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 : 요한일서 5장 13-17절(요약)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요일5:13-17, 개역한글)
- 김민원 형제님 사회 : 오늘은 13절을 나갈텐데요. 13-17절까지는 우리가 가지는 확신이 있습니다. 영생이 있다는 것, 또 하나님께서 성도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18-21절까지는 요한일서가 마무리되는 부분입니다.
오늘은 13-21절까지 교제를 부탁드립니다.
- 전의석 형제님 : 13절부터 마지막까지는 요한일서를 요약하면서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 정리를 하는 내용으로 생각되어집니다.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 얘기했고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에 대해서 간략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이 없고 하고 싶은 말씀만 하고 끝난다면 잘 받아들여지지 않을수 있지만 21절에 이것을 쓴 이유에 대해서 말씀하고 13-20절에서 확신을 줍니다. 13절에서는 영생에 대한 확신 14-17절까지는 기도에 대한 확신 18-19절에서는 죄로부터의 구원에 대한 확신을 그리고 20절부터는 영생에 대한 확신을 줍니다. 마지막으로 배도하는 환경가운데서 저희들에게 확신을 주는 사도의 사랑을 다시한번 느낄수 있습니다.
저번주에는 영생을 주신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삼중으로 확신을 주신다고 했는데요. 잠언 말씀에도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음을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주신것이 영생이기에 말로할수없는 감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가져가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희의 죄를 남김없이 다 가져가셨습니다. 그래서 주신것과 가져가신것을 생각할때에 참 감사가 되었습니다.
- 김윤철 형제님 : 요한일서 5장 13절은 성도에게 영생에 대한 확신을 주는 말씀입니다. 사도는 우리에게 영생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알게 하여 함이라" 여기서 아는 것은 원어적으로 분명하게 확신하고 아는 것입니다.
사도는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근거는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 자체가 우리 구원의 확실한 근거입니다. 우리의 구원의 확신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만을 바라볼 때에 얻을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불안하고 변화하지만 우리 구주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입니다. 이러한 확신 가운데 있어야만 담대함으로 나갈수 있습니다.
14절부터는 기도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우리가 확신이 있을때에 기도는 담대해 집니다.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기도의 응답을 듣는방법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것입니다.
Q. 한가지 질문을 드리자면 우리가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어떻게 알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신 기도를 생각하게 됩니다.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그리고 이렇게 구할때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들으심을 안다면, 이미 얻은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자기 자녀의 기도를 들으신다고 약속하셨으며 또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심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윤철 형제님의 말씀에 조금 첨언해서 교제를 드리자면요. 그에 다 동의하고요. 우리가 영생을 확신하는 것은 우리의 경험이나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서 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영생이 있음을 확신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이라고 그 이름을 믿는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합당한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우리를 우리 죄에서 구원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기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기도할때 롯에 대해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의인을 함께 멸하시는지, 하나님의 공의에 기대해서 기도하였습니다. 야곱은 아브라함이 받은 하나님의 약속을 토대로 기도하였습니다. 또 모세는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신 약속을 토대로 엎드려 기도하였습니다. 솔로몬과 다니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기도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나님의 말씀을 토대로 근거해서 기도하는 것임을 비췸을 받게 됩니다.
- 최재홍 형제님 : 13절에서는 계속해서 믿은 자가 생명의 쇼유를 확신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돕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자들에게 계속해서 말씀합니다. 그 이름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저희를 위해서 대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구원자이심을 믿는 것을 말하고 있다고 봅니다.
14절에서는 하나님께 나가는 기도의 담대함을 말해주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께 나가는 담대한 자유라고 생각되는데요. "담대한 것이" 저희는 한때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는 죄인이었지만 주님의 보혈로 구속받아 담대함으로 하나님앞에 나가서 기도할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진바" 이는 지속적인 시제입니다. 일회성이 아닌, 계속해서 나갈수 있는 성도에게 특권을 말씀합니다. "뜻대로" 당연히 하나님의 뜻대로 구해야 함을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담대함으로 기도한다고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하지 않은 것이면 맞지 않는 기도입니다. 또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구한다해도 우리의 삶이 올바르지 않다면 그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을것입니다. "무엇을 구하면" 어떤 것이든지 구한다는 뜻이지만, 그 범위 또한 "뜻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구해야 합니다. "들으심이라" 하나님은 언제나 귀를 기울이고 듣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 기도가 즉시로 응답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때에 이루심을 말씀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A. 저희가 창세기 32장을 교제하면서 한번 말씀드렸던것 같은데 다시한번 설명해 보겠습니다. 1). 하나님께서 30장에서 야곱에게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일차적입니다. 그리고 2). 두번째는 31장에서와 같이 상황으로 보여주십니다. 라반의 안색이 전과 같지 않습니다. 또 32장 2절에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군대를 보여주십니다. 우리가 담대함을 가지고 실행할수 있도록 상황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3). 세번째로 31장 3절, 13절에서처럼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십니다. 그래서 야곱은 32장 10-11절에서 합당한 기도를 합니다.
13절에서 "내가 이것을 쓴 것은"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1장 4절에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다"라고 말합니다. 그 배경에 영지주의자들의 잘못된 교리로 말미암아 교제의 기쁨이 귾어졌기 때문입니다. 2장 1절에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이것을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않게 하려 함이라" 그 이유는 이들이 죄를 지으면서 나는 죄없다 말하기 때문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으로 인해서 그들이 죄를 짓고 있으면서 죄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이 이를 썼습니다. 2장 21절에 "너희를 미혹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미혹에 조심하도록 사도요한은 썼습니다. 그리고 5장 13절로 돌아와서 영지주의자들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 특별한 지식이 필요함을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교정하는 것입니다. 특별한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씀은"이라는 표현이 여기 있습니다.
- 김보영 형제님 : 형제님들의 교제에 저도 동의합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받는다는 진리위에 서는 것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의 잘못된 사상이 성도들을 흔들고 있습니다. 이와같은 때에 사도는 어찌하든지 그들이 받은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확실하게 믿게 하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영지주의뿐 아니라 유대인들의 율법주의 때문에 사도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까? 그들과 맞서서 진리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한번 사도가 깨우쳐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전의석 형제님 : Q. 14-17절까지의 기도의 내용을 형제님들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우리의 필요나 도고등으로 넓게 보는것인지, 아니면 구원을 얻는 것으로 한정적으로 보아야 할지, 생각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 김보영 형제님 : 14절을 보충으로 교제하겠습니다.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원어를 보면 확신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를 향해서 그의 뜻대로 구하는 것은 확실하게 주님께서 응답하심을 말씀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저는 기도에 대한 말씀이 나오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교파에 다닐때에 교파 사람들이 기도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그들 못지않게 기도해야 하는데 기도하는 것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도는 내가 연약하고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의 자세라면 마땅히 기도하고 주님의 뜻대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구약의 사무엘, 다윗, 엘리야 모든 선진들이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주님이 원하는 일을 할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요. 기도하는 것에 대해서 다시한번 그 문제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집니다.
- 최재홍 형제님 : A. 저는 그 기도의 범위가 확정된다고 생각됩니다. 13절에서는 영생에 대한 확신을 가지도록, 14절은 담대히 하나님께 구하라고 되어 있고, 15절은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받은줄로 알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구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으셨고, 하나님이 들으신 기도는 반드시 응답하심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번의 안다가 나오는데요. 들으신줄 알고, 얻은줄을 압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거할때에 하나님이 들으심을 알고, 응답하실 줄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들으신 기도는 그 응답히 하나님의 손안에 확정되어 있음을 말씀합니다. 그 결과가 내눈에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시간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그에게 구한 그것" 구체적으로 간구한 내용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구체적으로 구하는 내용은 하나님의 뜻에 맞게 구해야 합니다. 내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6절은 그 기도의 내용이 범죄한 형제에 대한 기도로 확장되는것 같습니다. 그 형제의 회복을 위해서 기도해야 함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죄 범하는 것을" 이 시제는 현재 시제입니다. 그가 지금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라면 그는 회복될수 있습니다. 16절의 그 형제는 구원받은 성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죄를 볼때에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는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확정되는 것이라고 생각되고요. 요한일서에서 전체적으로 보여주는것은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 부인하는 자와 시인하는 자의 대조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사망에 이르는 죄는 그리스도를 배도하는 죄를 가르키는것 같습니다.
또 16절에서 누가 사망에 이르는지에 대해서 우리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를 범하는 형제를 보거든 그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성도가 주는것이 아닙니다. 성도의 중보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 형제를 회복시키실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를 가지고 우리는 기도해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A2. 4절 이하에 나온 기도가 어떤 기도인가에 대해서 대체적은 3장과 연관시키는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요일3:21-22, 개역한글)
그리고 이 앞에서 형제 사랑에 대해서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기도는 형제를 위한 기도로 이어서 연관해서 생각해 볼수 있을것 같고요. 개인적인 여러가지 기도가 있을수 있지만, 형제사랑에 대한 기도로 이해하시고 좀더 확장할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기도를 언급하기 전에 생명에 대한 확신을 13절에서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기도할수 있음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기도와 관련해서 사도요한이 말씀해주시는 구절이기에 자연스럽게 요한복음과 연관해서 볼수 있을것 같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15:7, 개역한글)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는 말씀 앞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이 있습니다. 이 앞에 있는 말씀이 선행되지 않은대로 죽도록 구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많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 어떠한 기도를 하는것도 중요합니다. 내가 먼저 기도할수 없는 영적인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아는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요한일서 5장 14절이 말하는 놀라운 기도의 예시가 요한복음에 있습니다.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요11:41, 개역한글)
지금 어떤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미 하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심을 알았습니다. 이미 이루셨다고 가정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요11:42-43, 개역한글)
우리가 이러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나의 어떤 소원에 기반한 기도가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믿음을 기반한 기도가 되어야 함을 묵상하게 됩니다.
- 김보영 형제님 : 저도 전적으로 장형제님 교제에 화답합니다. 15절에서 "얻은줄을 도한 아느니라" 얻다라는 단어의 뜻이 하나님의 뜻대로 구한것은 이미 소유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것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응답하심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구하는 것을 현실적으로 다 응답받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 뜻대로 구했어도 바로 응답받는 것이 있고, 오랜 시간이 흘러서 응답받는 것이 있습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제 궤변일수 있지만 형제님, 자매님들께서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13절에서 영생을 말하고 14절에서 갑자기 기도가 나옵니다.
이 배경은 아마도 배교를 하는 사람들, 영지주의자와 예수께서 그리스도가 아님을 부정하는 자들이 있고, 그에 미혹된 성도들이 있는 가운데 있는 서신입니다. 그래서 사망에 이르는 죄,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가 있습니다. 저는 사망에 이르는 죄가 10절, 12절에 해당하는 죄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자들도 이같은 죄를 따라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미혹되어 있지만 이를 인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자들을 위해서 반드시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러한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가 기도한다면 그들은 반드시 돌이킬것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러나 대적하는 자들은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이기에 그들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 장승훈 형제님 : 그 부분도 형제사랑에 관한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14절에 담대함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 담대함이 3장 21절에도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우리가 형제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면 담대함으로 기도할수 있습니다.
또 2장 28절에 담대함이 나와있습니다. 2장 28절은 주님의 강림하심과 관련된 담대함입니다. 4장 17절은 심판날에 대한 담대함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미래적인 담대함이 있고 지금 현재적인 담대함이 있음을 구분해 볼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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