니다. 또한 잃어버린 양들에 대해서 올바른 태도를 갖고 있어야 된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복음의 아주 근본적인 것입니다. 참으로 이 하나님의 교회는 세상에 잃어버린 양들을 향하여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을 매우 따뜻하게 만듭니다. 참으로 내 자신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 18장 15절 이하에서는 형제 간에 '화합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이것 또한 지역 교회에 관한 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 배경에는 이제 '용서'라고 하는 배경이 있습니다. 참으로 이러한 용서하는 태도가 하나님의 교회에 아주 중요한 측면입니다. 우리는 서로 서로에게 이렇게 겸손한 태도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희들은 때로 사람을 향하여 범죄하거나 실수할 때가 있습니다.
이제 15절 이하의 이 말씀은 지역 교회 안에 '징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배경으로 해서 주님께서는 용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용서의 배후에는 '사랑'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참으로 이러한 지역교회의 본은 완벽한 것입니다. 우리는 불완전한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교회에 관한 본은 완전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패턴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 '하나님의 교회에 모이게 하신 것'에 대해서 살펴볼 것입니다. 특별히 또한 이 시간에는 20절 말씀에 대해서 초점을 맞춰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하나님의 교회의 본에 관한 첫 번째 교훈은 이것은 매우 '단순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목적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모이는 것입니다. 그 안에 주님께서 거하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시작할 때부터 의도하신 것들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성막에 관한 본을 받습니다. 참으로 그 안에 단 하나의 본만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 성막에 관한 본을 보게 되면 여러 가지 특별한 색들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떤 것은 금으로 되어 있고, 어떤 것은 파란색으로 되어 있습니다. 주홍색과 이제 붉은 색으로 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그대로' 그러한 것들을 성막을 만든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도 하나님으로부터 성전에 관한 양식을 받은 것을 읽어봤습니다. 그 성전에 관한 양식을, 그 본을 자기 아들인 솔로몬한테 넘겨줍니다. 솔로몬은 이제 하나님을 향한 그 성전을 짓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그 성전에서 솔로몬을 만나서 이와 같이 질문할 수가 있습니다. 그 성전 앞에 있는 두 기둥을 보면서, 야긴과 보아스라고 이름을 짓습니다. "솔로몬, 왜 하필이면 두 개만 기둥을 만들었나요? 기둥이 4개이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솔로몬은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본대로 만든 것입니다."
이제 어떤 사람이 이 제주 모임에 와서 이런 질문을 할 것입니다. 그 방문한 사람이 이 한 컵과 한 개의 떡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이와 같이 질문할 것입니다. "왜 이와 같은 것들을 두고 있습니까?" 우리는 모세처럼, 솔로몬처럼 대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것입니다." 이것은 성막에 관한 본이 아니고, 이것은 성전에 관한 본이 아니고, 그것들은 이제 이스라엘을 위한 본들입니다. 이 교회에 관한 이 하나님의 본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위한 것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동일한 원리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가운데 거하신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 가운데 주님께서 계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는 이 교회의 본을 얻기 위하여 모세처럼 산에 올라갈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말씀을 통해서 그 교회의 본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께서 이 교회에 관해서 첫 번째로 이와 같이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6장에서는 그 '몸인 교회에 관한 패턴'을 '본'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오순절로부터 시작해서 이제 휴거될 때까지 모든 믿는 자들이 포함되는 교회입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18장에 있는 교회는 어떤 한 지역에 있는 '지역적인 교회'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15절 이하에서 기록된 것처럼 이제 형제 간에 어떤 문제가 발생했고, 이것을 해결하는 것들을 교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성도들이 한 곳에 모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이 18장에 있는 교회는 하나님의 지역 교회를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대로 초기에 신약 성도들은 이 완성된 성경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아주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이 교회의 징계에 관한 것들은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사도들이 이것에 대해서 가르칩니다. 이 마태복음 복음서에서는 이 교회에 관한 '개념'을 말씀하십니다. 사도행전에서는 그 하나님의 교회가 탄생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서신서를 통해서 저희들은 그 교회의 실행에 대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시록에서는 주님께서 그 교회를 평가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우리는 이 교회가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제 고린도전서 1장에서는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교회에 관한 말을 합니다. 그 하나님의 교회는 여러분이나 저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 이 하나님의 교회는 장로들에게 또한 속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장로들은 그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고 감독하는 일을 합니다. 그 하나님의 교회는 바로 하나님께 속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만날 때마다 이것을 기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이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주님께서 마태복음 16장에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그러나 마태복음 18장에서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주님께서 떡을 취하셔서 "이것은 내 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컵을 취하신 다음에 "이것은 나의 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교회, 내 이름, 내 컵, 내 몸, 내 피, 다시 말씀드리자면 이 교회는 바로 주님께 속해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는, 여러분들은, 다 주님의 몸의 지체들입니다. 모일 때 바로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교회의 본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서 많은 오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다른 장소에 세워지는 교회들에 대해서 단 한 가지 본만 제시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것들을 보게 됩니까? 그러나 여러 가지 다른 본들이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은 '한 개의 본'입니다. 그것은 제주에도 있고, 서울에 있는 교회도 마찬가지이고, 광진 교회도 마찬가지이고, 어느 지역에 있던 하나님의 교회들은 한 가지 본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동일한 패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제가 한국의 사정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제 영국의 사정에 대해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슬프게도 영국에 있는 그 하나님의 교회들이 여러 가지 다양한 패턴을 따르고 있습니다. 한곳에서, 그래서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매우 약해지는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셔서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이 한 가지 본만 따르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제가 몇 달 전에 만났던 한 사람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그 사람을 길거리에서 만났습니다. 그는 주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그 만난 사람에게 어느 교회로 나가냐고 묻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떤 교회도 나가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그러자 형제님께서 그 사람에게 이와 같이 답변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래서 형제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이와 같이 물었습니다. "왜 나가지 않으시나요?", "내가 원하는 교회를 아직까지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많은 곳들을 다 돌아봤는데요." 이제 형제님은 그분에게 얘기했습니다. "그렇게 여러 군데를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그 분은 이와 같이 물었습니다. "아, 도대체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거죠?" 그래서 형제님은 그분에게 이와 같이 답변해 주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있지 않습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올바른 것을 당신에게 가르쳐주고 있지 않습니까?" 놀랍게도 그 사람은 형제님의 말씀에 동의했습니다. 저는 그분이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를 소망합니다.
여기에 먼저 "함께 모였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모인 곳에는" 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말씀은 '두세 사람이 모였을 때에는' 이라고 얘기하지 않고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는" 이라고 얘기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저희들은 이 하나님의 교회는 '영속적'이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교회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모여 있을 때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라고 하는 단어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것은 그리스어로 '에클레시아'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두 개의 단어가 모여서 만든 단어입니다. '에크'라고 하는 이 단어는 '밖으로 내어졌다'라는 뜻입니다. '컬레어'라고 하는 단어는 '부름을 받았다'라고 하는 뜻입니다. 그래서 '교회'라고 하는 단어의 뜻은 '부름을 받아서 밖으로 나왔다'라고 하는 뜻입니다. 세상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부름을 받았습니까? 하나님의 그 복음을 통해서 저희들은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받고 그 부르심에 우리가 응답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 안에 성령님께서 내주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단지 저희들을 그 세상에서 불러내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을 모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두 부분입니다. 우리는 부르심을 받아서 세상 밖으로 나왔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또한 함께 모이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와 같이 부르실 때 우리에게 이 진리를 배우게 하십니다. 이 모이는 이 본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모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제주 모임처럼, 이와 같이 믿는 자들이 함께 모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거에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복음이 전파될 때부터 전해진 것입니다. 믿는 자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모여서 존재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집회 때, 모일 때뿐만 아니라 항상 이 교회는 있는 것입니다. 이 교회는 살아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교회는 뭔가 조직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뭔가 구호 단체가 아닙니다. 이것은 어떤 사업, 이런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바로 살아 있는 무언가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성령님을 통해서 이 가운데 임재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영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 하나님의 교회라고 하는 것은 영속적인 것입니다.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필수적인 것입니다.
세상에는 이제 이러한 경향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하면 큰 교회가 부분으로 나눠서 적게 적게 모이는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만일 어떤 교회에 관한 웹사이트를 들어가 보면, '우리는 그렇게 다 함께 모이지 않습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그렇게 다 모이지 않고, 부분 부분적으로 셀 그룹으로 모인다'고 광고를 합니다. 어떤 형제 집에 이렇게 일부가 모이고, 이제 또 다른 집에 어떤 일부의 성도들이 모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교회 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교회라고 하는 것은 '한 장소'에 심겨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그 장소에 하나님의 교회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을 통해서 이와 같은 진리를 증명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1장입니다. 25절 26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 11:25-26).

여기에 안디옥이라는 지역에 최초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이 안디옥으로 갔습니다. 1년간 그들이 함께 모여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집회가 1년 내내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과 바나바는 그곳에서 계속적으로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이제 나갈 때도 있고 올 때도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한 지역에서 하나님의 교회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 지역'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두세 사람이 모였다"고 했는데 이 '사람'에 대해서 또한 살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이 신약 성경을 연구하면서 '모였다'라고 하는 이 단어는 매우 중요한 단어입니다. '온라인 처치'라고 하는 이제 인터넷상의 교회에 관한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본이 아니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는 이 말씀에서 이제 '본이라고 하는 단어가 없다'는 것에 대해서 주목하고자 합니다. 이 패턴이라고 하는 것은 그 건물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기 한 건물 안에서 이렇게 모여 있습니다. 그러나 이 건물이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가 무너진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교회에 관한 본은 바로 이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장소에, 이 눈에 보이는 이 건물이 교회가 아닙니다. 이 본에서는 노래하는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여기 안에서 식당에 관한 것들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늘 저희들이 점심시간에 이렇게 맛있는 것을 먹게 되었는데요. 그러나 이 점심을 먹은 것이 이 하나님의 교회에 관한 아주 필수적인 본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이 하나님의 본은 매우 단순하다고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하나님의 교회는 바로 '모여진 이 사람들'이 교회인 것입니다. 이들은 모였을 때 바로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어 모이는 것입니다.
여기 "두세 사람이" 물론 이 말씀은 지역 교회에 관한 최소한의 인원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이 문맥상으로 봐서 이 '두세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범죄를 지은 사람에 대한 증언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제 그들이 징계에 관한 어떤 교제를 나눌 때 증인이 '두세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또한 이렇게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희들이 하나님의 교회로 모인다고 하는 것은 복수의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집에서 만찬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함께 모일 책임이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교제’라고 부릅니다. 참으로 우리가 주님 안에서 동일한 것들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이 교제하기 위해 모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이와 같이 모였을 때 '머리 됨'이라고 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제 주님의 머리되심과 주님의 영광에 대해서 발견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내 이름으로", '내 이름을 향하여' 모였다고 기록되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 하나님의 교회라고 하는 것은 주님과 함께 있다는 것으로 정의내릴 수 있습니다. 참으로 주님과 주님의 이름과 관련되어서 모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교회 가운데 어떤 다른 이름들을 도입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어떤 강력한 권세 있는 자의 이름을 이곳에 들이지 않습니다. 이 '이름'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그냥 단순한 단어가 아닙니다. 이 ‘이름’이라는 것에는 '권위'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이름’이라고 하는 것에는 그의 '명성'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오직 주님의 이름과 주님의 명성만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이제 내 이름이 빠진 것에 대해서 슬퍼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주님의 이름으로 구원받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구원받고 주님의 이름으로 침례받습니다. 우리는 또한 그분의 이름으로 이와 같이 모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 ‘본’에 담긴 그 이름입니다. 참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우리는 모여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 주위에는 많은 이름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또 다른 이름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의심해 봐야 합니다. '무엇이 본인가?' 우리는 이곳에서 사람의 이름을 발견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예식을 치르는 가운데 어떤 사람의 이름이 드러나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주 예수'의 그분의 이름만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두세 사람이 '내 이름을을 향하여 모였다'고 하는 것에는, 그와 같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였을 때 그 가운데 주님께서 거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의 임재를 원한다면, 우리는 '주님의 이름을 향하여', '그분의 이름으로' 모여야 합니다. 이곳에 계신 성도님들이 제 이름 때문에 모인 것이 아닌 것을 인하여 감사합니다. 저는 아주 실패가 많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항상 신뢰할 수 없는 그러한 연약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으로 이름으로 모였을 때에는, 그분의 이름은 참으로 완벽한 완전한 이름인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모였을 때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또한 그분의 이름으로 모였을 때 그분께 찬양을 올려드릴 수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경배드릴 수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이곳에서 복음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 가운데 어떠한 이름도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 지역 교회의 놀라운 기적 가운데 하나는 그 가운데 주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주님 자신께서 우리에게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내가 그 가운데 있느니라" 참으로 성도님들은 이것에 대해서 믿고 계십니까? 우리가 이제 집회에 참석한다고 이제 얘기를 합니다. 참으로 우리가 집회로 모일 때마다, 참으로 우리가 '주님 앞으로', '주님의 임재 앞으로 모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십니까?
이제 우리는 성막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왜 성막에서 섬기면서 이렇게 조심스럽게 섬기고 계십니까? 왜 여러분들의 그 행동을 왜 주의에서 행동하십니까?" 그 성막에서 섬기는 사람이 이와 같이 말할 것입니다. "저 지성소를 보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그 지성소 안에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그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참으로 이 하나님의 교회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이곳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계시록 2장, 3장에서 이것들을 발견합니다. 참으로 그 일곱 금촛대 사이를 주님께서 거닐고 계십니다. "나는 너희의 행위를 알고 있다." 주님께서 언급하신 첫 번째 교회가 에베소 교회입니다. "네가 첫 사랑을 잃어버렸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이 하나님의 교회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참으로 우리 가운데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이 약속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교회는 매우 강력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무엇인가를 결정한다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교회 가운데 이 질서를 하나님이 바라보고 계십니다. 참으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셔서 이 하나님의 본을 우리가 쫓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건 참으로 근본적인 본입니다. 이것 외에 다른 것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연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연구한 것을 또한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서 참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기를 원합니다. 참으로 이 하나님의 지역 교회의 본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서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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