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 : 로마서 10장 1-8절(요약)
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2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5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6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7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롬10:1-8, 개역한글)
- 장승훈 형제님 사회 : 1-8장까지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이 가지신 능력을 근거로 해서 저희가 받은 구원이 영원히 안전하다. 그리고 저희가 받은 구원을 취소할 수 없음을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9장부터 초점이 이스라엘로 넘어갑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인도하셨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실패를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향한 계획은 실패한 것인가? 하는 질문이 있을수 있습니다.
그런데 9장에서 우리가 배웠던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맞지만 이스라엘이 다 이스라엘이 아님을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가운데 남은 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약속을 성취하심을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호세아서나 이사야서에 이미 기록된 말씀입니다. 또 9장에서 이야기 했던 것 중에 중요한것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행하셨다는 것이고 피조물이 그와같은 것을 말할 자격 자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선택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좇아서 한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또한 의의 법을 좇아갔지만 그것이 행위를 의지한 것이기에 법에 이르지 못했고 그 의가 이방인에게 전해진 것을 9장 후반부에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의 불신과 관련해서 무지와 함께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마땅히 알바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잘못 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왜 그렇게 행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10장 1-3절까지 먼저 교제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1절에 사도바울의 마음의 나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2절에서는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었지만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3절에서 자기의를 세우려고 하나님의 의를 힘써 복종치 않았습니다. 마땅히 알았어야 할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 자기 의가 무엇인지를 교제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 박용수 형제님 : 2절에 열심이 있지만 지식을 좇은것이 아니라는 말씀에서 "내가 증거하노니"라고 합니다. 사도바울이 자기가 경험한 것을 이야기함을 알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잘못된 실행을 직접 해 본 사람으로서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과거에 지식없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던 것을 증거합니다. 열심과 지식과 관련해서도 세상에서 이야기를 합니다. 열심은 속도고 지식은 방향입니다. 하나님께 열심이 있는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지식과 하지 않으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회사에서 최악의 상사를 뽑자면 멍청한데 부지런한 상사로 뽑습니다. 전혀 도움이 안되면서 엄한데 부지런해서 일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서 지식이 없으면서 부지런하면 그것은 교회에도 하나님께도 전혀 본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바르지 못했던 최초의 인물은 가인입니다. 그는 아담으로부터 하나님께 어떻게 제사를 드려야 할지 알았지만 자기의 땅의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의를 무시하고 자기의 의를 하나님께 드리려고 했습니다.
- 김윤철 형제님 : 1절에 "형제들아" 라고 시작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을 지칭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것은 혈육적인 것이 아닙니다. 사도는 로마 교회의 성도들에게 자기의 기도하는 바를 전합니다. 그것은 지식없는 열심으로 하나님의 의를 거부한 유대인들을 향한 마음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들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을 의지했고 간청하는 그의 마음이 간절하게 드러납니다.
그리고 유대인이 하나님 앞에서 실패한 이유를 말씀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가진 열심이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열심이었고, 하나님의 뜻을 오해한 열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을 믿을때에 그것을 의로 칭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얻은 구원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감사하게 됩니다.
- 전의석 형제님 : 1절에 "형제들아"를 저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는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부르는 말입니다. 9장 3절에도 "나의 형제"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것은 그와 가까운 유대인들을 뜻하는 바입니다. 여기서도 원하는 바를 이야기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자기가 저주를 받아서 그리스도에게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10장 1절에서는 본인의 마음의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를 말씀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바와,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는 바를 함께 나눌수 있는 사람은 함께 구원받은 성도들 뿐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 하나는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가 똑같다는 것입니다. 저희는 때때로 그렇게하지 못하지만 바울 형제님은 그것이 일치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이러한 저희들 마음 가운데 있는 원하는 바와 구하는 바가 같다면 하나님께서 다윗과 같은 평가를 저희들에게 해 주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절에 "의를 세우려고 힘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힘써도 세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자기 의가 있고 하나님의 의가 있습니다. 세울수 없는 자기 의가 있고 세워진 하나님의 의가 있는 것입니다.
1-3절에 대한 결론이 4절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이 나오게 되고요. 그것이 율법의 마침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의를 거절한 것에 대해서 사도는 하나님의 의를 10장에서 설명해 나가십니다.
- 김보영 형제님 : 1절 말씀에서 저희들이 행할 바에 대한 큰 도전을 받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함으로 인해서 유대인들에게는 아주 거치는 자가 되었습니다. 너무나 미워해서 죽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역사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자기민족의 구원을 바랐습니다. 여기서는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자기가 하나님 앞에 유대인의 구원에 대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음을 말씀합니다.
이런 말씀을 대하면서 우리는 민족이라는 틀까지 가지 않아도 가까운 가족이 곁에 있습니다. 부모님, 형제, 가족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 대해서 정말 내가 그리스도에게 끊어질지라도 저들의 구원을 원하고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사도바울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가족이고 형제이기에 더 열심을 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 장승훈 형제님 사회 : 4절까지 교제해 주시고요. 4절에서는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셨다고 합니다. 이 의미를 저희들이 정확하게 짚고 가면 좋겠습니다.
- 한봉래 형제님 : 9-11장이 사실 어려운 대목입니다. 1절에 보면 사도바울이 자신이 이스라엘에 관하여 어떤 마음과 기도를 했는지 표현합니다. 그 이유 중 하나로는 그가 이스라엘의 배반자로 비난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올라갔더니, 성전에 이방인을 데리고 왔다, 성전을 모독했다는 말로 모함을 받고 재판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위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왜 복음을 거부할까?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하는 이유를 생각해 봅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면 유대인들은 대체적으로 거부합니다. 그런데 어떤 문제에 걸리냐면, 사도바울로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이 구약과 모순되지 않습니다. 로마서 4장에 보면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원리가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구원받았음을 말씀합니다. 자기가 전하고 있는 복음이 구약에 근거를 두었음을 말씀합니다. 사도바울이 베스도나, 로마 총독에게 복음을 전할때에 그들의 질문이 그것입니다. "그것이 구약에서부터의 믿음이라면 이스라엘 가운데 믿은 자가 얼마나 됩니까?" 구원받은 자가 소수입니다. 왜 구약에 근거한 복음이라고 하면서 이스라엘이 거부하는지를 설명해야 합니다. 그래서 9-10장에서 설명합니다.
아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이렇게 하면 어머니 입장에서 이 복음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자기의 사랑하는 남편이 지옥에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됩니다. 그랬을때 복음을 받아들일때에, 저희들의 사랑하는 가족들, 그런데 믿지 않고 죽으셨어요. 그들이 지옥에 갔다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어려운 것입니다.
또한 주일학교부터 길러내는 저희들의 자녀들이 어떻게 구원받을 것인가, 하는 것들이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9장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11장에서 사도바울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 말씀을 잘 따라가면 마침내 이렇게 행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에 대해서 탄복하게 됩니다.
2절에서는 "열심"인데요. 갈라디아서 4장 18절에서 사도바울이 좋은 일에 열심을 내는 것은 좋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열심이 있었는데 그 열심이 지식을 좇지 않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뭐에 꽃혀서 그랬느냐? 히브리서에서 계속 다룹니다. 이스라엘이 왜 실패했는지 다룹니다. 그들은 의식에 열심을 냅니다. 그리고 이 의식이 전부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를 실체로 가리킨다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13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것 같이 아니하노라
14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15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고후3:13-16, 개역한글)
유대인들은 형식을 굉장히 준수했습니다. 이렇게 가면서 그들이 정말로 못본 것은 이 모든 것들이 주님을 가르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식을 따르지 않은 열심의 비극적인 결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의는 무엇인가? 이는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시는 수준입니다. 인류 역사상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신 인물이 몇몇 있었습니다. 이는 인간은 자기 수준으로 의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수천년 역사 가운데 입증해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의롭게 하기 위해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이분의 십자가에 이루신 희생을 근거로 구원을 얻을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래서 4절에서 혹시라도 사람의 행위로 의를 얻을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할까봐 사도바울이 다시 말합니다. 예수님이 율법의 마침이 되셨다고 합니다.
이것은 좀 학술적인 이야기입니다만, 이 율법 앞에 영어로 보면 정관사가 업습니다. 다시 말하면 모세의 율법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의롭게 되기 위한 모든 종류의 법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 최재홍 형제님 : 2절에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것은 구원을 주는 지식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1:17, 개역한글)
유대인들은 구원에 대한 말씀을 들어도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완고함과 고집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로막았던 것입니다.
죄의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모두 처리되었고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은혜로 대할수 있게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믿는 자들을 의롭다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세우신 의의 길을 불순종하고 자신의 의의 길을 걷습니다.
- 장승훈 형제님 사회 :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롬10:5, 개역한글)
이스라엘이 잘못된 의를 세우고 그들이 실패할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마침이 되셨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온전히 다 지킬것을 요구하지만 그리스도께서 그 율법의 요구를 모두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율법과 무관한 의를 말씀합니다. 그것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5절에서 이스라엘이 실패한 원인에 대해서 저희가 이야기 했는데, 모세의 율법이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 여기서 모세의 율법이 이야기 되었는지 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 한봉래 형제님 : 5절부터 8절까지는 율법으로 말미암은 의와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를 대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마침이 되셨는데, 율법으로 의롭다함을 받는것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것의 차이를 말씀합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은 의미는 율법의 모든 규정을 항상 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의는 우리가 행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다 행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완벽하고 온전하게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입니다.
신명기 28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순종하면 복을 얻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그래놓고 29장으로 가면 이스라엘 백성이 불순종 할 것을 예언합니다.
언듯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지킬수 없는 율법을 주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고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키는데 실패하고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고 온 세상에 수치스럽게 흩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실패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돌아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우리에게 그와같이 명하신 하나님께 돌아오면, "마음으로 돌아오면" "영혼으로 돌아오면" 그들이 돌아오면 말씀에 입에 있고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구약성경에 두개를 추가합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그리스도의 부활을 넣습니다. 믿는 사람은 주님이 하나님이신데 사람이 되셨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실패한 이유는 하나님의 구원방법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또 자기 의를 세우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구원받는 것은 어렵다, 그것은 어떻게 일어나는 것이냐? 이에 대해서 어렵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6절부터 나오고 있는 흐름입니다.
- 김보영 형제님 : 5절 말씀은 사도바울이 레위기 18장 5절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레18:5, 개역한글)
이 말씀을 보면 율법을 완전히 지키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을 받을 당시 모든 인간이 죄로 인해서 사형 선고를 받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아무리 지켜도 과거의 죄 때문에 지옥에 갈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율법을 준행해서 구원받겠다는 자체가 언제든지 실패할수밖에 없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장승훈 형제님 : 사람이 율법을 온전히 행하며 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6절의 내용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렇게 말한다 하는 것입니다.
6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7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롬10:6-7, 개역한글)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모셔 내린다는 것은 무엇이고, 모셔 올리는 것은 무엇인지를, 그것이 왜 잘못된 것인지를 교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김민원 형제님 : 4절을 교제하고 싶습니다.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라는 말씀이 가장 묵상이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의 죄를 위해서 주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때 이 죄의 형벌을 받으심으로서 주님은 율법의 마침이 되셨고 모든 믿는자들을 의롭다 하실수 있게 되셨습니다.
- 박용수 형제님 : 6절을 교제하고자 합니다. 누가 하늘로 올라가겠느냐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늘에 있는데 우리가 하늘에 올라갈수 없으니 구원을 얻을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계시지 않고 성육신 하셨기에 우리가 믿을수 있다는 것입니다.
음부에 내려가겠느냐하는 것도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으니 누가 음부로 내려가서 그리스도를 데려올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미 성육신 하셨고, 이미 부활하셨기에 모셔 올릴수 없고 모셔 내릴수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말씀이 우리에게 가까워 입에 있고 마음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을수 있습니다.
- 장승훈 형제님 :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는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사람이 되셔 오셨는데, 잘못 아는 자는 하나님을 알겠다고 하늘로 올라가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성육신 하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음부에 내려가지 말라고 저희는 해야 합니다. 이는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러한 것들을 하지 않는 것이 믿음을 따라서 의를 소유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것을 받지 않는 사람들은 다 자신이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8절로 마무리를 하고 있는데, 다른 형제님께서 마무리 해주시기를 원합니다.
- 한봉래 형제님 : 이 부분은 저희들이 이해한 대로 이해하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면 먼저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가서 물어봐야 합니다. 그러나 이미 그럴필요 없습니다. 하늘에 계신 주님께서 사람이 되어서 이 땅에 내려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음부로 모셔내리는 것은 결국 죽어봐야 알수 있는 것 아니냐?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미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서 다 해결하셨기에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의는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는 복음으로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죽음과 부활하심으로 이미 귀에 들려지고 믿으려고 하는 자들에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할때 문제는 사도바울이 이것을 이야기할때, 왜 신명기의 말씀을 인용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신명기는 모세가 쓴 율법입니다.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시행하다가 불순종하고 실패해서 돌아가면, 무엇을 잘못했는가를 적용하고, 그리고 현 시대에 복음을 듣는 사람들이 죽지 않고 천국에 갈수 있는 방법을 복음과 연결시킬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형제님들은 신명기의 말씀 자체가 이미 복음의 내용이라고 보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전체적인 내용은 하늘에 계신 주님께서 이미 이땅에 오셔서 말씀하셨기에 우리가 하늘에 가서 살필 필요가 없다. 율법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고 믿음은 주님께서 완성하신 것을 받아들일 것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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