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성경읽기(요약글)/창세기 성경읽기(요약)

성경읽기 : 창세기 3장 19-24절

박이레 2024. 7. 31. 21:00

성경읽기 : 창세기 3장 19-24절(요약)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3:19-24, 개역한글)


- 김태우 형제님 사회 : 오늘은 19절부터 교제할 것인데요.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과 아담이 하와의 이름을 짓는데 그 이름의 뜻에 대해서도 교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우선 19-20절을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전의석 형제님 : 17-19절까지 나오는 단어들이 몇개 있습니다. 저주가 나옵니다. 그런데 사람이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사람으로 인해서 땅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뱀도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여기 수고가 나옵니다. 수고는 슬픔을 나타냅니다. 이 수고는 마가복음에 나오는 "내가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에서 고민과 같은 단어입니다. 주님께서는 가시 면류관을 쓰셨고, 주님께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고난을 실로 체험하시고 통과하셨습니다.
이전에는 사람은 동산의 다스리는 자였다면 이제는 노동자로 추락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 화와 뱀 순으로 대화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처분이 17-19절에 나옵니다. 그리고 아담이 20절에서 하나님의 심판과 처분에 응답합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듣게 됩니다. 하와라는 새 이름을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이름을 짓습니다. 하나님의 약속하신 후손을 믿는 가운데서 하와에게 모든 산자의 어미라는 놀라운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여기서 아담이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듣고 응답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구원의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 최재홍 형제님 : 19절에 보면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서 먹고 사는 문제가 인류의 매일의 관심사입니다. 인류는 자기의 생명 유지를 위해서 끊임없이 수고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로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결국 흙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아담은 930세에 죽었습니다.
신약에서는 식물, 떡에 대해서 언급되는 것이 창세기와 대조되어 나와 있습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주님께서 사단에게 시험 받으실 때에 마귀를 꾸짖으십니다.(마 4:4) 주님께서는 매일 필요한 양식을 위해서 하나님을 바라볼 것을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아담은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고 짓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생명을 주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이름은 그들의 상태와는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아담은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15절)을 믿고 자신의 아내의 이름을 생명의 뜻을 가진 이름으로 지은 것으로 보입니다. 곧, 그리스도에 의해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뱀은 파멸의 근원이 되고 여자의 후손은 구속의 근원이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 김윤철 형제님 : 하나님께서는 뱀에서 여자에게 그리고 아담에게 심판을 내리심을 지난 시간에 보았습니다. 땅은 그들로 인해서 저주받고, 사람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기까지 흙에서 생명을 유지해야 할것을 얻어야 했습니다.

하와의 이름의 뜻은 생명이라는 뜻이고 그가 모든 산자의 어미이기 때문임을 교제해 주셨습니다. 이를 질문하고 싶었는데 미리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죽옷을 지어입히심은 그들의 죄를 덮어주시는 모습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 가죽은 동물에게만 얻을수 있고, 이를 얻기 위해서는 그 동물이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설수 있기 위해서는 죽음이 반드시 근거로 주어져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기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수 있음을 묵상하게 됩니다.

- 김보영 형제님 : 19절에서 죽음을 말씀합니다.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죽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 죽음은 영적인 죽음과 육체의 죽음으로 나뉩니다. 아담이 범죄했을때 즉각적인 측면에서 영적인 죽음이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2:1, 개역한글)

그리고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육적인 죽음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 영이 하나님 앞에 가게 되고, 육도 부활해서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형벌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20절에 아담이 아내의 이름을 생명이라 지어주었습니다. 이미 심판을 받고 있지만 이러한 소망의 이름을 지은 것은 15절의 말씀을 근거로 하고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와가 모든 산자의 어미라고 합니다. 이는 모든 인류가 아담과 하와로부터 나는 것을 근거로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담은 자기가 벗었으므로 부끄러워 했습니다. 그래서 무화과 나무잎을 엮어서 치마를 만들었지만 이는 완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가죽옷을 지어주셨습니다. 이는 희생을 나타냅니다. 주님께서 세상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이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 카질라 형제님 : 21절에서 몇가지 교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 구절을 앞에 있는 7절과 대조해 보면 몇가지 사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만든것은 오래 사용할수 없는 일시적인 옷이었습니다. 그것은 약하고 보호를 거의할수 없는 것입니다. 이 옷은 몸의 일부분만 덮을수 있고 대부분의 신체는 노출된 상태로 있었습니다. 이것은 충분하지 못한 덮개와 같았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들의 몸을 덮으셨는지 보겠습니다. 짐승의 가죽으로 만드셨기에 이것은 오래 사용할수 있으며 튼튼하고 보호하기도 좋았습니다. 이 옷은 또 몸의 많은 부분을 덮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오랫동안 지속될 튼튼한 옷을 입히셨습니다.
인간이 만든것은 하나님이 만든것과 만큼 오랜 시간을 버틸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좋은것을 주실수 있으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주님만이 우리에게 좋은것을 주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덮기 위해서 어떻게 그 아들을 희생하셨는지 설명하는데 사용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를 충분히 덮으실 수 있는 어린양 되심을 묵상하게 됩니다.

- 김대현 형제님 : 7절과 21절을 교제하고자 합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창3:7, 개역한글)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창3:10, 개역한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창3:21, 개역한글)

7절을 보면 그들 스스로가 만든 것입니다. 앞서 자기들 스스로 벗은 것을 알았습니다. 사람은 양심이 있기에 자기가 스스로 죄를 범했음을 압니다. 그리고 10절에 보면 치마를 만들었는데도 그는 벗었다고 말합니다. 자기 능력으로 자기 죄를 가릴수 없음을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21절을 볼때에 "입히시니라"라고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입은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입히셨습니다. 이는 많이 교제해 주셨는데요. 성경 최초로 죽음이 이뤄지는 장면이라고 생각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바로 죽이시지 않고 동물을 희생시켜서 그 죄를 가려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의 반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임시조치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속죄하실 것에 대한 하나의 예표로 보이셨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 최재홍 형제님 : 21절을 살피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옷을 입히셨습니다. 옷의 기본적인 목적은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인간의 타락 때문입니다.
많이 언급되어졌는데요. 첫번째 동물이 희생되었습니다. 이는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된 것입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는 자신을 위해서 이런 희생을 바칠 능력이 없었습니다. 이 가죽옷은 사람의 죄를 증거하고 있고, 또 하나님께서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과 의사가 있으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가죽옷은 그들의 타락의 증거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이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실제적인 물리적 거리가 생겨났습니다.  

- 장승훈 형제님 :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심판을 내리셨지만 실제적인 저주는 땅에 내려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범죄하고 타락한 인생을 위해서 이런 상황을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죄를 범했고 어떤 불순종을 했는지를 보이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멸망이 아닌 소망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나쁜일이 일어났을때 이에 마음 상해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로 인도하신다고 믿습니다. 인생을 다루시는 일반적인 원리가 여기에 기록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20절에 그와같은 과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15절에 나와있는 복음의 말씀을 듣고 자기들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 알았을 것이고 이를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당장 멸망시켜야 할 인간에게 자손을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이를 믿고 받아들인 결과가 아담이 아내의 이름을 생명이라 지은 것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가죽옷에 대해서 양이라고 언급해 주셨는데요. 이는 양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아벨이 양의 첫 새끼로 제사를 드렸을 때에 이에 대한 지식은 아담과 하와로부터 왔을 것입니다.

22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라고 되어 있습니다. 단수 대명사와 복수명사가 사용되었습니다. 삼위일체되신 하나님을 말씀한다고 봅니다.  
24절에 그리고 "쫓아 내시고" 이는 범죄한 인생에게 합당하고, 안전한 하나님의 조치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사람이 범죄한 상태에서 영원히 산다면 그 죄가 계속 그에게 쌓이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서 죽는것이 오히려 그 사람에게 합당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명나무의 실과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주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 김대현 형제님 : 19절에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는 첫 언약의 실행입니다.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언약이 실행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로인해서 죽는것이 아니라 15절로 인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이 또한 실행됨을 생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