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 : 로마서 6장 15-18절
성경읽기 : 로마서 6장 15-18절(요약)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6:15-18).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롬6:15, 개역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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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절은 "죄에 거하겠느뇨?" 라고 물으면서 죄에 거할수 없음을 사도바울은 교제했다. 또한 15절부터는 "죄를 지으리요?" 라고 질문함으로 죄를 지을수 없음을 사도바울은 말씀하고 있다.
죄에 대해서 죽었기 때문에 죄를 당연히 짓지 않아야 하고 죄를 짓지 않을수 있는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다. 15절은 우리가 은혜아래 있기 때문에 죄를 지을수 없음을 설명해 주고 있다.
Q. 16절에 죄의 종이 나온다. 죄와 대비되는 것은 의의 종일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순종의 종이라고 나온다. 또 죄의 종의 결과는 사망이고 순종의 결과는 의라고 말씀한다. 우리의 생각과는 좀 다른, 왜 이와같은 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궁금증이 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롬6:16, 개역한글)
우리는 이미 의에 이르렀다고 가르쳐 주셨는데,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른다고 지금 있는일과 앞으로 있을 일을 말씀하고 있다.
- 15절은 마치 1절의 내용을 다시 시작하는것 같다. 그러나 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는 것이 혹, 방종의 결과를 가져올수도 있다. 자신의 성결의 삶을 포기를 할수 있다는 점에서 사도바울은 염려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을 말씀하며 하나님의 뜻이 어떠한 것인지 분명하게 알기를 바랐다. 그래서 "(결코) 그럴수 없느니라" 라고 단호하게 말씀하고 있다.
3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유1:3-4, 개역한글)
유다서 1장 3-4절에 나온 사람들은 물론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죄를 짓지 않을수는 없다. 부지중에 죄를 지을수도 있고 죄를 지을수 있는데, 사도바울이 말하는 것은 의지적인 측면에서, 선택적인 측면에서 죄를 지을수 없다는 것이다. 옛 구습이 남아있는 성도가 어느쪽의 종이 될것인가를 말씀하고 있다.
사도바울은 세가지 측면에서 종을 말씀했다. 순종의 종, 하나님의 종, 의의종 이다. 순종의 종은 생활적인 측면에서 의의 종은 죄에서 해방된 측면에서 하나님의 종은 성도의 신분에서 나타나는 모습으로 받아들이면 쉬울 것이다. 우리는 죄의 종과 순종의 종의 모습을 선택할수 있는데, 그 중간의 선택지는 없다. 반드시 죄의 종이던지, 순종의 종이 되는 것이다.
이 '종'은 원어로 노예를 뜻한다. 노예에게는 자기 권한이 없다. 오직 주인의 권한대로 순종해야 하는것이 노예이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6:24, 개역한글)
우리가 주님을 믿을때에 단지 메시아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주님을 주인으로 받아들일때에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없는 것이다. 노예가 왕을 섬길때에 자기의 선택은 없는 것이다. 노예가 사는것은 주인된 뜻 안에서만 살수 있다. 그것이 그가 가진 권리이고 특권이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행2:36, 개역한글)
그렇기에 여기서 순종의 종으로 나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죄를 좇지않고 의의 종으로 나갈수 있는 방법은 주님께 순종하게 될때 가능한 것이다.
나는 내 뜻대로 사는가, 아니면 나의 절대적인 권력자이고 나를 가장 선한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순종하며 나갈것인가? 이와같이 나 자신을 살펴야 한다.
- 인생들을 위해서 돌아가신 주님의 죽음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고도 남는 것이다.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롬5:20, 개역한글)
사람들은 은혜가 사람들이 지은 죄보다 더욱 크다고 한다면 사람들이 마음대로 죄를 짓게 될것이 아니냐? 라고 주장할수 있다. 이것은 애초부터 복음을 받아들일 자세가 없는 사람들의 질문이다.
그에대한 사도바울은 계속해서 답해온다.
성도는 죄에 대하여 죽었기 때문에 더이상 죄를 지을수 없다. 또한 죄는 더이상 구원받은 성도에게 통치권을 행사할수 없고 성도는 죄의 종이 아님을 말씀하고 있다.
6장 2-14절까지는 말씀을 받는 대상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다. 주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구원하실때에 어떠한 영적인 신분을 주셨는가를 알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함을 말씀하고 있다.
15절의 말씀은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라고 말씀한다. 6장 1절아래에는 아예 죄 안에 있는 것이다." 거하리요" 그러나 15절의 말씀은 간헐적으로 죄를 범하는 것이다. "지으리요"는 부정과거적 시제이다. 지속적으로 거하는 것이 아니라 간헐적으로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1절에도, 15절에도 "(절대) 그럴수 없느니라" 라고 단호히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어떤 대상에 대해서 순종하면 그 순종을 받는 대상의 종인 것이다. 만약 우리가 죄에게 순종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구원받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종이고 의의종이고 순종의 종인 것이다. 그렇기에 15절부터는 말씀을 듣는 대상이 누군가로 특정짓고 있지 않다고 본다.
18절의 '해방'은 죄의 종에서의 해방을 말씀한다.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기 전에는 죄를 놓지 못했다. 그러나 해방된 후부터는 죄를 지을수도 있고 짓지 않을수도 있는 선택을 할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수 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롬6:16, 개역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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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두가지 의문점을 가질수 있다. 첫번째는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이다. 왜냐하면 성도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미 옮겨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의문이 생길수 있다.
이후 말씀을 읽어내려가다 보면 이 대상이 누구인지를 알수 있게 된다. 17절에보면 "하나님께 감사해라. 너희는 죄의 종이었다" 라고 과거형으로 쓰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 원래는 죄의 종이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16절의 말씀이 성도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죄에 속해 있는 죄의 구속안에 있는 사람들을 가르킨다는 것을 알수 있다.
또한 17절에는 "의에게 종이 되었다" 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주님께 회개하고 거듭남을 맛보았을때를 생각해 보면 우리는 죄의 종이었지만 우리에게 전해진 복음을 받았을때에 우리는 죄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다. 그런데 16절에서 이것을 의의종이라고 말하지 않고 순종의 종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우리가 죄의 종이 된것이 선택의 여지 없이 처음부터 죄의 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때에 우리가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말씀을 맛보아 알게 되고 말씀을 받아들여 구원받으면 순종의 종이 되는 것이다. 주님께 나아가는 것, 주님 안에서 사는것은 주님앞에서 순종하고 그것으로 인해서 의에 이를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22절 말씀을 보면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는 것과 반대되는 것으로 "이 마지막은 영생이니라"라고 말씀한다. 우리는 이미 주님 안에서 구원받고 주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러나 성화라고 하는 것은 주님 앞에서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아가야만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순종을 통해서 주님의 것을 이루어가야 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16절에 이와같이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19절에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라고 말씀한다.
- 7절의 말씀과 16절의 말씀은 같은 내용같지만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7절의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는 선언적인 의미가 있다면 16절의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으로 보인다. 우리가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고 자유자가 되었다. 그렇기에 자유롭게 살면 좋겠지만 우리는 해방됨과 동시에 의의 종이 된다. 하나님의 종이 될수도 있고 의의 종이 될수도 있고 순종의 종이 될수 있다. 그리고 그에대한 동력은 주님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유대인들 가운데서도 종으로 팔렸어도 희년이 되면 자유롭게 놓임을 받는다. 그러나 가족을 사랑하고 주인을 사랑하여 평생에 주인을 섬기는 종이 되겠다고 할때에 그 사람의 귓불을 송곳으로 뚫는다. 우리또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종이 되어야만 순종의 삶을 살수 있다.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롬6:18, 개역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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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종의 종이 되기 위해서 나의 욕심을 따라서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그것으로 점차 의에 이르는 것이다. 모든것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에 있다.
사단은 계속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하고 나의 욕심을 따라 살게 하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죄의 본성을 가진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죄를 범할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사단(+세상+죄)을 이기셨으며 사단(+세상+죄)보다 강하신 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죄의 소욕을 이길수 있다.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롬6:19, 개역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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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신의 연약함으로" 죄에서 해방되어 주의 종이 되었음에도 육신의 연약함으로 넘어지기 쉬운 성도들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이것은 영적으로 성장해야만 넘어지지 않을수 있다. 성도들은 모두가 다 같이 영적인 어린아이로 시작한다.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고전3:1, 개역한글)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찌어다 (벧후3:18, 개역한글)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육신을 좇아 살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삶을 살게된다. 사도바울은 이것을 지적하고 "이제는 너희 지페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고 말씀한다.
성도가 죄와 대항해서 싸워 이겨야만이 거룩한 성화의 길을 갈수 있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롬6:13, 개역한글)
그리고 이 영적인 싸움은 주님께서 공중에 다시 오시기까지 계속 되어야 한다. 사도바울또한 이와같은 고백을 한다.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3:13-14, 개역한글)
우리가 전적인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는데 있어서 주님의 은혜가 필요치 않은가를 생각해 볼수 있다. 우리의 영적인 성장이 자기 노력과 자기의 능력으로 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는 것이다.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의 측면이 있다는 것을 마음에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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