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형제님/히긴스 형제님

베드로후서 1장

박이레 2022. 12. 30. 18:02

< 베드로후서 1장 > 히긴스 형제님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이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섰으나 내가 항상 너희로 생각하게 하려 하노라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나의 떠난 후에라도 필요할 때는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벧후 1:1-19).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벧후 3:8).

여러분이 우리가 함께 읽으면서 이것을 주목하게 되셨을 것입니다. 1장 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것을 주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3장 8절에는 이 한가지를 잊지말라고 사도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두 집회에서 우리는 첫번째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그 모든것을 이번 시간에 다룰 것이고 그리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되는 그 한가지를 내일 이 시간에 다뤄 보겠습니다. 이 베드로후서는 모임 안에서 그 신자들이 이제 그것을 공격받는 데에 그것을 배경으로 두고 기록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는 밖에서부터 공격이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베드로후서는 안에서부터 잘못된 교리의 위협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후서 1장에서는 거짓 교사들이 그 진리를 거절하는 그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장에서는 그들의 거짓된 가르침, 미혹하게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장에서는 더 나아가서 진리를 조롱하는데까지 나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서신의 저자는 물론 베드로입니다. 우리가 네로가 67년 경에 죽은것을 생각할때에 이 서신서가 그것보다 더 전에 써졌다는 것을 짐작하게 됩니다. 이것은 유대인에게 쓰인 서신이지만 일단은 이방인을 위해서 주된 이 독자로 써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서신서의 주제는 성장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1장에서 믿음의 어떠한 덕을 공급하라고 말하면서 그들이 성장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서신의 3장 마지막 구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라고 끝맺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 집회에서 이 '성장'에 대해서 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각 성도님들이 항상 성장하는데 있습니다. 이 성장이라고 하는것은 예전보다 좀더 알았다고 하는것이 아닙니다. 물론 이 성경에 대한 지식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이 성장이라는 것은 모임에서 내가 예전보다 더 많은 일을 감당하게 되었다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한 것입니다. 이 성장이라는 것은 주로 우리의 인격과 관련된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얼마나 많이 닮아있는가가 성장의 척도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각 성도들이 영적으로 성장하는데 있어서 굉장히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 이름들이 베드로전서와 다르게 사용된 것을 볼 때에 흥미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베드로전서에서는 자기 자신을 그냥 "베드로는"이라고 언급하게 됩니다. 그런데 베드로후서에서는 "시몬 베드로"라고 1절에 나와 있습니다. 베드로전서에서는 주님을 단지" 그리스도"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베드로후서에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이름을 부르게 됩니다. 그리고 베드로전서에서 사단은 "우는 사자"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후서는 광명의 천사로,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는 자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후서에서 중요한 단어는 지식, 앎, 입니다. 베드로전서에서는 은혜가 강조 되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후서에서 최종적으로 마치면서 그는 이 두개의 단어를 사용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의 은혜와 주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그리고 이러한 진리가 베드로서 1-3장까지 계속해서 반복해서 언급됩니다.
그리고 각 장에서는 또한 세상이 언급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1장에서는 그 세상은 썩어져가고 허물어져가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2장에서는 오염된 세상입니다. 그리고 3장에서는 그것은 어느날 사라질 운명을 가지고 있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강조해서 각 장에서 언급합니다. 1장에서는 그 성경이 영감 받았음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2장에서는 거짓 교사들이 어떻게 그 성경을 모방하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장에서는 그 성경을 기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각 장에서는 아주 중요한 경고를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1장의 경고는 나쁜 기억력과 나쁜 시력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2장에서는 자랑하는 입과 하지만 그 자랑과 대조적인 열매없는 삶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3장에서는 조롱하는 말과 그리고 그로 인해서 그 마음이 허탄해 진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가운데 사도는 만원경을 가지고 이제 장차 올 왕국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왜 베드로는 그와같이 왕국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여러번 언급 하였을까요? 여러분은 요한복음 21장에서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베드로가 주님을 초기에는 부인할 것을 언급하셨던 주님께서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이번에는 그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것을 21장에서 또한 언급하십니다. 제가 이것을 조금 잘못 인용을 했는데요. 정확히 말하자면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것을' 주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이것은 성도들이 그의 죽음이라 할지라도, 성도들의 죽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베드로는 주님이 오시기 전에 죽을 것이라는 것을 주님께서 분명히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하자면 그는 휴거를 기다리지 않는 유일한 성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있어서는 휴거가 아니라 그 이후에 있는 주님께서 이 땅에서 영광 가운데 다스리시는 그 왕국을 그의 소망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1장에서는 그러한 왕국에 들어감을 넉넉히 주시는 것을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 우리는 벌써 왕국에 들어갈 것을 얻지 않았느냐?"라고 말합니다. 물론 우리는 이미 그 왕국에 들어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골로새서 1장에서 사도는 "우리가 그 흑암의 권세에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겼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하지만 그때 그 왕국은 아직 보이지 않는 그러한 왕국입니다. 베드로는 여기서 그 눈에 보이는 그 왕국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러한 왕국에 들어가는 것을 넉넉히 주시는 것을 말씀합니다. 하지만 베드로후서 2장에서는 그러한 왕국으로부터 제외된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3장에서는 그 왕국의 영원한 성격과 그 뛰어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제 세가지 그룹으로 여러번 진리를 말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1장에서는 세가지의 빛이 나옵니다. 그리고 2장에서는 세명의 인물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장에서는 세가지 보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1장에서는 그 성경의 빛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날이 새는 빛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샛별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장에서는 노아가 나오고 롯이 나오고 그리고 발람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신다면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계속 따라가 보면서 살펴 보겠습니다.

우선 베드로후서 1장을 이렇게 나눠 보겠습니다. 1-4절까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구원 받을때 그 과거에 우리가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5-11절까지는 이제 그리스도인들이 경건하게 행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현재에 행해야 되는 책임있는 행동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2-21절까지는 영광스러운 조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미래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뒤를 돌아보면서 말했고 그리고 앞을 바라보면서 말합니다. 그리고 이 두가지로 말미암아 현재 우리가 어떤 기대를 받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과거의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자, 그리고 앞에있는 것을 바라보는 시력이 없는 자, 그들은 현재의 열매가 없게 됩니다.
여러분은 신명기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요단강 앞에 멈추게 됩니다. 그 다른 편에 가나안 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40년간 그들은 방황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그러한 상황 가운데에 모압 평지에서 모세는 네가지 설교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신명기의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번 반복해서 그는 "기억하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들을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기억하라."고 반복해서 말합니다. 애굽에서 그들이 어떠한 종 되었으며,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과거에 그들에게 어떠한 일을 행하셨는지를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제 앞을 바라보면서 그 요단강 너머에 그 미래의 삶에 대해서 또한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그 똑같은 방법으로 베드로는 이 서신서에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1-4절을 보겠습니다. 그들은 생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새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의로우신 다루심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게 된 자들입니다.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벧후 1:1).

여기서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의 신성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제 이러한 생명을 받았고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받은 자에게 성장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표현이 성경에 여섯번 반복되서 나옵니다. 그것은 아이가 되는 것을 멈추고 더이상 아이로 있지 말고 성장하라는 그런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특별히 이삭과 관련되서 성경은 첫번째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모세에 대해서 그와같이 성경은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삼손에 대해서 그렇게 성경은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네번째도 사무엘에 대해서 그렇게 언급합니다. 그리고 이제 신약으로 들어왔을 때에 침례요한이 그렇게 표현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그렇게 마지막으로 기록 되었습니다. 이삭은 그가 생명을 얻었음을 강조하는 때에 그렇게 표현 되었습니다. 모세는 그의 생명이 어렸을때, 빼앗길 위협을 받은 사람입니다. 삼손의 경우에는 그에게는 많은 가능성이 있었지만 그 가능성이 열매를 맺지 못한 것을 보게 됩니다. 사무엘에게 있어서 그 아이가 자라고 계속 자라다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그 사무엘은 그의 삶 가운데서 그와 같은 진보를 이루었던 것 입니다. 침례 요한은 그가 어느 장소에서 자랐는지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 광야에서 자란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자람은 세상과는 상관없는 그런 자람이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성장은 온전한 모델로서 성장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장의 단계에서 각각의 의미가 있는 것을 살펴보게 됩니다. 이삭의 성장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의 할례 였습니다. 그래서 이 성장이라는 것은 육체를 제해 버리는 것과 관련 있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있어서는 그의 어머니가 그를 양육한 것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장에 있어서 필요한 것이 그 양육받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삼손이 자라가다는 표현과 더불어서 "하나님의 성령이 그를 감동 시키셨다"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사무엘의 성장에 있어서는 "그가 주 앞에서 섬기더라"는 그 말씀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성장에 있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또한 보게 됩니다. 그리고 침례 요한의 경우에는 "사람들에게 사람들에게 나타나기 전까지 그가 광야에서 자라더라" 라는 말을 통해 우리는 성장에는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 베드로후서에서 그와 같은 성장이 우리에게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성장을 격려하기 위해서 언급된 것을 3절에서 보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주셨으니"라는 단어는 굉장히 특별한 단어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신약성경에서 흔히 우리에게 주셨다고 할때 사용되는 그러한 단어가 아닙니다. 이것은 아주 큰 마음으로, 관대하게 주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모든 것을, 이 생명과 경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이 영생과 함께 우리가 성장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셨음을 여러분이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첫번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님을 주셨습니다. 이방에 있는 모든 분들은 사도바울이 받은 그 성령님과 동일한 그것을 또한 여러분이 받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나에게 하나님이 뭔가를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성장하지 못하고 그대로 있어." 이렇게 불평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런 분명한 성령을 여러분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그 뿐만 아니라 말씀을 주십니다. 여러분은 베드로전서 2장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갓난 아기들 같이 신령하고 순전한 젖을 사모하라. 이것은 자라게 함이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셨고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또한 지역 모임에서 은사를 주사 서로를 성장하도록 격려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각자 주님을 닮아가도록 이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그리고 풍성히 주셨습니다. 사도바울은 골로새서 2장에서 이 성장에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충만하신 분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18절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골 2:6).

그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도록 사도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그리스도는 우리의 성장에 있어서 모든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십니다. 우리 중에 어느 누구도 성장하지 못하도록 불충분한 자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첫번째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고, 그리고 두번째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우리의 성장에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세번째로 우리에게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주셨다고 또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큰 약속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굉장한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기 떄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보배 롭습니다. 이것을 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큰 희생을 치루셨는지를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이제 이 세가지 것을 우리에게 주셨음으로 우리에게 사도는 촉구합니다. 그 목적이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하려 하였으니"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가 더욱 더욱 하나님의 아들을 닮아가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받은 것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 내가 1년이 지난 후에 얼만큼 자랐는지 한번 측정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연말에 항상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작년보다 더욱 주님을 닮았는가?' '내가 충분히 올 한해 동안 주님을 닮도록 자랐는가?' '내가 신자로서 이 정도 성장한 것에 대해 만족 할 만한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성장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그렇게 성장 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이제 그로 인해서 5-11절까지 우리의 책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더욱 힘쓰라" 이것은 게으른 그리스도인들은 자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제 자기 만족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인은 자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삶에 바빠서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서 등한히 하는, 그것을 둘째 순위에 놓는 사람은 자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물론 여러분이 살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 된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학교에서 얼마나 바쁘게 지내는지도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얼마나 바쁜 일인지도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영적인 성장을 여러분의 삶의 최고의 순위에 두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래서 사도는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의 덕을 공급하라"고 말합니다. 제가 이 말씀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이렇게 제안을 드리겠습니다. 여기 믿음에 이것을 더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성경에 그의 이름의 뜻이 실제로 '더하다'라는 이름을 가진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제 성경 읽기를 하면서 그 사람이 누군지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은 바로 구약에 나오는 요셉입니다. 그래서 이 요셉이라는 사람을 생각하게 될 때에 우리는 이 구절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이 의미가 무엇인지 요셉을 한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요셉이야 말로 자신의 믿음의 덕을, 용기를 더한 사람입니다. 그는 용기를 내서 자신의 형제들의 잘못에 대해서 아버지께 고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그냥 나쁜 아이여서 형의 잘못을 고자질하는 그런 상황이 아닙니다. 그는 아버지의 영광에 대해서 주의깊게 생각하는 그런 아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하늘의 아버지의 그 영광을 먼저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용기를 내었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또한 지식을 더하게 됩니다. 그는 어떤 꿈을 꾸었는지 여러분이 잘 아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꿈을 가지고 자신의 형들과 아버지에게 말하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에 또한 그는 절제가 있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는 그런 꿈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리를 떠나서 다른 일을 하는것이 아니라 계속 양치기로 일했던 것을 보게 됩니다. 또한 그 다음에 무엇이 있었습니까? 그는 수년간 애굽에서 기다려야 됐습니다. 거기서 인내를 배운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이제 악한 아내가 그를 유혹하게 됩니다. 무엇이 그를 보호하게 됍니까?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는데 그 경건을 더하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과 그리고 우리로 하자면 모임의 징계를 두려워 한 것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건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잠깐 다른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참 불경건한 세상입니다. 이것은 말하자면 이렇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세상, 하지만 여기서 하나님을 두려워 한다는 것이 내가 뭘 잘못하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벌 주실 것을 두려워 하는 그런 두려움이 아닙니다. 이것은 내가 그분에게 그분이 싫어하는 일을 할까봐 두려워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하나님을 두려워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요셉으로 하여금 애굽에서 보존하게 만든 힘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형제들이 그에게 나타났을때 그는 형제 우애를 나타내지 않았습니까? 그의 형제들과 그리고 그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 주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이와 같이 믿음에 모든 덕들을 다 더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요셉을 생각하고 나서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와 같은 분이다, 라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요셉은 또한 열매가 풍성한 사람 이었습니다. 그의 삶 가운데서 열매 없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성장 했습니다. 17살에는 양치기 였습니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은 양들에 관한 것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성장해서 왕국의 둘째 치리자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그 책임 있는 위치에 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역시도 믿음에 이와 같은 덕을 공급 한다면 그렇게 성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것들이 우리의 매일매일의 삶에서 일어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온전한 지식,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을 또한 언급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덕을 공급하면 공급할 수록 우리는 그리스도에 우리가 얼마나 못미치는 사람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더욱 더욱 그분에 대해서 알기를 소망하게 되고 더욱 그분을 닮아 가기를 소망하게 됩니다. 우리는 구약에서 제사장들이 들고오는 다섯가지 제사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소제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소제를 가져오게 될 때에 제사장은 그 소제를 한 움큰 집어서 단에 놓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그 소제의 양은 그 제사장의 손의 크기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더 큰 손으로 한다면 하나님께서 더 많이 받으시게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더 알아가면 알아 갈수록 우리의 손은 더 커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를 더 많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도록 그분 앞에 내어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공적으로 예배에 참여하는 형제님들 뿐만 아니라 자매님들에게도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우리는 주의 만찬에서만 하나님 아버지께 그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나올 뿐만 아니라 매일의 삶에서도 그와 같은 매일 하나님께 그리스도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것을 놓아 드리는 예배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기를 원하고 계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제 9절에서는 이렇게 경고 합니다.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첫번째로 소경이고, 두번째로 그는 원시치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어디서부터 나왔는 지를 기억해야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 지를 기억해야 됩니다. 그리고 이제 그 왕국에 들어가는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10절에서는 다시 한번 "더욱 힘쓰라"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한 11절에 나와있는 단어도 이 장의 앞에서 사용된 단어를 또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5절에서는 우리가 믿음에 무엇무엇을 더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11절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이 주신다는 것은 앞에 나온 더하다는 것과 정확히 같은 단어입니다. 앞에는 우리가 더하는 것이고 뒤에는 하나님이 더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 장래에 오는 왕국에 대해서 잠깐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것을 분명하게 해서 여러분이 헷갈리지 않도록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늘나라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행하신 사역에 근거해서 갑니다. 다른 것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하늘나라에서 나오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행한 일에 근거해서만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나온다는 것은 이제 우리가 이 땅을 다스린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스리는 그 권세는 우리가 이 땅에서 얼마나 주님을 섬겼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심판대는 몇가지 다른 우리가 고려해야 하는,(or 해야하는?) 성격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에서는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주님께서 그분의 입술로 상급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얼마나 충성되게 했는지에 따라서 우리의 상급이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영원토록 영원한 나라에서 얼마나 하나님께 유용한지는 바로 이 제한된 인생 가운데서 주님께 충성한 것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누가복음 19장에서 주님꼐서 열 므나 비유를 말씀하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주인은 하인들에게 그 므나를 나눠 줍니다. 어떤 하인은 열 므나를 남긴 하인이 있었고, 또한 한 므나를 남긴 하인이 있었습니다. 이제 열 므나를 남긴 하인은 "당신의 한 므나가 이와 같이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내거가 아니라 당신께서 이렇게 하셨다고 말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주인은 그에게 열 고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십니다. 그의 책임과 그의 하나님에 대한 유용성은 이제 이 땅에서 그가 얼마나 하나님께 충성 됐는지에 따라서 영원한 나라에서 그의 유용성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도 주님께서는 비슷한 비유를 하십니다. 그런데 조금 다른 점이 있습니다. 달란트의 비유 입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나눠 주십니다. 다섯 달란트를 남긴 그 하인은 작은 것을 가지고 충성된 하인이었고, 또한 그렇지 못한 하인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우리가 바쁘게 한다고 할때에 우리가 아주 작은 결과가 나올 떄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그를 "나의 기쁨에 참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여기서 주님의 기쁨에 참여하라고 했을때 그 기쁨이 장차 올 그 왕국에 참여하는 그 상급인 것을, 그 기쁨인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와 같이 베드로는 이제 장차 올 왕국을 가지고 사람들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당신과 나의 이 땅에서의 삶은 영원한 나라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 땅에서 많은 영광을 받은 사람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주 놀라운 일들을 행한 육상 선수들이 있습니다. 아주 많은 팬들을 지니고 있는 영화배우,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죽으면 그 모든 것이 다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우주 가운데 그들이 기억된 바가 없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주님을 위해서 행하신 일은 결코 잊혀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히브리서에서 주님께서 이렇게 놀랍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너희 죄와 너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라니" 하나님은 어떤 것은 절대로 기억지 아니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같은 서신서에서 어떤 것은 결코 잊지 않는다고 하신 것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섬김과 성도들이 보인 사랑을 결코 잊지 않는다고 6장에서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전서에서 우리가 구속받은 이 한가지 이유를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허망한 이 인생 가운데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는 단지 그 죄의 권세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우리가 악한 그 행동 가운데서 구원받았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리스도가 없는 그 허망한 인생 가운데서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삶과 저의 삶은 영원한 그 시간 가운데 의미가 있는 인생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베드로는 이 영원한 나라에 대한 조망으로 그들을 일깨우고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 '일깨우다' 이것은 그들이 다시 기억케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다시 미래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기를 사도는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 그것을 기대하도록 사도는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사도에게 있어서 적절한 권면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도는 곧 떠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죽음이 베드로에게 가까이 다가 왔습니다. 그는 삶을 마감하고 떠날 것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남아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인생이 모두 하나님을 위해 사용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번을 반복해서 사도는 이것을 '생각하라' '기억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이것이 견고하게 자리 잡히도록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이제 나이 든 성도로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과거를 돌아보면서 변화산에서 그가 보았던 그 영광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실제로 눈으로 본 사람의 증언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허황된 신화나 꾸며낸 이야기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도의 이 질문을 통해서 앞으로 무엇이 다가오는지 미리 맛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1장 마지막에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여기에 있는 자 중에 누구는 장차 올 그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을 볼 자가 있느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구절에 주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이제 높은 산으로 데리고 올라 가십니다. 그리고 이제 베드로는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우리의 눈은 이와 같이 그 영광을 보는데에 활짝 열려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귀는 그 가운데 하늘이 무엇이라고 말했는지 들을려고 활짝 열려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늘이 열리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그리고 또한 "내 기뻐하는 자라"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그는 실제 눈으로 본 자로서 장차 올 왕국이 어떠한 것인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변화산에서 그가 미리 맛보기로 본 것은 장차 올 왕국의 그 실체를 본 것입니다. 거기서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영광 가운데 계셨습니다. 거기에 구약의 성도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들은 명찰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그들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아 볼 수 있었습니다. 분명히 그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모세가 누구고, 누가 엘리야 인지를 알아 보았습니다. 그리고 장차 올 왕국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장 높은 위치에 계실 것입니다. 바로 3년 전에는 요단강에서 주님께서 침례 받으실 때에 또한 하늘에서 이와 같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변화산에서 주님을 최고의 한 사람으로 이렇게 높이고 계시는 것입니다. 왕국에서 이와 같이 주님께서는 가장 높은 위치에 계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 베드로는 참으로 그 왕국을 위해서 사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그는 분명한 증거를 제시하면서 우리에게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미래에 대해서 보지 못하는 자가 되지 말도록 경고하고 있으며 그리고 과거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그것을 까먹지 말도록 또한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것을 직접 본 첫번째 사람으로서 이것을 말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해서 이것을 또한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모두 변화산에 서 본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영광 가운데 직접 우리의 귀로 그 소리를 들은 경험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베드로는 바로 여러분이 더 나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분명하게 확증하고 있는 예언의 말씀이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손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있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성취되는 예언입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의 통일성은 그것이 얼마나 정확한가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각 성경의 면마다 장차 올 왕국이 분명함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제가 휴거를 분명히 믿고 있음을 먼저 말씀을 드립니다. 주님께서 언제라도 다시 오신다는 그 기대 가운데 살아야 됩니다. 그런데 또한 한편, 이 장차 올 왕국에 대해서도 시편의 기자들은 일관되게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신약 성경의 기자들은 주님께서 휴거로 오실 것을 말할 뿐만 아니라 그것보다 더 여러번 장차 올 왕국, 주님께서 영광 가운데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그리스도께서 분명하게 영광을 드러내시는 그러한 날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소유인 그 만물을 받으러 오시는 그날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보좌에 앉아서 이 땅을 다스리는 바로 그날인 것입니다. 그리고 천년 동안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실 것입니다. 이 땅이 누릴 수 있는 모든 축복을 그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순간, 오늘날 여러분과 제가 어떻게 섬기고 있는지가 그 영광스러운 날에 우리의 위치가 자리가 어떻게 될 지를 결정 짓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통해 여러분을 일깨워 주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다시 한번 그것을 생각하게 하도록 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바라보며 계속 믿음의 다른 덕들을 더하는 성장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이 하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 모두를 축복 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외국 형제님 > 히긴스 형제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히브리서 13장 1-10절  (1) 2023.02.03
베드로후서 3장  (0) 2023.01.13
디모데후서 4장  (0) 2022.12.15
디모데후서 3장  (0) 2022.12.10
디모데후서 2장  (0) 2022.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