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형제님/히긴스 형제님

디모데후서 3장

박이레 2022. 12. 10. 23:45

< 디모데후서 3장 > 히긴스 형제님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저희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가지 욕심에 끌린바 되어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저희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리운 자들이라 그러나 저희가 더 나가지 못할 것은 저 두 사람의 된 것과 같이 저희 어리석음이 드러날 것임이니라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핍박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일과 어떠한 핍박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17).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공적으로 읽는 일 가운데 복주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어떤 장은 성경의 다른 장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틀린 말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것을 마음에 두고서 또한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읽은 이 장은 어떤 장보다 또한 중요한 장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영감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성경의 두개의 장 중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성경의 저자를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이 성경의 권위를 또한 여기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삶에 있어서 그 말씀이 말하고 있는 정확성에 대해서 듣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생명을 가져다주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성경입니다. 그래서 이 장에서 말하고있는 첫번째는 성경의 영감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서 과연 사람은 어떠한 책임을 가지고 있는지를 또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장의 서두에서는 그러한 하나님의 진리가 그의 안에 없는, 진리를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들을 먼저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6-7절에서는 그 진리에서 떠난 사람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8-9절은 그 진리를 부정한 사람들을 언급합니다. 하지만 그와 대조적으로 그 다음 구절에서 사도바울은 얼마나 진리에 헌신되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장에서 또한 거짓된 교리들이 어떠한 전술을 가지고 공격하고 있는지를 보게 됩니다. 그와같은 가르침이 이 장에서 강조되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이 장은 모든 신자들이 부딧치게 되는 그 시험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2절에서 "사람들은" 이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또한 6절에서도 영어성경에서는 "사람들이"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8절도 마찬가지로 영어성경에서는 "사람들은"이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또한 13절은 "악한 사람들" 또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여기서 계속 복수로 그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디모데에 대해서 언급된 17절을 보면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언급됩니다. 여기는 단수로 한 사람으로 서 있는 디모데를 보게 됩니다. 복수의 그 사람들에 대항하여 한 사람이 서있는 것입니다. 잘못된 가르침은 많은 사람들을 미혹케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진리를 따라가는 그 길은 굉장히 외로운 신자들의 길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와같이 혼자 서 있어야 되는 그때가 올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신자로서 유일한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학교에서 유일하게 믿는 한 신자라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혼자서 그 증거를 하고있는 그 광경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위해서 혼자 서있는 디모데에게 하나님께서는 모든 필요한 것을 그에게 공급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장에서는 디모데가 미래에서 어떤것을 맞닥뜨리게 되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미래에 있는 그 어려움들을 조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와같은 삶 가운데서 어떠한 본을 따라서 헌신되어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사역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에게 주신것을 보게 됩니다. 1-9절까지는 그래서 이 증거하고 있는 어려움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0-13절은 사역자와 그의 헌신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4-17절은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고 그 가운데서 어떻게 디모데가 발전해 나가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선 1-9절까지 첫번째 부분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어려울 때가 올 것입니다. 여기 "고통하는 때"라는 것은 신약성경에서 다른 곳에서 또한 한번만 사용됩니다. 그것은 귀신들린 사람에 대해서 표현하고 있을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그에게 그 극심함이 심하였다고 그 고통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아주 심각한 고통하는 그때를 말하고 있습니다. 미래에서 19개의 나타나는 그 악을 사도바울은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살고있는 이 시대에 대해서 동일하고 적용될 수 있는 그러한 표현입니다. 아주 물질주의가 만연한 시대입니다. 그리고 인본주의를 자랑하는 교만한 때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사랑에 대해서 외곡되어 있는것이 특징인 시대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사랑하신 그 순수하고 온전히 이타적인 그 사랑이 이 세상 가운데서는 완전히 외곡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에 대해서 처음으로 언급하고 있는것은 "자기를 사랑하고"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해서 끝맺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는 것으로 그 사람에 대해서 끝맺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는 그들은 본성적인 애정도 없어진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그들은 사랑이 아닌것에 대해서 모르는 것입니다. 이 잘못된 행동들이 우리 사회를 규정하고 있는 특징입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이 시대를 특징짓는 것이 바로 이 외곡된 사랑의 시대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물질을 사랑합니다. 쾌락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가정 안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야 되는 애정이 없는 것입니다. 여기 나와있는 19개의 악들이 바로 우리가 살고있는 이 시대를 규정하고 있는 특징들인 것입니다. 진리는 제껴져 버리고 이제 악이 난무하는 때입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바로 이 시대가 네가 하나님의 진리를 전파해야 되는 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시대가 여러분과 제가 예수 그리스도께 충성되도록 부르심을 받은 때인 것입니다. 우리가 살기에 참으로 어렵고 참으로 고통하는 때인 것입니다. 참으로 이러한 가운데 여러분은 하나님을 위한 충성된 자로 나타나야 될 것입니다. 참으로 학교에서 여러분은 도덕적인 그 선을 가지고 드러내야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그러한 가운데 홀로 맞서 싸우는 것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암흑의 어려움만 그에게 있는것은 아닙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을 더해서 그 진리를 그릇되게 하는 사람들이 또 나타납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그 기독교의 참된것을 부인하는 많은 교회들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바로 몇달전에 보스턴에 있는 한 큰교회는 야외에 이런 큰 전광판을 설치하였습니다. 그 전광판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이혼을 지지하십니다.' 라고 써놨던 것입니다. 그리고 '동성연애를 지지합니다.' 참으로 이런 많은 잘못된 것들을 사람들은 기독교의 이름으로 지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기독교계를 인도하고 있는 이 인도자들이 그렇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교회라고 이름 붙여진 지도자들이 동정녀 탄생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문자적으로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또한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신성을 부인합니다. 그리고서도 자기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이미 오래전에 경고해 놓은 것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경건의 기본들을 다 무시해 버리는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다. 이와같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참으로 암흑의 시기입니다. 미혹이 난무하는 곳입니다. 실체를 모방하는 것이 더 많은 시대인 것입니다. 참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고 있지만 사실은 아닌 많은 사람들이 지금 있는 시기입니다. 참으로 사도바울이 경고한 그 시기를 우리가 현재적으로 살고있는 것입니다. 여기 사람들이 무엇을 사랑하는지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합니다. 그들은 돈을 사랑합니다. 그는 육체적인 쾌락을 추구합니다. 그들의 정욕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무법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악한 영향을 끼치는데 만족함 없이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남의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사도바울이 여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 태도를 보고자 한다면 디모데후서 1장을 기억하시면 됩니다. 거기에 훌륭한 여인인 유니게와 로이스를 칭찬하였습니다. 그들은 경건한 여인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사도바울은 자주 여성들을 높여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6장에서도 많은 여언들을 사도바울은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늙은 여인들에 대해서 무시하는 태도를 가졌다는 그런 잘못된 생각을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가 언급하고 있는것은 죄를 중히 진 여자들, 자기 죄를 감추고자 하는 여자들이 쉽게 미혹에 빠진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유가 아니라 오히려 유인해서 종으로 삼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이와같은 부정적인 면을 보았는데 이제 긍정적인 면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될때 항상 격려를 받게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가 따라야 되는 롤 모델을 또한 언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그의 서신서에서 가이오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그는 아주 어려움이 있는 모임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의 모임 가운데는 디오드레베라고 하는 아마도 구원받지 않았을, 하지만 굉장히 다른 사람들 위에 높은 자리에서 독재자처럼 군림하고 있는 인도자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가이오는 그와같은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신실하게 주님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그 가이오를 예를 들면서 이 가이오를 따라가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데메드리오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는 단지 하나님의 말씀에서 한 구절에 언급된 사람입니다. 하지만 굉장히 높게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그가 역시 그 어려움 가운데 있는 가이오가 따라가야 되는 롤 모델로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와같이 디모데에게도 그가 따라야 될 롤모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의 삶을 그가 따라와야되는 예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45세 이상이 되신 분이 계시다면 젊은 성도님들이 여러분을 딸할만한 사람으로 지금 생활하고 계십니까? 그와같은 분들이 이 10절에서 사도바울이 말한 것처럼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상황 가운데 있습니까? 그는 자신이 동일하게 계속적으로 똑같은 본을 보여왔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삶의 목적에 대해서 그는 말해줄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내 인생의 간증을 그에게 본으로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과 오래참은과 사랑과 인내에 대해서 자신의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와같은 것이 우리의 도전인 것입니다. 나이드신 성도들은 이와같은 본을 젊은 성도들에게 말할 수 있는 삶을 살고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우리 모두가 우리 삶으 모델로서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됩니다. 다른 곳에서 사도바울은 내가 주를 본받은 것처럼 너희는 나를 본받은 자 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와같이 항상 주님께 우리의 시선을 둘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그와함께 나이많은 성도님들의 본을 우리는 따르며 그분의 삶을 가치있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이와같은 사도바울의 삶이 있고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어떻게 헌신했는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는 항상 동일한 간증을 보인것이 그의 특징입니다. 그는 순전한 그 사랑을 보여준 것이 그의 특징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세상에서 말하고 있는 사랑과 너무나 다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단지 감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로맨틱한 사랑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항상 다른 사람의 최선을 구하는 것입니다. 내 자신보다 항상 다른 사람을 더 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정 반대인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그 사랑을 말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심지어 나에게 부정적으로 대하는 사람에게도 그와같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의 의향, 그의 삶의 목적은 디모데에게 분명하게 보여주었스빈다. 이 한국 사회에서 큰 사업체를 운영할때 그것이 동일한 상황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미국에서 어떤 큰 사업을 운영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우리 사업의 목적은 이것이다. 그 목적을 분명하게 하는 것이 첫번째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와같이 여러분의 삶에 있어서 '내 삶의 목적은 이것이다.'라고 적으신다면 여러분은 뭐라고 적으시겠습니까? 사도바울은 자신의 주어진 사역을 그 목적으로 적었습니다. 그는 여러 다른 장소에서 그 목적에 대해서 다른 표현으로 나타내었습니다. 빌립보서 1장에서는 "내게 사는것은 그리스도니"라고 그 목표를 나타내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에서는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같은 사도바울의 목적은 디모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의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돈을 버는것이 목표가 됩니다. 번영하는 그 꿈을 좇아 가는것이 그들의 목표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말하기를 번영하는 것도 좋고 물질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지만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더 우선순위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침례요한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한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때 다잇에 침례 요한은 그의 어머니의 태중에 있었던 때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엘리사벳은 복중의 아기가 기뻐하며 뛰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그의 삶에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오신것에 대해서 그는 복중에서부터 기뻐하고 있던 것입니다. 그리고 30년 후에 그 침례요한이 뭐라고 말했는지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성취하는 것이 나의 기쁨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의 삶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오신것이 그의 기쁨이었고 그리고 그의 삶에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탁월한 위치로 높아지시는 것이 그의 기쁨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기브게 소리치기를 자신은 단지 소리라고,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실때 자신은 문을 열어주는 문지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신랑이고 자신은 신랑의 친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일하게 사도바울은 이제 다메섹으로 가는 도상에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바 되었고 그 후의 그의 모든 생애가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바가 되어 살아가게 됩니다. 만약 이 가운데 있는 어느분이 이와같이 삶의 목적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면 바로 오늘밤이 그것을 생각해보기에 좋은 때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물론 교육을 받아야 됩니다. 그리고 생활을 위해서 또한 직업을 가져야 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자신의 경력을 쌓는것이 문제가 있는것이 아닙니다. 결혼하고 가정을 갖는데 문제가 있는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여러분의 인생에서 두번째되는 목적인 것입니다. 그 모든것 위에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겠다고 하는 이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이 어려운 시대를 맞닥뜨리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 암흑의, 아주 작은 불빛만이 빛나고 있는 시대입니다. 미혹하고 진리를 모방하는 것이 넘치는 시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위대한 목적을 가지고 이 시대를 살고자 하는 사람을 필요로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생각하시기를 이 어려운 시대에 내가 어떻게 그러한 삶을 살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서 그 질문에 대답하고자 합니다.

이제 14-17절까지 이 장의 마지막의 결론을 내고 있으면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위대한 주제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우선 첫번째로 이 성경의 권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딤후 3:16).

여기 이 '감동으로 되었다'는 것에 대해서 아마도 오해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시인들, 또한 어떤 작곡가들은 영감을 받아서 시를 쓰고 곡을 지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이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되었다는 것과 다른 의미입니다. 기술적으로 이 원어 단어는 '호흡을 불어넣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또한 이것은 하나님께서 호흡을 하셔서 만들어 졌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육천년 전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2장에 있는 그 에덴동산의 시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담을 호흡을 불어넣으셔서 그를 만드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호흡을 불어 내셨고 그 호흡이 아담 안으로 들어가서 아담은 이제 다른 피조물들과 전혀 다른 존재가 된 것입니다. 동일하게 하나님께서 그 호흡을 불어내어 만드신 이 성경책은 그 책을 다른 세상의 어떤 책보다 특별한 책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에 기록된 하나님의 지혜는 이 시대의 우리에게 모든 필요한 것들을 관련되서 공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는 그 권위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책은 또한 유익하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래서 저희 삶의 모든 면에 있어서 권위를 갖게되는 것입니다. 저는 한 가정의 남자로서 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야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부터 하나님께서는 가정에 대해서 말씀하셨고 그리고 또한 신약 성경에서 그것을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5장에서 아내를 어떻게 사랑해야 되는지를 말씀을 듣게 됩니다. 그와같이 아내를 사랑하는 그 사랑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서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처럼 그 사랑 가운데서 보여줘야 된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하게 되겠습니까? 이제 그 사랑을 받은 아내는 남편을 존중하고 그를 순종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또한 부모는 어떻게 아이들을 키울지를 말씀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이 가정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말씀을 통해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사업을 운영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 말씀을 통해서 배우게 됩니다. 내 사회생활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역모임 안에서 영적인 생할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와같이 내 삶의 모든 면을 하나님의 권위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권위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 말씀의 능력, 그 효과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그 어두움 가운데서 우리가 지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여기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직면하는 모든 문제에 대해서 그 해답을 줄 수 있는 그 책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어떤 문제가 있는데 그 문제에 대해서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떠한 해답도 발견할 수 없어요." 라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문제를 가지고 있을때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을 수 없다면 그것은 이 말씀에 문제가 있는것이 아니라 내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오해하지 말고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 성경 말씀에 대해서 충분히 알고 있다면 분명히 그 삶의 문제에 대해서 해답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디모데에게 그와같은 성경으로 인해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15절에 그는 어린이 또는 유아였을 것입니다. 17절에 그는 이제 하나님의 사람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성경은 바로 어린이, 또는 유아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남자로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유익한 것이고 각 사람에게 이와같은 선한 결과를 맺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 인생의 메뉴얼 입니다. 내 발걸음의 지도입니다. 그리고 내가 여기에 이것을 의지해야 되는 그 의지하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 전달해주는 하나님의 메세지인 것입니다.

제가 앞에서 그 저자와 그 성경의 능력을 말씀드렸으며 그 권위를 말씀드렸고 이제 또한 그 말씀의 정확성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고린도전서 2장에서도 이 하나님의 말씀이 영감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한국의 학교에 대해서는 경험해 본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주 오래전에 학교를 다녔을때 선생님께서 반 아이들에게 어떤 한 주제를 주면서 이것으로 글짓기를 해봐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와같이 이 성경의 기자에게 어떤 주제를 주면서 이 주제를 네 마음대로 기록해봐라고 해서 이 성경이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이 성경의 한 단어, 한 단어가 모두 하나님께서 영감하여 기록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동사의 시제조차도 하나님께서 영감하여 그렇게 기록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2장에서 우리 주님께서 그 부활에 대해서 이렇게 도전하신 장면이 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해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것을 읽지 못하였느냐"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이었다가 아니고 하나님이다라고, 현재형으로 말씀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하나님께서는 또한 단수냐, 복수냐도 그분의 영감 가운데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에서 사도바울은 그래서 여러 자손이 아니라 하나를 가리켜 단수로써 한씨를 말한것이 아니냐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의 일점 일획이라도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제가 지난 시간에 이 '강하다'는 의미는 항상 내가 스스로 강하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하나님께서 그 강함을 주시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에 이와같은 여러가지 요소들, 여러가지 측면들을 모두 하나님께서 주관하사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기록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분들은 "하지만 우리는 사도가 기록한 그 원본이 없지 않습니까?"라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많은 사본들, 그 하나님의 말씀을 지지하고 있는 그 사본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사본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 이 시간에 다 다룰 수는 없지만 혹시 이 가운데 관심이 있는 분들이 저에게 사적으로, 또한 개인적으로 이메일을 보내신다면 그것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가지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인생을 걸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신약성경에 대해서 수년간 연구한 한 사람이 있습니다. 99.5%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성경책의 그 내용이 분명히 원본과 일치한다고 그는 확신한다고 결론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며 또한 그것은 유익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세대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모든 사회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모든 환경에 있어서 동일합니다. 우리가 이 손에 들고있는 이 책은 우리의 삶의 모든 곳에서 정확하게 그 말씀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담을 해주는 그런 사람들을 무시하고자 하는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진정한 상담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어야 됩니다.
우리가 이 장의 마지막에서 네가지를 언급하고 있는것을 이제 살펴보겠습니다. 첫번째가 교훈, 그리고 책망입니다. 바르게 함, 의로 교육하는 것. 교훈은 첫번째로 무엇이 옳은가를 저에게 가르쳐 줍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이 항상 근거해서 가르쳐져야 됩니다. 지역모임에서 가르치는 사람들이 그러한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도 또한 저의 지역모임에서 그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르치는 사람은 단지 사람들이 필요한 뭔가를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뭘 말하고 있는지를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디모데전서에서 디모데에게 말씀을 공적으로 읽을것을 당부하였습니다. 이 지역모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는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그 옳게 분별하는 것을 실패할때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지난시간에 보았습니다. 그 옳게 분별하다는 것은 신약성경에서 여기서 한군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단지 한번만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이 헬라어로 기록된 것을 살펴보면 두군데 그 단어가 사용된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잠언 3장에서 "네 길을 인도하시며"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잠언 11장 5절에서 "네 길을 지도하시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단어의 의미는 벗어나게 한다던가 다른곳으로 떨어지게 만든다던가 그런게 아니라 곱게 나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분명하게, 정확하게 자르고 균형잡히게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성령께서  이제 여러가지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신약성경의 여러 방언들이 기록이 되어 있는데 여러분은 방언이 얼마나 많이 기록되어 있는지 보신적이 있습니까? 단지 세번만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방언을 말할때에 항상 유대인들이 그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방언은 특별히 유대인을 향한 이적인 것입니다. 그 방언이라는 것은 여러분이 구원받았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이 방언이라는 것은 여러분이 성령 충만했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한번도 성령이 그에게 충만해서 방언으로 기도했다는 것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이 그와같은 것들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 옳게 분별하는, 정확하게 나눠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교훈은 무엇이 옳은가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책망을 언급합니다. 그것은 내가 지금 틀렸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읽을때에 내 마음의 양심을 말씀이 비추고 나를 책망하도록 허용해야 됩니다. 이 말씀을 읽을때에 내 마음을 열고 그 성령님의 음성에 민감해야 됩니다. 내 양심에 있어서 점점 둔감해지는 것은 이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는데 있어서 굉장히 큰 위험입니다. 그래서 교훈은 무엇이 옳은가를 말했고 그리고 책망은 무엇이 틀린가, 내가 어디서 틀리고 있는가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르게 함은 이 틀린 부분을 어떻게 교정할 것인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 교정이 우리는 항상 필요로하고 그래서 우리 마음을 다시 새롭게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로마서 12장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우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을 매일과 같이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시각을 계속적으로 바르게 교정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매일 걸어다닐때에 우리의 영적인 그 시각은 손상이 되고 맙니다. 우리를 둘러싼 주위의 광고를 볼떄에 그렇게 됩니다. 우리가 마땅히 시선을 둬야되는 곳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경건하지 못한 그런 대화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염이 되고 맙니다. 우리가 하루를 살면서 부딧치는 모든 것들이 우리를 영적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다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해야되는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는 방식으로 우리도 동일하게 그와같은 시선을 회복해야 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읽을때에 내가 내 마음을 다시 교정하여 그와같이 되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여러분이 워드같은데서 자동고침 기능이 있는데 우리 마음에 자동고침 기능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를 의로 교육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의로 교육하는 것입니다. 교훈은 무엇이 옳은가를 말했고 책망은 내가 어디서 틀렸는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바르게 함은 어떻게 바르게 다시 교정할 것인가. 의로 교육하는 것은 어떻게 의에 계속 머무를까를 말해줍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사는데에 하나님의 그 훈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같은 모든것의 목적은 내 자신을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같은 것의 목적은 이제 하나님의 사람으로 그를 온전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디모데후서 2장에서 그리스도인의 모습에 대해서 여러가지 그림을 보았습니다. 그와같은 모델들은 이제 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케 되는 것입니다.
이제 언급하지 않은 3장의 한가지 것을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5절에 보면 성경, 거룩한 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특별히 디모데가 어렸을때부터 읽을 수 있었던 구약성경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4절에서는 그의 사도바울의 서신서를 통해서 디모데가 배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4절을 우리로치면 신약성경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15절은 우리에게 있는 구약성경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6절을 주의깊게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서는 이제 모든 성경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바울의 서신을 거룩한 책, 그 성경과 함께 두며 모든 성경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도 베드로후서 3장에서 동일한 것을 말하였습니다.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라고 그는 언급하였습니다.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을 억지로 풀다가"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그 사도바울의 서신서를 다른 성경들과 같은 위치에 두고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와같은 확신 가운데 사도바울의 서신서도 구약성경과 같이 하나의 성경으로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남은 시간동안 우리가 어떻게 성경의 영감된 것을 확신할 수 있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특별히 나이드신 성도님들에게 인내심을 갖고 들어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것은 우선은 어린 성도들이 이것을 듣고 격려를 받기를 목적으로 하고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특별히 이 세상 가운데서 성경에 대해서 많은 도전을 받게되는 그러한 신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니고 있는 이 성경책이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분명한 확신 가운데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첫번째로 우리가 이해해야 되는것이 그 증거는 과학적인 면을 말하고 있는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런 증거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그것을 증명해 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특별히 역사적인 것을 다루는데 있어서 과학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왜냐하면 과학의 특징이라는 것이 항상 그 과학의 원리에 따라서 다시 한번 실현해 내야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락이 있다고 할지라도 역사적인 어떤 사건을 다시 한번 일으키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성경의 증거에 관련해서는 완전히 다른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책이 하나님으로부터 영감받았다는 그 실체를 증거하는데 있어서 어떤 방법이 필요한 것입니까? 우선 첫번째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것은 우리 구주께서 친히 그것을 증거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에 대해서 '이것은 흔한 오류인데'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성경이 영감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이 영감 받았다는 것으로 성경에 써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몇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될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만유의 주시거나 아니면 거짓말쟁이인 것입니다. 이제 어떤 법정에 서게 될 때에 고소를 받은 사람은 마지막으로 증거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증거의 가치는 그 사람의 인격에 달려 있습니다.
또 두번째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고고학적인 증거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고학 자체가 그 영감성을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들이 역사적으로 정확하다는 것을 말해줄 수는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소돔과 고모라가 과연 그 불로 멸망하였는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그 소돔산이라고 불리우는 그 지역이 불로 인해서 심하게 손상된 흔적이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많은 유황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13년도에 사람들은 여리고성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성이 안에서 부서진 것이 아니라 바깥에서부터 부서졌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을 공격할때에 성은 밖에서 대적이 밀어서 성이 안으로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기록하기를 여리고성이 밖으로 성이 무너졌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서에서 한 왕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왕의 존재에 대해서 허구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고고학자가 1870년대에 그 이름이 어떤 한 비석에 쓰여져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영 박물관에는 고고학적으로 발견된 성경의 많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다니엘서 5장에 벨사살이라고 불리우는 그 왕이 대표적입니다. 학자들은 그와같은 사람들이 존재했을 것으로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800년대에 한 고고학자가 바벨론 유적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벨사살이라는 왕의 존재를 어떤 한 군사훈련 가운데에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벨사살왕은 그 왕국의 두번째 왕입니다. 그리고 그가 다니엘에게 이런 약속을 하게 됩니다. "네가 이 왕국의 셋째가 되게 할 것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고고학적으로도 이와같이 많은 부분에서 성경의 정확성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증거가 성경이 영감 받았음을 증거합니다. 그리고 그 고고학적으로 발견한 것이 성경의 정확성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죄인들에 의해서, 그 성경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사람들이 또한 증거하고 있습니다. 제가 대학교를 다닐때에 저는 아주 유명한 이 책을 읽어야만 했습니다. 그 책의 제목은 양심의 흐름이라는 유명한 책이었습니다. 그 책의 사고방식을 따라가는 것은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내가 읽은 그것들을 지금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저의 담당 교수는 그 책을 잘 이해하도록 우리에게 강요하였습니다. 그 교수가 원하는 것은 그 책을 제대로 한번 읽어서 "그 책이 내 삶을 바꿨어요."라고 말하는 그 사람을 만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그 책을 읽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와같이 말할 수 있었습니까? 하지만 우리 성경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있습니까? 이것은 결코 똑같은 일반적인 책이 아닙니다. 참으로 죄인들이 구원받은 그 사실은 이 책에 영감을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의 예언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 예수의 생애 가운데서 특별히 여덟개의 주님 자신이 조종할 수 없었던 그런 것들이 성취된 여덟개의 예언을 보게 됩니다. 성경은 주님의 탄생의 지역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정녀 탄생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서 9장에 나와있는 그분의 탄생시기를 또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에 그분이 배신당할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사야에서는 사람들이 그를 침뱉고 모욕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 22편에서는 그분께서 십자가에 못박힐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자와 함께 장사될 것을 언급합니다. 이 모든 예언들은 주님께서 자신이 어떻게 한다고해서 이뤄질 수 있는 예언이 아닙니다. 이와같은 불가능한 여덟개 일이 한 사람에게 동시에 성취될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한번 계산해 보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이것이 한 사람에게 우연히 다 이뤄질 확률은 10의 마이너스 7승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오래되서 이것이 어느정도 되는지를 잘 모르신다면 제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기 서울에 한 하얀 탁구공을 떨어뜨릴 때에 그 탁구공이 서울에 있는 어느 한 탁구공을 우연히 부딧치게 될 확률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냥 눈감고 던졌는데 어딘가에 있는 탁구공을 맞춘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눈을 가리고 검은 공을 찾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참으로 이와같은 선지자들의 예언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이 성경이 만들어 졌다는 것을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태어나기도 전에 그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알고 있습니다. 알렉산더 대제도 그는 예루살렘을 함락 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예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성경의 저자는 그 위대한 제국이 어떻게 쇠퇴할 것인지도 예언하였습니다. 우리는 이와같이 성취된 수많은 예언들을 언급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예언이 실제 사건이 일어난 다음에 기록한 것이라고 주장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러한 것들은 매우 어려운 주장이 된 것을 바라보게 됩니다. 참으로 이 증거는 성경의 증거만이 오직 살아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 성경의 주장은 계속해서 미움을 받고 그것을 파괴하고자 공격을 받았습니다. 4세기에 한 로마 황제는 모든 성경책을 다 불사르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리고 16세기에 스코틀랜드의 한 여왕은 모든 성경을 다 불태우도록 명령하였습니다. 공산주의 정부는 또 모든 성경을 파괴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성경이 살아남아 있다는 것은 또한 놀라운 증거입니다. 만약 이 시대에도 어떤 한 책이 쓰여져서 20년간 살아남아 있다면 놀랄만한 책인 것입니다. 그리고 수백년에 거쳐서 지금도 사람들이 읽고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클래식이라고 부릅니다. 그렇게 보전의 레벨이 올라간 것은 우리가 단지 손으로 꼽을 수 있는 셱스피어, 호머라는 그런 책들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책은 수천년 동안 우리에게 존재하고 있는 남겨져 있는 책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도 셱스피어 책과 호머 책을 지구상에서 없애버리고자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미움의 대상이 되고 없애버리고자 했던 그 책은 수천년동안 아직도 남아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너무나 놀랍게 하지 않습니까? 우리 주님께서도 주님의 말씀은 사라지지 않을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성경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또 하나의 증거는 비어있는 무덤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참으로 그분께서 하신 모든 말씀이 절대적으로 참됨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죽음 가운데서 그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히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말한것은 분명히 절대적인 진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큰 돌이 굴려간, 비어있는 그 무덤 앞에 서 있게 됩니다. 참으로 이것을 다른 어떤 사람의 방법으로 설명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8장에 기록된 것처럼 사람들은 그것을 거짓말로 다르게 말하였지만 그 거짓말은 지금도 통하지 않는 그런 헛된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그 비어있는 무덤이 말하고 있는 그 증거는 바로 기록된 이 책이 참으로 하나님께서 영감하신 그 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어려움과 어두움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을때에 그리고 여러분을 속이고 진리를 모방하는 시대에 살고 있을때에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이 책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인도하고 우리의 모임을 인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우리 모두에게 아주 커다란 책임을 말하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책에 대해서 잘 알아야 됩니다. 이 하나님의 진리를 옳게 분별하는 일꾼으로 인정되어야 됩니다. 그것은 그냥 이해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라고 분명하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여러분의 삶의 인도로 삼아야 됩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의 삶이 특별히 목적이 있고 의미가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의 목적과 의미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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