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 : 로마서 7장 5-7절
성경읽기 : 로마서 7장 5-7절(요약)
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찌니라
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롬7:5-7, 개역한글)
- "육신에 있을때" 구원받기 이전에 처해 있는 상태를 말해준다. 구원받게 되면 이 육신에 처한 상태를 빠져 나오게 된다.
"죄의 정욕" 악한 욕망들이나 율법이 금지한 것들을 탐닉하는 것을 말한다. 탐닉은 어떤것을 매우 즐겨하며 빠져 있는것을 말한다. 또한 "정욕"은 본질상의 강력한 욕망을 말한다.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요일2:15-16, 개역한글)
안목의 정욕은 우리의 눈에 보이기에 좋아 보이고 선해 보이는 것이다.
이생의 자랑은 오만하게 하는 자기의 능력을 말한다. 이로 허세에 빠질수 있다. 우리가 세상에 있는 것들 중에 죄책감 없이 즐길수 있는것이 생각할수 있지만 요한일서 2장 16절에서는 이러한 생각들을 단호하게 거절하고 있다. 이 세상의 것을 좇으면서 하나님을 따라 열매를 맺을수 있는것은 없다.
- "육신에 있을때" 는 이라고 하는것은 과거에는 육신에 있었다는 뜻이다. 그럼 지금은 어떠한가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6절의 말씀이 있다.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찌니라 (롬7:6, 개역한글)
고린도전서 3장 3절을 보면 육신에 속한 사람이 나온다.(어떤 사람은 게바에게, 어떤 사람은 아볼로에게...)
그러나 로마서 7장 5절에서 공부하는 바는 구원받은 사람들은 분명하게 과거에는 육신에 있었지만 지금은 육신에 있지 않음을 말씀을 하고 있다. 이것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2:1, 개역한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큰 숙제이다. 우리가 과연 과거의 육신에 얽매여 살고 있는가, 아니면 새로운 영생 가운데 살고 있는가 자문자답해보게 된다. 우리가 육신 가운데 있지 않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살수 있다는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사람이 말로 표현해서 놀랍다고 말할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이것은 말로 표현할수 없는 지극히 큰 은혜이다.
- 문맥적으로 말씀을 살펴보면 율법이 과연 우리를 더욱더 죄를 짓도록 역사하는가? 하는 질문을 생각해보지 않을수 없다.
율법 자체는 앞으로 교제하게 되겠지만 거룩한 것이고 의로운 것이고 선한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5절 말씀을 보면 거룩한 것이고 선한 율법이 인간에게 죄를 짓게 만든다는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인간이 율법을 통해서 자신이 죄인임을 알았을때에 율법은 이 죄인을 정죄한다. 그리고 인간이 가진 죄악의 본성 때문에 인간 안에서 죄가 역사하는 것이다.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5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찌니라 (롬7:6, 개역한글)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얻었기 때문에 의문의 묵은것, 율법에 우리가 더이상 매여 있을수 없음을 6절의 말씀은 말씀하고 있다.
-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중에 역사하여" 그러나 6절에서는 그와 반대로 "얽애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그리스도 예수로 인하여 주님께서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를 사셨다. 곧, 율법이 요구하는 값을 주님께서 치루셨다. 그렇게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거듭났기 때문에 의문의 묵은 것(율법)이 아니라 영의 새로운 것으로 살게 되었다.
- 우리가 1-4절에서 결혼한 여자가 남편이 죽었을때 그 결혼의 관계에서 자유하게 된것을 예로 말씀하고 있다. 이 양쪽의 관계는 죽음으로 인해서 그 계약이 해지된 것이다. 이 율법은 인간의 범죄로 인해서 관계가 맺어지고 매여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구원받았을때 우리가 율법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더이상 율법에 매이지 않고 자유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즐거움을 누릴수 있다.
- 5장 까지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은혜로서 구원을 하나님께서 베푸셨음을 말씀하신다. 6장에서는 우리가 죄를 질수 없음을 말씀한다. 7장에서는 그렇다면 율법의 기능은 무엇인가 말씀한다.
1-5절에는 율법과 죄인의 관계를 결혼한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비유로서 말씀한다.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율법과의 관계가 끊어졌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갈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율법을 지킴으로서 하나님께 대한 열매를 맺으려고 오해를 하였다. "우리가 육신에 있을때에는" 우리의 육신이 이미 죄로 오렴된 상태이기 때문에 그 몸을 가지고서는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기란 불가능하다.
율법 자체는 거룩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오염된 육체와 결탁될때 문제가 발생한다. 죄로 오염된 육체가 율법을 보게될때 하나님께서 선하게 하라 하신것을 하기보다 금하신것을 오히려 더 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율법도 아니고 사람의 육신이 문제이다. 이것은 결국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율법과의 관계를 끊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갈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결국 율법이 문제가 아니었느냐? 질문할수 있지만 사도는 율법이 문제가 될수 없다고 말씀한다.
율법이 남편이었다면 남편된 율법에서 벗어나서 하나님 쪽으로 우리가 돌이키는 것인데, 의문의 묵은것은 율법이고 영의 새로운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할수 있다. "영의 새로운 것" 이것을 단순하게 성령으로 해석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나님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 모든것을 총괄해서 말하는 것이 새로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 7절, 문맥적인 측면에서 사도바울은 율법이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는 능력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5절에서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의 정욕이 역사해서 죄를 짓게 했다는 말씀을 염두해 두거나, 또는 6절에서 율법에서 벗어났다는 말이 혹은 율법을 나쁜것으로 정의한 것처럼 생각될수는 있다. 율법은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지만 율법으로 인간을 구원받게는 하지 못한다. 그 사실을 사도바울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율법이 죄인가? 사도는 절대 그럴수 없다고 말씀한다.
앞서 교제했듯이 우리가 율법에 편승해서 죄를 짓는다는 것은 인간이 모태에서 나올때부터 죄인이기 때문에 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 앞에서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만일 율법을 주지 않았다면 우리가 스스로 죄인인지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죄의 근본은 탐심으로부터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단이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그 마음이 탐심이고, 또한 인간은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말에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죄를 지었다. 이 또한 탐심이다.
- 7절, "그런즉" 율법에 대해서 다시 언급한다. 1-6절까지의 내용을 통해서 로마의 율법 가운데 있던 유대인 성도들이 오해할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남편이 죽은것과 같이 율법이 죽었느냐?" 라고 뭍고 "율법이 죽었다." 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사도는 분명하게 말씀한다. "율법이 죽은것이 아니라 우리가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으로 말미암아 율법 가운데서 죽음으로 벗어날수 있게 되었고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 것이다.
- 7절, '탐심' 을 생각할때, 십계명의 마지막 계명을 보면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것이다. 모든 계명들 중에서 나머지 9가지는 전부 사람들 앞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계명은 마음으로 짓는 죄이다.
사도바울은 죄에 대해서 얘기할때에 눈으로 드러나는 죄가 아닌 마음에 있는 죄를 언급하면서 성도들에게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고 하는것은 행동으로 짓는 죄를 짓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우리의 성질 자체가 바뀌는 것을 말씀함으로 마음으로 짓는 죄도 짓지 않는것을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는 것은 본질적으로 우리 마음에 죄가 가득함을 깨닫는데서 온다. 사도바울 또한 7-8절에서 그 말씀을 하고 있다.
Q. 구절에 앞에는 '전에 법을'(9절) 뒤에서는 '계명을'(10절) 이라고 말씀한다. 두가지의 뜻이 같다면 왜 이렇게 다르게 표현하였는지, 아니면 서로 다른뜻이라면 서로 무엇이 다른지 궁금하다.
9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롬7:9-10, 개역한글)
A. 율법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것이다. 도덕범, 의식법, 시민법을 총칭해서 말하는 것이다. 계명또한 율법과 동일한 뜻을 가지고 있다. 원어적인 측면에서 이 두가지는 동의어라고 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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