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 : 로마서 6장 1-3절
성경읽기 : 로마서 6장 1-3절(요약)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롬6:1-3).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롬6:1, 개역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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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장 까지는 우리 모두가 죄임임을 부인할수 없는것과 그 죄인에게 어떠한 은혜가 베풀어졌는가를 말씀하고 있다. 6장 1절부터 끊임없이 등장하는것이 '죽음'이다. 이러한 계속된 강조하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교훈받을것이 있을것이다.
* 6장의 개요 : 6장 1절부터 8장 31절 말씀까지의 전체적인 개요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법적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는데 실제적인 삶 속에서 성도는 죄를 짓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특히 6장 1-11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성화의 근거를 말씀하고 다루고 있다. 이 말씀을 다루기는 쉽지않다. 사도는 법적인 측면에서 의인되었음을 근거로 완전성화를 주장할것을 염려하여 그 부분을 다루고 있다. 5장에서는 아담의 대표성을 다루었다. 6장에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했음을 말씀하고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연약함에 있고 주님을 달망가야하는 성화 과정에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Q. 6장은 성화에 대해서 말씀하는것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그런데 성화라는것은 점점 거룩해져 가는것인데,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주님을 닮아가야 하는것이라고 생각되어진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우리는 거룩해질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있다. 많은 주석서에는 성화된다는 구절이 있지만 실제적으로 성경 자체에는 '성화'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이러한 것을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다루어주실수 있으면 좋겠다.
A. 성경에는 '성화'라는 단어는 없지만 '성화'라는 주제를 다루는 말씀은 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2:12, 개역한글)
여기서 말하는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을 주님을 닮아가라는 뜻이다.
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벧전2:1-2, 개역한글)
'자라게 하려 함이라' 이와같은 말씀을 성화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 '그런즉' 이라는 접속사를 통해서 율법으로 구원을 얻을수 없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수 있다는 것을 이어서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대한 말씀으로 '인간이 죄를 짓는것은 은혜를 더하게 하려함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올수 있다. 사도는 1절 말씀에서 이런 잘못된 마음과 생각을 가질수 있는 사람들에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그럴수 없느니라" (2절) 이 내용의 원어가 절대로 그렇지않다는것을 아주 단호하게 말하는 것이다.
"죄에 대하여 죽은" 이것은 원어적으로 아주 오래전에 죽은자임을 아주 강하게 강조하는 것이다. (과거형으로) 우리가 죄에 대해서 죽었다고 말하면서 구원받은 자처럼 살지 않는것은 성도로써 마땅한 바가 아니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순종될때에 죄는 역사할수 없는 것이다.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살리요?"
형식적인 측면에서 구원받은 성도가 절대 죄를 짓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신분적인 측면에서 의롭게 되었지만 우리의 삶 가운데 우리는 죄를 지을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우리를 의로운 자로 보신다.
성화라고 하는것은 우리가 미래시제로 계속 말씀하는 것이다. 현재 상태에서 미래로 성취해 가는것이 성화인 것이다. 주님의 죽으심과 연합해서 우리의 죄가 죽었고 또한 주님의 부활하심과 같이해서 우리가 편승하고 완전하게 된다. 이것은 주님께서 공중에서 우리를 부르시는 시점, 교회가 완성되는 미래 시점을 사용했다. 이 점을 염두해두고 '성화'를 이해해야 한다.
- 성경안에 있는 개념들 중에서 어떤 것들은 성경에 직접적으로 쓰여있지 않지만 그 개념을 설명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들면 예수님께서 구약성경에 드러나는 시점이 있다. 그것은 '현현하신다'라는 구절을 사용하지만 그 말을 직접 사용하지는 않는다. 이와같이 '성화'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지만 그와같은 개념이 사용되고 있음을 우리는 알수 있다.
구원의 대부분은 주님께 나아가서 구원을 받는것을 뜻하는것이 맞지만, 때로는 성화의 의미나 영화롭게 되는것의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구원이라는 이 단어를 우리가 잘 살펴보게 될때, 성경안에서 문맥상 그렇게 쓰일수 있음을 알수 있다.
6장에 들어갈때 우리가 고민해봐야 할것은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도 죄를 짓는다.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리가 구원받았을때 우리의 신분은 의롭게 되고 하나님과 함께 거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상태는 상분과 적합하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상태를 신분에 걸맞게 끌어올리기 위해서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가르침을 받고 교훈을 받는 것이다.
6장에서 설명하는 것들은 구원받은 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려주는 것이다. 시위에 걸맞는 상태로 끌어올려질수 있도록 이러한 말씀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너희가 이미 이것을 알고 있음을 말씀하시고(3절) 그리고 그렇게 살것을 말씀하신다. 우리의 아는것을 앎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로 그렇게 살것을 권면한다.
그러한 부분들을 생각하면서 말씀을 본다면 조금 더 이해를 높일수 있을것이라고 본다.
또한 '은혜를 받기 위해서 죄를 더 짓자.'라는(6장 1-2절) 궤변을 늘어놓았을때 '그럴수 없느니라'라고 사도는 말한다. 흠정역으로는 '하나님께서 금지하신다'라고 번역한다. 곧,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것이라는 개념으로 우리가 받아들인다면 이 궤변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도울 수 있다.
-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그러므로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죄는 더 이상 그리스도인들의 주인이 아니다. 우리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 이 구절은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십자가에서 주님께서 모든 인생을 위하여 죽으신 사역이 모든 사람의 죄를 갚고도 남을만큼의 행하심인데,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고 이 은혜가 인생이 진 죄악보다 크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사람들은 그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우리가 죄에 더 거할수 있다고 하는것은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죄에 거한다는것은 죄를 한두번 짓는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그 죄를 짓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대한 답으로 2절에서는 그럴수 없다라고 대답힙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셨을뿐 아니라 십자가에서의 보혈을 근거로해서 구원해 주신것은 우리가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수 있도록 해주는 시작점일 뿐이다. 우리가 구원받을때에 우리가 다 알지는 못했지만 주님께서 이루어놓으신 일들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구원받음으로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다. 그외에도 우리가 거룩해질수 있는 근거또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제공해 주셨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어떠한 일을 행하셨는가를 알고 거기에 합당한 반응을 보일때에 우리가 성화의 길을 걸어갈수 있다.
완전성화를 주장하는 분들에 대해서는 여러차례 말씀을 찾아보았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요일1:3, 개역한글)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요일1:8, 개역한글)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었지만 우리의 삶 가운데는 여전히 죄가 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바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주님의 피로 의롭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완전히 성화되기 위해서 어떠한 것을 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어떠한 장치들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들이 있을수 있다. 그러나 그런것들은 전부 율법적인 것에 기반이 있는 것이다.
주님의 구원하심은 구원받은사람이 영적으로 살수 있는 장치들을 주님의 구원에 다 내재적으로 장치해 놓으셨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내부에 있는 죄에대한 내재적 통제능력이 내제되었고 그것이 외부에서 강제적으로 통제할 장치가 필요치 않음을 사도바울은 말씀하고 있다.
칭의의 근거도 십자가이고 성화의 근거도 주님의 십자가가 근거한다. 우리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미 거룩하게 되는 기반을 준비해 두셨고 우리가 마음과 생각을 그에 동일시 해야 한다. 이것은 "알라" "여기라" "여길찌어다" "너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라" 라는 것으로 표현되어 사용되었다.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롬6:2, 개역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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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이 말씀은 우리가 그대로 죄 가운데 거할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가 구원받았을때부터 우리는 영적 전쟁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셨다. 우리가 성령을 쫓아서 살면 죄를 이길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을 쫓아 살지 않으면 육체의 열매를 맺을수밖에 없다.
-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살아가면서 죄를 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해서 이 죄 때문에 내가 지옥에 가지 않는다. 그래서 이 죄가 나를 지옥에 가게 하지 못한다. 이러한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내가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을 믿을때에 우리의 삶에서 있는 많은 일들을 해결할수 있다. 사회 생활에서 마찰이 있고 어려움이 있을때에 우리는 죄를 질만한 유혹을 받을수 있으나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죄에 대하여 반응하지 않을수 있다.
그러나 이와같은 것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때까지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 이와같이 사는것이 성화되는 시발점임을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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