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 : 요한일서 5장 16-21절(요약)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 (요일5:16-21, 개역한글)
- 장승훈 형제님 : (키보드 연결 불량 이슈가 있습니다.)........지난시간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않는죄에 대해서 교제가 부족했던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서 더 교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키보드 연결 불량 이슈로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순서상 16절부터 교제해 주시고 이어서 18절로 교제 넘어가면 좋겠습니다.
- 김대현 형제님 : 지난시간 교제된 내용을 다시한번 묵상해 보았습니다. 모든 불의는 죄입니다. 그리고 죄의 결과는 다 사망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도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는 무엇인가 할 때에 사망에 이르는 죄를 빼면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가 남을것 같습니다.
그러면 사망에 이르는 죄는 첫째는 지속적이고 의도적으로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곧 배교의 죄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외에 해당하는,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는 죄를 범한 성도들이 회복하기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곧 연약함으로 짓는 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를 위해서 회개하고 회복할수 있도록 기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16절)
- 전의석 형제님 : 요한 사도가 하신 표현 중에 사망과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요일3:14, 개역한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5:24, 개역한글)
요한 사도는 사망과 생명을 말할 때에 그것을 육체적인 사망이나 육체적인 생명을 말한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도 당연히 영적인 생명, 영적인 사망을 말씀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죽어서 망하는 사망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배교, 배도의 죄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 형제를 구할 수 있는 죄, 기도해야 되는 죄를 생각하게 됩니다. 정직하지 못한 것이라든지, 부도덕한 죄라든지, 생활속의 죄들이 있을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에서 돌아오기를 구하는 기도가 필요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더러는 모임을 떠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실패가 끝이 아님을 기억하고 기도해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요일5:17, 개역한글)
또 사망에 이르지 않지만 성경은 단순하게 우리의 죄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사도는 경고로 보여주시고 계시다고 생각되었습니다.
- 최재홍 형제님 : 저도 사망에 이르는 죄는 끝까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죄라고 생각합니다. 또 모든 불의는 죄라고 말씀을 시작합니다.(17절) 그래서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를 가볍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짓는 죄 중에 가벼운 것은 절대 없음을 말씀합니다. 저희가 기도하고 또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신다고 해도 그 죄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죄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어야 합니다.
"불의"는 하나님의 기준에서 벗어나 모든 행위나 상태를 말합니다. 죄라는 것은 과녁에서 빗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준과 표적에서 어긋난 모든 것입니다.
- 장승훈 형제님 : 16절에서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를 범한 자가 "형제"라고 표현되어 있지만, 성도로 보지 않는 견해도 있는것 같습니다. 그러면 16절 중반에 있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를 구원받는걸로 이해하는 분별도 있습니다.
하지만 형제님들께서 교제해주신대로 이 대상을 형제로 본다면 그 형제가 죄를 범했지만 그가 다시 회복되기를 기도하는, 그래서 그 뒤에 있는 "생명"을 회복으로 이해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그 대상을 형제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18절을 교제하고 오늘 요한일서 말씀을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 김윤철 형제님 : 지난시간 사도요한이 요한일서를 쓴 목적을 5장 13절에 밝혔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담대함을 말하고 형제를 위한 중보를 말하고 오늘 18절부터 요한일서 전체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사도요한은 "우리가 아노니"라는 표현을 세번에 거쳐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함을 아노라"(18절) 여기서 범죄는 현재형 동사로 한번 행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죄를 범하고 죄 가운데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거듭난 성도가 전혀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거듭난 성도는 죄 가운데 계속 머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성도는 죄 가운데 있지 않고 죄를 삶의 방식으로 삼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안전은 우리 안이 아니라 주님의 손안에 있음을 다시 생각해 보고 감사하게 됩니다.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세상은 악한 자안에 처한 것이며"(19절) 두번째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악한 자의 영향을 완전히 피할수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속에 살면서도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자임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20절) 세번째 아는 앎 입니다. 여기서 '지각'은 단순히 아는것이 아니라 이해력, 분별력이라고 합니다. 또 이어서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신분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지키심을 알고, 그분께 속해 있으며, 그분안에 거하고, 주님께서 우리를 붙으심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같은 사실을 앎에 감사드립니다.
- 전의석 형제님 : "하나님께로서 난 자"(18절)의 말씀을 우리라고 생각하는게 일반적인데요. 저는 이분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라고 중반에 말씀합니다. 이분이야말로 완전히 범죄치 않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로서 난자의 표상을 주님께서 가지고 계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믿는자들을 악한 자의 손에서 지켜주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저희를 지킨다는 것은 저희들에게 분명한 공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희를 붇잡을 수 없고, 사로잡을 수 없지만 사단은 저희를 공격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단이 저희를 채가지 못하는 이유는 주님께서 저희를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안전이라고 형제님께서도 교제해 주셨는데, 이 안전은 영원한 안전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안전은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붇잡고 있는데 달려있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아는 것"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는데요. 13절부터 21절까지는 7번 아는 것에 대해서 나옵니다. 요한일서 성도 집회때에 두가지 아는것으 배웠습니다. 첫째는 지식적, 직관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경험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13-20절에 여섯번의 아는 것은 직관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21절은 경험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주님을 알고 구원받고 하는 앎이 있습니다..... 이같은 아는 앎은, 주님을 참된 자로 아는 것은 우리가 경험한 것입니다. 이 부분을 볼 때에 성경이 참으로 정교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아는 것에 대해서도 이같은 내용이 있다는 것을 조금 비췸을 받게 되었습니다.
- 장승훈 형제님 : 사망에 이르는 죄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에 형제님들께서 배교를 언급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그가 다시 돌아오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성령 훼방 죄가 있습니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히6:4-6, 개역한글)
이 사람들은 아직 살아있지만 여러 기회가 있던 자들이고 이들은 이제 돌이키기 어려운 자들입니다. 사도도 이들을 돌이키기 어려운 자들로 보는것 같습니다. 사도요한도 배교하는 자들에게는 그들의 마음 상태와 그들의 활동을 보았을때 돌이키기 어려운 자들로 보는것 같습니다.
18절에서는 믿는 자와 죄의 관계, 19절에서는 믿는자와 세상의 관계, 20절은 믿는 자와 주님과의 관계를 말씀합니다. 형제님께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두가지 앎이 있습니다. 경험적으로 아는 앎과 직관적으로 아는 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단어로는 똑같은 단어라서 헷갈릴수 있지만 원어상으로는 다른 단어입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보면, 습관적이지 않은, 일시적인 범죄한 형제의 회복을 돕는 것은 첫재로 그가 자백하는 것이고, 주님께서 하나님 앞에서 대언자로써 일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사망에 이르지 않은 죄를 지은 형제를 위하여 다른 형제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큰 안전장치는 하나님께서 그를 지키시는 것입니다.(18절)
구원받은 이후에 그리스도인들은 더이상 사단의 영향력 아래 놓여있지 않습니다. 사단이 믿는자를 유혹해서 끌고갈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저희의 옛 사람이 죽은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은 우리의 옛 사람이 드러나는 것으로, 일시적으로 죄를 짓는것으로 볼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19절 이하의 말씀을 교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김윤철 형제님 : Q. 질문이 있습니다. 18절에서 "하나님께서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21절에서는 "너희 자신을 지키라"라고 요한일서가 끝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신다고 했는데 또 우리자신이 우리를 지키라는 말씀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형제님들께 질문드립니다.
- 최재홍 형제님 : 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라고 나와 있는데요.개역한글과 킹제임스, 다비역이 좀 다르게 적혀 있습니다. 개역한글은 하나님께로서 나신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킹제임스, 다비역은 하나님께로 난 성도가 자신을 지킨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들 힘으로는 저희 자신을 지킬수 없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보면 우리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과 성령님의 역사로 성도가 깨어서 말씀으로 분별하고 지킴을 말한다고 생각되어집니다.
두가지 다 생각해보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키시기 때문에, 성도가 자신을 지키고, 성령님의 역사로 지켜짐을 생각하게 됩니다.
A. 질문해주신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지키신다고 하셨기 때문에, 저희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지키심을 알기에 우리가 깨어서 거짓을 분별하고 자신을 지키라는 말씀으로 보입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성도들은 그 자리를 빼앗은 거짓 교리나 세상의 것으로부터 자신을 지킬수 있도록, 그 지키는 것도 성령님의 역사 가분데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관점으로 보여집니다.
- 전의석 형제님 :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벧전5:8, 개역한글)
이 말씀은 저희들의 구원을 빼앗기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믿는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넘어지고 사단이 교회를 공격하는 일들이 있지 않은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부분도 양면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A. 그러나 형제님께서 교제해주신 18절에서 주님께서 저희를 너무나 명확하게 저희를 붇잡고 계시다고 생각됩니다. 또 21절에 "자녀들아"라고 합니다. 이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말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너희 자신을 지켜" 이는 개인에게 각각 해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완전한 사람이시며 완전한 하나님이심을 각각의 마음속에 확신해야 함을 사도는 말씀해 주십니다. 그것이 아닌 다른 견해, 사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상숭배임을 말씀해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예, 마지막까지 어려운것 같습니다. 질문을 잘해주신것 같고요. A. 이것에 대한 다른 견해가, 우상이 왜 등장하느냐에 대해서 영지주의자들이 그들이 이해한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볼 때에 그들이 이해한 하나님은 우상인 것입니다. 그래서 영지주의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에서 멀리하라고 이해해 볼수 있겠고요. 그리고 사도요한이 준 진리들이 있습니다. 이 요한일서를 받은 자들이 이 받은 것들을 잘 지키고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는 우상인 하나님을 멀리하라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래서 "자녀들아 너희'에게 맡긴 것'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로 이해하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다음주에 요한일서 전체를 마무리 할 때에 형제님들께서 이 부분을 잘 정리해 주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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