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모임(요약글)/장승훈 형제님(요약)

그리스도 교의 초보를 버리고.... 완전한데 나아가자(요약)

박이레 2026. 6. 21. 12:51

그리스도 교의 초보를 버리고.... 완전한데 나아가자 / 26년 6월 21일 일요일(요약2) / 장승훈 형제님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침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아갈찌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와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히6:1-8, 개역한글)

우선 1-3절까지의 말씀을 교제하고요. 시간이 허락되면 그 뒷부분도 교제해 보겠습니다.
히브리서 5장에서 대제사장의 자격에 대해서 지난 시간 말씀드렸고요. 또 우리 주님께서 멜기새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심을 말씀드렸습니다.

또한 이와 같이 다른데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히5:6, 개역한글)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히5:11-12, 개역한글)

이같은 내용을 언급하면서 히브리 기자는 고상한 지혜를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수 없음을 말씀합니다. 이들이 성장하지 못한 상태라는 것을 지적하고 6장으로 넘어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침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아갈찌니라 (히6:1-2, 개역한글)

성경이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완전한데 나아가자"라는 것입니다. 운전면허를 따면 처음에는 초보운전 딱지를 붙이지만 1년정도 지나면 그 딱지를 떼야하지 않겠습니까?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히브리 기자는 이 부분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히브리인들 가운데 믿음의 성숙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권면하고 나아가자라고 말씀합니다. 위로가 되는 것은 주어가 "우리가"입니다. 히브리 기자는 나도, 그리고 도희도 같이 나아가자라고 말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숙하는데, 주님을 닮아가는데 나아가야 합니다.
지난 금요일에 목포 중부모임에 다녀왔을 때에 강성찬 형제님이 하신 말씀 중에 인자이신 주님을 닮아야 한다, 주님을 먹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영적으로 성장하는, 나아가는 것입니다.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침례들과 안수와 죽은자의 부활과 영원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가 있습니다. 이 기초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 기초를 다시 닦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더 나아가야 합니다.

1.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죽은 행실은 죄입니다. 죄는 우리를 사망으로 가져갑니다. 복음 시간에 로마서를 봤는데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 하나니 그 마지막은 사망임이라"(롬 6장) 요한복음에서 침례요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죽은 행실을 회개하는 것은 침례 요한이 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의 여러 선지자들이 죽은 행실 가운데서 회개해야 함을 말했습니다. 이 히브리서를 읽는 히브리 신자들은 그 구약의 말씀이 기반이 되어 회개 했습니다. 그러나 이 회개가 구원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회개는 구원받기 위해서 중요한 내용입니다.

2. "하나님께 대한 신앙"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라는 것은 믿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신앙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부터 주신 것입니다. 구약에서부터 여러 믿음의 선진들에게 제시된 것이고 마찬가지로 우리가 믿는데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돌아온 사람들은 굉장한 핍박을 받는 사람들이지만 구약에서 많은 진리들의 유산을 물려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더 잘 믿어야 합니다. 구약에 많은 말씀들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에 예수님을 믿어야 했지만 믿지 않고 십자가에 매달아 버렸습니다.

3. "침례들" 이는 정확하게 표현하고 신약에 나온 침례라는 단어와 다른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동일한 단어가 사용된 용례가 히브리서 9장입니다.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히9:10, 개역한글)

"씻는 것"이 여기 사용된 "침례"와 같은 단어입니다. 주님께서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일이 있습니다. 또 유대인들은 집에오면 씻는 규례들이 있었습니다. 생활적으로도 그들은 씻는것이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종교생활 중에서도 씻는것이 중요했습니다. 레위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갈 때에 하나님의 일을 하기 전에 물두멍에서 손을 씻는것을 먼저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주님의 일을 하기 전에 손을 씻는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구원받기 전에 씻는것이 중요하지만, 이것은 또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4. "안수와" 이 안수는 사도행전을 가서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행6:3, 개역한글)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행6:6, 개역한글)

이 안수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고있는 바울 형제님도 아나니아에게 안수를 받고요. 바울도 다른 사람을 안수합니다. 또 시몬이 베드로가 안수하여 성령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자기도 그 능력을 달라고 했었죠. 또 구약의 안수는 제물을 가져오고 제사장은 제물과 제물을 가져온 사람의 머리에 안수했습니다. 곧 제물과 그 사람을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저희들이 구원받을 때에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게서 십자가에 죽으신 일이 저희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같은 것이 저희가 구원받을때 중요한 개념입니다. 그러나 안수가 구원이라는 것은 또한 아닙니다.

5. "죽은자의 부활"이 있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죽은 성도들이 부활할 것으로 생각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죽었는데 부활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나사로입니다. 주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시기 전에 마르다는 마지막날 부활의 때에 다시 살것을 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죽은자의 부활뿐만 아니라 산자의 부활을 말씀하십니다. 그렇기에 이 부활이 구약에 이미 소개되었던 것입니다.

6. "영원한 심판" 이것도 구약에서 여러번 말씀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를 위한 중보 기도를 할때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창18:25, 개역한글)

세상에 대한 심판이 있음을 아브라함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나온 백보좌 심판은 이미 구약에 있는것을 계시록이 정리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도의 초보는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간직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들이 우리를 구원받게 하는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는 완전한데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히6:3, 개역한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완전한데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의 고집을 내려놓고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모임에서 하던대로 하는것이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문제가 없었기에 하던대로 하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을 따라서 나 자신을 바꿔 가면서 성숙을 향해서 가야 합니다. 그때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4절 이하의 말씀은 굉장히 어려운 말씀입니다. 그래서 4절 이하의 말씀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잘못을 해서 구원이 잃어버릴수 있는 것처럼 오해될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게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모든 구원받은 자들의 구원은 안전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4절 이하의 말씀들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맛보았습니다. 또 참예했습니다. 먹은 것이 아니라 맛보았기 때문에 구원받은 사람으로 볼수 없는 것으로 볼수 있습니다.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