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형제님/조나단 블락 형제님

성령님 1 : 개요

박이레 2025. 7. 11. 14:33

< 성령님 1 : 개요 > 조나단 블랙 형제님

다시 한 번 이 마포 모임을 방문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또 함께 하나님 말씀을 나눌 수 있게 돼서 또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가 함께 저녁 집회 기간 동안에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여러분이 아마도 미리 들어서 알고 계셨을 것 같은데요. '성령님'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래서 이와 관련된 주제로 오늘 우리는 여러 부분에서 성경 말씀을 읽겠습니다. 이러한 말씀들을 통해서 성도님들이 많은 유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창세기 1장 1절부터 5절까지 읽도록 하겠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 1:1-5).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창 6:3).

"내게 말하던 천사가 다시 와서 나를 깨우니 마치 자는 사람이 깨우임 같더라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가 보니 순금 등대가 있는데 그 꼭대기에 주발 같은 것이 있고 또 그 등대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등대 꼭대기 등잔에는 일곱 관이 있고 그 등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그 주발 우편에 있고 하나는 그 좌편에 있나이다 하고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가로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내게 말하는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이것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어 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찌어다 하리라 하셨고"(슥 4:1-7).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눅 1:34-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 3:5-6).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요 3:34).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요 7:37-39).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1-4).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롬 8:23).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찌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요일 4:1-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계 2:7).

우리가 창세기로부터 계시록에 이와 같은 말씀을 읽게 될 때에, 우리는 성령님에 대한 주제가 참으로 광범위하게 성경 전체에 걸쳐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또한 이 주제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지 그러한 모습도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주제를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 전체적으로 다루어서 살펴봐야 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이 주제에 대해서 이제 '개요'로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우리 성령님의 그분 자신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와 또한 그분이 어떻게 임재하고 계시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분이 누구시며, 그리고 그분을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는지를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내일 이 시간에는 성경의 한 장에 집중해서 살펴보면서 '성령님의 능력'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이면 수요일에는 성령님께서 그리스도인에게 주시는 그 '평안과 능력'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오늘 이 시간에는 말씀드린 대로 '그분이 누구시며 그리고 그분이 어디에 계신가'를 다루겠습니다.

여러분께서 무엇을 사러 어디에 방문하신 경험이 물론 있으실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이 커피를 사려고 어떤 상점에 들어갔을 때에, 여러분이 이제 그것을 정말로 기대하면서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그것을 주문하는 카운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주문하려고 갔을 때에 내가 지갑을 안 가져왔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것을 지불할 어떤 수단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때 '내가 어떻게 해야지?'라고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이 문제 가운데서 어떻게 해야 되나 살펴보고 있을 때에 그런데 여러분의 옷의 한 주머니에서 이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기에 어떤 지폐 한 장이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발견하고 굉장히 기뻐할 것입니다. 내가 그 돈을 거기다 놔둔 것조차 모르고 있었는데 그걸 발견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커피를 그 돈으로 살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그 돈은 그 옷 주머니 속에 계속 있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여러분이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죠.
사실 이러한 모습이 오늘날 이제 그리스도인들과 그 성령님의 모습을 어느 정도 반영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성령께서 바로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까먹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순간부터 성령께서는 그 자리에 계셨습니다. 우리는 항상 이것을 기억하고자 노력해야 됩니다. 그분께서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기 때문에, 참으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그 능력을 우리는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있는 구원받은 모든 각 성도님들께서는, 바로 우리 각자에게 성령께서 임재해 계시는 것입니다. 물론 갓 구원받은 성도님들께서는 이러한 것에 대해서 이해하는 데 좀 어려움을 느끼실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저는 어린 학생으로서 제가 성경을 공부할 때에 이런 것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성경을 묵상하면서 '참으로 성령께서 내 안에 거하시구나.'라는 것을 경험했을 때가 있습니다. 저는 그 순간을 잘 기억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그때 이 성경이 말하고 있는 진리가 제가 실제로 경험한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대학교에서 저의 작은 방 안에서 있었을 때였습니다. 참으로 내 안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계시구나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이러한 것에 대해서 이제 세 번의 말씀 집회에서 강조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께서는 이것을 질문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한 성령 하나님께서 각 성도들 안에 거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까?"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말씀 집회를 통해서 대답이 되기를 바라게 됩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어려운 점에 한 가지는 그분을 우리가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세상은 모든 것이 이제 보여야 되는 그런 세상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부분은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이 육체만 가지고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몸이 있고, 또한 혼이 있으며, 영이 있는 존재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저는 오늘 여러분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은 볼 수 없습니다. 여러분도 저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참으로 어떤 스캐너가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보여서 드러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부분이 제 영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참으로 이러한 영적인 부분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반드시 인식을 해야 됩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서, 그분이 실제로 사람이셨던 그분에 대해서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참으로 그분이 사람이 되어 이 땅 가운데 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는 곧 그분을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아버지 하나님과 또한 성령 하나님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께서 여러분의 찬송가를 살펴보게 될 때, 그 가운데 한 3곡, 또는 4곡 정도가 성령님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찬송가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구주에 대해서는, 그 아들 하나님에 대해서는, 또한 아버지 하나님에 대해서 많이 언급된 찬송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보면서 '이것이 뭔가 좀 잘못된 게 아닌가?'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요한일서 4장에서 본 것처럼, 참 이 '성령의 목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 주님께서도 친히 말씀하시기를 "성령께서 오시면 그가 나를 증거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우리가 "영들을 시험해 보라"고 말한 것입니다. 참, 은사주의 기독교계에서는 이 성령에 대해서 그 자체만 강조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반대로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젊은 성도님들한테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 영들을 시험해야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학교나 또한 대학교에서 이러한 사람들을 만난다면, 어떤 사람이 성령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병이 나았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참 그것이 정말 성령님이 하신 것인지 확인해 봐야 됩니다. 우리는 '영들을 시험하라'라고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성령님의 주제에 관련돼서 항상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살펴봐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 이 성령께서는 그러면 과연 누구이신지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로마서 8장 27절에서는 그분 자신이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그분 자신이 한 '인격'이심을 말하고 있는 중요한 구절입니다. 이것은 삼위일체의 '한 위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하게 될 때에 가장 먼저 이해해야 되는 것은 그분이 한 인격이시라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 나이 드신 성도님들께서는 이미 이것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성령님이 단지 어떤 '영향력'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오해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성령님이 단지 하나님의 '능력'이라고만 단지 생각하는 잘못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은 그런 영향력과 능력이 아니라 ‘한 인격’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에베소서 4장 30절에서 그분께서 '근심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분께서 그 마음의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여러분에게 잘못을 범하듯이, 이제 그런 존재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말한 것을, 우리는 그 말을 들을 때에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여러분이 말한 것이 성령 하나님을 또한 그렇게 근심하게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신 적 있습니까? 여러분이 이번 주간 동안에 핸드폰으로 통해서 본 것이 또한 성령님을 근심케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제가 드린 이 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분께서는 인격이신 분이고 여러분 안에 계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항상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침에 대학교에 가게 될 때, 여러분이 학교에 가게 될 때, 여러분이 또한 직장에 가게 될 때, 여러분의 성령님을 그냥 집에다 두고 여러분만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과 항상 함께 다니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에 대해서 성령님께서 여러분 어깨 너머로 여러분이 뭘 하고 있느냐, 이렇게 쳐다보고 계시는 분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단지 여러분을 감시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돕기 위해서 있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그리스도인의 삶은 참으로 그분의 능력 없이는 한 발자국도 행해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위해서 여러분에게 성령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우리는 데살로니가전서 19절에서 "성령을 소멸치 말라"라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여러분이 불을 끄게 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여러분은 그 따뜻함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와 같이 성령님을 소멸할 수 있는 위험을 우리에게 경고해 주고 있습니다. 참으로 그 성령님을 그 불을 꺼뜨리므로 그분으로 통해서 받을 수 있는 유익을 여러분이 못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5장에서는 아주 슬픈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여기에 한 부부가 있었고 그들은 성령님께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값비싼 대가로 그들은 죽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것을 주의 깊게 들으시기 바랍니다. 이 성령님은 우리가 가지고 놀 수 있는 그러한 대상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이름부터가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거룩한 영', "성령님"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드리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왜 그분은 성령, 거룩한 영이라고 불리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거룩하신 분임을 알고 있고, 그런데 '거룩하신 아버지'라는 그런 표현은 많이 나오지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께서도 거룩하신 분입니다. 하지만 또한 '거룩한 아들'이라는 표현도 많이 나오는 표현이 아닙니다. 마리아는 그가 주님을 잉태했을 때 "나실바 거룩한 자"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거룩하시고, 더러움이 없고, 악이 없는 분이라는 말씀을 또한 보게 됩니다. 그런데 성령님에 대해서는 거룩하다는 표현이 90번 넘게, 계속해서 "거룩하신 성령님" 이렇게 표현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냐하면 첫 번째로 이 성령님에 대해서 다른 영들과 분명하게 구분 짓고자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아주 악한 영들의 그런 세상 가운데 살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 마귀는 아주 많은 그의 부하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 그 악한 영들의 능력에 대해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영들 중에는 또한 자신들이 마치 성령님인 것처럼 거짓으로 활동하는 영들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사도 요한은 '적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그 정체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모든 더러운 영들과 구별되는 여기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이름은 "거룩한 영, 성령님"이신 것입니다. 참으로 이 성령님의 임재 앞에서 다른 더러운 영들은 능력을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성령께서 오늘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있게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성령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한 두 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이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한 백성들'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한 우리는 성령님을 근심케 하지 말아야 되며, 성령님을 소멸케 하지 말아야 됩니다. 바로 이 성령께서 여러분과 제 안에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만들어 가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이 시간에 우리는 이 성령님의 능력이 없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가 없다고 말씀드리는 이유입니다. 젊은 성도님들께서는 그들이 구원받은 이후에도 죄를 짓는 것에 대해서 많은 어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은 또한 그들이 구원이 무엇인지, 그것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이 구원이라는 것은 우리 자신이 변화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이 주어진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옛 본성은 제거되거나 개선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새로운 본성을 얻었다는 것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 본성은 성령님과 함께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참으로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각 성도들 안에 성령께서 거하신다는 실제적인 증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각 성도들 안에 성령께서 거하신다는 이 말씀을 드릴 때에 여러분은 이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지 궁금해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에 대한 증거의 말씀으로 로마서 8장 9절 말씀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참으로 여기서 사도는 분명하게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으면 그때 그리스도의 영이 그 안에 있다." 우리는 성령님이 누구신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분은 ‘한 인격’이시고, 그리고 두 번째로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신약 성경에서 한 구절에서 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을 동시에 말하는 구절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나오실 때 기록된 말씀입니다. 성령께서 비둘기의 모양으로 그 위에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이 열리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저를 기뻐하노라."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께서는 동등하신 분입니다. 이 세 위는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령께서는 사람의 몸을 입으신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성령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계셨습니다. 참으로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 모든 신성이 육체 가운데 거하신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말씀과 관련돼서 이번 시간에 다룰 두 번째 주제인 '그분이 어디에 거하시는지'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특별히 성령께서 어디에 거하시는지 성경이 말하고 있는 네 장소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 각각의 장소는 성령님에 대해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있는 그러한 '그림'인 것입니다.
첫 번째 장소는 창세기 1장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성령께서 "수면에 운행하시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거기서 움직이고 계십니다. 이것은 히브리어 단어를 살펴보면은 마치 '새가 그 위에 날고 있는 것처럼' 이러한 단어를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성경의 첫 번째 책, 그리고 첫 번째 구절에서부터 이 성령님에 대해서 언급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들로부터 세 가지 교훈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로 '창조와 관련된 그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이 창세기 1장이 말하고 있는 천지 창조가 단지 물질적인 그런 것을 창조했을 뿐만 아니라, 영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창세기 1장을 보게 될 때에 단지 이것을 이제 물질적인 것으로만, 또한 과학적인 방법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께서 일을 하실 때에 영적인 것을 먼저 세우시고 그다음에 그에 따라 물질적인 것을 만들어내신다는 것입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러한 창조의 역사 가운데 하나님의 신이 먼저 수면에 운행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그리고 두 번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원칙을 보게 됩니다. 이 하나님의 영,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동시에 같이 언급된다는 것'이 이것이 이 원칙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원칙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반복적으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실 때에 항상 동시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영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면 거기에 빛이 있는 것입니다. 그 전에는 어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과 하나님의 말씀이 있자 이제 빛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마음과 또한 저의 마음에 일어난 일과 같은 것입니다. 어떻게 이러한 사람의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영과 하나님의 말씀이 같이 역사할 때 이 구원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같이 역사할 때 빛을 내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 어둠에 처한 영혼이 영광스러운 복음의 빛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육신에 있어서도 이와 동일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참 이 세상에 그 죄악된 어둠이 있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신이 마리아의 위에 운행하셨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거기에 빛이 비춰진 것입니다. 이 세상의 빛이 나오신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요한계시록 1장, 2장, 3장을 보게 될 때 거기에 지역 교회에 대한 그림이 나옵니다. 거기에 이 지역 교회가 어떻게 묘사되고 있습니까? 등대로 나옵니다. 거기에 빛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 빛은 어디서부터 나온 것입니까? 그것은 성령님으로부터 나온 것이고요. 이와 같이 성령님과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같이 역사하신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 우리는 영들을 시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젊은 성도님들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는 이 하나님의 말씀과 모순되게 반대로 행동하실 수 없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러분께서 하나님의 영께서, 성령께서, 여러분의 안에서 역사하시도록 여러분이 내어드리고 그리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읽는다면 그 가운데 분명한 빛이 비춰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성경을 기록하실 때 동일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베드로는 이 하나님의 말씀, 이것이 어떻게 우리에게 주어졌는지, 그 빛이 어떻게 비춰졌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거룩하신 자들이 "하나님의 영으로 감동을 받아 기록하였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 원칙을, 이 원리를 잊지 않길 바랍니다. 창조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계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원칙이 동일하게 작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하나님의 목적'이 이 가운데 있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빛을 비추신 것입니까? 참으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그 사람을 보도록 여기에 빛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창세기 1장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기본적인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과 여자를 창조하실 그 무대의 빛을 비춰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그리고 스가랴서 4장에서 특별히 저는 성령께서 이 나라와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를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구속을 특별히 그 '택하신 나라를 통해서'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께서 역사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관심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그런데 인류의 역사가 사실 이 유대인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실 많은 세월에 걸쳐서 유대인을 그 역사에서 없애버리려는 시도가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참 이 나라가 "제사장 나라가 되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뜻의 의미는 이 나라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여호와에 대해서 온 세상에 계시하시고자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하고 쫓겨난 이후에도, 여기에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하나님은 여전히 마련하고 계셨습니다. 이 ‘제사장 나라’를 통해서 세상 사람들이 나아오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의 중심에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대제사장’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사람이 백성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 아론 대제사장은 제사장으로 위임을 받아야 됩니다. 그의 머리에 기름이 부어져야 됩니다.
그리고 또한 그 ‘기름’이 바로 성령님을 나타내는 두 번째 그림인 것입니다. 그리고 스가랴서 4장에서는 '금 기름'이 나와 있습니다. 바로 그 나라가 참으로 합당하게 행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 말씀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참고로 이 스가랴서는 그들이 포로되었던 가운데서 돌아온 후의 일입니다. 스룹바벨은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되는 반대에 부딪히게 됩니다. 참으로 이 사역이 멈춰지게 돼 버립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뜻을 다시 회복시키기 위한 세 사람이 역사를 하게 됩니다.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그리고 느헤미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기에 금 등대의 그림을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그 등대 위에는 새 7개의 금잔이 있습니다. 그리고 기름이 그곳에 공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등대의 양 옆에는 두 감람나무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스룹바벨이 자신의 능으로 이것을 행할 수 없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이런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금 등대가 있고 그 양 옆에 감람나무로부터 기름을 공급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 능력으로 말미암아, 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그는 역사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제사장은 아니었지만 왕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사무엘상 16장에서 그가 기름 부음을 받은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무시더라"라는 기록을 보게 됩니다. 또한 그 성막의 가구를 짓는 그 지혜로운 사람에게도 성령께서 임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이 그 나라를 위해서 꼭 필요한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구약에서 성령님의 역사와 이제 신약의 성령님의 역사에 중요한 ‘차이점’을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구약에서는 성령께서 어느 누구에게도 '그 안'에 거하시지 않았습니다. 이 성령께서는 구약의 ‘성도들 위’에 머무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떠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 안에 거하신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성령께서 안에 거하시는 것은 아주 '특별한' 시대이고 ‘경륜’인 것입니다. 그리고 주 예수께서는 왜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십니다. 왜냐하면 이제 주님께서 부활하시고 영광을 입으셨기 때문에 우리 안에 성령께서 내주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때때로 어떤 사람들이 내가 모세의 시대에 있었다면, 아브라함의 시대에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물론 다윗 왕 시대에 사는 것도 좋은 일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모든 시대보다 가장 놀라운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경이 완성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또한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뒤돌아보면서, 그리고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고대하면서 살 수가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가 얼마나 놀라운 특권을 받은 사람인지 때때로 잊고 살 때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나라에 대해서 생각하게 될 때 그들의 미래는 이것입니다. 특별히 선지자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나라의 미래에 있어서 성령께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에스겔서 1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새 영을 그들 안에 창조하실 것’을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요엘 선지자도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을 모든 육체 가운데 부으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 이스라엘의 미래가 이제 완전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성령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미래입니다. 하지만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와 동시에 받아야만 합니다. 이것은 창조 시부터 하나님께서 정하신 하나님의 원칙입니다. 또한 그것을 그들 나라의 구속에 있어서도 동일한 원칙이 적용되는 것을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도 이와 같은 ‘금 기름’을 공급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이 '기름'으로 나타내셨는지 궁금하게 됩니다. 사실 이 기름이라는 것은 아주 좋은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약’으로도 사용될 수 있고, 우리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그 부상당한 자의 상처에 기름을 부은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또한 다른 사람들을 그와 같은 약처럼 돌봐줄 수가 있습니다. 또한 기름이라는 것은 ‘윤활유’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참으로 이 기름이라는 것은 물질들을 이렇게 매끄럽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참 여러분과 저는 본성적으로 모가 난 데가 있고 성격이 안 맞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님을 따라 살지 않으면 이 가운데 충돌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신약 성경에서는 이 성령님에 대해서 또 다른 그림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7장에서는 이제 "생수의 강"이라고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는 요한복음 전체에 걸쳐서 이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고 있는 장면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앞부분에 마리아의 그 ‘태에 있는 성령님의 역사’를 먼저 말씀을 드렸고요. 이곳에서 우리는 ‘성육신의 그 놀라운 진리’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성육신의 사건에 대해서 조심해서 다루어 봐야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이제 현미경으로 보는 것처럼 살펴보고 말합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우리는 창세기 1장에 나와 있는 그 원리를 통해서 이것을 살펴봐야 될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성령님이 있었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말씀을 통해서 여기에 성육신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리아가 처녀였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동정녀였습니다. 그는 "남자를 알지 못한 자인데"라고 말했습니다.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한 것입니다. 바로 그분이 '거룩하신 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경건의 비밀에 대해서 "참으로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것은 우리가 모두 다 알 수 없는 그러한 비밀입니다. 하지만 이 비밀이 이제 육신으로 우리에게 계시된 것입니다. 그분은 온전히 하나님이시고 또한 온전히 사람이신 분입니다. 이 마리아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이 아들을 잉태한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또한 요셉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셉에게 "네 아내 마리아를 데려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전합니다. "그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다."라고 설명을 해주었던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요셉에게 하나님의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이 동시에 역사한 것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이 두 가지 것이 이 놀라운 사건에 같이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내 영이 이 구주로 말미암아 기뻐합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합니다.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어떻게 그녀는 자신의 태 안에 있는 그분, 아기가 자신의 구주라는 것을 알았겠습니까? 아직 그를 보지도 못한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그 그리스도를 잉태하는데 사용됐을 뿐만 아니라, 또한 동시에 그리스도의 인생 삶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하신 것을 따라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그를 광야로 이끌어가신 것을 보게 됩니다. 또한 바로 성령께서 나사렛의 그분의 자라난 고향으로 인도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누가 복음에서는 그분에 대해서 “성령으로 충만하여”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분은 갈리리를 떠나시며, 참으로 이러한 말씀들이 아주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참으로 주 예수께서는 성령으로 다시 채워져야 될 필요가 없는 분이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항상 성령으로 가득 차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여러분과 저에 대해서 에베소서 5장에서 "성령 충만을 받으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 잔에다가 물을 부어서 채우는 그런 개념이 아닙니다. 여기서" 충만을 받으라"라는 것은 "성령께 모든 주권을 내어드리라"라는 것입니다. 이 성령께서 우리를 온전히 주관하시도록 내어드려라, 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그 입술을 그분이 주장하시도록 해라.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그분이 주관하시도록 내어드려라. 이와 같이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여러분과 저에 대해서는 성경이 격려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육신과 이 죄된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육신은 항상 성령과 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항상 그 성령으로 충만한 가운데서 행하신 분입니다. 참으로 이 땅 가운데, 참 단 한순간도 잘못된 생각을 가지신 적이 없는 바로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단 한 마디의 잘못된 말도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분을 보고 "이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길래"라고 감탄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그 능력으로 마귀들을 내보내실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참으로 어떤 한 사람이 구원받을 때에, 이제 그 사람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그가 받을 성령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주께서 영광을 받지 않으시므로 그 성령이 그들에게 아직 임하지 않았다"라고 부연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이 '흘러가는 강'에 대해서 ‘성령의 그림'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잔잔한 물', 이제 멈춰 있는 그 물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비유'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물살이 이는 그 물'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하나님의 ‘성령’이 주님의 갈보리 십자가 사역에서도 함께 역사한 것을 보게 됩니다.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리신 그리스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그 복음서에서 시작된 그 성령의 강이 갈보리까지 계속 이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의 군병이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을 때 그 옆구리에서는 물과 피가 나왔습니다. 그 피와 물이 그 옆구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와 같은 요한복음에서 계속적으로 '성령께서 흐르는 강'처럼 우리에게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는 '집합적으로 관련된 성령님'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기서의 그림은 운행하는, 공중에서 날고 있는, 그 새의 모습은 아닙니다. 또한 이제 흘러내리는 금 기름의 그림도 아닙니다. 또한 흘러가는 생수의 강의 모습도 아닙니다.
여기서의 그 성령님의 그림은 '바람'입니다. 이 성령님의 바람이 바로 '오순절 날' 강하게 불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성령님께서 그 강하게 부는 바람처럼 그 다락방을 가득히 채웠습니다. 그리고 그날 그 신자들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 '교회의 탄생'을 보게 됩니다. 이 성령님의 바람이 마리아의 태에도 불었고,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탄생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오순절에 이 강한 바람을 또한 보게 됩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교회의 탄생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도행전 전체를 따라가서 보게 될 때, 우리는 이 성령님의 바람이 사도행전에서는 교회의 역사를 따라 계속해서 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의 능력의 목적 중에 하나가 바로 이 ‘복음’을 전하는 데 사용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세상을 책망하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죄에 대해서, 또한 의에 대해서, 장차 올 심판에 대해서 세상을 책망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을 전하러 밖으로 나아갈 때에 우리가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어떠한 것도 할 수 없음을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강하게 부는 성령님의 바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요한복음 3장에서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성령님의 그림입니다. 주님께서 이 바람이 부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바람을 볼 수는 없지만 그 바람에 불어서 나타나는 결과는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다락방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이 바람이라는 성령님에 대한 그림은 그분을 이해하는 데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어린 성도님들이 계실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어렸을 때 한 질문과 같은 것을, 아마도 여러분이 질문하실 것 같습니다. "그분은 단지 한 성령 하나님이신데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 각 사람 안에 그분이 거하실 수 있습니까?" 오늘 이 시간에 여기에 한 100여 명의 성도님들이 계시다고 생각해 봅시다. 여기에 그렇다면 100분의 성령께서 계시다는 말입니까? 그것은 사실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오직 한 분이신 실제로 계시는 인격, 그 한 인격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바람에 대해서 한번 돌려서 생각해 보시겠습니까? 우리가 어느 날 이제 항구로, 바닷가로 구경을 나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여기에 항해를 하고 있는 한 배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30척의 배가 떠 있다라고 하겠습니다. 그 배들이 모두 제주도로 건너가고 있습니다. 이 배들이 어떻게 건너갈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그 밀어주는 바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30척의 배가 모두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그 바람으로 말미암아 항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지만 각자 움직이는 것이지만 한 바람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이 이것을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거기 떠 있는 그 각 배와 같습니다. 우리는 여러 사람이 있지만, 여러 배가 있지만, 한 바람으로 말미암아 힘을 얻어서 건너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 해안가를 따라서 그 배들이 각기 움직이고 있을 때, 만약에 바람이 없다면 그들은 움직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 모두는 이 같은 성령님을 우리 안에 모시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계시록 2장은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라고 이 명령을 듣게 됩니다. 우리가 이 집회의 초두에 '이분은 한 인격'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말씀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언제 마지막으로 말씀을 하셨습니까? 여러분께서 그 핸드폰을 내려놓고 언제 그 성령님의 말씀을 들으신 적이 있습니까? 어떤 헤드폰은 '노이즈 캔슬'라는 기능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이팟을 가지고 있죠. 그래서 우리는 그런 것을 끼고 다니면서 성령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령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어디로 가야 됩니까? 여러분이 성령님을 어디서 발견할 수 있습니까? 오늘 밤 우리가 발견한 것처럼 우리는 그 성령 하나님을 바로 말씀 가운데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성령께서는 여러분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전하는 채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선박이 통과하는 가장 큰 해협은 수에즈 해협입니다. 그런데 수년 전에 '에버기븐'이라는 한 선박이 그 해협을 지나다가 좌초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큰 수에즈 해협이 완전히 막혀버린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와 같이 그 성령님의 채널을 나가버리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는 굉장히 민감하신 분입니다. 여러분이 한쪽 손으로는 죄를 범하고 있으면서 다른 한쪽 손으로 성령님의 임재를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여러분이 죄를 범하지 않도록, 이기도록 도와주고 계십니다. 하지만 이 성령님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그분의 도움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집회가 끝나고 나가시면서, 여러분은 이 시간 동안 영적인 동료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누렸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밤 이곳을 떠나시면서 이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혼자서 이 공간을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안에 성령님을 모시고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집회를 떠나면서 여러분이 핸드폰을 보면서, 여러분이 집에 가서 또한 인터넷을 보게 될 때, 그리고 그 순간에도 성령께서 여러분과 함께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 이렇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분은 누구십니까? 그분은 한 인격이시고,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을 어디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습니까? 그분을 창조 시에 우리가 볼 수 있었고, 그분을 이스라엘 나라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를 통해서 성육신 하는 그 순간에 우리는 그분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와 같은 지역교회 집회 가운데서 그분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일 이 시간에는 그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그리고 여러분의 구원에 관련돼서 어떻게 역사하셨는지를 볼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서 다시 이 집회에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