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성경읽기(요약글)/로마서 성경읽기(요약) 완료

성경읽기 : 로마서 15장 4-6절(요약)

박이레 2024. 5. 11. 00:47
성경읽기 : 로마서 15장 4-6절(요약)
 
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5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6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롬15:4-6, 개역한글)
 
 
- 김태우 형제님 사회 : 오늘은 4절부터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3-5절 먼저 교제 나눠 주시기 바랍니다.
 
- 김윤철 형제님 : 수요일에 열왕기를 교제하고 있습니다. 여러 왕들이 하나님을 섬기거나 떠나 사는 모습을 보며 교훈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일들을 기록하신 것은 우리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서임을 4절에 기록합니다. 성경은 우리를 구원하게 하기에도 목적이 있지만 우리에게 인내와 안위를 주기 위함에도 그 목적이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들에게는 성경이 있고 성경의 교훈을 통해 하나님의 인내와 안위를 통해 소망을 얻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 지시고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사랑은 서로 받고, 안위하며, 선을 베푸는 것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뜻을 같이 하는것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이며, 이 연합의 목적이 우리가 그리스도를 함계 예배하는 것임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 전의석 형제님 : 4절에 있는 말씀은 구약성경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약성경일 뿐만 아니라 계시록까지 해서 신약성경이 다 이와같은 원리로 인내의 안위와 소망을 가지게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위로, 평안함, 안위로 소망을 갖게 하는것은 성경이 갖게한다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또한 이것은 성경의 교훈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위로나 기쁨은 옆에서 도움이나 선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이와같은 일을 하는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성도들간에 교제할때에 말로 위로해 줄수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말씀으로 이와 같은 일이 이루어지고 확보될때에 진정한 인내와 안위로 이어짐을 생각하게 됩니다.
 
세상을 살면서 인내가 필요하고 안위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저희들에게 평강의 하나님으로 소개됩니다. 그리고 이 배경에는 14장에 먹는것과 날을 지키는 갈등이 있었습니다. 저희는 말씀 안에서 한 뜻을 가져야 하고 한 마음을 가져야 함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저희들에게 여러가지 차이와 생각들과 일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에 대한 해결책은 성경을 통한 말씀과 인내와 안위로 하나되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해결책임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지역모임 간의 교제와 하나됨을 때때로 말씀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생각하게 됩니다. 한 지역모임 안에서 성도가 하나되기도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씀으로 하나가 될 때에 저희들의 노력으로 하나가 되는게 아니라 주님께서 하나가 되게 하심으로 주님께 영광 돌려 드릴수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 김민식 형제님 : 15장에 들어서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보게 됩니다. 24절부터는 사도바울의 본이 나옵니다.
3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으신 희생적인 본이 나옵니다. 4절에 "교훈"이 나옵니다. 원어적으로 볼 때에, 교훈에 대한 행동을 강조하는 단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권위 앞에 엎드리고 그 내용을 잘 알뿐 아니라 어떻게 잘 순종해야 하는지를 교훈을 받게 됩니다.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주신 성경을 인해서 저희가 소망을 갖게 합니다. "그리스도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이 소망이라는 단어가 '그 소망'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지고 오시는 것을 바라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영광 가운데 오실 것, 하나님께서 높임을 바라볼 것을 소망하는 것으로 교훈을 받게 됩니다.
 
- 최재홍 형제님 : 4절에 '인내'가 나와 있습니다. 기다리고, 견고히 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도에게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지난 시간에 어떻게 성도가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돌려 드리고 그에게 인내가 필요함을 보았습니다.
성도가 고난을 당할 때에 수동적으로 그것을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생각하고 믿음으로 충성스럽게 그 고난을 통과하는 것이 인내임을 보았습니다.
또한 연약한 자들을 위해서도 강한 자들에게 인내가 필요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약한 자들이 바로 설수 있을때까지 인내를 가지고 돌보고 기다려줘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안위'는 격려, 위로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위로와 좋은 소망을 주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서 말씀합니다.
 
5절에 또한 '뜻'이 나와 있습니다. 생각하다, 판단하다, 전념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생각에 기초해서 행하고자 하는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서로가 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말씀합니다. 서로가 다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 장승흔 형제님 : 지난 시간 동안에는 강한 자와 약한 자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15장에 들어와서 강한 자는 자기를 기쁘게 해서는 안됨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3절의 말씀은 시편 말씀이 인용된 것으로 됩니다.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훼방하는 훼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시69:9, 개역한글)
 
주님이 왜 비방과 고난과 훼방과 멸시를 받으셨나요? 왜나하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미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목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이루는게 목표이셨습니다. 그래서 비록 비방과 조롱이 닥쳐 왔을지라도 주님은 그 순간에 하나님을 기쁘게 하시는 것을 생각하심으로 참으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저희들에게 전이되어야 함을 말씀합니다.
구약의 말씀은 주님께서 오실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또한 믿지 않는 자들에게 어떠한 형벌이 있을지, 믿는 자에게는 어떠한 상이 있을지 교훈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이 결국에는  믿는 자들에게 소망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넘어감을 통해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5-6절은 우리가 다 알았습니다. 참고 인내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목표하신 바를 이루어 낼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는것과 별개로 실제적인 삶에서 순종해 갈때에 닥면하는 고난에 대해서 기도가 필요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 김보영 형제님 : 시편 69편이 전체적인 측면에서 주를 훼방하고 주님께서 수난받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사도가 이 말씀을 왜 인용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주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많은 박해와 시련을 당하셨습니다. 사도는 주님을 위해서, 성도를 위해서 일하다보면 오해와 비난 반대에 부딧치고 이로 인해서 낙심될때에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할지를 말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성도를 위해서 산다는 것에 대해서 담대함을 가지고 굳건하게 일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이 자신의 모든것으로 헌신하신 것처럼 우리또한 그렇게 해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4절에서 사도바울은 말씀의 중요성을 말씀합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사람이 구원받으며 성도가 영적으로 성장하는데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소망과 인내를 갖는데도 말씀을 의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5-6절 말씀을 보면 사도는 성도의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주님 안에서 하나되지 못한다면 하나님께 영광드리지 못합니다. 주님 안에서 하나되는 것은 말씀대로 행하고 말씀 안에서 일치되는 것을 다시한번 깨닫게 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그래서 주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필요하고 주님께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롬15:5, 개역한글)
 
뚯이 같아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 뜻은 분명한 교리들을 담고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모임 안에서 일치를 봐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이는 성경에서 분명히 명령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다루고 있는 일치라는 것은 그러한 범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먹는 문제나 절기를 지키는 것으로 볼수 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믿음이 강한 어떤 형제가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나 골프를 굉장히 좋아한다고 합시다. 그런데 모임 안에 가난한 형제가 골프가 사치스러운 스포츠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문제가 될수 있습니다. 자기가 주장한다면 그것이 빌미가 되어 성도들간에 굉장히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한 일들이 있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일을 다루는데 있어서 주님께서 십자가에 받으신 고난을 끌어옵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기쁨을 바라시고 자신을 굴복시키신 것과 같이 우리가 이 문제를 다루어야 함을 말씀합니다.
이와 같은 일을 주님의 본을 따라 해결해 갈때 서로간의 영적인 성숙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만일 마음에 안드는 성도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두신 것입니다. 이것이 굉장히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5절에서 기도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