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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읽기 : 요한일서 4장 20-21절, 5장 1-3절(요약)

박이레 2026. 5. 10. 15:44

성경읽기 : 요한일서 4장 20-21절, 5장 1-3절(요약)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찌니라 (요일4:20-21, 개역한글)

- 김태우 형제님 사회 : 20절부터 볼 차례인데요.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형제를 어떻게 미워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20-21절을 먼저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김윤철 형제님 : 19절의 말씀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이유를 말씀합니다. 가장 주목할 단어는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사랑은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안에서 사랑이 생겨날 수 있는 것입니다.
20절에서 사도는 '조건 명제'를 사용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어서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직접 눈으로 볼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함을 나타낼수 있을까요? 이는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그 사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21절에서는 이것이 계명으로 선언됩니다. 우리는 형제를 사람으로써 더욱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하게 됩니다.

- 전의석 형제님 : 19-21절의 말씀을 보게 될때 요한복음 13장을 연상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겉옷을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십니다. 그리고 새계명,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이것이 요한복음 13장에 나오는 새 계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계명들'이 있고 '계명'이 있는데요. 21절에는 계명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인류 최초의 형제는 가인과 아벨인데요.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써 형제간의 사랑이 깨졌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같은 잠재력을 가지고 악함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오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그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가인과 아벨은 실패했지만,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서로 형제이면서 사랑하는 아름다운 본을 보입니다. 그리고 이는 주님 안에서만 보일 수 있는 사랑임을 묵상하게 됩니다.

- 최재홍 형제님 : 4장 10절에서는 사랑의 근원에 대해서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 아들을 화목제물로 보내셨습니다. 4장 19절에서는 사랑의 원천에 대해서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20절은 그 사랑을 받은 사람이 그 사랑을 실제로 나타내고 있는가를 시험합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형제 자매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노라 하고 미워하면" 이는 전부 현재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습관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습관적으로 형제를 미워하는 상태가 되는것은 양립할수 없는 것입니다. 또 말로 사랑한다고 하는것은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한다고 하고 미워하는 것은 두개가 동시에 존재할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19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성도들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본성으로 하는 사랑이 아니라 새롭게 주어진 새 성품으로 사랑할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지체된 성도를 사랑하지 않는것은 또한 맞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도의 유익을 구하고 또 행동으로 직접 나타냄으로 그 사랑을 드러내야 합니다.

21절에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라고 합니다. 이는 우리의 선택에 달린 것이 아니라 꼭 지켜야 하는 명령임을 말씀합니다. "받았나니" 이 시제는 현재형입니다. 한번 받고 끝난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해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지키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걷는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자" 시제가 현제 분사형입니다. 사랑하는 자도 하나님을 한번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 "또한"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형제를 사랑하는 것을 선택해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이 두가지를 함께 행해야 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20절은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 서로 충돌하면 그것은 거짓임을 말씀합니다. 21절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함은 형제 사랑의 순종으로 나타남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형제를 사랑하는 모습으로 그대로 드러나는 것을 말씀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4장을 전체를 살펴보면 4장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3장 5절을 보면 죄없으신 주님께서 저희 죄를 없이 하셨습니다. 4장의 여러군데서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게 해 주십니다.
저희가 4장을 공부할 때에 4장 7절-5장 3절까지 묶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을 말씀합니다. 4장 7-11절까지의 중요한 단어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12-16절까지의 내용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입니다. 이것은 현재 우리 가운데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말씀합니다. 17-18절은 "이로써 우리에게(우리와 함께)" 하나님의 사랑이 이룰 것을(과거, 현재, 미래에) 말씀합니다.

19절의 경우는 형제님께서 하신 표현 중에 '원천'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사랑의 원천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1). 첫번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먼저 사랑하셨고, 본을 드러내셨고, 사랑이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20절의 말씀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반드시 그 형제를 사랑할수 밖에 없다는 내용입니다. 2). 그래서 저희들이 사랑해야 하는 두번째 이유는 저희들의 본성이 그와같기 때문입니다. 21절에 와서는 3). 하나님께서 그렇게 명령하셨기 때문에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7-21절까지를 다시한번 정리하면서 하나님의 속성이신 사랑이 우리의 과거에 나타났고 현재에 나타나 있고 미래에 그 사랑이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본성을 바꾸셨기 때문에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명령이 주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마땅히 사랑해야 됩니다.

- 김보영 형제님 : 20절 말씀도 사도요한이 영지주의자들을 염두해 두면서 말씀한 것이라고 상기하게 됩니다. "거짓말하는 자니" 이는 원어적어로 이단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이들은 말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실제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형제 사랑은 분리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20절의 말씀은 영지주의자들이 구원받지 않은 자들이라는 것을 더 명확하게 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 구원받은 자라는 것을 더 명확하게 구분지어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21절은 원문에는 "and"라는 접속사가 앞에 있습니다. 그래서 20절의 말씀과 연결됩니다.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에 모든 계명이 다 들었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랑안에 모든것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남을 미워할수도, 도둑질 할수도, 부모를 섬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사랑한다고 하는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합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저는 요한일서를 전체를 생각하는 가운데서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1. 첫번째는 사랑입니다. 2. 두번째는 믿음입니다. 3. 세번째가 계명을 지키는 순종입니다. 이 세가지가 계속해서 나오면서 서로 상호 의존합니다. 믿음없이 사랑할 수 없습니다. 믿음 가운데서 저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또 사랑을 행할 때에 저희가 뜻하는 바 대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계명을 지키고 계명을 이루는 사랑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 순종없이 믿음이 있을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것에서 이 세가지가 요한일서의 떠오르는 주된 항목으로 생각됩니다.

- 김보영 형제님 :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서 믿음, 소망, 사랑 세가지를 말씀합니다. 이 셋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 사랑, 소망, 순종은 함께 가는 것입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3:36, 개역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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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일5:1-3, 개역한글)

- 김태우 형제님 사회 : 이어서 5장 1-3절을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5장의 개요를 언급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제가 구원간증을 할때 가끔 언급하는 내용인데요. 세상에 많은 신들이 있지만, 그 신들 가운데 인생을 먼저 사랑한 신을 본적이 없습니다. 세상의 신들에게는 사람이 반드시 그 신을 위해서 뭔가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신들에게 다가갈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일서 말씀을 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저희안에 사랑이 들어오고, 주님 안에서 그 사랑을 받은 자가 합당하게 살아가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것 같습니다. 이러한 사랑이 저희안에 존재할 수 있음에 감사가 되었습니다.

- 최재홍 형제님 : 5장 1절에 "믿는 자마다" 이는 구원받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자입니다. 그리고 누구를 믿는지에 대해서 적혀 있습니다. 그 믿음의 대상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이심"에서 '이심'이 현재형으로 적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서 영원히 그리스도이심을 드러냅니다. 거짓 교사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했습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언급합니다.
"난 자" 이는 태어난 것입니다. 완료 수동형의 시제입니다. 과거에 일어졌던 일이 현재까지 그 결과로 남아져 있는 것입니다. 수동형은 스스로 난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거듭난은 하나님께로부터 나는 것이고, 위로부터 오는 생명이며,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거듭나는 새 생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창조주이십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자녀를 얻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께서 죽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자녀삼으시는 것이 너무나 귀한 일이었습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요17:24, 개역한글)

아버지 하나님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자연스럽고요.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또한 우리 형제 자매님들에게 자연스러운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요한일서 5장 2-3절을 볼 때에 이 말씀들을 통해서 제일먼저 생각나는 것은 어머님들입니다. 어머니들이 자녀들을 위해서 많은 희생을 하십니다. 이 계명들이 무거운 것이 아니라고 하는데, 참 많은 어려움과 수고가 있습니다. 그런데 부모는 자녀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을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저희 성도들도 하나님을 섬기는데 많은 희생과 헌신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저희에게 무거운 것이 아닌 이유는 저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러한 희생과 헌신이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