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 : 침례의 의미와 순종 / 26년 5월 31일 일요일(요약2) / 장승훈 형제님
오늘 침례식이 있기 때문에 침례에 관한 말씀을 찾아보고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작년 이후 거의 만 1년만에 침례식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2:38, 개역한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저희가 아는대로는 죄사함을 받고 침례를 받는 것인데 여기서는 이것이 하나인 것처럼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주님을 믿고나서 첫번째로 하는 순종이 침례라는 것으로 이해해 볼수 있습니다. 교회가 침례를 주는 것으로 교회와 함께 순종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침례라는 것이 수동태로 강제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침례는 자발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침례라는 단어 자체가 그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세례라고 써 있는것을 침례로 바꿔서 읽었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에 나온 모든 세례는 물을 뿌리는 것이 아니라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을 말하기에 세례가 아니라 침례가 합당한 단어입니다.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마3:16, 개역한글)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셨습니다. 곧, 물에 몸이 잠기셨음을 뜻합니다.
이에 명하여 병거를 머물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침례를 주고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흔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행8:38-39, 개역한글)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자발적으로 물에 들어갔다 나온것을 침례로 말하고요. 그렇기에 침례라는 표현이 성경적입니다.
그런데 에디오피아 내시가 빌립에게 복음을 듣고 곧바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믿었는데 왜 침례를 주지 않느냐? 바로 줘야 하지 않느냐?" 그런데 이 당시 상황과 저희의 상황과 차이가 있습니다.
먼저 이 장면에서는 빌립이 교회와 무관하게 외부에 나가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그리고 전도자와 복음을 듣는 구도자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침롈르 주는 교회와 침례에 순종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은 교회가 침례를 베푸는 것입니다.
폐회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좇으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행13:43, 개역한글)
여기보면 교회 가운데 유대인이 있고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유대인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민족입니다. 그러나 유대인이라 할지라도 유대인인 것이 구원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유대인이라 할지라도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할때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 즉 이방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침례를 주었다는 것을 사도행전 말씀을 통해서 알수 있습니다. 그들은 원래 하나님과 무관한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로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이방인들이 받는 침례입니다. 곧, 침례를 받음으로써 하나님과 관계있는 자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침례라는 행위 자체보다도 그 의미를 알고 침례를 받는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반대로 유대인들이 받는 침례는 무엇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침례를 받더니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침례 베푸는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마3:6-7, 개역한글)
침례요한이 준 침례가 마태복음 3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사도 요한이 쓴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 중 한명인 사도 요한이 기록한 서신서이고요. 그리고 여기 나온 침례 요한은 사도 요한이 아닙니다. 주님보다 6개월 먼저 이땅에 태어나서 주님의 길을 예비한 자입니다. 천국이 가까왔음을 말하고 회개할 것을 말하고 그에게 나온 사람들에게 침례를 베풀었습니다.
침례요한이 베푼 침례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침례가 필요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하나님이 택한 백성인 유대인이라 할지라도 너희는 회개가 필요함을 침례를 통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침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은 죄가 없으신데 침례를 받으신 이유는 주님께서 죄인의 자리에 서시기로 자처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받았던 침례는 유대인들도 이방인과 마찬가지로 죄인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2:20, 개역한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고 함께 할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라고 할수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믿고 고백할 때에 우리는 이천년 전으로 돌아가서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다시 부활하실 때에 주님과 함께 부활할 것을 알고 믿고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침례인 것입니다.
침례는 물속으로 들어갑니다. 물에 온 몸이 잠기는 것은 죽는 것입니다. 그리고 잠시 물에 잠겨 있습니다. 잠시 물에 잠긴 것은 장사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물에서 나오는 것은 주님과 같이 부활할 것을 소망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교회의 침례에 순종하는 것은 내가 주님과 함께 죽었고, 장사되었고, 부활할 것을 믿는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침례를 받고 (고전10:1-2, 개역한글)
사도바울은 성도들이 알기를 바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모세를 좇아 구름과 바다에서 침례받은 것을 말합니다. 이 바다는 홍해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열가지 재앙으로 애굽을 치시고 마침내 바로가 이스라엘이 가는것을 허락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났을 때에 홍해앞에 서게 됩니다. 그때 애굽의 바로가 군대를 끌고 이스라엘을 뒤쫓아 옵니다. 세상은 우리가 구원받았다고 해도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우리를 다시 붙잡으려 뒤쫓아오며 여러가지로 유혹합니다. 그때 이스라엘은 그대로 붙잡히는 것이 아니라 모세의 말을 따라서 홍해를 건너는 것이 필요하고 우리는 말씀에 순종하여 침례를 받는것이 필요합니다.
물론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침례를 통해서 다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멸망받는 세상 가운데 있다가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침례에 순종하는 것을 통해서 세상과 관련이 없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받고 침례에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은 굉장히 이상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침례를 받는것이 구원받은 것을, 생명이 있음을 순종으로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장현준 학생이 작년 학생캠프 때에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1년이 넘는 시간동안 저희가 꽤 오랫동안 분별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동안 장현준 학생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저희가 오늘 침례를 베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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