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번째 폭풍우 : 바울 > 조나단 블랙 형제님
안녕하세요. 사도행전 27장 1절부터 15절까지 말씀을 읽겠습니다.
"우리의 배 타고 이달리야로 갈 일이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사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행선할쌔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 받음을 허락하더니 또 거기서 우리가 떠나가다가 바람의 거스림을 피하여 구브로 해안을 의지하고 행선하여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성에 이르러 거기서 백부장이 이달리야로 가려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우리를 오르게 하니 배가 더디 가 여러 날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지 아니하므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의지하고 행선하여 간신히 그 연안을 지나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니 라새아성에서 가깝더라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행선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저희를 권하여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라 하되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그 항구가 과동하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과동하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편은 동북을, 한편은 동남을 향하였더라 남풍이 순하게 불매 저희가 득의한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가까이 하고 행선하더니 얼마 못되어 섬 가운데로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대작하니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 가다가"(행 27:1-15).
22절부터 25절까지 말씀을 읽겠습니다.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 뿐이리라 나의 속한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행 27:22-25).
"암초에 걸릴까 하여 고물로 닻 넷을 주고 날이 새기를 고대하더니"(행 27:29).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을 당하여 배를 걸매 이물은 부딪혀 움직일 수 없이 붙고 고물은 큰 물결에 깨어져가니 군사들은 죄수가 헤엄쳐서 도망할까 하여 저희를 죽이는 것이 좋다 하였으나 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저희의 뜻을 막고 헤엄칠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고 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원을 얻으니라"(행 27:41-44).
사도행전 23장 11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행 23:11).
우리는 이 시간에 성경에 나타난 폭풍우와 관련된 부분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대로 요나는 폭풍우 속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서 다른 방향으로 갔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제 이 시간에는 사도 바울이 폭풍우 속으로 들어간 장면을 살펴볼 것이며 그가 탔던 배가 망가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폭풍우는 사도 바울의 잘못으로 인한 폭풍우가 아닙니다. 이 폭풍우는 사도 바울의 조언을 다른 사람들이 듣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폭풍우입니다. 때때로 우리 인생 가운데에도 이러한 어려움이 닥칠 때가 있습니다. 때때로 그 고난의 원인이 나에게 있지 않고, 우리가 폭풍우에 들어가게 된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도행전은 참으로 사도의 놀라운 기록입니다. 사도행전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부터 12장까지는 ‘베드로의 행적’을 다루고 있습니다. 13장부터 28절까지는 ‘사도 바울의 행적’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제 방금 설명드린 두 번째 부분에서 사도바울은 전도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13장부터 21장까지 3개의 여행을 다루고 있습니다. 21장부터 28장까지는 이제 사도 바울이 죄수가 되어 행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 과정 가운데 3개의 시험을 통해 세개의 로마의 재판을 받게 됩니다. 첫 번째로 벨릭스 앞에서 재판을 받고, 이제 베스도 앞에서 재판을 받고, 이제 아그립바 앞에서 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내가 로마에 있는 가이사 앞에서 재판을 받고 싶다고 요청합니다. 그로 인해서 많은 거리의 항해를 시작하게 됩니다.
이제 그 여행은 123일간에 걸친 여행입니다. 약 4개월이 걸리는 여행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약속하십니다. "네가 로마에 가야 하리라." 사도행전 말씀에서 살펴본 대로 그가 로마에 가서 가이사 앞에서 증언해야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로 가는 그 여행이 순적하고 안전할 것이라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실 때,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늘나라에 갈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하늘 나라로 가는 그 여정이 순적할 것이라고 약속해 주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어려운 폭풍우를 맞게 됩니다. 마지막에는 그 배가 파선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의 경험을 통해서 귀한 교훈들을 얻고자 합니다. 이제 여러분들 가운데 어려운 상황 가운데 붙잡혀 있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곳에서 신실하게 행하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 어떻게해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 여러분들은 아주 거대한 폭풍우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여기 3개의 영어 단어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25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그 폭풍우 속에서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이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노라" 25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어떤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이 말씀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그 파도가 아무리 높다고 할지라도, "나는 하나님을 믿노라"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는 그 배의 파편을 이제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 배의 파편을 붙잡고 있으면서도 그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노라." 이것이 바로 이 폭풍우 속에서의 교훈입니다.
이 폭풍우 속에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몇 가지 배울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폭풍우 속에서 몇 가지 잃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폭풍 속에서 그들이 '통제'라는 것을 잃어버립니다. 그 폭풍우가 너무 심하기 때문에 그들은 통제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15절에 보면 "배가 밀려 바람에 맞추어 갈 수 없어" 그들은 배를 방향을 맞추어 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제어하고 계십니다. 바울은 그 선장에게 이 항해가 위험할 것이라고 조언을 했습니다. 그가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 되는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아주 위험한 책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배에 탄 사람들은 이 바울과 같이 영적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말을 듣지 않고 이제 자기 뜻을 따라 배를 운행하였습니다. 그들은 배를 섬에 가까이 이렇게 행선하였습니다. 그들은 다음 항구에 도달하기 위해서 그와 같이 행선을 운행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도 바울의 조언을 듣지 않고 그와 같이 항해한 것입니다. 그러자 곧 통제할 수 없는 아주 큰 광풍이 불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계신 젊은 성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위험한 항해를 매우 조심하셔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위험한 것이 있는 것에 가까이 가서 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우리는 또한 하나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또한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운전을 하는 가운데서도 안전벨트를 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들은 운전을 하면서 우리의 안전에 대해서 하나님께 맡기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행하는 데 있어서 지혜롭게 행하여야 합니다. 특별히 죄에 관한 문제를 다룰 때는 특별히 더 주의해야 합니다. 마치 죄를 불장난을 하듯이 가지고 노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 결과는 우리가 타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바울의 조언을 듣지 않았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여러분들의 어떤 관계에 있어서, 여러분들이 어떤 위험을 감수하는 그 판단에 있어서, 그 하나님의 말씀과 어긋나서 판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지혜로운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이 배가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두 번째 단어는 22절에 기록돼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나침반'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방향을 조절하기 위해서 별을 의지하게 됩니다. 그들은 앞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폭풍 속에 들어갔을 때 때때로 이와 같이 올바른 방향을 모를 때가 있습니다. 41절에 보면 그들의 '안정감'을 잃게 됩니다. 그 배가 땅에 부딪히게 됩니다. 이제 파도는 그 배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 죽는 줄로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폭풍우 속에서 많은 것들이 부서지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때때로 우리들의 관계가 부서지고, 심지어는 이 모임의 여러 가지 일들이 부서지게 되는 것입니다. 때때로 그곳에 있는 성도님들이 마음이 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모든 소망이 사라진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항상 그 가운데서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말한 대로 "나는 하나님을 믿노라."라는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다른 건 다 부서질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부서지지 않습니다. 참으로 우리가 이 폭풍우와 하나님에 대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을 믿습니까? 이 말은 내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세상에 있는 많은 구원받지 않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는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나는 하나님을 믿노라"라는 말은 하나님을 신뢰한다,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와 같이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았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에 대해서 우리 주님을 우리가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때때로 우리가 인생의 어떤 상황 가운데로 들어갔을 때 이와 같은 하나님을 믿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7가지 방법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야만 하는 7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번째로는 '그분의 인격'을 우리가 알기 때문에 그분을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창세기 1장 1절에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시편 121편을 보겠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시 121:1-3).
이제 이 시편을 지은 시편 기자는 세상을 창조하신 분의 능력을 알고 있습니다.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돕고 계시다는 것을 지금 그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창세기 1장을 읽으면서 과학적인 것에 자꾸 집착합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그 능력의 아름다움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고 그것을 통제하고 계십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만들었다. 그런데 나는 너를 위해서 폭풍 속에서도 도울 수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나의 출입을 지킨다고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내 인생 가운데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분의 ‘인격’과 그분의 ‘능력’입니다.
이제 세 번째 저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그 폭풍 속에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23절에서 "나의 속한 바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젯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이제 그가 내가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내 곁에 계시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해와 별들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 곁에 계시는 것은 알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항상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므로 나는 그분을 믿노라.
네 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을 그는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나는 그분을 믿노라. 하나님께서 그가 로마로 가게 될 것을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바울은 그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이 폭풍우 속에서의 한 가지 문제점은 우리가 그 가운데서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저는 수년 전에 이와 같은 집회 가운데, 젊은 형제 자매님들의 집회 가운데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이제 첫 번째 시간이 마친 후에, 그들의 그리스도인의 삶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인지를 한번 페이퍼에 적어보라고 했습니다. 5가지를 한번 적어보라고 그들에게 얘기하였습니다. 그다음 섹션에서 그것을 다뤄보겠다고 말씀하였습니다. 가장 첫 번째로 무엇이 그 리스크에 있었을 것 같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첫 번째가 바로 '두려움'이었습니다. 참으로 때때로 우리는 우리 안에 얼마나 큰 두려움이라는 것이 있는지를 잊을 때가 있습니다. 두려움이라는 것은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입니다. 내가 실패할까, 또한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내가 과거에 범하였던 그 죄로 인한 두려움입니다. 때때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부분에 있어서의 두려움입니다. 참으로 우리 안에 있는 이 두려움이라는 것은 매우 실제적인 문제라는 것을 저희들이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이제 매일매일 직장으로 향하는데요. 그 가운데서도 두려움 가운데 직장 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폭풍우 속에서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두려움을 우리 안에서 느낄 때,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 마음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잠언 3장 말씀을 같이 읽고자 합니다. 3장 5절부터 7절까지 말씀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찌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찌어다"(잠 3:5-7).
참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유익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을 다해서 우리 안에 계시는 주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는 50%만 신뢰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개울가를 건너다가, 다리 위에 서서, 내가 그 다리를 100% 신뢰하지 않는다면 저는 그 다리를 건너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문제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을 80%만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다해서' 그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또한 6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의 “범사에 그 하나님을 인정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또한 다른 신뢰에 관한 다른 문제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이 문제는 내가 해결하고, 혹은 하나님께 맡기고, 또 다른 문제들은 내 마음대로 해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뢰한다면 하나님을 순종하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옳은 길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를 향한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다른 하나님의 약속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너를 결코 버리지 아니하리라", "나는 너를 결코 떠나지 아니하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임재’에 관한 그분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그러한 약속입니다.
이제 다섯 번째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참으로 그 폭풍우 속에서 하나님은 '목적'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제가 사도행전 27장을 읽으면서 "형제님 여기에는 왜 이렇게 지명들이 많이 언급돼 있죠?"라고 질문을 드렸습니다. 또 동일한 질문을 저한테 또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마도 한 가지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네가 결국에는 로마로 갈 것이다."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이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로마로 가는 길이다.' 이제 여러 가지 다른 길들이 있습니다만, 그것은 직접적으로 로마로 가는 길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이 내가 너를 인도하는 길’이라고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여기가 네가 가는 길'이라고 지금 인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본인이 원해서 가는 길이 있었습니다. 그는 거기로 가서 이제 복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비두니아로 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곳은 아니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지금 바울은 로마를 향해 가고 있는데요. 그러나 ‘너는 로마로 가기 전에 다른 여러 곳도 들려야 한다’고 지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 들린 곳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여정의 마지막에는 배가 파선하여 멜리데 섬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제 그 멜리데 섬에서 3개월을 있게 됩니다. 참으로 그 멜리데 사람들은 그가 도착한 것을 기뻐했습니다. 그 바울을 인도하는 그 길 가운데 여러가지 문제들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또한 이것을 통해서 얼마나 정확하게 이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지를 또한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사도 바울로 하여금 여러 군데 다른 곳을 들르게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때에 따라서 그와 같이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때때로 인생 가운데 이 폭풍 속으로 들어갈 때가 있습니다. 이 폭풍우가 언제 끝날까 하고 이제 궁금해합니다. 우리가 시편 31편을 읽어봤을 때, 참으로 나의 때가 하나님의 손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께 이와 같이 질문합니다. "하나님 이 폭풍우가 언제까지인가요?" 그때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말로, 고백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노라." 또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그 ‘경로’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 경로는 이제 ‘고난의 경로’입니다. 그러나 그 경로는 바로 ‘구원의 경로’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일곱 번째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보존'입니다. 그 폭풍을 통과하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보존하고 계십니다. 44절에 보면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원을 얻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배를 버리고 떠났을 때, 어떤 사람들은 수영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널판 조각들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어떤 분들은 이와 같이 부서진 조각들을 붙잡고 있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배는 부서져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부서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사도의 이 폭풍우 속에서 4개의 닻에 대해서 보게 됩니다. 29절에 보면 4개의 닻을 버립니다. 그 배의 안정성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 배가 그 폭풍 속에서 더 안전해지기 위해서 그 닻 4개를 버려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버린 4개의 닻은 결코 그 배를 구원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배운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 신자들은 한 가지 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에 그러한 닻은 결코 안전한 것이 아닙니다. 때때로 세상 사람들은 고난이 닥쳤을 때 술에 의존하거나, 약물에 의존하거나,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그들을 안전하게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가지 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 있는 닻입니다. 참으로 그는 '복음'이라고 하는 위대한 닻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닻을 바울은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폭풍 속에서도 그 닻을 붙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사도 바울의 그 인생의 끝부분을 보게 됩니다. 디모데후서 4장에 그의 인생의 마지막이 나와 있습니다. 그는 그 디모데후서에서 또 다른 여행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한번 다시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딤후 4:6).
이제 바울은 감옥 안에 있습니다. 그는 그의 인생에 마지막에 다가가고 있습니다. 그가 떠날 기약이 가까워 왔습니다. 마치 여기서 바울은 그 배가 항해하기 위하여 그 줄을 푸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 배를 타고 영원한 나라로 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제 나는 준비가 되었다." 그는 또 다른 여행을, 영원한 나라를 향하여 가는 것입니다. 이 인생에 이 땅에서 있었던 그 폭풍우를 지나서 그는 영원한 나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 마지막 운명이다.” 우리도 이와 같이 마지막 그 인생의 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준비한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우리가 이 시간 구원받았다고 하는 것은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이제 사도 바울은 "내 갈 길을 마쳤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영원히 주님과 함께하는 그곳을 지금 바라보며 가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7장에 보면 8절에 '미항'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폭풍우 속에서 이 '미항'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항구를 만납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야말로 참으로 안식하는 미항입니다. 참으로 그곳에는 결코 폭풍우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 가운데 이와 같은 폭풍우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그 폭풍 속에서 사도 바울이 했던 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노라."
'외국 형제님 > 조나단 블락 형제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주님께서 세우신 지역교회의 본 (3) | 2025.07.04 |
|---|---|
| 세번째 폭풍우 : 주님께서 함께하심 (1) | 2025.07.04 |
| 첫번째 폭풍우 : 요나 (2) | 2025.06.28 |
| 몸인 교회와 지역교회의 구분 (1) | 2025.06.26 |
| 딤후 1장 : 영원한 가치가 있는 영향력 (0) | 2025.06.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