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 : 요한일서 5장 4-6절(요약)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요일5:4-6, 개역한글)
- 김윤철 형제님 사회 : 오늘 본문에서는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인지 말합니다. 그래서 세상을 이기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또 예수께서 물과 피로 임하셨다는 뜻이 무슨 뜻인지, 성령께서 이를 증언하고 계시다는 것도 함께 교제하면 좋겠습니다.
형제님들께서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김윤철 형제님 : 사도요한 당시 교회 안밖으로 영지주의자들이 퍼지고 있었습니다. 사도는 이에 맞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으로 오신것을 증언합니다. 4-5절을 통해서 사도는 세상을 이기는 자가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임을 말씀합니다.
세상을 이긴다는 이김을 생각할 때에, 이 세상은 우리가 사는 이 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 세상의 체계와 가치입니다. 곧 죄입니다.
이기는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입니다. 거듭난 자, 곧 하나님의 자녀를 뜻합니다. 하나님께로 거듭난 자에 대해서 요한복음 3장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거듭남은 우리의 공로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생명입니다.
그리고 이기는 믿음은 믿음의 대상이 중요합니다. 이기는 자의 믿음의 핵심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믿는것이 세상을 이기는 힘입니다. 우리는 때로 세상의 위력과 힘과 고통 앞에서 이길수 있는 힘이 없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승리는 내 강함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이 우리의 승리입니다. 4-5절을 교제했습니다.
- 전의석 형제님 : 4-5절에서 세상을 이긴것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요. 믿음으로 이겨야 함을 말씀합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내적인 것입니다. 내적인 것이 없는 상태에서 외적인 드러남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도 아니고 참된 진리가 아님을 말씀을 통해서 깨닫습니다.
영지주의자들뿐 아니라 이단 사상을 가진 자들이 외형적인, 행함에 더 치중합니다. 사실 믿음을 가지고 믿음을 통해서 의롭다 함을 가지고 세상에 이김을 드러내는 것인데, 행함으로 이기려 하는 것은 하나님께 결코 인정받을수 없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내적인 변화는 성령과 물과 피입니다. 신명기에서 증인을 말할 때에 둘이나 셋을 말합니다. 우리의 내적인 변화의 증거는 성령과, 물과, 피로 확신할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을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려 함입니다. 요한일서는 쓴 목적은 이 믿은 사람들이 그 생명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하려 함입니다. 이와같이 두 성경이 서로 상호 보완적으로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계십니다.
- 김윤철 형제님 : 6절을 보겠습니다. 물과 피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데요. 물은 주님께서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시며 공생애의 시작을 알리셨습니다. 피는 십자가에서 흘리심으로 공생애의 완성을 보이셨습니다. 사도는 침례만이 아니라, 피까지, 십자가까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사람이며 하나님이심을 말씀합니다. 또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자 물과 피가 나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봐도 주님은 완전한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7절에서 증거하시는 이가 성령이심을 말씀합니다. 주님께서는 보혜사, 성령을 보내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의 진리의 영이시므로 그분을 절대적으로 우리가 신뢰할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4:15, 개역한글)
주님은 멀리 계신분이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 가운데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 이를 통해서 주님께 감사드리게 되었습니다.
- 김보영 형제님 : 4절을 더 붙여서 교제하기를 원합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이 세상은 주님이 이기신 악의 세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로써 이 세상을 이긴다는 것은 주님의 십자가에 편승해서, 주님안에 있음으로써 이기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의 믿음이 세상을 이기는데, 그것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사역으로 그 누구도 우리를 정죄할수 없고 대적할 수 없는 완전한 승리안에 두셨기 때문에, 그 무엇도 우리를 대적할수 없습니다.
5절에서 "이기는 자가 누구뇨" '이기는' 이는 원어적으로 마귀, 세상과의 싸움에서 계속해서, 끝까지 이기는 이김을 말씀합니다. 우리는 완전한 승리안에 있습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우리에게 굉장히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 최재홍 형제님 : 4절에서 "세상을 이기는"에서 '이기는'이 현재형 시제입니다. 계속해서 이기는 이김입니다. 매일 자신과 싸우고 세상의 가치관과 싸우고 마귀와 싸우는 싸움이지만, 계속해서 이기는 승리를 말씀합니다. 과거의 단 한번의 승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승리로 말미암아 계속해서 세상을 이길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여기서 '이김'은 부정과거 시제입니다. 어떤 사건의 진행 사건을 길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완결된 사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언젠가 우리가 세상을 이길 승리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세상을 이긴 승리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승리한 편에 서서 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그 믿음의 길 가운데서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이기기 위해서 믿음으로 살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이라고 말씀하는데요. 우리의 믿음은 확실한 근거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또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믿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4절에서는 우리들이 믿는 믿음을 구체적으로 말했고요. 5절은 그 믿음의 대상을 말해줍니다. 그리스도 밖에서는 세상을 이기는 방법이 전혀 없음을 말해 줍니다. "예수께서" 그 이름을 먼저 언급합니다. 그 이름이 성육하신 주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실제로 오셨던 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주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말해주고 있고요, 아버지와의 독특한 관계를 드러내기 위해서 다시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이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거짓되게 말했기에 사도는 이를 다시한번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4-5절을 같이 연결해서 짧게 살펴보면 거듭한 생명은 세상을 이기고 있고, 그 승리는 믿음으로 나타나고 있고, 그 믿음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두고 있기 때문에 승리할수 있는 것입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저는 여기서 조금 다른 의견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윤철 형제님께서 말씀하신 물과 피입니다. '물'을 많은 형제님들이 '침례'로 보십니다. 그런데 저는 이 물이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아닌가 싶습니다. 요한복음 4장, 7장에서 주님께서는 말씀을 물로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그런 말씀들을 생각해 보면 침례보다 말씀으로 보는것이 저는 조금더 와 닿는 교제인것 같습니다.
물론 주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물로 침례를 받으신 것으로 보는 분별도 좋습니다만, 물과 피라고 할 때에 이 말씀이 저희에게 얼마나 부합되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요한일서는 물과 피라고 할때, 물이 먼저 나옵니다. 요한복음은 피로 먼저 죄를 속하시고 물로 깨끗하게 하십니다. 요한일서는 이미 깨끗함을 받은 사람들이 물로 깨끗하게 하고 피로 구속함을 받은 사실을 강조하고자 이러한 순서로 기록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 김보영 형제님 : 6절은 매우 난해한 구절이고 많은 견해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물이 무엇이냐 하는 것에 대해서, 침례로 보는 것이냐? 아니면 말씀으로 볼것이냐? 하는 분별에 대해서 혼란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3장에서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러한 측면으로 보면 여기서 물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봐야 하는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 김윤철 형제님 : 형제님들의 교제에 공감하고요. 물은 말씀이 맞습니다. 그런데 여기 구절을 보면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라고 해서 '세상에 임하신 것'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공생애의 시작을 물로 말씀드렸습니다.
- 장승훈 형제님 :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요일5:11, 개역한글)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생명은 예수님의 생명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안에 있는 증거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요한일서는 여러 각도에서 말씀합니다. 1. 첫째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납니다.(2장) 의를 행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죄를 짓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는 완전주의자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완전주의를 표방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완전주의에 이르렀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2. 두번째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3장) 3. 세번째는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 가운데 거하고자 합니다. 물론, 논외로 물에 대해서 형제님들 사이에 많은 의견이 분분하지만 한봉래 형제님은 이 물에 대해서 침례로 분별하시기는 했습니다.
그리고 영지주의자들은 이 세번째 측면에 있어서 완전히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한일서는 성도들 가운데 생명이 있음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이는 올바른 계명입니다. "그 형제를 사랑할 것이라" 이는 형제 사랑입니다. 이것은 김회상 형제님의 분별입니다. 그래서 의를 행하려 하는가, 형제를 사랑하려 하는가, 주님에 대한 올바른 분별을 드러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제 5장으로 들어와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분별을 가진 사람이 믿는 자며, 형제를 사랑하는 자입니다. 그리고 5장 3절은 형제사랑과 여러가지가 섞여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4장 7절) 또 "그 형제를 사랑해야 된다"(21절)로 강도를 올립니다. 그리고 그 사랑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4장의 마무리가 5장 3절로 끝납니다.
4절에서 형제님들께서 세상을 이기는 이김을 교제해 주셨는데요. 수양회때 교제를 바탕으로 저도 교제드리겠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말씀대로 온전히 살수 있는가?"라고 말할수 있는 부분이 있을수 있습니다. 분명하게 실제로 진리로 제시된 말씀이 있는데, 이를 부정하는 사람은 우리가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요한일서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어렵다고 하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모든 자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기본이며, 마땅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겼다는 것은,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아니면 성령님의 사역을 통해서 사람의 생각들이 거절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어떻게 의롭게 살수 있겠어? 그것은 이론적인 것이지 불가능한 거야."라는 생각들을 말씀을 의지하며 떨쳐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은 그와같은 마음으로 새롭게 태어난 자들이고, 그것이 세상을 이기는 이김임을 교제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이김은 무엇인가? 그냥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승리가 보장되는 것이냐? 질문할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 때에 그 승리가 보장되는 것으로 저는 보고 있습니다.(4-5절)
그리고 물과 피에 대해서요. 김윤철 형제님께서와 수양회 때에 주님의 공생애 사건의 시작의 침례와,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의 피로 교제되었습니다. 그런데 형제님들의 교제를 들을 때에 이를 요한복음과 연결해서 물을 말씀으로 분별해도 서로 연결이 됨으로 이해해 볼수 있겠다 생각됩니다.
하지만 사도요한이 무엇을 염두하고 물을 쓰셨는가는 좀더 공부해봐야 할것 같습니다.
- 최재홍 형제님 : 저도 6절은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 다만 요한은 서신서를 시작할 때에 계속해서 영지주의자들을 염두하며 서신을 씁니다. 그런데 영지주의자들 중에서도 많은 파가 있었다고 합니다. 많이 갈라진 분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각각 주장하는 바가 미묘하게 달랐기 때문에 요한사도는 그것들을 각각 염두해두며 논파합니다.
사도요한은 "물과 피로 임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임하시니"는 '부정과거 시제'로 사용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실제적으로 있었던 일에 대해서 기록하는 내용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된 사람이며, 하나님으로써 오신 것을 말씀하고 있고, 주님께서 육을 입으셨다는 것은 물과 피를 다 가지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어떤 자들은 주님의 신성만을 인정하는 부류들이 있었고, 또 다른 영지주의자들은 주님의 인성만 인정하는 부류들이 있었습니다. 또 어떤 영지주의자들은 주님께서 고난받으신 후에 그 신성이 올라가 버리셨다고 주장하는 부류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이 '물과 피'를 말씀하며 주님께서 참된 인성과 신성을 가지신 사람이심을 말씀해주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여기서 저는 성령을 교제하고 싶습니다. 저희가 구원받은 후에 성령이 없이는 저희가 살수 없습니다. 창세기에서 천지 창조하실 때에 성령께서 제일 먼저 언급됩니다. "하나님의 신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이처럼 성령님께서 매우 중요한 일을 수행하고 계심을 보게 됩니다.
구원받은 자들에게 믿음과 승리의 이김에 있어서는 성령님의 역할이 중요하고, 중요했고, 중요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비췸을 받습니다.
- 김윤철 형제님 : 제가 한봉래 형제님 교제를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요한복음 4장에서 물은 말씀이라고 단정적으로 교제하셨거든요. 그런데 요한일서 5장에서는 또 물이 공생애 시작을 말씀하는 것이라고 하니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재홍 형제님의 교제처럼 물과 치가 주님의 완전하신 사람의 몸을 입으심과 신성을 말씀하시는 것이라는 것이 참 좋은 교훈이 되는 것 같습니다.
- 장승훈 형제님 : 형제님 말씀대로 요한복음 3장에서 니고데모와의 교제에서 물을 말씀으로 보시는데요. 또 성경에서 물은 두가지로 봅니다. 물은 말씀이나 성령으로 봅니다. 흐르는 물은 성령의 사역으로 봅니다. 그리고 요한일서 5장 3절에 나와 있는 이 "물과 피로 임했다"는 말씀은 요한복음 3장에 나온 물과는 다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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