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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읽기 : 창세기 4장 1-7절

박이레 2024. 8. 14. 20:55

성경읽기 : 창세기 4장 1-7절(요약)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 (창4:1-7, 개역한글)


- 김윤철 형제님 사회 : 오늘은 4장 아담의 첫번째 아들 가인과 두번째 아들 아벨에 대해서 교제하겠습니다.
1-4절까지 먼저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저번주에 미처 교제하지 못한 부분을 교제하고 싶습니다. 3장 21절의 가죽옷은 20절 아담의 응답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생각됩니다. 하나님의 처분을 아담은 잘 들었습니다. 아담이 하나님 앞에 뭘 잘 해서 가죽옷을 받은것이 아니라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아멘 했기 때문에 가죽옷을 받은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조 사역 이후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고 하나님께서 쉬셨습니다. 그 이후의 첫 사역이라고 한다면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것이 하나님의 첫 사역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저희의 거듭남도 하나님의 아드님의 죽으심을 믿음으로 출발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22-24절을 볼 때에 생명나무 실과를 먹으면 죄인으로 여전히 살아야 하고 미래는 암울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막게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계속해서 영원히 살것을 찾습니다. 진시황이 불노초를 찾았으나 그는 결국 죽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영생이 주어져 있기에 불노초를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이것은 저희 몸을 함부로 다뤄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생명나무는 계시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는 다시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저희들이 미래에 타락한다는 가능성이 제외되어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 김윤철 형제님 : 4장에서 가인과 아벨이라는 두 사람을 보게 됩니다. 이 둘의 공통점은 에덴동산 밖에서 태어났으며 하나님 앞에서 두 사람 다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요3:6, 개역한글)

육신의 부모는 그 자녀에게 영생의 소망을 줄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으로 구원받으면 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됨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 둘은 육으로는 같은 존재였으나 영적으로는 두 사람이 차이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히브리서는 이 두사람의 차이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두사람의 제사의 차이입니다. 그 제사드릴 때의 제물이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3장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위해서 희생된 동물이 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이것을 보고 두 아들에게 설명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이를 듣지 않았고, 아벨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 앞에 나가 제물을 드린 사람입니다. 그런 아벨을 하나님께서는 의롭다 하셨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 신용길 형제님 : 4장 1절을 보면 하와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내가 득남했다고 합니다. 모든 첫 것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가인의 삶은 하나님께 드려지지 않는 삶을 삽니다.
단 지파에 마노아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은혜로 말미암아 나실인을 주셨습니다. 그가 삼손이지만 그는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드려지는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그 부모가 자식에게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삶을 살도록 가르치지 못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도 그러지 않았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첫번째 농사를 짓는 사람이 가인이고 첫번째 양을 치는 사람이 아벨입니다. 하나님 앞에 모든 첫 것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했는데요.(민수기 8장 11-13,17절)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하나님께 드렸다고 합니다. 첫것을 드렸다고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자기의 첫 새끼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서에서도 아벨이 믿음으로 드리고 가인은 믿음으로 드리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첫 새끼를 드렸다는 것은 온전히 기름과 피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곧, 온전히 자신을 드린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온전히 나 자신도 죽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저희들이 살아감에 있어서 육신의 생각들을 매일매일 죽여가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가인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습니다. 가인이 드린것은 농사입니다. 농사는 농부의 노력의 산물입니다. 그래서 농삿물을 사람이 할수 있는 의가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이 거부되자 가인은 마음속에 분이나고 화가나서 그 동생 아벨을 죽이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저희들이 살아감에 있어서 저희들의 노력이 인정받아지지 않는다면 저의 마음 가운데서도 분이 일어나게 됩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하나님 앞에 나갈 때에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심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아벨은 온전한 순종으로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제물을 받으셨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저희가 드리는 제물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대한 순종의 자세를 보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하셨으나 사울은 좋은 동물, 재물들이 아까워서 좋은것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이를 지적하고 질책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사울은 폐위되었습니다. 저희들의 삶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고 저희 마음 가운데서 드러나는 것들을 매일 죽이며 살아가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3장과 연계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창3:20, 개역한글)

여기서 쌩뚱맞게 하나님의 판결이 내려질 때에 이 구절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저주하실 때에 아담과 하와는 저주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안에 원시 복음이 있습니다. 그들이 회개하였을 때에 다시 하나님 앞으로 돌아올수 있는 소망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고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구원을 받아들이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십니다. 그 대속물로 가죽옷, 피의 제사를 하나님께서는 요구하십니다. 그러한 교훈이 그 아들 가인과 아벨에게 분명하게 전달되었을 것입니다. 4장은 가인과 아벨의 싸움으로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뱀과 여자의 후손이 서로 원수가 되게 하셨습니다. 사단이 주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주님께서 승리하심을 말씀하십니다. 최초로 사단과 주님의 싸움을 언급하셨고 그에 대한 예시가 4장에 나와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4장은 하나님이 제시하신 하나님 앞으로 다시 돌아오는 방법을 인정하지 않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악한 뱀의 후손으로 규정하고 계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아온 자들이지만 그 믿음까지 유전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육적인 성품을 그대로 물려 받습니다. 육신의 자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님께 돌아와야만 구원받을수 있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은 아담과 하와의 육적인 성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4장에서 차이가 나타나는데,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제물을 그대로 드렸는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하신 형제님의 교제와 배치되지만, 저는 그 제물이 중요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제물을 드렸는가, 아닌가가 중요합니다. 대속 제물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돌아올수 있다는 것을 제시하신 하나님의 방법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사람과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4장 1절에 "동침하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육체적인 관계를 맺은 것입니다. 세상은 이를 저급하게 봅니다만, 남녀간의 육체적인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 말씀하신 예언이 실행됨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동성애같은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방법이 아님을 또한 생각하게 됩니다.

- 전의석 형제님 : 3장 20절에서 아담이 하와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4장 1절에서는 두 아들의 이름을 하와가 짓습니다. 그런데 4장 25절에서 셋을 낳았을 때에는 아담이 그 이름을 짓습니다. 3장에서 하와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을 때에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가인과 아벨을 낳았을때에도 주도권이 하와에게 있습니다. 이처럼 가정에서 누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가에 대해서는 남자에게 있습니다. 물론 혼자 독단적으로 해서는 안됩니다만, 여자가 도와서 합심해서 하는 것이 중요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가인의 이름을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하며 하와가 지었습니다. 그러나 아벨의 이름의 뜻은 헛되나, 없어지다는 뜻입니다. 이를 볼 떄에 가인을 낳으며 하와는 기대했지만 그것이 아님을 깨닫고 하와가 아벨의 이름을 이렇게 지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2-4절을 보면 아벨의 직업이 먼저 나오고 가인의 직업이 나옵니다. 아마도 아벨이 가인보다 직업을 먼저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아벨이 먼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인은 쉽게 생각하며 깊게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편한대로 제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가인의 제사를 열납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렇다, 저렇다 말씀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빨리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분을 냅니다.

- 최재홍 형제님 : 저도 3장 23절을 짧게 교제하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쫓아내십니다. 그는 동산이 아닌 전혀 다른 장소로 내어쫓깁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죄의 결과가 어떠한 것을 불러오는지 알게하기 위해서라고 생각됩니다. 다른 환경 가운데서 자신의 상태를 살펴보고 참된 평안이 무엇이었는지, 하나님의 교제 가운데 있는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였을 것입니다.

4장에서 가인과 아벨은 그 부모를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임을 배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농사는 당시에 식물을 얻기 위해서 꼳 필요했던 직업입니다. 그러나 양을 친다는 것은, 홍수 이전에는 육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방법외에는 별다른 수입을 얻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벨은 양을 치는 직업을 선택했습니다.

"아벨과 그의 제물" "가인과 그의 제물"이라고 또한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만을 보지 않으시고 그가 드리는 제물도 같이 보며 평가하고 계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 제물을 드리는 사람의 마음의 상태와 그 제물이 깊은 관계가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가인이 드리는 농삿물은 그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그의 마음의 상태를 그대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지 않고 자기의 방식대로 하나님께 나가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방식대로 순종과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간 사람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 김보영 형제님 : 형제님들께서 여러 측면에서 상세하게 교제해 주셨습니다. 3-7절까지의 말씀을 볼 때에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사와 받지 않는 제사가 있습니다. 이것은 저희 성도들에게도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제물만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드리는 사람과 제물을 동시에 보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 그것인 의식적인 제사인지, 아닌지도 보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 땅의 소산이라고 해서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레위기 2장에 보면 고운 곡식 가루인 소제가 나옵니다. 이를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있습니다.
가인의 제물을 열납하지 않은 가장 중요한 문제는 믿음의 문제였습니다. 아벨이 믿음의 제사를 드렸다면, 가인의 제사는 불신의 제사였습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또한 하나님 앞에 가인은 선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가는 자가 어떠한 자세로 나가는지가 가장 중요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가인은 죄악된 삶을 살았고, 아벨은 하나님의 뜻하신 대로 선하게 살며 가장 합당한 제물을 드렸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교훈을 얻는 것은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에 어떠한 자세로 드리는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도 회개할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6절) 그러나 가인은 그렇게하지 않고 교만함과 분냄과 악한 생각으로 자기 동생 아벨을 죽이는데까지 이르렀습니다. 그가 회개하고 주님앞에 돌아왔다면 그와같은 범죄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