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식후 첫날 > 조나단 블랙 형제님
"안식일이 다하여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마 28:1-6).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요 20:19-20).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쌔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우리의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았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 누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저에게 있다 하고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래 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사람들이 살아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위로를 적지 않게 받았더라"(행 20:6-12).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고전 16:1-2).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면 저희가 나와 함께 가리라"(고전 16:4).
예, 방금 읽은 말씀 가운데 '일주일의 첫날'이라고 하는 이 단어가 세 번 나온 것을 살펴보게 됩니다. 이제 우리가 어떤 것을 하려고 할 때 왜 그와 같이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왜 '이때' 그것을 하는지를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제가 이렇게 '주의 첫날'에 모이는 것에 대한 교훈을 몇 가지 살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첫날에 모이는 것의 원리에 대해서 살펴볼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모였던 실제로 역사적인 기록을 통해서 또한 그 본을 찾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에 기록된 그 하나님의 교회가 실제로 모였던 사건들을 살펴볼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첫날에 연보하는 것에 대해서, 그 중요성에 대해서 살펴볼 것입니다. 저기 헌금함에 있는데요. 저희들이 이 첫날, 주의 첫날에 모여서 거기에 헌금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이와 같이 주의 첫날에 헌금을 하는 것은 이 말씀을 따라 본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첫날의 모인다는 이 원리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어제 한봉래 형제님께서 안식일에 관한 중요한 교훈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또한 그것이 어떻게 오해되고 있는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특별히 바리새인들이 그것에 대해서 오해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안식일에 대해서 오해합니다. 아직도 어떤 사람들은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안식일에 대한 것들을 첫날에 옮기신 것을 바라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이유는 이 안식일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한 이 첫날이라고 하는 개념이 안식일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으로 이 달력이 바뀐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창조시에 제정한 것입니다. 그 일곱 번째 날에 하나님께서 안식하신 것입니다. 이제 유대인들의 달력을 보면 이 안식일에 그들은 안식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시에 쉬셨기 때문에 그들도 함께 쉬었던 것입니다. 또한 이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것에 대한 표징입니다. 특별히 이스라엘에 관한 것입니다. 아직도 유대인들은 그날에 안식일 날에 여러 가지 의식을 행합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루가 24시간으로 되어 있는 걸 보게 되는데요.
그런데 주님께서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안식일이 상징하는 것들을 완성하셨습니다. 참으로 이 안식은 주님 안에서만 저희들이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또한 우리는 히브리서 4장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영원한 안식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그러나 안식일에 대해서 생각할 때 주님 안에서 이것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일주일의 첫날'이라는 말씀을 보았을 때, 이제 우리나라 성경에는 이것이 '안식 후 첫날'이라고 돼 있습니다. 이 안식일에 주님은 무덤 안에 계셨습니다. 그러나 안식 후 첫날에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참으로 이 '안식 후 첫날'이라고 하는 이 원리는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안식일이 다했다."고 말합니다. 안식 후 첫날에 여인들이 그 주님의 무덤가로 왔습니다. 이제 이 날은 새로운 날입니다. 참으로 구약 시대에 있는 모든 계명들이 주님 안에서 완성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유대인의 그 모든 절기들, 모든 날들이 또한 주님 안에서 완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으로 주님께서는 유월절 양이라고 사도 바울이 가르쳤습니다.
또한 이 안식 후 첫날의 두 번째 원리는 그분의 '부활'입니다. 이 제자들은 그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부활하신 몸으로 나타나게 된 그 주님을 제자들은 보았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그 주님이 이제 그들 앞에 서서 계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들은 주님을 보았을 때 기뻤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이 안식 후 첫날에 관한 세 번째 교훈은, 참으로 이날에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는 날입니다. 레위기 23장에 보면 여호와의 절기가 기록돼 있습니다. 초실절 이후에 7번의 안식일을 지나게 됩니다. 일곱 번째 날 후에 이제 그다음 날은 안식일입니다. 그 50번째 날이 됩니다. 50번째 날, 곧 '오순절'이 됩니다. 그 오순절은 교회가 탄생한 날입니다. 그 날은 안식 후 일주일의 첫날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구약의 예언이 정확하게 완성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레위기서 23장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그 초실절에 이제 새로운 밀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새로운 것을 드린다고 하는 것은 구약 성경에 이 부분에서 처음 나타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교회에 관해서 알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 완성된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는 구약 시대에 이 새로운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순절 날까지 예루살렘에서 기다리라고 하신 주님의 의도인 것입니다. 이제 새로운 일이 그 날에 벌어졌습니다. 성령님께서 이 땅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승천하셨기 때문입니다. 왜 주님께서 올라가셨습니까? 왜냐하면 이 땅에 교회를 탄생시키시기 위함입니다. 참으로 주님의 몸입니다. 여러분들은 몸을 생각할 때 이제 머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참으로 머리는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리고 이 시대에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은 그 주님의 몸에 더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땅에 세워진 그리스도의 몸, 교회입니다.
우리는 최초로 세워진 그 하나님의 지역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라고 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첫날'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세 가지 원리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날은 '부활의 날'입니다. 두 번째 의미는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본 날'입니다. 세번째 그날은 오순절로서 '교회가 바로 탄생한 날'입니다. 참으로 주님 안에서 안식일은 완성되고 끝난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이 '안식 후 첫날'에 이와 같이 모이는 것에 관한 본을 공부해 보겠습니다. 그들은 안식일날 모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그 지역 교회로서 그들은 ‘안식 후 첫날’에 그들은 모이게 됩니다. 참으로 주님을 그 주의 첫날에 주님을 높인다고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위크앤드'라고 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주말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주말이라고 하는 것은 '토요일, 일요일'을 나타냅니다. 참으로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월요일을 일주일의 첫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는 자로서 일요일이 바로 일주일의 첫 날인 것입니다. 참으로 그날에 모이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일주일의 첫날에 바로 하나님께 가장 높은 자리를 드리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이 초대교회가 이 땅에 세워졌을 때 우리에게 보여주는 그 본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유대인들은 이제 안식일을 지켜야 된다는 생각을 가진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날은 일주일의 첫날이었을 것입니다. 로마서 14장에서는 이제 그러한 것들을 배경으로 서로 인내할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달력의 그 날이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이제 그들의 음식 생활도 바꿔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에 대해서 서로 친절하게 인내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행전에서는 이와 같은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입니다. 사도 바울이 유대에 있는 그 유대교의 달력을 부인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 유대인의 달력들이 영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다고 하는 것을 계속 전합니다. 참으로 구약 시대에 구약에 있던 여러 날들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또 여러가지 의식적인 먹는 것들을 따로 먹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영적으로 완성되었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유대인들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문제는 갖고 있지 않습니다.
드로아 교회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사도행전 20장에 기록돼 있습니다. 드로아에 어떻게 복음이 전해지는지를 아는 것은 흥미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간 사도 바울이 이 안식 후 첫날에 그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빌립보에서 배로 떠났는데 그곳에서 떡을 떼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20장 16절을 보면 바울은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빨리 서둘러서 갑니다. 여기에 유대인 달력에 두 날이 있습니다. '무교절'과 '오순절'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어떤 새로운 것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믿는 자들이 모여서 '떡을 떼려 하여' 모이는 것입니다. 그 떡을 떼기 위해서 모인 날은 안식 후 첫날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배를 타고 여행하면서 이 떡을 떼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여기서 보여줍니다. 그는 안식 후 첫날에 어떤 하나님의 지역 교회에 더해져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여러분들과 저에게 좋은 실행이 됩니다. 사도 바울은 배 안에서 따로 모여서 떡을 떼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18장에서 그렇게 한 이유를 알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교회는, 그 지역 교회는 이제 '영속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배 위에 어떤 하나님의 교회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편리를 따라서 정해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본을 따라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떡을 뗀다고 하는 것’이 항상 하나님의 지역 교회와 관련돼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두 가지 측면에서 이 떡을 떼는 것은 중요한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고린도전서 10장에서는 컵에 대해서 먼저 언급하시고 그다음에 떡에 대해서 언급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주의 상에 관한 교리입니다. 이것은 교제에 관한 교훈들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제를 할 때 이 떡에 참여하는 것으로 그 교제한다는 표현을 합니다. 우리가 그 떡의 한 조각을 떼어낼 때, 한 같은 동일한 떡에서 우리는 떼어냅니다. 참으로 그 '한 떡'이라고 하는 것은 마치 '한 개의 모임'이라고 하는 것을 나타내어 줍니다. 우리는 그 한 떡에 참여하는 한 무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떡은 교제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왜 컵이 먼저 언급되어 있을까요? 그 컵은 이제 '교제의 컵'이라고 얘기합니다. 참으로 그 커뮤니언은 이제 교제를 나타냅니다. 참으로 그 컵이 나타내는 주님의 보혈이 그 교제의 근본이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보혈이 없었다면 저희들은 여기에 함께 모일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컵이 떡보다 먼저 공급된 이유입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1장으로 넘어오면 거기에서는 "주님의 죽으심을 전파한다", '선포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그 다락방에서 제정하신 것처럼, 참으로 주님께서 그 잡히시던 날 밤에 주님께서 떡을 가지고 재정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 제정하신 순서를 저희들은 알 수 있습니다. 먼저 떡을 들고 축복하십니다. 또한 컵을 들고 축사하십니다. 뭔가 축사한다는 것은 이제 그것을 좋게 얘기한다라고 하는 뜻입니다. 참으로 우리들은 이 떡과 잔 앞에서 형제님들이 일어나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참으로 또한 그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서 또한 감사를 드리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이는 그 한가운데 떡과 잔이 있습니다. 이제 사도행전 20장 7절에서 그 제자들이 함께 모여서 나눴던 그 떡을 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예식을 안식 후 첫날에 가졌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성경에 나타난 본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어떤 교파에서는 이 떡 떼는 것을 이제 한 달이나 두 달에 한 번씩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성경의 본에 따라서 매주마다 첫날에 이와 같은 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주님을 그와 같이 기억하는 것은 참으로 우리의 특권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주님의 죽으심을 선포하고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와 같은 예식을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떡을 떼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여서 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다른 날에도 모일 수 있습니다만, 그러나 우리는 이 떡과 잔을 통해서 주님을 기억하는 것은 안식 후 첫날에 행하는 것입니다.
이제 저는 최근에 네팔의 나라에 방문해서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토요일은 그 네팔에서는 쉬는 날입니다. 일요일은 그들은 직장에 나가야 되는 날입니다. 그들은 일요일에 직장을 나가야 되고, 학교를 나가야 됩니다. 참으로 이와 같은 때 믿는 자들이 어떻게 행할까요? 만일 그 떡을 떼는 날을 토요일로 옮긴다면 그것은 아주 쉬운 방법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일요일 날 7시에 모이는 것에 대해서 감명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기에 아마 그 시간은 매우 이른 시간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주님의 본을 본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들이 직장에 가기 전에, 학교에 가기 전에, 주님을 먼저 기념하는 것입니다. 아침 7시부터 8시까지 성도들이 모여서 떡을 뗍니다. 그리고 그다음 1시간은 성경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9시에 그들은 직장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것에 대해서 주님께서 기뻐하시리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그 주님께 가장 첫 번째 것을 드려야 합니다. 참으로 이와 같이 드로아에서는 떡을 떼는 것을 가장 우선시하였습니다.
이제 또한 드로아에서 ‘말씀이 전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떡을 떼기를 원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열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그냥 밤에 그것을 하기를 원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서 탄력적으로 생각할 수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제 자정까지 말씀을 계속합니다. 참으로 오랫동안 그는 말씀을 강론하였습니다. 밤중까지 형제님은 여기서는 말씀을 전하지 않겠습니다. 아마 젊으신 분들은 잠이 들 것입니다. 이제 유두고라는 청년이 3층에 거기에 걸쳐 앉았습니다. 참으로 이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교훈을 받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아주 큰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그의 설교를 통해서 우리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 드로아에서 바울이 설교하고 있는 것을 듣는다면, 여러분들은 이제 이 모임에 대해서 어떻게 기억하느냐고 물어보게 될 것입니다. "아, 그날은 유두고가 떨어진 날입니다."라고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날은 바울이 떨어진 날이 아닙니다. 그 바울은 내려가서 그 젊은 유두고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단지 바울은 말씀만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그 청년을 향하여 실제적인 사랑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그가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그들을 돌보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저희들은 이와 같이, 바울과 같이, 젊은 청년들을 향하여 사랑을 베풀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젊은 청년들을 향하여, 자매님들을 향하여, 그와 같이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그들이 떨어졌을 때 우리는 그를 일어나도록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육체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도울 뿐만 아니라 영적인 것을 그와 같이 필요를 도와야 합니다.
한 가지 더 교훈을 찾아보겠습니다. 참으로 11절에 보면 오랫동안,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9절에서는 말씀을 전하기 위해 오랫동안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 9절에서 사용된 단어와 11절에서 사용된 단어가 다릅니다. 9절에서는 그가 말씀을 전파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11절에서는 그 성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눈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 말씀 전하는 것을 무시한 것이 아닙니다. 설교와 말씀을 전하는 것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이렇게 대체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본을 따라야 합니다. 오늘날에는 이렇게 말씀을 전하는 것이 인기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본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말씀을 전한 후에 우리는 서로 함께 이야기할 수가 있습니다.
이제 고린도전서 16장을 통해서 성도들을 위한 ‘연보’가 또한 매주 첫날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연보에 관한 주제는 조금 어려운 주제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참 그 돈에 의해서 이렇게 좌지우지되는 그러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영국 사람들도 이제 돈이 필요하고요. 어떤 웹사이트를 세워서 나를 위한, 나에게 돈을 제공해 주는 것들을 웹사이트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웹사이트를 만들어서 돈으로 도움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본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개인적으로 돈으로 도와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이 돈을 모아 행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서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한 연보를 모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으로부터 한 가지 교훈을 받을 수 있는데요. 성도들은 이와 같이 서로 돌봐야 합니다. 여기에 여러 다른 모임에서 이렇게 방문하게 된 것에 대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 다른 모임끼리 서로 돕고 협력해야 합니다. 16절 말씀을 보면 이와 같은 연보에 대한 교훈이 "모든 교회에 명한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연보는 '첫날'에 드려졌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교회에 명해진 하나님의 본입니다.
여기에 성도들을 위한 본이 있습니다. "너희 각 사람이 저축하여 두었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익을 주신 대로, 이익을 얻은 대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들에 대한 책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일을 하고 그 월급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돈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또한 그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여러 가지 필요에 따라 쓰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10분의 1만, 십일조로 드리라고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얼마를 드려야 될까'하는 그 문제는 하나님과 나의 문제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금액을 다른 사람이 보지는 않습니다.
여기에 보면 "내가 갈 때에 연보하지 않게 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어떤 위험한 일이 발생할지도 모릅니다. 만일 바울이 오늘 이 교회로 방문하게 된다면 바울에게 더 많이 줄 수도 있고, 그러나 이것은 바울이 의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는 것은 바울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매주일 첫날에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을 안다면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 드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학생이라면 적은 돈을 드려야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적은 돈이라도 주님께서는 기뻐하시며 여러분들에게 그것을 원하고 계십니다. 그 성도들의 연보가 모이게 되고 그 모인 돈이 이제 예루살렘에 있는 모임에 전달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우리 주위에 경제적으로, 여러가지 어려운 가난한 모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임에 많은 과부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음식이 또한 부족할 수도 있었습니다. 참으로 이러한 것들은 실제적인 필요입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 주위에 어떤 모임에 대해서 특별한 실제적인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으로 어떤 특별한 그리스도인이 그러한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장로가 또한 그러한 필요를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또한 다른 사람에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필요들에 대해서 장로들에게 얘기하고 또한 그 모임적으로 그러한 성금들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그 돈을 가지고 예루살렘까지 갈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믿을 만한, 신뢰할 만한 사람을 통해서 그 돈이 보내질 것입니다. 또한 그 사람에게는 '천거서'가 이와 같이 필요합니다. 참으로 이 말씀을 통해서 저희들은 하나님의 교회에 주어지는 '책임'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들에게 인정돼야 합니다. 이제 그에게 이 헌금이 전달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헌금은 아주 안전하게 전달되어야 합니다.
또한 여기에 실제적인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의 이 금전적인 문제에 대해서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합니다. 이 금전적인 문제, 재정적인 문제를 한 형제에게만 맡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마태복음 18장에서 배운 것처럼 '두세 사람이' 그러한 것들을 담당해야 합니다. 여기에 뭔가 소송거리가 들어와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그 혼자 재정을 담당하는 형제가 또한 유혹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이러한 돈 문제에 대해서, 재정 문제에 대해서 서로 주의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그도 함께 가겠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주의 첫날에, 매주의 첫날에 이제 연보하는 원리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제가 자라났던 그런 모임들도 이러한 원리를 행하고 있습니다. 바이블 리딩을 하면서 이러한 것들을 배우게 됩니다. 여러 형제님들이 이 연보에 대한 이제 다른 견해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연세 드신 형제님이 내 제 어깨에 손을 얹고, 그 형제님이 저한테 물으셨습니다. "이 연보에 대해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얼마를 드리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네가 얼마를 남겼느냐가 중요하다. 우리가 주님께 무언가를 드린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10분의 1을 드리는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 그분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돈에 관심이 있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을 전부 다 주님께 드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이 '매주일 첫날'이라고 하는 이 것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입니다. 참으로 그날에 매주일 첫날에 그들은 항상 모였던 것입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해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참으로 주님께 이 날을 드리는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분 자신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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