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모임(요약글)/장승훈 형제님(요약)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 진리의 기둥과 터(요약)

박이레 2026. 6. 14. 12:55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 진리의 기둥과 터 / 26년 6월 14일 일요일(요약2) / 장승훈 형제님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딤전3:14-15, 개역한글)

사도바울 형제님께서 에베소 지역에 있는 보낸 서신이 디모데전서입니다. 특별히 디모데를 그 지역에 남겨두고 디모데에게 쓴 편지입니다. 그리고 왜 디모데를 거기에 남겨놨는가를 3-4장에서 그 핵심을 말씀합니다.
저는 두달 전에 3장 15절을 교제 했고요. 그때 하나님의 집을 말씀드렸습니다. 벧엘에서 야곱에게 나타나셨던 하나님, 하나님의 집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집은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곳이다,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는 곳임을 말씀드렸습니다. 이는 우리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자리에 나와서 함부로 행동하는 경향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각이나 말 하나하나가 이곳에 하나님이 계심을 알고 생각하고 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집은 교회입니다. 교회는 멋인고 성스러워 보이는 건물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들의 무리가 교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집은 교회이고요. 그래서 이 교회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3장 15절 뒷부분,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라는 부분을 교제하고자 합니다.
그럼 디모데가 있던 에베소가 어떤한 지역이었는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인하여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아데미의 은감실을 만들어 직공들로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그가 그 직공들과 이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유족한 생활이 이 업에 있는데 이 바울이 에베소 뿐아니라 거의 아시아 전부를 통하여 허다한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행19:23-26, 개역한글)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분이 가득하여 외쳐 가로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행19:28, 개역한글)

에베소는 우상으로 가득차 있던 지역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우상으로 인해서 돈벌이를 하고 있던 지역입니다. 그래서 에베소는 우상이 가득한 곳으로 이해해 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에베소 지역에 서신을 보내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상은 눈과 토와 입이 있지만 볼수 없고, 숨쉬지 못하고, 말할수 없습니다. 듣지도 못합니다. 사람의 기관을 가지고 있는것 같지만 그 어떤 것도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우상이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는 큰 존재인 것처럼 말합니다. 아데미라는, 또 소스라는 신은 아무 능력도 없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우상이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처럼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저희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으로 소리도 못하느니라 우상을 만드는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와 같으리로다 (시115:4-8, 개역한글)

우상을 만드는 자가 우상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듣고보고 말하는 것을 허락하셨지만, 그는 우상과 같이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죽은 자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우상으로 가득찬 에베소 지역에 있는 지역교회에게 사도바울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라고 말씀합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 전도자들의 발을 통해서 그곳에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그곳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게 하신 것입니다. 지금 있는 이 모임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역사하사 두신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1절에서 기도의 중요성을 말씀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의지하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고 그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복음 시간에 들었던 것처럼 혈루병 걸린 여인이, 생명이 새어나가는 여인이 주님을 만졌을때 그 병이 나았던 것처럼, 주님께서 그 병고침을 허락하셨습니다. 물론 그를 위해서 주님께서 죽으셨습니다. 또 주님께서 달리다굼 하셨을때 죽은 소녀가 살아났습니다. 저희는 죽는다 할지라도 다시 살것입니다. 이 교회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생명으로 지어진 교회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영원도록 함께하시고 우리를 살게하실 것입니다.
예배 시간에 있었던 형제님들의 기도 말씀, 덕언, 교제들이 일관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셔서 저희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며 저희들의 간구를 이해하려 하시는 분입니다.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 (딤전4:13, 개역한글)

바울 형제님은 디모데에게 읽는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고 하빈다. 읽는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귀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죽은 우상이 하는 의미없는 말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매주, 주중에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듣고 있나요? 이것은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참된 생명을 주는 말씀인데 우리는 그에 귀기울이려 하지 않습니다. 물론 저에게도 많은 세상적인 압박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를 잘 수행하기 위해서 부담을 느낍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남는것은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귀기울이고 순종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행을 갈 때에 여행 가방에 필요한 것들을 심사숙고해서 담습니다. 우리가 주님앞에 가는것은 주님께 가지고 갈 것들을 잘 담아서 가는 것입니다. 무엇을 가지고 가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한 것들을 담아서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불순종하고 마음대로 했던것을 가지고 가겠습니까? 주님 말씀에 순종했던 것들을 가방에 가지고 가야 할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하심, 생명으로 지어진 교회가 지금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입니다. 건물마다 기둥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 기둥들은 건물의 무거운 하중을 버티고 있습니다. 기둥은 건물이 무너지지 않고 붙들고 지지하고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둥과 터는 진리를 보호하고 수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겠습니까? 말씀에 귀기울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말씀에 불순종하면 그것이 나에게만 그치지 않고 다른 성도들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저희가 서로가 서로를 보고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믿음으로 영적으로 행하면 다른 성도를 세우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육신대로 행하면 다른 성도들이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매주마다 하는 성결읽기가 단순히 지식적인 것을 채워주는 것 뿐만 아니라 진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정확하게 이해하고 순종하고 또 전파하는 것입니다. 저희들의 교제권이 매우 좁지만, 주님께서 기회를 주시면 이 진리를 알지 못하는 분들에게 겸손한 마음으로 전파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수 있으리라 (딤후2:2, 개역한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딤후4:2, 개역한글)

말씀을 계속해서 전파해야 할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진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어려운 측면을 말씀드리면,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경책하면 대부분의 분들이 듣기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말하는 입장에서도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지금보다 젊었을 때에 쉽게 생각에 있는것을 말했습니다. 그러면 듣는 분들이 어려워 하고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듣는 분들도 성숙해야 하고, 말하는 분들도 성숙해야 합니다. 경책하는 분들도 인격적으로 더 뛰어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임시적으로 그와같은 역할을 맡기신 것입니다. 그리고 반대로 경책을 받는 분들도 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피차간에 서로 위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자꾸 우리가 서로를 배려한다고 필요한 경책의 말씀을 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진리가 훼손되는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할때에 복수가 아니라 단수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는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모두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것은 지키고 어떤것은 지키지 않는다면 진리 자체를 훼손한 것입니다.
아데미신전에는 그 신전을 지탱하는 기둥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에베소 지역에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진리를 지키는 기둥들이 교회에 있음을 말씀합니다. 우리가 그 어떤것도 하나님보다 우선시 되어 있다면 우상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경외함 가운데 섬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를 통해서 순종하며 진리를 지킬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