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25일 목요일 뉴욕플러싱 여름 수양회 / 한봉래 형제님
<복음말씀 : 요한복음 3장, 거듭남 >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15).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 갔습니다. 왜 찾아갔냐면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오셔서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는 할수 없는 기적들을 행하셨습니다. 니로데모는 그것을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보고 이제 예수님을 찾아 갑니다. 아마 니고데모가 고려했을, 그리고 고려했으면 좋았을 중요한 기적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의 장사하는 사람들을 엎으시고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이것이 주님이 하셨던 어떤 기적보다 강력한 기적입니다. 니고데모가 주님을 찾아 갑니다. 성견은 밤이라고 말합니다. 아마 문자적으로는 그가 밤에 주님과 시간을 많이 시간을 많이 낼수 있기 때문에, 밤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상징적으로 그는 어두움 속에 있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과 만나서, 개요를 말씀드리면 그는 압니다. 자기가 구원받지 않았다는 것을 압니다. 그에게는 나쁜 소식입니다. 나는 하늘나라에 못들어가는 구나. 그에게 좋은 소식은 이렇습니다. 주님을 통해서 하늘나라에 들어갈수 있는 복음을 들은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하늘나라에 들어갈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들어갈수 없다는 것을 그는 쓰라리게 확인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하늘나에 들어갈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십니다. 저희들도 먼저 이 과정을 먼저 겪어야 합니다. 바리새인에 대해서 성경이 말하고 있는 구절들을 좀 찾아보겠습니다. 첫번째로 사도행전 23장을 보겠습니다.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행 23:8).
바리새인은 부활을 믿었습니다. 죽으면 끝이 아니고 죽은후에 다시 하는 두번째 생애가 있다는 것을 바리새인들을 믿었습니다. 성경적인 믿음입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천사도 있고 영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을 다 믿었습니다. 이것은 바리새인이 잘한 것입니다. 그 다음 두번째 바리새인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7장입니다.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이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더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저가 가로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가라사대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눅 7:36-42).
주님은 바라이새인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빚진자다. 그리고 너는 그 빚을 갚을수 없다." 이것이 주님이 바리새인들에 대해서 하신 말씀 입니다. 그들은 죄의 빚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빚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빚을 갚을길이 없습니다. 이게 바리새인들에 대한 주님의 성경적인 묘사 입니다. 두번째로 가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4장입니다.
"안식일에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한 두령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눅 14:1).
"청함을 받은 사람들의 상좌 택함을 보시고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가라사대"(눅 14:7).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ㅍ14:11).
이 바리새인의 집에서 주님께서 이런 경험을 하셨습니다. 초대를 받았는데 식사 자리에 앉는 것이죠. 바리새인들은 어떤 사람들이냐면 그 중에서 상석에 앉으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 "높이는 자는 낮아질 것이다." 그들은 빚진자이며, 그들은 높아지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낮아질 사람들입니다. 하나만 더 보겠습니다. 계속해서 누가복음 15장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눅 15:2-3).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눅 15:28-30).
이 탕자의 비유는 바리새인들을 놓고 주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자기의 하나님 앞에서의 의로움을 항상 염두해두고 죄인들을 무시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자기들과 같이 거룩한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아니하시고, 죄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시고 그들에게 죄의 용서를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의보다 낫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못들어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누가복음 15장의 비유로, 바리새인들에게, 바리새인들을 말하는 사람이 누구냐하면 맡아들입니다. 맡아들은 이렇게 발언합니다. "내가 아버지의 명을 어김이 없었거늘" 자기의 행위의 의로움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창기와 함께 아버지의 재산을 먹어버린 이 아들, 죄인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이게 바리새인들에 대한 주님의 성경적인 태도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8장입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눅 18: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눅 18:14).
여기 주님께서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두 사람, 하나는 바리새인이고 하나는 죄인입니다. 바리새인은, 그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그가 명목상으로 감사합니다라고 했지만 전부 자기를 높였습니다. "나는 세리와 같지 아니하고 부유하며" 주님앞에 기도하며 자기를 높이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 자리에 와서,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피조물이, 그 영광스러운 하나님 앞에 감사 드리고 은혜를 찬양하고 이렇게 말해야 하는 그 자리에 자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말하지요. 바리새인에 대해서, "속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기가 하나님 앞에 감사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이 이 기도를 들으셨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듣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속고 있는 자입니다. 이것이 바리새인입니다. 이 바리새인인 니고데모가 주남께 왔습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자기가 하늘나라에 들어갈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수 없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는 하늘나라에 못들어 간다. 너는 이제까지의 행위, 네가 부활을 믿고, 성경적인 교리를 사실로 받아들인 것이죠. 천사도 있고, 영도 있고,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왔고, 그래서 내가 하늘나라에 들어갈수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 주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너는 하늘나라에 들어갈수 없다. 너에게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그의 관심은 이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신가? 이것을 물으러 온 것입니다. 주님이 기적을 해하십니다. 주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쫒아내셨습니다. 무슨 권세로? 주님은 그 권세를 누구에게서 받았습니까? 주님은 성전을 내 아버지 집이라고 부르고 이것은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누구신가? 그리스도이신가? 이것을 물으러 왔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대답해 주지 않았습니다. "너는 내가 그리스도인지 아닌지 확인할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네가 달라져야 한다. 너는 하늘나라에 들어갈수 없고 너는 거듭나야 한다." 이것이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랬을때 이제 두번째 입니다. 니고데모가 결국 구원받았는데, 첫번째 구원받기위해서 니고데모가 디뎌야 할 첫걸음은 내가 구원받지 안았구나. 이것은 니고데모에게 있어서 대단히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발언이었을 것입니다. '내가 구원받지 않았다니, 내가 아니면 누가 구원받는단 말인가?' 라고 속으로 생각할수 있었던 사람입니다. 예수님에 의해서 구원받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는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두번째, "그러면 어떻게 하면 구원받을수 있습니까?" 그가 인정합니다. 어떻게 구원받을수 있는가?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핵심적인 내용은 이것입니다. 이제까지는 니고데모 자신이 무엇인가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이 인정해주시는 구조였습니다. 주님께서 순서를 바꿉니다. 네가 하는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시작 하시고 너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받아들여야 한다. 바람은 임의로 붑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는데, 성령님을 우리가 통제할수 없습니다. "성령님 지금 오십시요. 지금 내맘에 오셔서 나를 거듭나게 해주세요." 이렇게 할수 없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자기가 원하는때에 원하는 방법으로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그분이 모든 죄인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며, 그분이 나도 구원해주실것을 말씀을 따라 신뢰하고 그분을 기다려야 합니다. 다른 것들은 니고데모가 생각할때에 자기가 시간을 정하고 자기가 방법을 정하고 자기가 행할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 방법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이것은 에스겔서를 인용한 것인데요. 에스겔서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함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에서 살지 못하고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살지 못하고 그들이 먼 나라에, 바벨론에 포로로 종으로 끌려가 버렸습니다. 그게 유대인이며 그게 우리 인생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를 섬기고 우상을 섬기고 그래서 멀리 떨어져 있고 그리고 죄의 종이 되고 사망의 노예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통해서 약속하십니다. "내가 너희들을 다시 데려오겠다. 이 약속의 땅으로 데려 오겠다." 데려오려면 두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그들이 깨끗해져야 합니다. 그들이 지은 죄가 용서되어야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우상을 섬겼던 죄가 용서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죄를 씻어내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물이 필요한 겁니다. 깨끗하게 씻는 물, 바리새인들이 그토록 그릇을 씻고 손을 씻고 의식적인 정결을 했던 그 물로 그들의 내면이 씻겨져야 합니다. 그 다음 두번째는, 이제 다시는 그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을수 있는 내적인 힘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님이 능력으로 그들의 안에 계셔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서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배반했을찌라도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을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대로 그들을 다시 이스라엘 땅에 가나안 땅에 살게 하실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이 두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씻어야 하고 다시는 그와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는 능력이 주어질 것이다. 그리고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육에서 난 것은 육이니" 이것은 니고데모는 할수 없습니다. 육이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영만이, 성령만이 그와같은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거듭나야 한다,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거듭나는 방법을 말씀하셨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죄가 용서되고 성령께서 내주하셔서 거듭나게 된다. 그리고 성령이 하셔야 한다. 바람이 임의로 불듯이 성령께서 그와같은 일을, 그런데 사실은 이 이야기는 이런 내용입니다. 니고데모에게 지금 주님께서 말하고 계십니다. 지금이 거듭날수 있는 기회 입니다. 지금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가 마음을 열고,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이 자기 마음에 빛으로 다가 왔을때, 마음을 열고 무릎을 꿇고 받아들이면 그가 거듭날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놀라운 것은, 니고데모가 이렇게 질문 합니다. "어떻게 그런일이 있을수 있겠습니까?"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말을 듣고 주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런일을 알지 못하느냐?" 피차 놀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일이 있습니까? 어떻게 성령께서 찾아오셔서 자기 마음을 말씀으로 죄용서 확신을 갖게 하고, 다시는 그죄가 기억되지 않고 그 죄의 노예에서 풀려나고 이제 자유롭게 하나님을 순종할수 있는 능력이 있는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시면 이런일이 어떻게 가능 합니까? 주님께서 이렇게 책망하시는 것이죠. 구약을 그렇게 알고있지 않느냐? 구약에 그와같은 말씀, 선지자들의 말이 쭉 있었는데 그것을 네가 아직도 모른단 말이냐? 그리고 이제 거듭나는 방법을 말씀하십니다.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거듭나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믿지 아니하거든" 땅의 일은 뭐냐면 이세상에서, 죽어서 아는것이 아닙니다. 죽어서 하나님 앞에 가서 내가 천국 갈것인지, 지옥 갈 것인지를 아는것이 아닙니다. 땅의 일, 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날동안 그는 알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 거듭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땅의 일을 말하여도 믿지 아니하거든, "내가 하늘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 사람들이 이 땅에서 거듭날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계획하신 일이 있습니다. 이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땅에서 사람들이 은혜를 입고 거듭나는 것입니다. "하늘일을 네가 어찌 믿겠느냐?" 땅에서 거듭나는 일을 해야 한다. 거듭날수 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수 있다. 이 땅에서, 그리고 두번째, 그렇게 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계획하신 일이 있다. 그럼 이것을 누가 받아들입니까? 첫번째 입니다.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이 거듭날수 있도록 하나님이 하신 첫번째 일입니다. 하늘에 계신 주님께서, 하나님의 아들께서, 이세상에 오셨습니다. 사람이 되어, 혈육을 입고, 우리와 같은 모양이 되시고, 우리와 동일하게 사셧으나 죄를 범치 않으셨습니다. 이것을 먼저 믿어야 합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 인자외에는 없습니다. 만약에 누군가가, 아마 그때 상황에서 이럴수 있습니다. 하늘에서 왔다하고, 하늘을 보았다 그러고 하늘로부터 보냄을 받았다고 말하는 가짜들이 많이 있었을찌도 모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하늘의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시고 그 은혜로 이제 사람들이 거듭날수 있게 계획하신 것입니다. 두번째 입니다. 그렇다면 하늘로부터 오신 인자는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구약에 나와 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처럼 인자도 들릴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오신 주님이, 구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범했습니다. 그래서 죄로 풀려나기를 구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십니다. 놋으로 뱀을 만들어서 장대에 높이 달고 쳐다보는 사람은 낫는다. 이렇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경험입니다. 그림자 입니다. 주님이 그와같이 하실것을 예고한 것입니다. 니곤데모는 이스라엘의 선생이며 율법학자로써 이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그에게 성경을 들어서 주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런거죠. "내가 십자가를 질 것이다. 높이 들릴것이다.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려 온 세상 죄를 속할 것이다."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이 거듭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계획하신것이 두가지 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사람으로 보내신것, 이게 첫번째 예수님이 누구냐 하는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인격입니다. 두번째 예수님의 사역입니다. 그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무엇을 하시느냐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신 것입니다. 온 세상 죄를 속하기 위해서, 이 두가지가 하늘 일입니다. 그래서 그랬을때. 15절입니다. "믿는 자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주님은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네 눈에는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사람과 똑같이 되어있지만 나는 하늘에서 내려왔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이유는 심판을 하기 위함이 아니고 대속의 죽음을 죽기 위해서다. 내가 십자가에서 죽을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으면 거듭나고 영생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수 있다." 이것이 주님이 니고데모에게 설명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니고데모가 거듭났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7장 19장에 가보면 니고데모가 거듭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시 오겠습니다. 구원받을때에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도바울과 같은 분입니다. 구원이 일순간에 일어납니다. 다메섹 도상에 가고 있었습니다. 주님을 믿지않고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양심 속에는 가책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면서 가시채를 뒷발길질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그의 양심속에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부활한 주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구원 받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변화된 삶을 삽니다. 자기가 그토록 반대했던 주님을 주님이라고 높이며, 그가 반대했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그의 목숨을 겁니다. 이런분이 있습니다. 감사한 분입니다. 니고데모는 아닙니다. 그는 요한복음 3장에서 거듭나지 못합니다. 요한복음 7장에서 그는 거듭났다고 보여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님편에 섭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9장에서, 그는 숨은제자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보고 담대히 일어납니다. 주님의 시신에 향을 바릅니다. 이건 그런 뜻입니다. 유대인의 법으로 치면 시신을 손댄 그는 부정해진 것입니다. 그는 유월절을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율법이 아니라, 그가 바리새인으로서 해왔던 여러 행위가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하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이 놀라운 은혜를 하늘에서, 이것이 하늘일이고, 이제 그가 땅에서 겨듭나는 일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들 가운데 단번에 구원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계속적으로 그가 주님앞에 나아가고, 주님 말씀을 마음에 두고, 그리고 마침내 주님의 은혜 가운데 들어오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번 구워받은것 같고, 믿었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또 다시 아닌것 같고, 실망하지 말고 니고데모처럼 다시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주님께 기도하고 바람이 임의대로 부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가 통제할수 없습니다. 어느날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움직이실지, 어떤 마음으로 움직이실지, 그러기 위해서 성령께서 나에게 어떤 낮아지는 경험을 허락하고 계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바람이 불것입니다. 반드시 우리가 거듭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때까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고 은혜를 바라야 합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만 더 강조드리고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요한복음 3장을 다시한번 보겠습니다. 니고데모는 자기가 구원받지 않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가 구원받을수 있는 길을 제시 받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중심은 주님이신것을 압니다. 이것이 중요한거죠. 그 다음 주님께서 니고데모와의 대화 가운데 '진실로 진실로' 라는 단어를 두번이나 쓰십니다. 이렇게 '진실로 진실로'라는 구절이 세번이나 나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요 3:3).
참으로 중요한 구절입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대표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다윗은 시편 51편에서 이렇게 씁니다. 다윗은 밧세바와 간음 했습니다. 죄를 범했습니다. 그리고 죄를 하나님 앞에서 숨기려고 했습니다. 일년간이나, 그런데 마침내 선지자의 지적을 따라 자기가 범한 죄를 시인 합니다. 이게 시편 51편입니다. 그런데 그가 시편 51편에서 어떻게 시인하냐면, 주님내가 죄를 범했습니다. 정도가 아닙니다. 뭐죠?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나이다." 어머니가 나를 잉태할때부터 내가 죄인이었습니다. 이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뭘 잘못했기 때문에 죄인이지만, 여기까지 오는 것입니다. 내 존재가 죄인 것입니다. 행위뿐만 아니고 나라고 하는 존재가 죄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그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죄인에서 의인으로 넘어오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수 없습니다. 두번째입니다. 5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첫번째는 거듭남의 필요성입니다. 두번째는 거듭남의 방법입니다. 거듭남이라는 도구, 수단입니다 물과 성령입니다. 끄끗하게 되야되고, 죄가 용서되어야 하고, 그 죄의 종에서 벗어날수 있는 능력이 주어져야 합니다.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11절을 보겠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요 3:11).
이것은 특정한 교파가, 특정한 사람들이 믿는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성경이, 구약성경,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두 경험한 것입니다. 거듭났다고 하는 확신이 없이, 믿음만으로 천국에 간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모든 구원받은 사람들이 경험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언제 거듭났습니다. 어떤 말씀으로 거듭났습니다. 거듭난 이후에 저에게 변화가 있습니다. 죄에 불복하지 않는, 죄를 이기는 죄를 전혀 짓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죄를 이기는 경험을 제 스스로도 놀라면서 감사함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거듭남입니다. 주님께서 저희들에게 이와같은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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