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성경읽기(요약글)/창세기 성경읽기(요약)

성경읽기 : 창세기 3장 9-12절

박이레 2024. 7. 10. 21:04

성경읽기 : 창세기 3장 9-12절(요약)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창3:9-12, 개역한글)


- 김민원 형제님 사회 : 9절부터는 하나님께서 숨은 사람에게 나타나셨고 아담에게 먼저 물으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아담은 여자로 인해서 먹었다고 말하고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다시 여자는 뱀이 나를 꾀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시는 순서를 보게 됩니다.
9-12절까지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윤철 형제님 : 7절에서 나무의 열매를 먹자 그들의 눈이 정말로 밝아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같이 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벗은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부끄러웠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감당할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찾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상황을 아셨지만 아담이 직접 하나님 앞에 나오기를 바라셨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담은 자신의 모습을 하나님 앞에서 숨깁니다. 죄인인 사람이 자기의 모습을 하나님 앞에 드러내고 자기가 죄를 없이할수 없음을 인정하고 나올때에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받으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담이 자신의 죄를 가리려는 노력이 아무 소용이 없었음을 생각할 때에, 그리고 하나님 앞에 숨으려고 했던 것을 생각할 때에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 자신을 숨길수 없음을 보게 됩니다. 죄인이 하나님 앞에 바로 해야 하는 행동은 죄인인 자신의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여자에게 약속하신 메시아로 인해서 죄인들을 받으시는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 최재홍 형제님 : 9절에 아담을 부르시는 것을 하나님이 먼저 시작합니다. 아담은 두려워서 숨었다고 합니다. 선악과를 먹을 때에 아담은 자신의 존재가 더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정 반대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후회, 부끄러움, 슬픔등, 죄의 결과로 오는 감정은 오늘날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죄인이 된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귀중하게 여기시고 아담을 찾으셨던 것처럼 지금도 계속 찾으심을 보게 됩니다.

아담은 또한 '내가'라고 말합니다. 자기 아내를 포함시키지 않습니다. 부부관계에 문제가 발생했음을 보게 됩니다. 또 하나님께서 찾으셨을때 자기의 범죄를 바로 밝히지 않고 하나님께서 물으셨을때에야 인정합니다.
그는 죄를 범하지 않았다면 벌거벗은 것을 의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대답을 통해서 자기의 잘못을 그대로 고백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됨을 보게 됩니다.

- 전의석 형제님 : 8절에서 "서늘할 때에" 라고 시기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서늘할 때까지 기다리셨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잘못을 고백할때까지 기다리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동산에 거니시는" 두번째로 장소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사람과 함께 거니시고 함께하시는 장면이 있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또 청각적으로 하나님의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것이 느껴질 때 사람은 하나님의 낱을 피하고 숨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불순종이 이러한 일을 야기함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자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죄를 자백하지 않을 때에 하나님 앞에서 계속 숨고자 하는 사람의 모습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지금은 지역모임에서 이제 거니시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지역모임에 나와서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구약에서 처음 나오는 질문이 있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이는 매우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아담이 범죄했을 때 "네가 어디 있느냐?", 가인이 동생을 죽였을때 "아우가 어디 있느냐?" 하갈이 주인에게서 도망했을때 "네가 어디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라고 질문하십니다. 이 질문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죄를 인정하도록, 죄를 깨닫게 하도록 하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굉장히 슬픈 질문입니다.
그러나 이 질문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보고자 하는 질문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게 하는 질문입니다. 이와같은 질문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아담은 변명하게 되는 데요. 그리고 자기의 고백이 가장 뒤에 나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가 실과를 자기에게 주었기 때문에 자기가 먹었다고 합니다. 죄가 드러날 때에 대부분 자기의 죄를 다른 사람에게 돌리고 인정하지 않고 마지막에야 인정하는 모습을 이 대목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 김대현 형제님 : 3장은 아담이 타락하는 시발점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그리고 그 죄를 물었을때에 그 잘못을 서로에게 전가시키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죄는 인간 사이의 관계,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도 파괴시키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선악과라는 단어는 합당하지 않음을 보게 됩니다. 성경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라고 되어 있습니다. 선악과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뱀의 꾀임에 빠졌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명하신 것을 불순종 하였기 떄문에 사람이 죽게 된 것입니다. 열매 자체에 독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죽게 된 것이라고 분별합니다.

- 신용길 형제님 : "네가 어디 있느냐"(9절)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는 구절입니다. 하나님께 범죄해서 숨어있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부르셨습니다. 이는 심판이 아니라 회복시키기 위해서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반역한 천사에 대해서는 결단코 용서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심판하심을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사람을 그렇게 하시지 않고 부르셨다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됩니다.
이 질문은 사람이 있어야 하는 자리, 처소가 어디여야 하는지를 많이 깨닫게 합니다. 마땅히 에덴동산에 있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정하신 장소에 있지 않고 범죄함으로 하나님을 떠나게 된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율법은 모든 죄악을 그물아래 모음과 같습니다. 율법 앞에서 내가 얼마나 추악한 죄인이며 용서받지 못할 죄인임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율법의 연약하여 하지 못하는 것을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희의 모든 죄악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을 원하시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탕자는 아버지를 떠나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비참한 상황에 떨어져서야 아버지 아래 있을때가 안온하였음을 깨닫고 아버지에게 돌아가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 아들의 상거가 먼데도 버선발로 달려가 맞이한 아버지의 모습을 볼 때에 하나님께서 저희를 사랑하는 그 마음을 알게 됩니다.

10절 말씀을 볼 때 사람은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존재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저도 구원받기 전에 자기 의를 드러내려 했습니다. 종교를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가 어려움이 있어서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모두 자기가 죄인임을 압니다. 자기가 죄인임을 알기에 교회를 다닌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11절에서 "누가"는, 너의 벌거벗었음을 깨닫게 한 존재가 누구냐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와로 인해서 죄를 범했다는 것이 아니라 아담의 의지로 먹지 않았으면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담은 하와에게 핑계를 돌리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것을 선택한 아담의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이러한 질문을 하신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와에게 물으셨을때도 하와도 동일하게 그 잘못을 뱀에게 전가하고 있습니다.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그 잘못의 책임은 아담에게 있고, 그 스스로 하나님께 불순종하였음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1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뱀에게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에게는 질문했지만, 뱀에게는 질문하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단에게는 회개할 기회를 주지 않으심을 보이신 것입니다.
뱀은 배로 땅을 기어서 다닙니다. 그리고 과학적으로도 뱀은 흙을 먹으며 살아갑니다. 뱀이 내미는 혀로 공중에 있는 먼지를 터치함으로 방향을 인지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저주대로 뱀은 그렇게 되고 그렇게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 하나라도 틀림이 없이 진리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 김민원 형제님 : 11절에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the man"이라는 구절이 2장에도 동일하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직접 말씀하신 것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아담은 범죄했을때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서 숨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질문하셨을 때에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여자가 주어서"라고 변명하는 인간의 본질적인 죄악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어서 15절까지 계속 교제 부탁드리겠습니다.

- 장승훈 형제님 : "네가 어디 있느냐?"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면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의 범죄와 아담의 영적인 상태를 하나님께서 지적하심을 보게 됩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모든 슬픔과 아픔과 고통이 여기서 비롯되었습니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2:17, 개역한글)

세대주의로 구분해보면, 이때는 무죄시대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먹으면 정녕 죽는다가 하나님께서 명하신 기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창조한 피조물의 본분인데 인간은 자기의 생각을 우선한 것입니다.
"너희 눈이 밝아"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 없이 지식을 구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죄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와같은 것들은 오늘날에도 보게 됩니다.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1:23-24, 개역한글)

오늘날도 복음을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것보다 자신의 생각을 더 우위에 있습니다. 동일한 죄가 있습니다.

그들은 벗어서 두려워하여 숨었습니다. 그런데 저주가 뒤에 나옵니다. 저주를 받기 전에 이미 그들은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 죄를 범한 순간 그들은 부끄러움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난 순간 그것이 우리들에게 벌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 김보영 형제님 : 인간이 죄를 범하자, 첫번째는 부끄러움이 왔고, 두번째는 두려움입니다. 세번째는 하나님 앞에 나갈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아주 큰 벽이 생긴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 스스로 결코 허물수 없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임재하신 성전에 나갈때에는 속죄 제사를 통해서만 나갈수 있었습니다. 속제 죄사 없이 나가면 하나님께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찾아오시고 가죽옷을 지어입히신 것은,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벽을 이미 허물기를 준비하셨음 보게 됩니다. 이는 장차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었습니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히10:1, 개역한글)

하나님 앞에 나갈수 없는 죄인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아드님을 준비하셨습니다.
인간이 범죄해서 슬픔 가운데 있는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즉시 죽이신 것이 아니라 아담을 찾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 앞에 자백하지 않고 하나님과 여자에게 그 책임을 돌렸습니다. 항하 역시도 그렇게 자기들의 죄를 회피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예비하셨습니다. 이를 생각할 떄에 감사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